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녘에 부는 바람

[스크랩] 사진으로보는 한국 전쟁

작성일 작성자 둔지

포항 시청 앞. 미 해병대의 구호품 옷가지 배급


포항 시청 앞. 미 해병대의 구호품 선적선이 실어 온 옷가지들을 배급 받기 위해

1만 2천500여 명의 포항 시민들이 시청 앞에 모여들었다. 1951년 2월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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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전주 민간인 학살 현장.

 다섯 구의 시신 중에서 남편을 찾아낸 한 여인. 1950년 9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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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선 장터(2). 멍석자리 안에 앉아 행상하는 엄마를 지켜보는 서울 장터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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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 이태째, 늦여름. 서울 영등포의 피난민 캠프에서

 한 젊은 엄마가 아이들에게 참외를 깎아 주고 있다. 1951년 8월20일.

 

다시 선 장터. 서울이 재탈환되면서

장터도 다시 열렸다. 쌓아 올린 4단 좌판과 양철통에 그득한 김치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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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 부두에서 유엔군 수송선을 기다리며.

 .

피난길을 떠났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전주의 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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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상륙에 이은 서울 수복 직후의 서울역 앞 남대문 전차길. 1950년 9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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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떠나 피난길을 떠났던 난민들이 나룻배를 타고

 다시 한강을 건너와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1950년 10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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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있던 그 자리.1950년 9월28일,서울 동쪽.전란 3개월 만에 잿더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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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한강 피난길. 무너져 내린 한강 철교. 1950년 12월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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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7일에 촬영된 이 사진에는 ‘전선으로 떠나는 한국군’이라는 제목 밑에

‘동양에서는 군인들이 가족을 데리고 다니는 일이 흔하다’라는 설명을 붙여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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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옷과 미군. 청주의 한 마을에 진주한 미군을 환영하는 주민들. 1950년 9월23일.

 

감시 받고 있는 북한군 포로’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 사진.

장소는 밝혀져 있지 않고 촬영 날짜만 1950년 7월1일이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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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획된 북한군 장비가 밧줄에 묶인 채

기차 야적칸에 실려 있다. 이를 지켜보고 있는 미 병사. 1950년 7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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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석에서 만든 지게로

탄약을 운반하고 있는 미 병사와 한국인 노무자. 편안한 모습으로 지겟짐을


능숙하게 지고 서 있는 한국인과 어정쩡한

자세로 두 다리를 버틴 미 병사의 모습이 사뭇 대조적이다. 1953년 2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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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하는 북한장교>

예비회담장 유엔군 측 지역에서 영국 종군 기자 에릭 다운톤(맨 왼쪽)과 네덜란드

 종군 기자 알프레드 반 쉬프링이 북한군 파견장교에게 마이크를 들이대고 있다.

 

포탄을 메고. 부두 하역장에서 탄약을 옮기는 한국인 노무자들. 1950년 7월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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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휴전

예비회담장의 한 사무실에서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북한군. 1951년 7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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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6사단

야전 병원의 간호병들이 초겨울 툇마루에 나와 햇볕을 쪼이며 휴식을 즐기고 있다.


‘6사단 야전 병원은 평양 의과 대학을 졸업한

이진동 중위가 지휘관으로 있는 병원’이라는 사진 설명이 곁들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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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겨진 산하. 눈이 채 녹지 않은 1951년 3월1일 이른 봄,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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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대하여. 한 한국군 장교가 전주의 사단 본부 마당에서 대형

지구본을 놓고 한국 전쟁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다. 1951년 3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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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포목점. 미 군용 침대로 만든

 좌판 위에 옷감을 늘어놓은 길거리의 작은 포목점. 1951년 3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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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위의 아이들. 1951년

이른 봄, 폐허가 된 전주의 한 마을 길가에서 모닥불을 쬐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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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신을 팔고 있는 대구의 한 노점상. 1951년 3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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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소 가는 길. 부산 포로수용소 3 캠프 제4의료 구역.

 미 속어인 ‘똥통(Honey Bucket)’ 스트릿이라는 푯말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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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포로수용소 제1캠프에 막 입소한 한 포로가

 바지 앞단을 연 채 디디티 소독을 받고 있다. 1952년 3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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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 긋던 날. 공산군과

유엔군 양측의 휴전 협정 파견장교들이 지도 위에 군사분계선을 그리고 있다.


