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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란 특집 (2편) - 왜 란만 나폴레옹에게 반말을 했을까 ?

작성일 작성자 nasica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장 란은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뒤에도 사석에서는 tutoyer (뛰똬예 - 당신 vous이라고 존칭을 쓰지 않고 친근하게 너 tu라고 반말을 하며 지낸다는 뜻의 불어입니다) 하는 몇 안되는 가까운 친구 관계였습니다.  여러 부하들 중 왜 란만이 나폴레옹과 끝까지 서로 반말을 하며 지내는 사이가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아무리 구글링을 해도 그에 대한 설명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 책(Margaret Chrisawn이라는 분의 'Emperor's Friend')을 읽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먼저, 란이 어떤 경로로 나폴레옹과 만나게 되었는지 보시지요.  스페인과의 피레네 산맥 전쟁이 프랑스의 완승으로 끝난 이후, 피레네 방면군 중 상당 부분은 1795년 10월 이탈리아 방면군으로 배속되었습니다.  이 중에는 당연히 우리의 주인공 장 란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방면군의 총사령관은 셰레르(Barthélemy Louis Joseph Schérer)였습니다.  셰레르는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하고 롬바르디아를 침공하기 위해 나름 애를 쓰고는 있었습니다만, 이탈리아 방면군 전체가 피레네 방면군 못지 않게 지독한 보급품 부족과 그에 따른 사기 저하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암울한 상태에 대한 이탈리아 방면군의 불평에 대해 새로 성립된 파리의 총재 정부가 내준 해결책은 풍족한 군자금과 넘치는 군수품이 아니라, 웬 비쩍 마른 새파란 청년을 셰레르를 교체할 새 총사령관이랍시라고 보내 준 것이었습니다.  이 새파란 새 총사령관의 이름은 당연히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습니다.


오쥬로나 마세나 등은 이미 이탈리아 방면군 내 요직을 차지한 쟁쟁한 지휘관이었으므로 나폴레옹이 최초로 부임했을 때부터 서로 기세 싸움을 하며 좋든 싫든 얼굴을 익혔으나, 란은 아직 자신의 부대조차 온전히 가지고 있지 못한 중령 정도의 계급이었으므로 나폴레옹과 직접 얼굴을 맞댈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1796년 4월 초 드디어 본격적인 롬바르디아 침공에 나선 나폴레옹이 란이라는 동갑내기 중령을 알게 된 것은 4월 14~15일의 데고(Dego) 전투에서였습니다.


데고 전투는 마세나가 아르장토(Eugène-Guillaume Argenteau)의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한 뒤 방심하고 편히 잠을 자던 야간에, 오스트리아군의 부카소비치(Josef Philipp von Vukassovich) 대령이 크로아티아 출신의 그렌츠(Grenz) 부대를 이끌고 쳐들어와 마세나를 속옷차림으로 도망치게 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이때 나폴레옹은 그 기습에 놀라 라아르프(Amédée Emmanuel François Laharpe) 장군에게 데고 방면을 지원하게 했는데, 그때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여 열세인 병력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군을 성공적으로 몰아냈던 것이 바로 란이 임시로 지휘하던 반편 여단(demi-brigade)였습니다.  


나폴레옹은 여러가지 면에서 천재적인 인물이었는데, 그의 장점 중 하나가 인재를 알아볼 줄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이 데고 전투에서 란의 용기와 재능을 알아보고는, 그에게 제대로 된 부대의 정규 지휘권을 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행운을 망쳐 놓은 것이 당시 나폴레옹의 부관 역할을 하던 쥐노(Jean-Andoche Junot)였습니다.  나폴레옹이 란 중령에게 마침 그 지휘관이 전사하여 공석으로 있던 제69 반편 여단 지휘권을 주라고 했는데, 쥐노는 그만 실수로 제39 반편 여단 지휘권을 준 것입니다.  하필 제39 반편 여단 지휘관도 막 전사한 뒤라서, 착각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 제39 반편 여단에는 그 상위 사단장이던 오쥬로가 다른 중령을 지휘관으로 임명한 뒤라서, 란의 지휘권은 공중에 붕 떠버린 처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란이 데고 전투에서 얻은 것은 지휘권보다 더 소중한 것이었으니, 바로 나폴레옹의 관심이었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란의 사정을 알게 된 나폴레옹은 약 3주 뒤 새로 창설된 전위 부대(avant-garde)인 3개 대대의 지휘권을 주며 그의 신뢰를 표시했고, 란은 그 신뢰에 전과로서 보답했습니다.  5월 8일 달레마뉴 (Claude D'allemagne) 장군이 포(Po) 강을 도하하여 폼비오(Fombio)를 공격할 때 선두에 선 것이 란이었는데, 그는 강변에 늘어선 오스트리아군의 총격을 무릅쓰고 보트를 이용한 도강을 강행했을 뿐만 아니라, 도주하는 오스트리아군을 추격하여 요새화된 폼비오시를 그대로 강습, 훨씬 우세한 병력의 오스트리아 수비군을 격파하고 폼비오를 점령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나폴레옹은 이 성공에 대해 특별히 란을 지목하며 '폼비오 점령의 수훈갑은 란 개인의 용기'라며 그의 공로를 치하했고, 원래 칭찬 및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던 란은 이후로도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진에 뛰어드는 용기를 발휘했습니다.


