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자치신문

[평택의 역사]'道 문화재자료 제141호' 서천사석조여래좌상

작성일 작성자 평택자치신문


 이번호에서는 평택시 고덕면 방축리에 소재한 서천사를 찾았다. 서천사에는 지난 2007년 9월3일 경기도 문화재 제141호로 지정된 서천사석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승병들을 이끌고 46일간 주둔하였을 정도로 호국사찰이기도 했다. 평택의 역사여행 지면을 통해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들을 둘러봄으로써 우리 조상들의 삶의 자취를 돌아보는 한편, 지역의 문화유산에 대한 독자 여러분들의 관심과 애정이 깊어지기를 기대해본다. <편집자 주> 


■ 1623년 인조 반정시 전소 된 서천사 


 서천사는 용화전과 요사로 이루어진 작은 사찰이다. 서천사는 1352년 나옹화상이 창건하여 1623년 인조 반정시 전소 된 후에 1870년 동파비구가 미륵불을 발견하여 사찰을 중창하였다. 1929년 중창불사가 있었다가 1953년 화재로 소실되어 1954년 법당을 짓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전해진다. 


 사찰이 위치한 방축리는 현재 농토로 둘러쌓인 지역이지만, 일제침략기까지도 평택항을 내려 볼 수 있었던 어촌 마을이었다. 


 지난 2007년 9월3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41호로 지정된 평택 서천사석조여래좌상(平澤暑天寺石造如來坐像)의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지만 사찰의 중창시기와 일제시대 포교당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에 석불이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현재 석조여래좌상 전신에 회칠이 되었지만, 세부조각과 의습 표현 등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고덕면 방출리 서천사석조여래좌상


 대웅전 내 수미단 위에 본존 우측에 봉안되어 있는 석조여래좌상은 머리에 나발이 있고, 이마 위에 타원형의 중앙계주가 그려져 있다. 계란형의 얼굴에 지긋하게 감은 눈, 이마 중앙에 커다란 백호, 삼각형의 오뚝한 코, 붉은 입을 표현하였다. 


 법의는 대의 안쪽에 편삼을 걸친 변형우견편단으로 왼쪽 어깨에서 팔꿈치까지 완만하게 대의자락이 늘어져 있고, 오른쪽 어깨에서 완만하게 내려온 대의자락과 편삼이 복부에서 겹쳐 있다. 하반신을 덮은 대의자락은 앞치마를 입은 듯이 반원형을 그리고, 양 발바닥이 모두 드러나 있다. 불상의 후면은 앞에서 넘어온 대의자락이 생략되어 평평하게 처리 되었으며, 수인은 양손을 결가부좌한 다리위에 가지런히 놓은 선정인(禪定印)을 취하고 있다. 


 불신은 평면적으로 조각되어 입체감이 적다. 높이는 하반신을 볼 수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상반신 높이 112㎝, 어깨너비 68㎝로 상당히 거구임을 알 수 있다. 


■ 호국사찰이었던 서천사 


 서천사는 평택시 고덕면 방축리에 있는 해동종 사찰이다. 현재 창건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없으나, 고려 공민왕 때인 1352년 선각왕사(禪覺王師) 혜근(惠勤 : 1320-1376)이 중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고덕면 방출리 서천사 미륵전


 그러나 자세한 문헌이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그 신빙성이 적다. 참고적으로 선각왕사 혜근은 나옹대사로 1352년에 복용산(伏龍山)으로 들어가 천암(千巖)스님을 친견하였으며, 수도인 개경으로 돌아와 법원사(法源寺)에 있는 지공(指空)을 친견하였다고 한다. 


 이후 서천사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1392년 조선왕조 건국 때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 주기 위해 위령제(慰靈祭)를 올리고, 그들의 영가를 봉안하였다고 전해진다. 


 또 임진왜란 당시에는 사명대사(四溟大師)가 승병들을 이끌고 이곳에서 46일간 주둔하였으며, 이곳에서 승병들을 이끌고 김해방면으로 진군한 전략적 요충지였다고 한다. 당시 서천사는 호국사찰로서 승병들의 주둔지였다. 1623년 인조반정 때 대웅전이 화재로 소실되어 19세기 말까지 폐사로 유지되었으나, 성황당, 미륵불등이 노천에서 그 법맥을 이어 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사역 일대에는 조선시대 기와편과 자기편들이 산재되어 있어 오래전부터 법등이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가람은 1870년에 사찰에 머물고 있었던 동파스님이 의해 중창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동파스님은 서천사의 중창주로 땅속에 묻혀 있던 미륵불입상을 발굴하여 미륵전을 지어 봉안하였으며, 일제 강점기 때에는 평택항을 통해 부를 모은 일본인들이 서천사를 포교당으로 사용하면서 그 법맥을 이어갔다. 


 근래에는 동파스님 이후 지견스님이 법등을 이어 현 종무소를 비롯하여 1929년에 미륵전을 중수하였으며, 1953년에 전소된 미륵전을 1954년에 다시 중수하기도 하였다. 


 1990년대에는 중선(重先)스님이 상주하며 가람을 보수하고, 서천사를 전통사찰로 등록하였으며, 최근에는 화두(和豆)스님이 기거하며 요사채를 신축하여 평택의 호국사찰로 가람을 재정비하고 있다. 


서태호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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