1951년 11월27일. 조선인민군

장춘산 상좌(왼쪽)와 유엔군을 대표한 미 해병대의 제임스 머레이 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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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빠져나가며(1. 4후퇴 직전) 한강 다리를 건너기 위해

한 마을 어귀에 줄지어 서 있는 유엔군 차량들. 1950년 12월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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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후퇴. 1951년 1월 5일, 서울을 등지고 남쪽으로 뻗친1. 4후퇴 피난민 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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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약국, 서울. 서울 재수복 직후인 이른 봄, 장터 길거리에 좌판 약국을

다시 연 노인.전란의 생필품으로 인기를 모았던 디디티도 보인다. 1951년 3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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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건물. 휴전 협정 서명을 나흘 남겨 놓고 한창 공사 중인 조인식장 건물.


그동안 협상장으로 사용해 왔던 새 건물 터 뒤쪽의 목조 건물은 많은

사람이 몰릴 조인식장으로 쓰기에는 장소가 비좁아

새 목조 건물을 따로 지었다. 1953년 7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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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 교환 장소를 협상하기 위해 판문점 중립지대에서 만난 유엔군 측 협상 대표

클라이드 영(Clyde G. Young) 미군 대령과 북한군 측 오흥산 상좌. 1953년 4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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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 후 중국군 반공 포로들은 고향이 아닌 대만을 송환지로 택했다.


1954년 1월22일,

대만으로 향하는 수송선 안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중국군 반공 포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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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군 기자들. <런던 노동자 신문(London Daily Worker)> 소속

공산군 측 종군 기자인  앨런 위닝턴(Allen Winnington)

(파이프를 문 이)과 함께 공산군 측의

최종 휴전협정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유엔군 참전 기자들.

 .

 LST로 옮겨 타고 흥남을 빠져나가기 위해 고깃배에 올라탄 피난민들.

 .

밧줄 사다리에 매달려 수송선을 기어오르는 피난민들(흥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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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1군단

1사단 소속 병사들이 어느 폐가 입구에 지뢰를 묻고 있다. 1950년 7월22일.

 .

‘북한 피난민들은 물 위에 떠다니는 것이라면 어디든 올라탔다.

피난민을 태운 LST가 민간인 고깃배들과 함께 뒤얽혀 있다.(흥남)

 .

(흥남) LST(Landing Ship, Tank)에 타기 위해 몰려든 북한 피난민들.

피난민 뒤로 야적되어 있는 미군의 포탄이 보인다. 1950년 12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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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지 못한 작전선.

1950년 11월22일 압록강 남단 신의주에 미 공군이 폭격을 가하고 있다.


압록강 북단(사진 오른쪽)인

만주와 한반도를 잇는 1천200미터 길이의 신의주교는

미 5공군 B-29의 폭격으로 12일 전인 11월10일에 이미 끊어져 있었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 했던 워싱턴의

 북폭 자제 지시에도 불구하고, 인민군의 주 보급선을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맥아더 극동군 사령관은 신의주교 폭파를 명령했다.

이후 워싱턴은 ‘한만 국경 남쪽 5마일 이내 폭격 금지’ 명령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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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동 아이들, 포항. 미 해병대 1사단이 설치한 구호품

배급소에서 옷가지, 신발, 장난감 등을 한두 점씩 받아 든 피난민 아이들.


1.4후퇴 직후인 1951년 2월15일 촬영된 사진이다.

전란의 참화를 피해 온 피난민 중 아이들은 8천 명이었다.

사진 속 아이들은 한결같이 계집아이들은 단발, 사내애들은 까까머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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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암시장. 미군의 야전용 식량을 좌판에 올려놓고 팔고

 있는 한 민간인. 서울 수복 직후인 1950년 10월1일에 촬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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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현장,

원산. 민간인 대량 학살 사건이 일어난 원산의 한 마을 현장을 취재

 촬영 중인 미 해병 취재팀과 구경 나온 마을 주민들. 1950년 11월14일.

 

영흥만. 원산

상륙 작전에 동원된 미 해병 수송선들이 원산항 영흥만에 정박해 있다.

