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김의 체험 나누기

유란시아서 154:7.1~5 - 황급한 도피와 이교도들의 분노하는 이유 그리고 일주일의 휴식

작성일 작성자 Peterkim



□  황급한 도피와 이교도들의 분노하는 이유 그리고 일주일의 휴식



그렇게 하여 기원후 29년, 5월 22일, 이 일요일 아침에, 예수는 그의 12사도들과 12명의 전도자들을 데리고, 헤롯 안티파스로부터 위임장을 받아서 그를 체포하여 성스런 유대 율법을 모독한 죄와 다른 죄명으로 재판을 하기 위해 그를 예루살렘으로 데려가기 위해 벳세다로 오고 있는 산헤드린 관리들을 피해 급하게 떠났다. 25명으로 이루어진 이 무리가 노를 저어 갈릴리 해의 동쪽 해안으로 간 것은 이 아름다운 아침에 거의 8시 반이 지났을 때였다.


주(主)의 배 뒤에 또 다른 하나의 작은 배가 여섯 명의 다윗의 메신저들을 태우고 따라갔다. 그들은 예수와 그의 동료들과의 접촉을 취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으며, 또한 그들의 근황과 안전에 대한 보고를 당분간 왕국의 일의 본부가 되어있는 벳세다의 세베대의 집으로 정기적인 연락을 취하도록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예수는 세베대의 집을 다시는 그의 거처로 정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그의 이 세상에서의 나머지 기간을 통하여 주(主)는 진정으로 “그의 머리를 둘 곳이 없었다.” 그는 더 이상 안정된 거처나 그 비슷한 것도 갖지 않았다.


그들은 게레사 동네 가까이까지 노를 저어갔다. 거기에서 친구에게 그들의 배를 맡겨놓고, 그들은 이 세상에서의 주(主) 일생의 이 사건 많은 마지막 해의 방황을 시작하였다. 한동안 그들은 게레사에서 케자리아-빌립보로 가면서 빌립의 권역 안에 머물러있었으며, 거기서부터 페니키아 해변으로 그들의 여정을 잡았다.


이들 두 배들을 바라보며 세베대의 집 주변에 서성거리던 무리들은 동쪽 해안을 향해 호수를 건너 그들의 길을 갔다. 예루살렘 관리들이 서둘러서 예수를 찾기 시작했을 때는, 그들이 떠난 지가 이미 오래였다. 그들은 예수가 그들로부터 도피하였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예수와 그의 집단이 바타니아를 지나 북쪽으로 여행하는 동안에, 바리새인들과 그들의 보좌관들은 가버나움의 근처에서 그를 찾느라 한 주일 내내 허비하였다.


예수의 가족은 가버나움에 있는 집으로 돌아와서 거의 일주일을 이야기와 논쟁과 기도를 하며 지냈다. 그들은 혼란과 놀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목요일 오후에 룻이 세베대의 집을 방문하여 다윗으로부터 그녀의 아버지-오빠가 안전하게 건강한 모습으로 페니키아 해안 쪽으로 그의 길을 가고 있다는 소식을 그들에게 전해주기 전까지는 편안한 마음을 가지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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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많은 일요일에 게레사 근처에 도착한 직후, 예수와 24명의 제자들은 북쪽으로 좀 더 갔다. 거기에서 그들은 벳세다-줄리아스지역의 남쪽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공원에서 밤을 보냈다. 그들은 전에 이곳에서 며칠을 보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야영지를 알고 있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주(主)는 제자들을 주위에 불러 바타니아와 북부 갈릴리를 거쳐 페니키아 해변에 이르는 그들의 구체적으로 투사된 여행에 관하여 그들과 상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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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말씀하였다: “너희는 시편 기자가 이 시대를 어떻게 묘사했는가를 기억해야한다. 그는 말하기를, ‘어찌하여 이교도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주님과 그 기름 받은 자를 배척하며, 자비심을 없애고 사랑의 계율을 던져 버리자 한다.’라고 하였다.


