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58)씨는 최근 건강검진에서 최고(수축기)혈압이 180㎜Hg, 최저(확장기)혈압이 112㎜Hg로 나와 깜짝 놀랐다.

이대로라면 혈압에 빨간불이 켜진 것. 진료실 측정 혈압의 정상치는 120/80㎜Hg 미만이다.

 

자칫 혈압 관리에 실패하면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뇌졸중에 걸릴 위험이 정상인에 비해 5배 이상 높다.

의사는 그에게 집에서 혈압을 측정해보라고 권했다. 그랬더니 1주일 평균 혈압이 159/96㎜Hg로 훨씬 낮게 나왔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걸까. 하얀 가운을 보면 긴장해서 혈압이 치솟는 '백의(白衣)효과' 때문이다.

의료계에선 진료실 측정 혈압과 가정 혈압(혹은 직장 등 일상활동시 측정 혈압)과의

차이가 20㎜Hg를 넘으면 '백의 효과'로 본다.

 

특히 가정에서 잰 혈압이 정상(135/85㎜Hg 미만)인데, 의사나 간호사 앞에만 서면

고혈압 기준(140/90㎜Hg 이상)에 해당할 때 '백의 고혈압'으로 정의된다

 

담당의사는 “이씨의 경우 백의 고혈압 기준에는 들지 않지만 진료실 혈압이 계속 높게 나오기 때문에

병원 오기 전 1주일간 집에서 측정한 혈압 기록을 가져오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진료실 측정 혈압은 140/90㎜Hg미만으로 정상인데 가정혈압이 고혈압 기준(135/85㎜Hg 이상)에

해당될 경우 ‘가면(假面) 고혈압’으로 불린다.

고혈압 약을 먹는 환자가 진료실에서 혈압을 잴 때 나오기 쉬우며 혈압 수치가 과소평가될 수 있다.

 

대한고혈압학회의 1기 혈압모니터링사업(2007년)에 등록된 환자 1916명의 14.9%, 진료실에서

고혈압 진단을 받은 이들의 17.4%가 백의 고혈압이었다.

또 1916명 중 17.6%, 고혈압 약물 치료 중인 이들의 13.8%가 가면 고혈압일 정도로 드물지 않다.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김철호 교수는 26일 “백의 고혈압은 긴장을 잘 하는 여성들에게 많고

가면 고혈압은 스트레스에 많이 노출되는 남성, 고령, 흡연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백의·가면고혈압 판단 ‘가늠자’

문제는 백의·가면 고혈압 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실제 혈압을 알지 못할 경우 잘못된 치료로

이어지거나 평상시 혈압관리에도 소홀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가정에서 규칙적으로 재는 혈압은 이런 백의·가면 고혈압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가늠자’가 된다.

병원 방문시 측정하는 혈압은 상황에 따라 들쭉날쭉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집에서 동일 시간대에 꾸준히 측정하면 혈압 변화를 살펴볼 수 있어 정확한 혈압 파악이 가능하다.

 

가정혈압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 인식은 매우 낮다.

집에서 제대로 혈압을 측정·관리하는 이들도 많지 않다. 고혈압학회가 지난 3월 30세 이상 전국 고혈압 환자

1000명을 조사한 결과 가정혈압 측정에 대해 알거나 들어본 적 있다고 답한 사람은 60.6%에 그쳤다.

 

집에서 혈압을 측정하는 환자는 그 절반 수준인 31.4%뿐이었다.

고혈압 관리를 위해 환자들이 기울이는 노력(복수 응답)은 정기 진료(60.8%) 술·담배 조절(59.4%)

매일 치료약 복용(57%) 순이었다. 규칙적인 혈압 측정은 43.3%로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병원에서 가정혈압 측정법을 배운 비율도 21.1%에 불과했다.

김 교수는 “꾸준한 가정혈압 측정은 약물 치료 효과나 생활습관 개선의 영향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가 됨은 물론 심장·뇌혈관 질환의 발생을 예측하는데도 매우 유용하다”면서 “영국 미국 일본 대만에서는

가정혈압이 고혈압 관리의 핵심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가정혈압 측정 교육 21% 불과

5년 전 고혈압 진단을 받은 조모(61)씨는 처음엔 의사 처방대로 꼬박꼬박 약을 먹었지만 별다른 증상이 없자

차츰 임의로 약 복용을 끊기도 하고 병원 방문도 뜸해졌다.

병원에서 측정한 혈압이 그때그때 달랐던 점도 관리 소홀에 한몫했다.

 

그러다 지난해 검진에서 혈압이 160/95㎜Hg로 높게 나오자 정신이 번쩍들었다.

주치의는 “고혈압은 당장 큰 이상이 없더라도 언제 어떻게 심뇌혈관에 합병증을 부를지 모르는

 ‘침묵의 살인자’”라며 철저한 혈압관리를 재차 주문했다.