피레네 전선 때부터 란은 대부분의 임무를 전위 부대 지휘관으로서 수행했는데, 원래 전위 부대라는 것 자체가 공격의 맨 앞 쪽을 맡는 것이다보니 상당히 위험한 임무였습니다. 그런데 란은 처음 전투에 나섰을 때 목숨이 아까워 어느 누구보다 빨리 달려 도주했던 것에 대해 트라우마가 남았는지, 명색이 여단장인데도 불구하고 거의 언제나 선두에 서서 부하들에게 용기란 이런 것이다 라는 모범을 보이는데 몸을 아까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런 란의 성향은 그를 제국의 원수로 올려 놓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당했던 그의 크고 작은 부상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흔히 '용감한 조종사도 있고 늙은 조종사도 있지만, 늙고 용감한 조종사는 없다'라고 하지요.  용감한 조종사는 늙어죽기 전에 사고로 죽는다는 말이지요.  란의 경우가 그 말에 딱 들어맞습니다.  큰 부상을 입은 이후 사람이 바뀌어 진두 지휘를 극도로 꺼렸던 술트는 훗날 수많은 정변을 겪으면서도 이리저리 편을 바꿔가며 부와 권력을 누리다 행복하게 늙어 죽은 것에 비해, 열혈남아 란은 40세가 되기도 전에 오스트리아군의 대포알에 의해 목숨을 잃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란이 그래도 40세 가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나폴레옹의 덕분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란은 자신이 못 배운 티를 굳이 감추지 않았고 그런 단점을 물불을 가리지 않는 용기로 보완하려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나폴레옹은 그런 란의 성격을 아주 적절하게 활용했는데, 종종 란의 무모함을 크게 꾸짖으며 자제시키기도 했습니다.  가령 나폴레옹이 1798년 이집트 원정을 가는 항해 중 말타(Malta) 섬의 발레타 요새를 포위했을 때, 그는 어차피 중과부적인 말타 기사단이 결국 항복할 것이라고 보고 무리하게 공성전을 벌이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란은 지루한 항해 끝에 심심하기도 하고 또 전공을 세우고자 하는 욕심에, 나폴레옹의 허락도 받지 않고 자신의 부대만을 이끌고 요새를 공격하여 치열한 사격전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큰 싸움이 벌어져 증원군이 투입되면서 요새는 항복했습니다만, 나폴레옹은 란이 기대하던 칭찬 대신 '이 빌어먹을 가스코뉴 촌놈아!  너의 용기를 증명하려 이 따위 짓을 벌였냐 ?  니가 용감하다는 건 이미 세상이 다 안다, 앞으로 니가 싸우다 죽어버리면 좋겠다고 판단되면 그때 그렇게 알려줄테니 그때까지는 얌전히 굴어라!'라며 신랄하게 란을 질책했습니다.  


