봉달이의 삐딱한 전쟁사

이제는 기괴한 그들..일본군의 삽질 대전차 전술 TOP 5..<1>

작성일 작성자 봉달이

이제는 기괴한 그들..일본군의 삽질 대전차 전술 TOP 5..<1>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세뇌시켜 지금까지 그렇게 알려져 있는 전쟁사들은 무수히 존재한다.


2차 대전사에 있어 가장 잘못 알려져 있는 사례가 있다면 바로 나치 독일의 폴란드 공세 시기, 절망에 빠진 폴란드 기병들이 상식적으로 상대가 안 되는 독일전차들을 향해 칼을 뽑아들고 전속력으로 돌격해 전멸했다는 스토리라 할 것이다.
이 이야기는 강력한 독일의 힘과 대비되며 폴란드군의 나약함과 폴란드 정부의 무능을 보여주는 가장 실질적인 사례로 쓰이며 대대적으로 선전되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마치 “정설”같이 이어져 내려왔다.


말 타고 칼 들고 독일전차들을 향해 돌격해 전멸했다..큭~~


그러나 이는 그저 왜곡된 소설에 불과하며 자신들의 강력함과 폴란드의 무능함을 선전하기 위해 독일 선전당국에 의해 조작된 프로파간다의 하나였을 뿐이다.
이런 선전을 통해 폴란드 군은 독일 전차에 대적할 번번한 전차 1대도 없어서 시대에 뒤떨어지는 “말 따위로 무장한 3류 군대”라는 식으로 비하되었고, 전투기들의 지원 하에 기계화 부대가 신속하게 적진을 돌파하는 전격전으로 무장한 독일군에게 깜조차도 못되었다는 것을 세뇌시켰다.    


말 부대 따위가 전차와 전격전으로 무장한 독일군에게 깜이 되겄냐?


하지만 실제 폴란드 기병이 무모하게 독일 전차를 정면으로 공격한 일 따위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 팩트이며 사실은 다음과 같다.


1939년 9월 1일에 시작된 독일의 폴란드 침공 당시 폴란드 육군은 전체 병력의 약 10%에 해당하는 기병대를 보유하고 있었고, 많은 말들을 군에서 사용하고는 있었지만 이는 대부분 전투 지역으로 보급품을 운송하는데 사용되었는데 이는 “말 타고 전차를 공격”했다고 배를 잡고 조롱하던 독일군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운송용 말 이외에 실제 전투 단위의 폴란드 기병대는 11개의 기병 여단으로 조직되었으며 각각 포병, 기갑 부대 및 보병 대대로 구성된 3~4개 기병 연대가 1개 기병여단을 구성했다.


독일(위)이나 폴란드나 말 타고 돌아 다닌 건 마찬가지..


하지만 이 시기 폴란드 기병대는 말 타고 장검을 휘두르며 적진을 돌파하는 전통적인 역할을 포기한 지 이미 오래였고, 기병대 스스로도 더 이상 기병을 적 방어선을 뚫을 수 있는 수단으로 보지 않았다.
대신, 폴란드 기병대는 그 이동 수단을 이용해 폴란드군 방어선의 빈틈을 메우는 신속 예비대로 활용되었고, 이를 통해 말을 타고 신속하게 전투 지역으로 이동한 기병들은 도착하면 말에서 내려 보병으로 전투에 참여한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었다.


말은 그저 신속하게 위동하기 위한 수단일 뿐, 돌파용으로 쓰려는 게 아냐..


이에 따라 폴란드 기병대는 1937년에 이미 “Szabla wz. 34”라 알려진 기병용 장검을 표준 무기에서 해제시켜 의식용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고 기병들에게는 선택사양 무기로만 지급되었다.
대신 기병대에게는 20mm 기관총을 장착한 TKS 경전차와 75mm 야포, 37mm 대전차포, 대전차 소총 같은 현대식 무장이 지급되었으며, 장검을 버린 기병대 병사들은 독일 기병대의 주력 소총인 카라비너(Karabiner) 98k와 디자인 면에서 유사한 자국산 카라비넥(Karabinek) wz.29 볼트 액션식 소총으로 무장했다.


무슨 헛소리냐? 우리도 칼 버린 지 오래 되었다!