인천 상륙 작전 직후 맥아더 극동군 사령관은 원산을 제2의 상륙지로 점 찍고,


미군 일부의

반대에서 불구하고  상륙 작전을 감행했으나, 한국군 3사단과 수도사단이
육로를 통해 먼저 원산을 탈환하자 원산 무력 상륙은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더구나 상륙 작전 주력 부대로 원산 앞바다에 집결했던 미 해병 1사단과

10군단은 영흥만의 기뢰에 발이 묶여 무혈 상륙마저 날짜를 늦추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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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온 쌀. 피난민을 위해 대만 정부가 제공한 쌀을

노무자들이 트럭으로 옮겨 싣고 있다. 1951년 12월18일, 장소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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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도 철수. 흥남 철수가 결정된 뒤, 현지 아낙네들이

보급품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밀가루를 트럭에 옮겨 싣고 있다. 1950년 12월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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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들의 행진. 원산 비행장을 가로지르는 인민군 포로들의 행렬.

원산이 한국군에게 함락된 직후인 1950년 10월16일에 촬영된

이 사진은 미 7함대 소속 미주리 전함에서 발진한 헬리콥터에서 촬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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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 포로들. 인천 상륙 작전 직후 월미도 해변. 월미도의

 한 해변 휴양소에 설치된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북한군 포로들이 심문을 받고 있다.


6.25개전 직후인 1950년 7월에 244명에 불과했던

 인민군 포로 수는 인천 상륙 작전 직전인 9월 말 3만 8천250명으로 불어났고,


10월에는 8만 1천765명으로 급증했다.

 월미도의 이 포로들은 한국전 이후 다수가 한꺼번에 생포된 최초의 포로들이다.

 .

해변가 피난길, 포항. 미 해병의 포항 폭격 개시 직전인

1950년 10월17일, 함대 폭격을 피해 피난길에 나선 주민들.

이부자리, 식량 보따리, 거적자리, 지게는 피난민의 필수품이었다.

 .

성공 확률이 5,000분의 1이었다는 인천 상륙 작전을 성공한 직후인

1950년 9월 17일. 썰물이 빠져나간 직후의 월미도 풍경이다.

‘개펄 위의 LST’라는 사진 설명이 붙어 있다.

LST's high and dry after tide went out. (Wolmido Island, 1950.9.17) 2010.6.22

 

< 편집자 주 >

연합뉴스는 한국전쟁(6.25) 발발 60주년을 앞두고

 미 국립문서보관소(NARA)가 공개한 6.25 전쟁 당시 사진과 문서를 입수,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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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6.25)전쟁 발발 60주년을 앞두고 6.25 전쟁 당시

 대구와 부산, 거제도 등 한국에서 촬영된 희귀 사진 8장이 23일 공개됐다.


연합뉴스가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동 아시아대표처를 통해 입수한

 사진들은 먼 길을 떠나는 피난민들의 고통스러운 모습과 적십자의 부상자

치료 현장, 난리통 속에서 자식을 챙기는 부모의 모습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사진은 남북간 포로 

 교환 직후 한국 측 부상자들이 병원에서 간호사들로부터 치료를 받는 모습.

 .

한국(6.25)전쟁 발발 60주년을 앞두고 6.25 전쟁 당시

대구와 부산, 거제도 등 한국에서 촬영된 희귀 사진 8장이 23일 공개됐다.


연합뉴스가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동아시아대표처를 통해 입수한

사진들은 먼 길을 떠나는 피난민들의 고통스러운 모습과 적십자의 부상자


치료 현장,

 난리통 속에서 자식을 챙기는 부모의 모습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대구에서 촬영된 피난열차의 사진.

수많은 피난민이 기차 지붕에 빼곡히 올라타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남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

한국(6.25)전쟁 발발 60주년을 앞두고 6.25 전쟁 당시

 대구와 부산, 거제도 등 한국에서 촬영된 희귀 사진 8장이 23일 공개됐다.


연합뉴스가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동 아시아 대표처를 통해 입수한

 사진들은 먼 길을 떠나는 피난민들의 고통스러운 모습과 적십자의 부상자 치료 현장,


 난리통 속에서 자식을 챙기는 부모의 모습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머리와 어깨에 무거운 짐보따리를 진

어머니가 굶주림에 지쳐 흙바닥에 쓰러진 어린 딸을 일으켜 세우는 사진이다.


