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소비자는 과학과 산업의 발전과 국제교류의 확대로 여러 기술로 개발된 다양한 제품을 접하며 살아갑니다. 상품을 구매하는 데 있어서 계량은 소비자가 상품에 대해 적정한 가격을 지불하는 기본적인 근거 단위가 됩니다. 예를 들어 주부가 시장에 가서 음식, 생활용품, 의류 등을 구입할 때도 질량, 길이, 부피 등의 계량 단위가 사용됩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이동한 거리에 대한 비례로 요금을 지불합니다. 또한 운동을 할 때에도 어느 정도의 속력으로 얼마간의 시간 동안 운동을 할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스포츠 선수가 신기록을 세울 때도 계량이 이용됩니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 분야에서도 계량과 측정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수입식품의 유해물질 함유 여부와 유해물질의 포함량을 제한하기 위한 계량부터 영양소 함량 파악에서도 계량이 사용되며, 의료적인 차원에서도 혈압, 혈당, 체온 등을 잽니다. 전기, 자동차, 도시가스, 가전제품 등에서도 계량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보다 건강하고, 보다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는 근간이 되는 것이 바로 계량이고, 계량단위입니다.
건강관리용 계량기
체중계, 체지방계, 체내지방계, 혈압계, 체온계, 혈당계, 당뇨계, 도보계수기, 조리용 주부저울, 염분측정기
실내
온습도계, 내외부온도계, 식중독 주의계, 욕실 온도계
요리
냉장고용 온도계, 튀김용 온도계, 육류내부의 온도 측정기, 와인용 온도계
입냄새 검사기, 알콜 검사기
야외용
기압계, 고도계, 나침반, 정원관리온도계 ,자외선 검사기, 전자파 검사기
수도미터, 가스미터, 온수미터, 열량계, 주유기, 전력량계, 전자저울, 요금표시전자저울, 오일미터, LPG미터, 눈새김탱크, 눈새김탱크로리, 곡물수분측정기, 속도측정기 등
 
상점에서 우유를 하나 사 먹어도 200 mL 1개당 얼마, 어머니가 시장에서 야채나 쌀을 사려고 해도 몇 g, 몇 kg당 얼마, 지하철 요금도 몇 km당 얼마...

이렇게 여러 분야에서 각기 기준이 되는 단위가 쓰이고 있으며, 만약 이러한 단위가 없다면 같은 물건도 거래할 때마다 가격이 달라질 수 있고, 이로 인해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는 사람들로 시장거래는 매우 혼란스러워 질 것입니다.

이러한 불편을 없애기 위해 각 나라에서는 길이, 넓이, 부피 등의 양을 정확히 재기 위한 계량단위를 법으로 정해 놓고 사용하도록 하고, 국제적으로 동일한 기준을 정해 혼란을 방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법정계량단위, 또는 국제단위계(SI)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법정계량단위는 위의 그림과 같이 길이(m) 등 7개의 대표적인 단위가 있습니다.
유럽뿐만 아니라 중국 등 전통이 있는 여러 나라에서는 고유의 단위체계를 사용해 왔습니다. 
우리나라도 단군조선 때부터 약 4000년 동안 '결부속파법(結負束巴法)'이라는 우리 고유의 단위체계를 사용해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많은 제도가 중국과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만 생각하지만, 한줌(1巴), 한뭇(1束), 한짐(1負), 한멱(1結) 등 10진법으로 면적단위를 정한 '멱짐뭇줌법'은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우리 고유의 전통 단위입니다.