    
하지만 폴란드 기병대가 말 타고 전투에 투입되는, 즉, 기병 돌격을 전혀 감행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어서, 독일 침공기간 동안 폴란드 기병대는 알려진 사례로만 약 16차례에 걸쳐 기병 돌격을 감행했고, 이 시도는 “전차에 무모하게 달려들어 탈탈 털렸다”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그 대부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
전차에 달려들어 가루가 되었다는 독일 측의 프로파간다도 이런 실제 사례에 그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는 1939년 9월 1일, 폴란드에 대한 나치 독일의 침공이 시작된 날, 크로얀티(Krojanty)에서 약 250의 폴란드 기병들이 독일군을 공격했던 전투에서 기인했다(실제 폴란드 기병대가 독일 전차들을 기습한 모크라 전투(Battle of Mokra)에선 독일 제 4 기갑사단이 탈탈 털리기도..-_-;;;)


기병대에게 기갑사단이 털린 건 어케 설명할래? 모크라 전투..

  
이날 아침, 일제히 독일군이 폴란드 국경을 넘었고 1개 기갑사단, 2개 기계화 보병사단, 6개 보병사단으로 구성된 귄터 폰 클루게(Günther von Kluge) 대장의 독일 제 4 군이 폴란드 북부 지역의 공세를 담당했으며, 이 지역은 5개 보병사단 2개 국경경비대 여단, 1개 기병 여단으로 구성된 폴란드 포메라니안 군(Pomeranian Army)이 넓은 지역에 산개된 채 이들을 상대해야만 했다.
제 4 군의 주력인 하인즈 구데리안(Heinz Guderian) 중장의 독일 제 19 기갑군단(XIX Panzer Corps)의 좌측 측면에는 마우리츠 폰 빅토린(Mauritz von Wiktorin) 소장이 지휘하는 제 20 기계화 보병사단이 움직이고 있었고, 이들의 기습에 국경수비대를 포함한 폴란드군은 브라헤(Brahe) 강의 방위선으로 일제히 퇴각하기 시작했다.


폴란드 북부는 독일 제 4 군이 동프러시아와 연결해 포위하는 작전..

 
이 지역에서 유일한 기동성 있는 폴란드군 병력이던 포메라니아 기병여단(Pomeranian Cavalry Brigade) 여단장 스타니스와프 그즈못-스코트니츠키(Stanisław Grzmot-Skotnicki) 준장은 즉시 휘하의 제 18 포메라니아 울란(Pomeranian Uhlan) 기병연대에게 이 철수 작전의 지원을 위한 이동을 명령했다.
당시 폴란드 북부 전역에서 독일군의 작전은 호이니체(Chojnice)를 뚫고 철도선을 장악한 다음, 동 프러시아를 연결해 거대한 포위망을 만드는 것이었고 독일군은 제 2 기계화 보병사단과 제 20 기계화 보병사단을 주력으로 장갑열차 <Panzerzug 3>을 앞세워 호이니체으로 진입하며 공격을 시작했다.


기병여단장 그즈못-스코트니츠키와 호이니체에 진입한 장갑열차 Panzerzug3..

  

전략적으로 중요한 호이니체가 함락됨에 따라 카지미에즈 마스탈레즈(Kazimierz Mastalerz) 대령이 이끄는 제 18 포메라니아 울란 기병연대는 이곳으로부터 철수하는 폴란드 군을 지원하고 철도를 차단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고, 곧바로 프로이센 동부 철도(Prussian Eastern Railway)의 철길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 코니체(Chojnice) 마을에서 7km 떨어진 철도 교차로로 향했다
폴란드 제 1 라이플 대대와 체르스크 작전 그룹(Czersk Operational Group.. 1.5개 사단 정도 전력의 폴란드 군사 단위..)의 철수를 지원하기 위해 이들은 오후 6시 30분경, 철도 교차점 인근의 크로얀티 마을까지 접근했고, 이곳에서 그들은 흩어져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일단의 독일군 보병 무리를 목격했다.


기병연대장 마스탈레즈 대령과 크로얀티까지의 접근..


