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원시 벼 시대
벼과에 속하는 식물은 약 1억 4,000만 년 전에 처음 등장하였다가 오랜 세월을 거쳐 겨우 야생종 벼로 진화하였다. 현재 사람들이 먹는 쌀은 대략 1만 5천 년 전경에 원시인들이 야생종 벼를 찾아 식용한 것이 시초일 것이라 추정된다.
야생종 쌀이 재배종으로 바뀌는 시기는 대략 8천 년 전, 인디카와 자포니카로 나뉜 시기는 3천 9백 년 전으로 추정된다. 세계 3대 식량작물은 보통 쌀, 밀, 옥수수를 이야기 하는데, 영양, 수량, 지역 적응성 등이 여타 작물에 비해 뛰어난 작물들이다.
2. 통일형 벼 시대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의 후유증을 벗어나게 되는 1950년대 후반까지는 우리 민족이나 농업 모두 힘들었던 시기이다. 한국전쟁 직후부터 가까스로 지킨 벼를 기반으로 육종을 시작해 점차 일본품종을 대체하는 우수한 우리 품종을 육성·보급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국내외 상황, 전문 연구역량의 성숙, 정부의 강력한 정책적 뒷받침, 그리고 지도자의 강한 의지가 만들어낸 결과물로 통일벼가 탄생하였다.
인디카의 피를 받은 통일형 쌀들은 태생부터 무리수를 안고 나왔으나 실보다 득이 많다는 이유로 보급되었던 미완의 작물이었다. 후속 연구와 품종을 통해 계속 보완해 나갔으나 식량자급을 달성한 이후에는 쌀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면서 재배면적이 급감하였다.
3. Post 통일형 벼 시대
통일형 벼는 발상의 전환으로 당시의 불문율이라 생각되었던 모든 것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게 한 소위 패러다임 시프트의 아이콘이었다. 또한 우리 농업의 밑거름으로 통일형 벼 육종에서 보급까지 모든 자원과 모든 역량을 모아 진행한 범국가적인 프로젝트였기에 관련 분야의 성장을 이끌었다.
통일형 벼로 인해 저렴한 가격으로 쌀이 공급됨에 따라 사회 다른 분야의 발전여력이 확보되고, 사회현상도 변화되었다. 통일형 벼 재배를 독려하고 농업인들에게 장려하기 위해 동원된 많은 정책들은 현재 시행되는 농업 정책의 시발점이 되기도 하였다.
통일형 벼는 타산지석으로 잊지 않아야 할 교훈을 주었으며, 미래농업의 씨앗이 되었고 국위선양에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