이밖에 고대 농경사회인들 사이에서 발전된 우리의 독자적인 실용단위인 '섬', 삼국시대부터 사용한 부피단위인 '되', 중국 당나라로부터 유입된 무게단위인 '근·냥·전' 등의 단위들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다 1902년 광무 6년
10월에 '대한제국 도량형규칙'이 제정되었고, 이 규칙은 1905년 '대한제국 법률 제1호'로 제정되었습니다. 
이때 면적단위인 한줌(1巴)은 1 m2로, 한뭇(1束)은 10 m2, 1짐(1負)은 100 m2(=1 a(아르))로, 한멱(1結)은 10 000 m2 즉, 1 ha(헥타아르)로 정하였습니다. 
현재 전 세계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10진법 단위인 미터 단위와 일치하는 우수한 단위체계를 갖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고유의 훌륭한 단위체계가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전국토를 '평'단위로 측량하면서 현재의 '평'단위가 도입되어 사용되었고, 일본 진주양식업자들이 사용하던 '돈'도 이 당시 유입되어 아직까지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고종황제 6년, 즉 1902년 10월 조선 도량형 규칙을 통해 우리나라는 그 동안 사용해오던 척관단위를 국제적인 단위 미터법의 체계에 맞추어 재 정의하였습니다.
1자(尺)를 정확하게 20 cm로 하고, 
1보(步)를 6자, 즉 1.2 m,1칸(間)은 10자, 즉 2 m 
1리(里)를 420 m, 
1식(息) 또는 1참(站)은 30리로 12.6 km로 정했습니다.
즉, 우리 선조들은 약 13 km를 걸어가서 숨(息)도 돌리고, 간식(站)도 먹었답니다.
하지만 1910년 일본이 강제합병을 한 후 일본식 척관단위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1자(尺)를 30.303 … cm
1칸(間)을 6자로, 1.8181 … m
1평(坪)을 사방 6자인 3.30587…m2 
1리(里)를 3.9 km로 쓰게 되었지요.
이때부터, 계산도 어렵고 국제기준에도 맞지 않는 단위체계를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애국가의 “무궁화 삼천리~”를 일본식 척관단위로 계산하면,
3 000리 × 3.9 km = 11 700 km로 백두산에서 뉴욕까지의 거리가 되지요

하지만 우리 전통단위로 계산을 하면
3 000 리 × 420 m = 1 260 km로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의 거리가 됩니다.
조선시대 왕명을 받아 비밀리에 전국을 돌면서 국민들의 생활을 살피고 탐관오리의 비리를 적발해서 징벌하는 역할을 주로 했던 암행어사. 사극을 보면 "암행어사 출두요~" 하면 경찰이 수사를 할 때 신분증을 먼저 꺼내 보이는 것처럼 암행어사가 마패를 꺼내 보이며 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흔히 암행어사의 상징 하면 '마패'를 떠 올리는 경우가 많은데요. 사실 암행어사의 보물은 '유척'이었다고 합니다.
유척은 놋쇠로 만든 '자'인대요. 지방수령이 거둬들인 곡식을 제대로 관리하는지, 측정 기구를 속여 세금을 더 많이 거둬들이지는 않았는지, 형벌 도구가 정확한지, 사리사욕을 위해 계량하거나 측정하는 도구를 속이지는 않는 지를 확인하는 '기준'이었습니다. 이렇게 암행어사 활동의 중심도구로 측정과 계량의 기준이었던 만큼, 암행어사의 보물이었던 것입니다.