 

조씨는 큰맘 먹고 20만원을 주고 가정용 전자혈압계를 구입했는데, 이번엔 쓸 줄을 잘 몰라 무용지물이 됐다.

어쩌다 생각나면 한번씩 꺼내 사용하거나 TV를 보며 누워서 재기도 했다.

 

올 초 의사로부터 가정혈압 측정법을 배우고 나서야 제대로 실천하고 있다. 혈압은 정상 범위로 떨어졌다.

조씨는 “병원 방문도 1개월에서 3개월에 한번씩으로 조정하는 걸 의사와 상의하고 있다”고 했다.

 

보건복지부의 2015년 조사에 따르면 국내 30세 이상의 30%(약 960만명)가 고혈압을 앓고 있으며 25%는

고혈압 전단계(120∼139/80∼89㎜Hg)에 처해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하면 지난해 한햇동안 590만명 가까이가 고혈압으로 진료 받았고

진료비는 9000억원을 넘어섰다.

 

여전히 우리 국민은 혈압 관리에 무신경하다.

최근 발표된 질병관리본부의 2016 지역사회건강조사에서 자신이 고혈압임을 알고 있는

비율은 66%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고혈압을 치료하며 목표 혈압(140/90㎜Hg 미만)에 도달한 환자는 44%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혈압을 낮추고 심뇌혈관 질환을 예방하려면 정기검진, 금연·금주·저염식 등 생활습관 개선,

꾸준한 가정혈압 측정 등 3박자를 지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정확성 검증된 자동혈압계 써야

최근 고혈압의 효율적 관리방안으로 가정혈압 모니터링이 주목받으면서 우리 정부도

‘만성질환 시범사업’을 통해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대한고혈압학회는 지난 5월 ‘가정혈압포럼’을 발족하고 가정혈압 관리 교육자료를 개발해 일선 의료기관에 배포하고

있으며 홈페이지를 통해 의료진은 물론 일반인이 손쉽게 내려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다.

 

국내 가정혈압계 보급률은 10가구 중 약 3가구에 그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2015년 소비자 1000가구를

조사한 결과 혈압계 보유 가정은 30.3%였다. 대만(63%, 2010년 기준) 등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친다.

 

가정에서는 편리한 전자식 자동혈압계(위팔에 감는 부분인 커프에 자동으로 공기 주입 후 측정)가 추천된다.

시중에 4만∼20만원대 제품이 나와 있다. 아네로이드형 같은 수동 혈압계는

청진기의 심음을 들을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반인이 사용하기엔 어렵다. 과거 많이 쓰이던 수은 혈압계는 환경오염 문제로 2020년부터 완전 퇴출될 예정이다.

 

혈압계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료기기 허가나 공인 인증기관 인증을 받은 제품인지 꼭 확인해야 한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국내에는 혈압계의 정확성을 평가하는 인증기관과 기준이 따로 없기 때문에

시중에 기준미달 제품도 섞여 있다”면서 “dabl교육트러스트(dableducational.org) 같은

세계적인 비영리디지털혈압계 평가 사이트를 통해 구매한 혈압계가

정확성을 평가받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정혈압 측정 이렇게

집에선 정확한 혈압 확인을 위해 아침 2회, 저녁 2회 측정이 권고된다. 아침엔 기상 후 1시간 이내,

약물 복용이나 식사 전, 소변을 본 후에 재야 한다. 저녁에는 잠자리 들기 전, 소변을 보고 5분간 휴식을 취한 후가

가장 안정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때다. 샤워나 목욕 전에 재는 게 좋다. 측정 30분 이내 흡연이나 카페인 섭취는 피한다.

운동을 했다면 2시간 후에 측정한다.

 

안방이나 서재 등 가급적 조용한 곳에서 의자에 등을 기대 앉아 5분간 안정을 취한다.

양발이 바닥에 닿는 높이의 의자가 좋고 다리는 꼬지 않도록 한다. 팔꿈치 높이의 테이블 위에

검증된 자동 혈압계를 준비해 둔다. 바닥에 앉는 경우엔 벽에 기대 앉아 팔꿈치 높이 탁자를 사용한다.

 

커프를 위팔, 심장 높이에 착용한다. 가급적 맨 팔이나 얇은 옷 위에 커프를 감는다.

 커프 속으로 손가락 한 두 개가 들어갈 정도의 여유있는 것이 좋다.

손바닥이 위로 향하고 팔꿈치를 테이블 바닥에 댄 상태에서 팔의 긴장을 풀어준다.

 

필요시 팔을 쿠션으로 지지해 준다. 측정 버튼을 누른 후 측정이 끝날 때까지 말과 행동은 자제한다.

측정이 끝난 후 날짜와 시간, 최고·최저혈압, 맥박 수를 혈압수첩에 꼼꼼히 기록하고

동일한 혈압계를 사용해 같은 방법으로 한번 더 측정한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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