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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시편 27편 강해를 위해서 준비한 원고 (이상웅 목사. 교수)

작성일 작성자 Paul John Chae



이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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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웅 교수


One Thing

이상웅 3시간전

[개혁교의학 읽기] 천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 왜 중요한가?

"영적 세계에 대한 믿음은 성격상 철학적이 아니라 종교적이다. 이 믿음은 계시 그리고 기적과 매우 긴밀하게 연관된다. 종교는 계시없이 생각할수 없고, 가시적 세계와 교통하는 영적 세계가 이 가시적 세계를 초월하고 배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떠나서 계시란 존재할 수 없다. ... 더보기

이상웅

One Thing

이상웅 3시간전 33 읽음

[성경묵상] one Thing(시 27:4)
밴드 가입할 때 한 줄 자기 소개 입력란이 있습니다. 제 경우는 one Thing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시편 27:4 다윗의 고백에서 빌어온 것입니다.

예전에 시편 27편 강해를 위해서 준비한 원고가 있습니다. 제목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입니다. 세 부분으로 구성된 원고중 후반부 1/3은 생략하고 올려봅니다. 후반부는 섬기던 교회에 대한 적용이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주의사항은 저는 원고를 철저하게 준비하려고 노력하지만, 실제 설교를 하고 나면 적지 않은 차이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만큼 말보다 글이 약하다는 것을 늘 의식합니다. 아래의 원고는 말로 전해진 내용이 아니라 준비하며 작성한 것이니 그 점을 유념해서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영어 문장들이 있다고 해서 설교시간에 영어로 인용한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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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유명한 독립운동가였던 백범 김구 선생이 해방 되기 전에 쓴 글 가운데 하나님이 만약 자신에게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대한민국의 독립이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어린 기도로 올려드렸던 한 가지 소원은 탕자요 사이비 종교에 빠져있던 어거스틴이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성도님들이 간절히 바라는 한 가지 소원은 무엇입니까? 오늘 같이 읽은 시편 27편 4절에 보면 다윗 역시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한 가지 소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올해의 요절이니 같이 다시 읽어보도록 하십시다. 앞에도 게시되어 있지만 하루 속히 외우시고 깊이 음미하시면 좋겠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다윗은 이러한 고백을 통하여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열고 속마음을 보여줍니다. 그가 고백하는 바 한 가지 일이란 다르게 번역하면 여러 가지 소원들이 있는 중에 한 가라는 의미가 아니고, 오직 한 가지만이라는 뜻입니다. 누가복음 10장 42절에서 예수님께서 “한 가지 만으로도 족하니라.”하면서 마리아의 선택을 칭찬하실 때와 같은 의미입니다. 다윗의 소원은 대단히 단순했습니다. 우리에게도 한 가지 소원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더 단순해지고, 힘차고 행복해질 것입니다(김정우, 1:604). 오늘 우리는 4절을 중심으로 해서 다윗이 가졌던 단 한 가지의 소원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 보면서 우리의 소원을 삼고 기도 제목을 삼기를 원합니다.      


  다윗은 어떤 상황에서 이러한 소원을 표현하고 있을까요?

  시편 27편을 읽어보면 다윗은 담대함과 확신을 표현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인생의 위기와 환난의 때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5절에 보면 “환난 날에”(베욤 라아)라는 직접적인 표현이 있습니다. 그리고 1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라고 고백하지만, 2절에 의하면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라고 고백하는 상황입니다. 악인들이란 다윗을 모해하려고 하는 악한 세력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이 마치 맹수가 사냥감을 움켜 쥐고 뜯어 먹듯이 다윗의 살을 먹으려고 했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악한 중상모략으로 다윗을 망칠려고 하는 악인들의 무서운 시도를 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6, 11절에 원수를 언급하고 있고, 12절에서는 “내 대적”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절에도 보시면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라고 고백하고 있는데, 군대가 진을 치고, 전쟁이 일어나 다윗을 치려고 하는 것은 다윗을 대항하여 실제적으로 일어난 전쟁을 가리킬 수도 있고, 다른 형태의 맹렬한 공격을 의미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정리를 해 본다면 다윗이 시편 27편을 쓰게 된 배경에는 그가 겪은 큰 환난의 상황이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다윗을 대적하여 원수들이 연합하여 맹렬하게 덤벼드는 전쟁 상황을 의미할 수도 있고, 혹은 다윗을 물어 뜯으려고 하는 중상모략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더러 사람들의 험담(backbiting)과 중상모략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경험해 본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요즘 인터넷에 올려지는 악플 때문에 고통 당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어떤 연예인들은 그 악플들에서 가해지는 독을 영혼으로 마시고는 자살을 해버리기도 합니다. 이처럼 험담이나 중상모략이 한 사람의 영혼을 망치고, 인생을 망칠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원수들이 군대처럼 일어나 진을 치고 공격하며, 마치 맹수가 사냥감을 붙잡고 물어뜯는 것처럼 자신에 대해서 물어뜯고 있다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시의 역사적인 배경으로서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 사건을 듭니다. 아들의 꼬임에 빠져서 온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등을 돌리고 반란에 참여했던 그 환난의 때에 다윗은 이 시편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 27편의 전체적인 분위기로 보아서는 압살롬의 반난과 같은 후기상황 보다는 초기 상황이 더욱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윗의 인생에 큰 환난이 임하였을 때에 그가 무엇을 간절히 원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들고 일어나 다윗 하나를 없애겠다고 난리법석을 피울 때에 다윗은 오늘 4절의 내용을 하나님 앞에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평온하고 잘 나갈 때에는 그 진심이 감추어지거나 위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환난과 시련을 당해 보면 평소에 그 마음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그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가 드러나게 되어 있는 법입니다.  