개인간의 거래에서도 정확한 계량이 중요하지만, 국가로 본다면 통일된 기준이 어느정도 중요했을 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서양의 역사에서 새로운 왕이 집권할 때마다 도량형을 재정비함으로써 제도 개혁의 수단으로 삼아온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물물교환을 시작한 이래로 인류는 무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는 공동 단위를 개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이집트의 고도화된 도량형 기술은 야드의 원형
- BC 4000년경 태양력이 개발되었으며, BC 3000년경 피라미드가 건조되었습니다.
- 당시 도량형 중 측정을 위한 길이의 단위로 큐빗이 사용되었습니다.
   * 큐빗 : 가운데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까지의 길이, 야드의 원형
- 이후에 과학자 뉴턴은 피라미드가 내부는 긴 큐빗(왕 또는 성직자의 팔꿈치까지의 길이), 
  외부는 짧은 큐빗(일반백성의 팔꿈치까지의 길이)으로 된 벽돌을 사용하였다고 밝혔습니다.
유럽 도량형 제도의 원형이 된 바빌로니아의 60진법에 의한 도량형 제도
- 바빌로니아의 60진법에 의한 도량형제도 중 시간과 각도의 단위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고대 그리스인은 당시 최고의 과학체계 확립에도 불구하고, 도량형 제도는 발전시키지 못했습니다.
- 이후 로마의 12진법이 유럽에 확산되었으며, 각 나라의 전통적인 명칭 및 관습법과 혼용되어 잡다한 
  도량형 제도가 성립되었습니다.
중세 유럽 상인들이 창안한 계량 단위
- 고대 프랑스어 '아봐르투퐈‘(avoir·du·poids, 상용파운드)는 금, 은제품을 제외한 상품의 무게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16세기말에 453 g을 의미했습니다. 또한 금은 제품의 무게를 재는 데 사용한 Troy Pound(금형 
  파운드)는 373 g 이었습니다. 같은 파운드단위라도 피계량물의 종류에 따라 무게를 달리 정의한 셈입니다. 
  이는 야드, 파운드법의 기본단위로 파운드(lb)의 유래가 되어 영국 도량형의 전신이 되었습니다. 파운드의 
  기호 lb는 파운드의 옛 이름 libra에서 온 것입니다.
영국의 도량형 제도
- 영국은 전통적으로 길이의 단위로 인치, 무게의 단위로서 파운드, 부피의 단위로 파인트 등을 
  사용해왔습니다.
- 이 단위들은 1215년 '대헌장'에서 공식 채택되었습니다.
- 1584년 엘리자베스 여왕의 절대군주제도 아래에서 도량형 제도가 통일 제정되었습니다. 과거의 60진법을 
  바탕으로새로운 야드-파운드법을 제정 했습니다. 
- 영국의 도량형 제도는 1968년에 수정되기 전까지 전 세계적으로 이용되었습니다.
프랑스의 도량형 제도
- 큐빗을 근간으로 하는 프랑스의 도량형 제도는 왕이 바뀔 때마다 큐빗의 규격이 변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샤를 대왕은 다리우스 대왕 큐빗의 1/2에 상당하는 피에르드로와를 기준으로 도량형 제도를 통일해 제정 
  했습니다.
- 프랑스대혁명 당시 국민회의가 새로운 도량형 제도를 창안하도록 과학아카데미에 명령했습니다.
- 1840년 1월 1일 미터법이 제정되었으며, 전면적으로 실시되었습니다. 
- 과학자나 공학자, 제조업자들이 편리하다는 이유로 도량형을 수용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 26년의 도량형 제도 개혁으로 부피단위는 양기척(量器尺, 23.12 cm3)을 기준기로 하여, 合(홉= 20.02 cm3), 升(되=200.23 cm3), 斗(말=2002.3 cm3), 石또는解 (섬= 20023 cm3)으로 정하였습니다.
길이단위는 양지주척(量地周尺 = 20.107 cm)을 기준기로 하여 1 步長 (1 보장 = 周尺 6尺= 120.64 cm), 1 里(1 리 = 300步(보) = 361.92 m)로 하였습니다.
넓이단위는 기준 양지척(基準量地尺 = 20.107 cm)을 기준기로 하여 1 步積 (1 보적 = (1보장(步長) × 1보장(步長) = 1.455 m2), 1 묘(묘)는 100 步積(100 보적= 145.54 m2)로 정하였습니다.
무게단위로 최소량을 1수(銖)로 하고 표준량을 1냥(1兩=24수(銖)으로 하고, 1근(斤)을 16냥(兩)으로 하였습니다. 실제 무게를 알아보기 위하여 1978년 중국의 하북성에서 출토된 표준 분동형태의 석권(石權) 이나 동권(銅權)의 무게를 조사한 결과 1수(銖)는 약 0.647 g, 1냥(兩)은 약 15.525 g, 1근(斤)은 약 248.4 g이었습니다.
송, 원, 명나라 시절에도 단위체계는 계속 바뀌어 청나라시대 때는 1보(步)가 영조척(營造尺)으로 5척(尺)으로 160 cm, 1리(里)는 1,800척(尺)으로 576 m 로 규정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신라 박혁거새 꿈에 도인이 하늘에서 내려와 금척(金尺)을 주면서 “그대는 문무에 뛰어나고 신성하여 백성들이 바라본지가 오래되니, 이 금척으로 나라를 바로 세우라” 했다는 기록이나, 태조 이성계의 꿈속에도 어떤 도인이 하늘에서 내려와 태조에게 금척을 주면서 “그대는 마땅히 금척을 가지고 나라를 바로 잡으라” 했다는 기록은 도량형이 갖는 정치적 상징성을 의미합니다. 세종 때 박연은 해주산 검은 기장으로 황종척을 만들어 아악 등 예제를 정비하고, 나아가 각종 자와 도량형기의 표준으로 삼은 바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의 도량형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에 ‘척(尺)’, ‘석(石)’, ‘근(斤)’ 등의 단위가 있고, 삼국 시대의 1근용 석제용범이나 석제 저울추, 통일신라 시대의 청동제 12지상 저울 추 등이 출토된 점을 미루어 보아 일찍부터 도량형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의 도량형제도는 고려시대에도 계속되었는데, 정종 12년에는 매년 봄, 가을로 관가나 개인이 사용하는 저울, 섬, 말, 되, 밀대, 장척을 검사하게 하고, 동경과 서경, 4도호부 및 8목 등의 지방 관청에서 이 일을 맡아 보도록 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정치이념을 국시로 하여 예악제도의 정비와 아울러 도량형제도를 정비하였습니다. 태종때 허조는 오례 제정에 필요한 정확한 표준자로서 조례기척을 만들었고, 세종 때 박연은 황종척을 만들었습니다. 한편 집현전에서 가례의 주척을 교정하여 표준 주척을 제정하였고, 세종28년에는 구리로 표준 도량형기를 만들어 서울과 지방에 반포하고 전국의 명산과 사고(史庫)에 보관하게 하였다. 조선시대의 도량형제도는 성종대에 편찬된 “경국대전” 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조 때 편찬된 “속대전”에는 공용 및 개인용 말과 섬에 낙인이 없거나 규정에 맞지 않는 경우 곤장 60대에 1년의 유배형을 정하기도 하였습니다. 정약용도 도량형은 서울은 공조에서, 지방은 감영에서만 제조하여 판매하는 개혁안을 제시하였습니다.