“오늘날 너희는 이것이 너희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본다. 그러나 너희는 시편 기자의 나머지 예언들이 이루어지는 것은 보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사람의 아들과 이 땅에서의 그의 사명에 대해서는 틀린 관념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나의 왕국은 사랑에 기초를 두고 있고, 자비 안에서 선포되고, 사심-없는 봉사로서 확립된다. 나의 아버지는 하늘에 앉으셔서 이교도들을 비웃고 계시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격노하지 않으신다. 아들이 소위 이교도들이라고 불리는 이들(실체 안에서 무식하고 배우지 못한 그의 형제들)을 물려받을 것이라는 약속은 사실이다. 나는 이 이교도들을 자비와 사랑의 손을 벌려 받아들일 것이다. 승리의 아들이 이교도들을 쇠막대기로 쳐서 질그릇처럼 산산조각으로 깨뜨릴 것이라는 불행한 선언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 모든 사랑 넘치는-친절함이 소위 이교도라고 불리는 이들 위에 내릴 것이다. 시편 기자는 너희들에게 ‘주님을 두려워함으로 섬기라’고 훈계한다. ―나는 너희들에게 신앙을 통하여 신성한 아들관계라는 고귀한 특권을 갖도록 명령한다; 시편 기자는 너희들에게 떨며 기쁨을 향유하라고 명령한다; 나는 너희에게 확신을 갖고 기쁨을 향유하라고 명령한다.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그의 분노에 불이 붙을 때 너희가 멸망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와 이제까지 함께 생활해 온 너희는 분노와 노여움이 사람의 가슴속에 하늘의 왕국을 세우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시편 기자가 이 훈계의 말을 완결하면서 ‘이 아들을 신뢰하는 자는 복이 있다’라고 함으로써 그는 진리의 빛을 어렴풋이 보았다.


예수는 스물네 명에게 계속 가르치시며 말했다: “이교도들이 우리에게 격노할 때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시야가 작고 좁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에너지를 열광적으로 집중할 수가 있다. 그들의 목표는 가까이 있는 것이고 그것들은 어느 정도 눈에 보이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용감하고 효과적인 집행으로 분투하고 있다. 하늘의 왕국으로 들어갈 것을 고백한 너희는 대체적으로 가르치는 행위에서 너무나 동요되고 그리고 불명확하다. 이교도들은 자신들의 목적하는 바를 향하여 직접적으로 쳐들어간다; 너희는 너무나도 많은 상습적인 염원의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만일 너희가 왕국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어째서 너희는 이교도들이 그들이 포위 공격한 도시를 차지하는 것처럼, 그렇게 영적 맹공으로 왕국을 차지하지 않는가? 만일 너희의 봉사가 대체로 과거를 뉘우치고, 현재에 와서는 애처롭게 보채고,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는 헛되이 희망하고 있는 태도로 이루어질 때는, 너희는 도저히 왕국에서의 가치가 없다. 어찌하여 이교도들이 격노하는가? 왜냐하면 그들이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너희는 어찌하여 쓸모없는 염원으로 시들어가는가? 왜냐하면 너희가 진리에 복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의 소용없는 염원을 끝내라. 그리고 왕국의 설립에 관련되는 일을 하면서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라.


“너희가 모든 일을 하는 중에, 일방적이라거나 지나치게 세부적으로 치우치지 말도록 하라. 우리의 파멸을 모색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은 자신들도 하나님의 봉사예배를 하고 있다고 진정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전통에 너무 얽매여서 편견으로 눈이 멀었으며 두려움으로 굳어졌다. 그리스인들을 보라, 유대인들이 과학이 없이 종교를 가진 반면에, 그들은 종교가 없이 과학을 가졌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렇게 잘못 인도되어서 진리에서의 좁고도 혼동되어진 집대성-해체를 받아들이게 되면, 그때에 그들의 유일한 구원의 희망은 진리와-조화-조정되는 것─전향되어짐─뿐이다.


“나는 이 영원한 진리를 강조 한다: 만일 너희가 진리의 조화-조정으로 너희의 삶에서 이 아름다운 정의(正義)의 온전함을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모범을 보인다면, 너희의 동료들도 너희가 갖게 된 그 진리를 얻기 위하여 너희를 좇을 것이다. 진리의 탐구자들이 너희를 찾는 정도가 너희가 소유한 진리 자질, 올바름의 정도를 나타낸다. 사람들에게 전할 너희의 메시지를 가지고 너희가 가야만 하는 그 범위가, 어떤 의미로는, 온전하거나 혹은 의로운 일생, 진리와-조화-조정되는 일생을 너희가 살지 못하는 것의 척도이다.”


사도들과 전도자들이 그에게 밤 인사를 하고 잠을 자러 가기 전에 예수는 그들에게 다른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UrantiaBook [154:7.1~5][155:0.1][155:1.1~6]

제 154 편 가버나움에서의 마지막 나날

   7. 황급한 도피

제 155 편 갈릴리 북부지방을 지나서 도피하다

   1. 왜 이교도들이 분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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