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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의 여승 그리고 수덕여관 손님 이야기

작성일 작성자 단천 (丹泉)

예전에 송춘희의 "수덕사의 여승"이라는 노래가 크게 히트를 하여 지금도 노래로 머리속에 남아 있는 수덕사





오늘은 종교적인 측면보다 수려한 경치와 수덕사의여승 노래와 수덕여관이 궁금 하다


















































속세에 두고온 님 잊을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적에~~ 그 법당인가



































세계일화

세계는 한 송이 꽃

너와 내가 둘이 아니오

산천초목이 둘이 아니오

이 나라 저 나라가 둘이 아니오

이 세상 모든 것이 한송이 꽃






수덕여관 이야기 :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이자 여성운동가 나혜석이 이혼을 한 후1935년 출가를 하고자

       이곳 수덕사에서 여승으로 수도생활을 하던 친구 김일엽스님 을 찿아 왔지만  일엽과 만공스님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시켜줄때까지 안 가겠다고 시위하듯 이곳 수덕여관에서 5년여 시간을 보내게 된다





수덕여관에 나혜석이 묵는다는 소문이 나자 그림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몰려왔다 만공스님의 배려로 유화 조각을 가르치게 되는데

그중에는 훗날 그림작품과 동백림간첩 사건으로 유명한 이응노가 있었다





후에 이응노화백이 1944년 수덕여관을 인수하여 1956년 파리로 가기전까지 작품 활동을 하던 곳이다





이응노의 암각화, 글씨인 듯 사람모습인 듯 한 이작품 설명에

"여기에 네 모습도 있고 내 모습도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다"라고 하였다 한다








                        나혜석                                김일엽                           이응노                                김태신

         1896,4~1948,12                 1896,4~1971,4              1904,2~1989,1                     1922.~2014.12

                                ----------------------- (퍼온 사진, 존칭생략 ) -------------------


 수덕사의 여승:   자유연애주의자인 일엽은 5명 남자와 초혼 파혼 미혼모 재혼 동거를 하였는데

                     정착을 하지 못하고 출가를 한 비련의 주인공 이기도 하다

                     일엽에게는 일본 유학시절 일본은행 총재 아들과 만나 아들을 두었는데

                     조선 며느리는 안된다는 반대에 아들을 일본에 두고 귀국 하였다


                     나중에 일본에 있던 아들이 어머니가 보고 싶어 수덕사로 일엽을 찿아 갔는데

                     "어머니라고 부르지 말고 스님이라고 불러라" 하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후 아들도 출가를 하였는데 김천 직지사에서 수행한 일당 김태신 스님 이다

                     일당스님은 2014년 12월25일 93세에 입적을 하셨는데 27일 발인날 아침 화장터로 가기전에

                     송춘희씨가 수덕사의여승을 부르면서 영결식이 끝났다고 하니

                     수덕사의 여승은 그당시 소문처럼 김일엽 스님이 주인공 아닐까 


                                                       수덕사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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