고종31년(1895년) 갑오경장으로 ‘내무아문’에서 신식의 도량형제를 선포하였고, 광무 6년(1902년)에는 정식으로 도량형기의 제조 검정기관인 ‘평식원’을 따로 설치하고, 도량형규칙을 정하여 서구식의 도량형제를 도입하였습니다. 광무 9년(1905년)에는 법률 제1호로 도량형법을 정하고, 농상공부령으로 도량형기 판매규칙을 정하였습니다. 융희3년(1909년) 9월 21일에는 도량형법을 개정하고, 시행규칙을 반포함으로써 일본식 도량형제를 도입하였는데, 이때 일본식 도량형 단위인 돈, 관, 평이 쓰였습니다. 1926년 2월 27일 조선도량형령이 공포됨에 따라 일본식 미터법이 전용되었습니다.

근대 이후 도량형은 길이, 질량, 부피에서 시간, 온도, 기압 등 각종 측정분야로 확대되었으며, 전통 도량형기를 찾아보기 힘들어 졌습니다. 그러나 1964년 1월부터 미터법으로 통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척관법의 단위 등이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되나 말로 재던 곡물은 그램(g), 액체는 리터(L)로 표기되고 있지만, 한자, 두자, 한치, 두치라든가, 아파트 넓이의 경우 제곱미터(m2)로 통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의 토지 넓이 단위인 평(坪)으로 말하고 있으며, 저울의 경우에는 금 한돈, 소고기 한근 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 시장에 가면 여전히 홉과 되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의 도량형” 중 일부)
길이 단위 변화표
經國大典 (경국대전) 1469년
光武 6年 (광무 6년) 1902년
隆熙 3年 (융희 3년) 1909년

 毫(호)
0.1釐
毛(모)
0.1厘
釐(리)
1/10分
釐(리)
10毫
厘(리)
10毛
分(분)
10釐
分(분)
10釐
分(분)
10厘
寸(촌)
10分寸(촌)
10分
寸(촌)
10分
尺(척)
10寸
尺(척)
10寸
尺(척)
10寸
丈(장)10尺
丈(장)
10尺
間(칸)
6尺
  里(리)
1386尺
丈(장)
10尺
    町(정)
360尺(60間)
    里(리)
12960尺(36町)
거리 단위 변화표
經國大典 (경국대전) 1469년
光武 6年 (광무 6년) 1902년
隆熙 3年 (융희 3년) 1909년
1909년, 度의 단위로 통일
 