그의 용기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습니다.  또 그의 용기는 꼭 그의 등 뒤에 1개 대대의 보병들이 서있을 때만 발휘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말타 섬에서 더 이상의 불필요한 말썽을 원치 않았던 나폴레옹은 대부분의 부대에게 상륙하지 말고 배에 머물도록 했는데, 좀이 쑤셔서 견디지 못하던 란은 부하 3명만을 데리고 몰래 상륙하여 섬 이곳저곳을 쏘다녔습니다.  그러다 만난 어느 섬 주민으로부터 인근의 수녀원이 난폭한 프랑스 탈영병들로부터 약탈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대로 현장으로 달려가 탈영병들을 쫓아버렸습니다.  이 탈영병들은 얼떨결에 쫓겨나면서도, 란의 일행이 고작 4명이라는 것을 알고는 '동료들을 데리고 다시 돌아오겠다'라고 으르렁거렸습니다.   란은 자신도 상륙 금지라는 명령을 어긴 일종의 탈영자 신분이었으므로 되도록 빨리 배로 돌아가고 싶어했는데, 수녀들은 저 탈영병들이 되돌아오면 우린 다 죽는다며 란에게 보호를 요청했습니다.  란은 부관을 배로 보내 사정을 알리고 지원 병력을 끌고 오게 했는데, 거리가 있다보니 저녁이 되도록 지원 병력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결국 오라는 지원 병력은 오지 않고 동료들을 더 많이 끌고 온 탈영병 무리가 먼저 들이 닥치는 난감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탈영병들이 수녀원 밖에서 난동을 부리자,  '장군, 지금 나가시면 개죽음을 당할 뿐입니다'라며 말리는 부하들(정확하게는 군인 부하가 아닌 민간인 신분의 감독관 두 명)을 뿌리치고, 란은 칼을 뽑아들고 밖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란은 그 날 죽을 팔자가 아니었는지 때마침 지원 병력이 도착하여 탈영병들을 체포하는 바람에 이 소동은 해피 엔딩으로 끝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용기에도 임자가 있었으니, 나폴레옹이 바로 그 장본인이었습니다.  이집트 원정 내내 란은 이 원정 자체에 대해 불평불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는 처음 카이로로 진군할 때 사막을 가로지르며 더위와 갈증에 지친 나머지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장군모를 내팽개친 뒤 발로 마구 짓밟는 등 공공연하게 불평불만을 표시했고, 동료 장군들과도 '나폴레옹의 터무니없는 과대망상이 우리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라며 자신의 상관에 대한 험담에도 열을 올렸습니다.  그의 불만의 절정은 1799년 시리아 원정 중에 벌어진 아크레 요새 포위전이었습니다.  악전고투를 거듭하던 이 포위전 중 성벽 일부가 프랑스군의 포격과 폭약 공격에 무너지자, 언제나처럼 란은 척탄병 대대를 이끌고 맨 앞에서 돌격해들어갔는데, 성벽의 잔해를 넘어 들어가던 중 적탄이 날아와 그의 목을 관통했습니다 !  모두들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투르크군이 쓰러진 적병들의 목을 잘라 성벽 위에 꽂아둔다는 것을 알고 있던 척탄병 중대의 어느 대위가 그런 참상은 막겠다고 란 장군 시체의 발목을 잡고 울퉁불퉁한 바위덩어리 위로 질질 끌고 프랑스군 참호에 던져 넣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란은 죽지 않았고, 정신을 차리자 목의 관통상보다는 바위덩어리 위로 질질 끌린 덕분에 얻은 머리와 몸의 타박상에 대해 욕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야전 병원에서 수석 군의관이었던 데쥬네트(René-Nicolas Dufriche Desgenettes)에게도 '이 모든게 나폴레옹 때문이다'라며 불평불만을 늘어놓았습니다.  원래 나폴레옹과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던 데쥬네트는 이 나폴레옹의 심복 부하가 늘어놓는 나폴레옹에 대한 험담을 아주 재미있게 들었는데, 란 병문안을 위해 야전 병원 천막으로 나폴레옹이 불쑥 들어오자 란이 늘어놓던 욕설이 도중에 잽싸게 '총사령관의 배려와 우정에 대한 무한한 감사'로 바뀌는 장면을 더욱 재미있게 보았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프랑스어는 존대말과 반말이 있습니다.  상대를 지칭할 때 tu(뛰)라고 부르면 '너'라는 반대말이고 vous(브)라고 하면 '당신'이라는 존대말입니다.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초면끼리는 군대에서 상관이라고 해도 하급자에게도 vous라고 부르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다만 어느 정도 친해지면 상관이 하급자를 종종 tu라고 불렀고, 사석에서는 하급자도 상급자를 tu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프랑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유럽 전체가 다 그랬지요.  가령 영국군에서도 하급자가 직속 상관과 친구처럼 first name을 부르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나폴레옹은 부하들과 평상시에는 tu라고 호칭하다가 화가 나거나 정색을 할 때면 vous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부하들도 그렇게 했고요.  그러니까 나폴레옹과 'tutoyer'를 했던 것이 꼭 란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1800년 브뤼메르 쿠데타 이후 나폴레옹이 제1통령이 되자 이야기가 바뀌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여전히 부하들에게 tu라고 불렀으나, 뮈라나 마세나를 비롯한 부하들은 모두 나폴레옹을 vous를 넘어 제3 인칭으로 부르기 시작하며 대접을 해주었지요.  그러나 란만은 예외였습니다.  그는 워낙 배운 것이 없었고 또 열혈남아 신분상 그런 의례를 지키는 것이 체면상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는 여전히 사석에서는 나폴레옹에게 'tutoyer'를 했고, 나폴레옹도 그런 란을 좋아했습니다.  



* PS : 란을 울퉁불퉁한 바위 위로 발목을 잡은 채 질질 끌고가 목 관통상보다 더 심한 타박상을 입게 만든 그 대위에게 란은 꽤 두둑한 감사금을 선물했는데, 다행히 그 대위는 살아돌아가 그 돈으로 가스코뉴에 여관을 하나 샀다고 합니다. 


* 이번 편은 워낙 시간에 쫓기며 쓰는 바람에 그림/사진 없습니다.  이해들 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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