주위를 살피는 어머니의  시선은 뭔가 잔뜩

 경계하는 모습이어서 전쟁통의 불안하고 긴박한 상황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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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6.25)전쟁 발발 60주년을 앞두고 6.25 전쟁 당시 대구와

부산, 거제도 등 한국에서 촬영된 희귀 사진 8장이 23일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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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가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동아시아 대표처를 통해

 입수한 사진들은 먼 길을 떠나는 피난민들의 고통스러운 모습과


 적십자의 부상자 치료 현장,

난리통 속에서 자식을 챙기는 부모의 모습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사진은 피난길에 자식의 손을 놓친 어머니들이 자식들을 찾는 안타까운 모습.

 .

한국(6.25)전쟁 발발 60주년을 앞두고 6.25 전쟁 당시 대구와

부산, 거제도 등 한국에서 촬영된 희귀 사진 8장이 23일 공개됐다.


연합뉴스가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동아시아대표처를 통해 입수한 사진들은

 먼 길을 떠나는 피난민들의 고통스러운 모습과 적십자의 부상자 치료 현장,


 난리통 속에서 자식을 챙기는 부모의 모습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사진은 제100 포로수용소에서 부상자들이 치료를 받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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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6.25)전쟁 발발 60주년을 앞두고 6.25 전쟁 당시 대구와

부산, 거제도 등 한국에서 촬영된 희귀 사진 8장이 23일 공개됐다.


 연합뉴스가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동아시아대표처를 통해 입수한

 사진들은 먼 길을 떠나는 피난민들의 고통스러운 모습과 적십자의 부상자


 치료 현장, 난리통 속에서 자식을 챙기는 부모의 모습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사진은 거제도에서 적십자 측이 여성 난민들에게 구호품인 구두를 나눠주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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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6.25)전쟁 발발 60주년을 앞두고 6.25 전쟁 당시 대구와

 부산, 거제도 등 한국에서 촬영된 희귀 사진 8장이 23일 공개됐다.


 연합뉴스가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동아시아대표처를 통해 입수한

사진들은 먼 길을 떠나는 피난민들의 고통스러운 모습과 적십자의


부상자 치료 현장,

 난리통 속에서 자식을 챙기는 부모의 모습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사진은 부산에서 어린이들에게 전염병

 예방접종을 해 주는 모습. 오른팔에 주사를 맞고


얼굴을 찡그린 여자 아이의 얼굴과

'드러가는곳''예방주사'란 한국어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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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6.25)전쟁 발발 60주년을 앞두고 6.25 전쟁 당시

대구와 부산, 거제도 등 한국에서 촬영된 희귀 사진 8장이 23일 공개됐다.


 연합뉴스가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동아시아대표처를 통해 입수한 사진들은 

먼 길을 떠나는 피난민들의 고통스러운 모습과 적십자의 부상자 치료 현장,


 난리통 속에서 자식을 챙기는 부모의 모습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사진은 전쟁 당시 천막 속에서 운영된 미군 야전병원(M.A.S.H) 본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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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미군트럭으로 개성

 판문점을 통해 석방되는 인민군들이 인공기를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2010.6.23

 

<북한군 여성포로>

1950년 9월28일 서울에서 체포된 여성포로 2명을 심문하는 미군 병사의 모습.

 

<아버지와 아들>

1951년 1월 14일. 늙은 아버지를 엎고 서울 한강을 건너 피난가는 주민의 모습.

 

<인천 상륙작전 지휘하는 맥아더 장군>

 맥아더 장군 등 군 지휘부가 미 제1해병대대의 인천상륙작전을 지켜보고 있다.

 

<다시 찾은 한국>

대한민국재향군인회는 6.25 전쟁에 참전한 영연방 4개국 참전용사 155명을

초청해 환영행사를 개최한 가운데 참전용사들이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하고있다.

 

행군중인 군인과 피난행열의 아낙네 

 

6.25사변당시의 어린시절은 온데간데 없고.... 

6.25 60주년인 25일,

 군사전문잡지 플래툰의 군사자료 수집가인 이준규씨가 공개한 6.25 전쟁 관련 사진들.

사진은 1951년 12월 24일 부산에 도착한 미군 위문 공연단들의 모습이다. [연합뉴스]

▲ 미국 종군기자들이 6.25 당시 찍은 보도사진들이 공개됐다.

1953년 함흥에서 정치범으로 체포돼 처형된 여성 12명의 시신을 찍은 모습./연합뉴스

출처 : 행복이네집 | 글쓴이 : 행복이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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