 毛(모)
0.1厘
釐(리)
1/10分
釐(리)
0.1分厘(리)
10毛
分(분)
10釐
分(분)
10釐
分(분)
10厘
寸(촌)
10分周尺(주척)
66/100尺
寸(촌)
10分
周尺(주척)
10寸
步(보)
6周尺
尺(척)
10寸
丈(장)
10尺
間(칸)
10周尺
間(칸)
6尺
步(보)
5尺/6尺
鍊(련)
10間(100周尺)
丈(장)
10尺
里(리)
1800尺(180丈)
里(리)

町(정)
360尺(60間)
息(식)
30里
息(식)30里(63000周尺)
里(리)12960尺(36町)
넓이 단위 변화표
高麗 文宗 23年
(고려 문종 23년)
高麗史 食貨志
(고려사 식화지)
頃畝法
경무법
世宗25年 量田事目
m325년 양전사목
結負法
결부법
經國大典
경국대전
地積
지적
光武 6年, 1902年
광무 6년, 1902년
地積
지적
隆熙 3年, 1909年
융희 3년, 1909년
 

   勺(작)
0.1合
勺(작)
0.1合
      合(합)10勺
合(합)
10勺
分(분)
6寸步(보)
周尺
方5尺
積25尺
把(파) 줌
1척
把(파)
周尺
5尺平方
步(보)/
坪(평)
6尺平方
尺(步)
0分畝(무)
240步
束(속) 뭇
10把
束(속)
10把
畝(무)
30步
步(積)
6尺
頃(경)
100畝
負(부) 짐
10束
負(부)
10束
段(단)
10畝(300步)
結(결)
方33步
字(자)
5頃
結(결) 멱
100負
結(결)
100負
町(정)
10段(3000步)
부피 단위 변화표
經國大典 (경국대전) 1469년
光武 6年 (광무 6년) 1902년隆熙 3年 (융희 3년) 1909년
勺(작)
1/10合
勺(작)1/10合
勺(작)
1/10合
合(홉)
10勺
合(홉)
10勺
合(홉)
10勺
升(되)
10合
升(되)
10合
升(되)
10合
斗(말)
10升
斗(말)
10升
斗(말)
10升
斛(곡)小斛平石(소곡평석)
15斗
石(석)
15斗
石(석)
10斗
大斛全石(대곡전석)20斗
질량 단위 변화표
經國大典
(경국대전)
1469년
光武 6年
(광무 6년)
1902년
光武 9年
(광무 9년)
1905년
隆熙 3年
(융희 3년)
1909년
  毫(호)
1/10釐
毫(호)
1/10釐
毛(모)
1/10厘
  釐(리)
10毫
釐(리)
10毫
厘(리)
10毛
分(분)
10釐
分(분)
10釐
分(분)
10釐
分(분)
10厘
錢(전)
10分
錢(전)
10分
錢(전)
10分

10分
兩(양)
10錢
兩(양)
10錢
兩(양)
10寸

 
斤(근)
16兩
斤(근)
16兩
斤(근)
10尺
斤(근)0.16貫
稱(칭)
小稱
3斤(1斤)
    貫(관)
中稱
30斤(7斤)
      
大稱
100斤
      
계량의 노래
박목월 작사/ 김희조 작곡
1. 달아서 주고받고 사고팔며는 / 생활이 밝아온다 구김살 없이 
   바르고 정확한- 계량으로써 / 헤아려 살펴가며 알차게 살자 
   누구나 알기쉬운 미터법으로 / 명랑하게 웃으며 밝게 살자 

2. 눈어림 짐작으로 살아가며는 / 언제나 뉘우친다 돌아서며는 
   재보고 달아보는 알찬손길이 / 보람찬 우리생활 이루게하나 
   세계가 두루쓰는 미터법으로 / 명랑하게 웃으며 밝게 살자

우리나라는 1961년 계량법을 정하고 법정계량단위를 제대로 쓰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 일환으로 1966년 10월 26일 '계량의 날'을 제정했습니다. 이 노래는 계량의 날을 기념해 
박목월 시인이 가사를 붙이고 김희조 선생이 작곡 한 것입니다. 
요즘 노래와는 많이 다르지만, 우리 현대사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재미있고 의미 있는 노래입니다

출처 : 섬유인 | 글쓴이 : 달공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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