이들을 관측한 연대장 마스탈레즈 대령은 이들이 현재 방어 자세를 취하지 않고 있고, 부근에 독일 기갑차량들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직후, 먼저 선제공격으로 기습해 위협을 제거해버리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는 예하 제 1 기병 대대장 에우게니우슈 시비에시치아크(Eugeniusz Świeściak) 중령에게 19시를 기해 기습 공격을 가할 것을 명령했다.
당시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독일군 병력들은 한스 골닉(Hans Gollnick) 대령이 지휘하는 제 20 기계화 보병사단의 제 76 보병 연대 병력들로 병력 수는 약 800여명이었다.


여기 자빠져 있던 것들은 독일 제 20 기계화 보병사단 아색기들이었다..


이들을 기습하면 효과가 클 것이라 판단한 마스탈레즈 대령은 기병들을 집합시켜 독일군의 후방에서 칠 것을 명령했고, 실제 오후 7시경, 제 1 기병 대대 약 250명이 일제히 숲속에서 뛰쳐나갔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자빠져있던 독일군은 적지 않은 혼란을 일으켰다.
폴란드 기병대의 초기 돌격은 무척 성공적이어서 놀란 독일군 보병들은 사방으로 흩어졌으며, 폴란드 기병대는 이들을 추격해 숲을 가로지른 후 들판 밖으로 몰아냈고 이 과정에서 독일군은 11명이 전사하고 9명이 부상을 입었다.


갑자기 말떼가 달려들자 자빠져있다 혼비백산..혼이 가출했다..


하지만 이들의 성공은 여기까지였다.


신나게 질주해 들어간 폴란드 기병대는 도로를 통해 진입해 들어오던 독일 제 20 정찰대대(Aufklärungs-Abteilung) 소속의 장갑차들과 딱 마주쳤고 이들이 보유한 정찰 장갑차 Sd.Kfz.221과 20mm KwK 30 기관포를 장착한 Sd.Kfz.222로부터 불벼락이 쏟아졌다.
이때서야 비로소 연대장 마스탈레즈 대령은 기습을 위해 배속 받은 TKS/TK-3 탱켓(Tankette)들을 투입하지 않은 걸 후회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한참 신났는데.. 20mm KwK 30 기관포를 장착한 Sd.Kfz.222 장갑차가 뙇~!!


독일 장갑차와 마주친 폴란드 기병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고, 이 과정에서 대대장 시비에시치아크 중령마저 전사했으며 그를 구원하러 달려온 마스탈레즈 대령도 독일군의 기관총탄에 전사해 버렸다.
폴란드 기병대는 4명의 지휘관을 포함 25명이 전사하고 5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손실한 말과 장비를 포함하면 거의 60%의 전력을 홀라당 잃었다.


졸지에 전사한 제 1 기병 대대장 시비에시치아크 중령..

 

지휘관의 오판으로 발생한 이 비극은 비록 폴란드 기병대의 정예 병력이던 제 18 포메라니아 울란 기병연대를 전멸의 벼랑으로 몰아넣었으나 이들의 행동은 독일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으며, 전술적 퇴각을 고려할 만큼 독일 제 20 기계화 보병사단의 진격을 지체시켰다.
또한 그들이 시간을 끌며 애초 목적한 폴란드군의 철수도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이들이 무사히 2차 방어선에 도달할 수 있었으므로 크로얀티 전투는 전투 자체는 패했으나 전략적 목표는 달성한 전투라고도 볼 수 있다.


전투 자체는 패했으나 전략적 목표는 달성한 전투..

 

전투가 끝난 직후 독일 선전부서에서는 “중립적인” 이탈리아와 미국 언론인들에게 전투지를 ​​견학하고 취재하도록 권유했고 이탈리아 언론인 인드로 몬타넬리(Indro Montanelli)와 미국 종군기자 윌리엄 L. 샤이어(William L. Shirer)가 현장을 방문했다.
현장에는 폴란드 기병대의 장검과 사체들이 장갑차 주변에 널려있고 연대장 마스탈레즈 대령의 시신만이 따로 분리되어 있었으며, 어리석은 폴란드인들이 독일 전차에 달려들었다는 독일군 언론 담당 장교의 설명이 덧붙여졌지만 이들 기자들은 실제 전투를 목격하지 못했기에 독일 측이 말한 것과 그들이 본 광경에 대해서만 기사를 작성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 언론인 인드로 몬타넬리 등에게 요딴 거만 보여주니..


