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피렌체라고 부르는 드레스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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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오스트리아 2018/드레스덴

독일의 피렌체라고 부르는 드레스덴

佳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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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회랑이 보이는 곳입니다.

아름다운 벽화 군주의 행렬을 구경하고 그 벽화가 그려진 건물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회랑이 있는 건물 뒤의 벽이 바로 군주의 행렬이 있는 벽화가 있는 곳이지요.

 

이곳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드레스덴 궁전(Residenz schloss:Dresden Castle)이

 바로 건너편에 있네요.

그곳은 바로 이런 멋진 회랑이 있는 것이더라고요.

이곳을 슈탈호프(Stallhof)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슈탈호프란 외양간 마당이라는 의미가 있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지금 드레스덴 교통박물관으로 사용 중인 요하네스 박물관((Museum Joanneum) 뒤가 되겠네요.

처음에 왕실 마구간인 스톨게바우데(Stallgebäude)로 지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바로 건너편 왕궁에서 사용했던 말을 관리하던 곳이지요.

 

그러나 위의 사진에 보이는 트랙은 마상경기를 했던 장소지요.

갑옷으로 중무장한 기사가 양쪽에서 말을 타고 긴 창을 들고 서로를 향해 돌진했던 모습을

우리는 영화를 통해 보았지요.

바로 이곳이 그런 경기가 벌어졌던 마상 경기장입니다.

사진 오른쪽 벽에 보이는 벽돌을 쌓은 듯한 모습은 한때 유행했던 스그라피토 기법으로 장식했네요.

 

트랙 주변으로 회랑이 있는데 아마도 이 회랑 아래서 귀족들은 기사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마상 결투를 즐겼을 듯합니다.

회랑은 르네상스 양식의 걸작으로 손꼽힌다고 하네요.

 

군주의 행렬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 교통박물관(Verkehrsmuseum)이 있습니다.

독일 철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라네요.

그러나 이곳에 오면 우리처럼 군주의 행렬에 정신이 팔려 그곳에 그런 박물관이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하지요.

 

군주의 행렬 뒤로 돌아가면 바로 슈탈호프(Stallhof)라는 곳을 볼 수 있습니다.

가운데를 중심으로 양쪽에 말을 탄 기사가 반대편에 서서 창을 비껴 잡고 전속력으로 달려오며 상대를 찔러

말에서 떨어뜨리는 경기로 목숨을 걸고 내가 살고자 상대를 쓰러뜨려야 하는 일인데...

참 비인간적인 경기라고 생각합니다.

 

드레스덴 성(Dresden Castle)을 이곳에서는 Residenz schloss라고 부르나 봅니다.

이곳 또한 대부분 전쟁통에 파괴되었다가 1989년에 다시 지었다네요.

지금은 깨끗한 상태입니다.

 

이곳은 16세기경부터 작센 왕이 거처한 주궁의 역할을 했다네요.

1701년 화재로 궁전이 모두 타버리자 르네상스 양식으로 다시 지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건물은 20세기 초 베틴 왕조의 800주년을 기념하여 개축한 것으로 많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드레스덴은 "강변 속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말로 어원은 고어 소르브어인 드레즈나디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피렌체와 같이 이곳 또한 문화적으로 다른 독일 도시보다 앞섰기에

독일의 피렌체라고도 부른다고 합니다.

엘베강이 도시 가운데로 흐르고 작센주의 주도로 알려진 곳입니다.

 

드레스덴(Dresden)은 인구가 50만 명이 넘는 큰 도시입니다.

옛 동독 지역에 속했던 곳이지요.

이때가 가장 침통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요?

 

이런 침통함은 바로 나치의 패망과 더불어 이곳 드레스덴이 연합군의 폭격으로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쑥대밭이 되었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이런 어두운 시기를 지내고 지금 드레스덴은 옛 영광을 다시 세우려고 많은 유적이 복구되는 과정이기에

앞으로는 관광도시로 독일에서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대단히 유명한 여행지가 되지 싶습니다.

 

동독으로 있을 때는 경제적으로 궁핍해 유적 복구에 힘을 쓰지 못해 전후의 모습으로 많이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통일 후 지금은 그래도 복원이 많이 이루어져 중세의 모습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물론 지금도 걸어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공사 장비가 곳곳에 있기는 하지만요.

 

드레스덴이 무너진 날 독일도 무너졌고 드레스덴이 다시 부활한 날 독일은 다시 태어났습니다.

1945년 2월 13일 영국군 전투기가 드레스덴에 포탄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드레스덴은 유적이 많아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도시 전체가 화마에 휩싸였고 이때 이곳으로 피난까지 왔던 민간인까지 10만 명 이상이 숨졌다고 합니다.

나치 정권에서 10만 명이라고 발표했지만, 50만 명 이상이라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발표 이후에도 계속 시신이 발견되었을 뿐 아니라 훗날 새로운 건물을 지으려고 터를 파는 중에도

수십 구의 시신이 계속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이렇게 드레스덴이 무너진 날 독일 또한 무너졌고 2005년 이곳의 상징인 성모교회가 다시 복원되어

온 세상에 그 모습을 나타낼 때 드레스덴은 다시 살아난 날이 되었고 독일도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날이라고 합니다.

강변을 바라볼 수 있는 브륄의 테라세(Brühl's Terrace)라고 하는 곳은

유럽의 발코니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랍니다.

 

잠시 피곤하다면 브륄의 테라스(Brühl's Terrace)에 올라 유유히 흐르는 엘베강을 바라보는 일도 좋고요.

바로 앞에 보이는 엘베강을 가로지르는 돌로 만든 아우구스투스 다리(Augustus brücke)를

걸어보는 일은 어떨까요?

아무래도 위의 사진에 보듯이 공사판이 되어버린 다리를 걷는다는 일은 더 피곤하겠지요?

 

그러면 이곳 테라스 아래 강변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을 타면 되겠네요.

브륄의 테라스를 유럽의 테라스라고도 한다지만, 큰 감흥은 없었던 곳입니다.

우리가 찾았을 때인 10월은 갈수기였는지 엘베강의 수위가 낮아져 배나 제대로 다닐지 모르겠네요.

 

원래 이곳은 1740년 아우구스투스 3세의 친구인 브륄 백작이 만든 정원으로

돌고래의 샘도 그때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뒤로 서 있는 건물은 미술대학이라고 하네요.

 

처음 이곳은 강으로부터 드레스덴으로 들어오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성벽이 있었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테라스 위로 올라가려면 광장에서 계단을 따로 조금 올라가야 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많은 사람이 이곳 브륄의 테라스(Brühl's Terrace)를 칭송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리 인상적인 곳은 아닙니다.

그저 엘베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옛 성벽 위에 만든 빈터 위에 나무를 심어둔 공원으로만 생각되었습니다.

게다가 엘베강의 수심마저 낮아져 메말라 버린 강은 구경거리도 아니었고요.

주변은 건설장비가 어지럽게 널려있어 더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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