  다윗이 가진 단 한 가지의 소원

  그러면 이제 4절 말씀을 살펴 보도록 하십시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다윗이 하나님께 바라고 구하는 한 가지 일의 내용은 환난을 단순히 면하게 해 주셔서 평온하게 살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여호와의 집에 살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구한다에 해당하는 바카쉬라는 단어는 찾다, 간청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다윗은 7절에서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가지고 있는 단 한 가지의 일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그런 종류의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간절하고 끈질기게 기도하는 대상으로서 한 가지 일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집이란 다윗 당시에는 성막이 안치되어 있던 곳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다들 잘 아시는대로 성군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안치할 만한 성전을 짓고 싶은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아름다운 전을 지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상의 성전이나 예배당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임재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윗이 가리키는 여호와의 집을 단순히 건물을 가리킨다고만 이해하시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의 체험이 없다면 그것은 그냥 건물에 불과한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안에 있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주님을 가까이하여 예배하는 자로 한 평생 살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가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로서 전쟁터를 누비고 다니기도 했지만 그의 마음 가운데는 한 평생 여호와의 집에 거하기를 소망하는 바가 있었습니다. 시편 23편 6절에서도 다윗은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라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앞에 있는 시편 26편 8절에도 보시면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어지는 시편 28편 2절에 보시면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라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다윗은 왜 여호와의 집에 거하기를 그렇게도 소망하고 간구하는지 그 이유를 살펴 보도록 하십시다. 4절하 반절에 보시면 그는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아름다움, 히브리어로 노암 야훼(noam YHWH)라는 말 참 신기하고, 그 뜻을 새김질 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일단 바라본다는 말은 개역에서는 앙망하다로 번역되기도 했던 동사인데, 이는 내적이고 영적인 눈으로 본다는 것이요 실제로 체험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다윗이 그렇게 내적으로 보기를 원하고 체험적으로 알기를 소원하는 바 여호와의 아름다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이는 “영적인 시각에서 하나님의 존재방식 혹은 인간과의 연관성에서 바라볼 때 하나님의 그 탁월하심을 지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의미합니다. 19세기 중반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의 교수였던 알렉산더(J. A. Alexander )는 “loveliness, desirableness, all that makes God an object of affection and desire to the believer"라고 해석했습니다(1:221). 유명한 청교도였던 리처드 십스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무엇이냐 정의내리기를 “하나님께 속한 사랑스러운 것들, 즉 교회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만드는 그의 긍휼과 사랑”(the amiable things of God, which is his mercy and love, that makes all the things beautiful that is in the Church)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안에 살면서 다윗이 경험하게 되기를 소망하는 내용은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그리고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그 덕스러움을 음미하고 만끽하게 되기를 그는 소망합니다. 다윗은 다른 시편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34:8상). 그는 하나님의 아름다우심, 그의 완전하심을 맛보아 알고 만끽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고백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고, 내 생명의 능력”(1절)이시라고 고백하고 있고, 환난 날에 초막 속에 비밀히 지켜 주시고, 장막 은밀한 곳에 숨겨주시는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5절). 자신의 내리쳐진 머리를 원수들 위에 들려지게 하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6절). 그리고 9, 10절에 보면 사람들이 자신을 버린다고 하더라도, 심지어는 부모가 나를 버린다고 해도 하나님은 자신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영접해 주실 것에 대해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영접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보아 주시고 보하시며 양육해 주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체험하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13절에서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라고 고백하기까지 합니다. 산 자들의 땅이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윗이 여호와의 집에 평생토록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체험하기를 원할 뿐 아니라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사모하다, 바카르는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찾는다, 문의하다는 의미도 있고, 의식상의 정결을 검사하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빈번히 방문하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혹은 묵상하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혹은 예배하다, 기도하다, 인도함을 구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다윗이 성전에서 사모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를 소망하고, 하나님을 자주 만나 뵙고 교제하기를 원하고, 기도하며 예배드리기를 원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6절하 반절에 보시면 다윗이 얼마나 예배자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는지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고백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즐거운 제사(지브헤 테루아)는 기쁨으로 소리치며 드리는 제사(sacrifices with shouts of joy)라는 의미입니다. 얼마나 제사드리고 예배하는 것이 좋으면 기쁨의 소리를 질러가면서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예배는 사울처럼 가식적이거나 다른 목적 때문에 마지 못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8절에 보면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의 얼굴을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하고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삶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다윗은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있고, 하나님을 위하여 예배하는 일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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