이탈리아 기자 몬타넬리는 독일 장교의 설명과 현장 상황을 바탕으로 무모한 돌격을 감행한 폴란드 기병대의 “용감함을 칭송”하는 기사를 작성했는데 이것이 그만 그 유명한 선전의 달인, 파울 요제프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의 눈에 띄고 말았다.


일단 쓰기는..,폴란드 기병대, 무모하지만 용감했다고 썼는데.. 


그는 이 기사를 보고 바로 새로운 선전의 장을 만들어 내었고 그는 독일군 잡지 <데르 베어마흐트(Der Wehrmacht)> 1939년 9월 18일 판에 강력한 독일 전차를 본 폴란드 기병대가 어리석은 자포자기식 자살 돌격을 감행했다는 이야기로 각색했다.
괴벨스는 “폴란드의 어리석음과 국가의 비합리성”에 대한 증거로 쓰기위해 이 전투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고, 그는 "전차에 뛰어든 폴란드 기병대"를 내세워 민족적 자주성이 떨어지는 폴란드가 독일의 지배를 받아야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 스토리가 홀랑 왜곡되며 폴란드가 독일의 지배를 받아야하는 이유가..

 

이 내용은 1940년에 발표된 69분짜리 나치 선전영화인 <폴란드 전투(Feldzug in Polen)>와 1941년작 선전영화 <뤼초브 전투단(kampfgeschwader lützow)> 등에 삽입되었고, 이후 이 장면들이 서방권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 필름 등에 쓰여지며 대대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후 온갖 선전 영화 따위에 쓰였고 이 자료들이 대대로 계승된다..


폴란드는 시대에 뒤쳐진 기병이나 사용하는 쌈마이 군대라 현대화된 독일군을 이길 수 없고, 무모하다는 걸 알면서도 자살 돌격을 감행하는 3류 인종들이라 "게르만 민족의 지배를 받는 것이 타당하다!"라는 메시지를 담은 이 왜곡된 이야기는 이후 폴란드가 공산권에 속하며 소련도 폴란드를 위성국으로 지배하는 데에 활용했기 때문에 수정없이 계속 이어졌다.
또한 서방권도 이 전투와 관련해 공산권에 속한 폴란드로부터 정확한 사정을 알 수 없었음에 더해, 대립적인 냉전 전사 사관의 일환으로 이런 허무맹랑한 스토리를 계속 퍼트렸으며, 오죽하면 최근 국내에서도 방영된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2차 세계 대전> 시리즈 <히틀러의 유럽 침략>편에도 관련 내용이 괴벨스의 프로파간다 내용 그대로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오죽하면 아직까지도 이러고 있다..폴란드 기병대, 그들은 멍청했다 라며..


이는 괴벨스가 했던 명언(?), “거짓말을 천 번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Repeat a lie a thousand times and it becomes the truth)”는 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사례라고 볼 수 있으며 폴란드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이나 열 받을 상황임에 틀림없다.


거짓말을 천 번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흑~~ ㅠ.ㅠ


하지만 괴벨스가 알았다면 정말 기절초풍할 이야기가 실제로 존재했고 말 타고 전차에 덤벼드는 것보다 훨씬 황당한 이야기가 현실에서 벌어졌다.
그것도 게르만 민족에게 지배받는 게 당연했던 3류 민족이 아니라 자신들과 어께를 나란히 하는 동맹국에서 말이다.


<다음 편에 계속>


 


<사진 출처>

http://historum.com/war-military-history/64954-did-polish-cavalry-charge-german-tanks-infantry.html
http://acienciala.faculty.ku.edu/hist557/lect16.htm
http://uk.businessinsider.com/first-wwii-battle-last-cavalry-charge-2016-9
http://www.allempires.com/forum/forum_posts.asp?TID=26065
https://pl.wikipedia.org/wiki/Kazimierz_Mastalerz
https://www.historic-uk.com/HistoryUK/HistoryofBritain/World-War-2-Timeline-1939/
http://www.tanks-encyclopedia.com/ww2/nazi_germany/sdkfz-221-222-223.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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