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가득담긴 전원의 집

가난한 집의 죽음 파티 복어 알 중독사

작성일 작성자 잡초인생

 

사람이 가장 비참하다고 느낄 때는 언제일까. 가슴을 치고 오르는 분노마저 메말라, 세상 더 없이 슬프고 처참한 심정에 몸부림칠 때는 또 언제일까. 옛날신문을 뒤적이다 보면 문득 "아, 이럴 때야 말로 인간에게 있어 가장 비참한 순간이 아니었을까"고 생각되는 기사를 마주치곤 한다.

주린 배를 채우려 생선 주워 먹다 '참변'

가난이 빚은 비극…토막집 복어알 중독사건
1961. 1. 20 [동아일보] 3면


한겨울. 단칸 움막집에 사는 일가족 5명은 허기에 지쳐 탈진한 듯, 죽은 듯 잠에 떨어져있다. 지난 열흘 동안 200환(요즘 돈으로 2천원 정도) 밖에 벌지 못한 날품팔이 지게꾼 가장은 그래도 식구들 입에 풀칠이나 시키겠다며 새벽에 집을 나갔다.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아이들은 하나둘 깨어나 배고프다고 칭얼대고 4살배기 막내는 그럴 힘도 없어 퀭한 눈만 굴린다.


그 역시도 며칠을 굶은 엄마는 훌쩍이는 4남매를 보다 못해 깡통을 차고 나갔다. 밥 동냥이라도 얻어오려는 거였다. 시장바닥을 헤맸으나 한술도 못 얻은 엄마. 밤 9시경 맥없이 집으로 돌아오다 쓰레기통에 뭔가 신문지에 쌓여 있는 걸 발견했다. 생선 알이다! 말 그대로 '눈이 뒤집힌' 그녀는 그 쓰레기를 소중한 보물처럼 품에 안고 와 먹음직한 생선국을 끓였다.

하루 종일 일하고 50환을 벌어 밤늦게 집에 온 남편과 아내는 모처럼 푸짐한 파티를 벌였다. 쌀 한 톨 없어 밥은 없었지만 국만 먹어도 속이 풀렸다. 허기져 자는 아이들을 깨울까도 했으나 아침 일찍 깨워 먹이기로 하고 잠이 들었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이었다. 잠자리에서 복통을 일으킨 아내는 새벽녘에 숨졌다. 이웃들에 의해 병원에 옮겨진 남편은 겨우 목숨을 건져 집에 돌아왔으나 단칸방에 아내 시체를 누인 채 장례는 치를 엄두도 못 냈다.

인체에 치명적인 맹독을 가진 '복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50년 전, 1961년 1월21일 동아일보에 실린 실화다. 부인이 쓰레기통에서 주워 끓여 부부가 함께 먹은 생선 알은 복어의 알이었다. 복어 독은 자연 상태의 독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다. 청산가리의 무려 13배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이 0.5mg만 먹어도 목숨을 잃을 정도의 맹독이다. 복어는 살코기가 매우 맛있지만 생식선과 간장, 피에 독이 잔뜩 있어 자칫 잘못 먹었다간 비명횡사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복어를 요리하려면 내장을 완전히 들어내고 살코기 피도 깨끗이 빼내야 한다. 내장을 훑어낸 칼도 깨끗이 헹구고 씻어 써야만 한다. 시장이나 음식점에서 복어를 팔 땐 이처럼 완벽 처리를 해야 하는데 상인들은 흔히 내장을 신문지에 둘둘 싸 아무데건 버리는 습성이 있었다. 그래서 시장바닥이나 쓰레기통에 버린 복어 알 내장을, 먹어도 되는 생선의 부속인줄 알고 가져다 먹고 죽는 사람이 꽤 많았다. 가난한 시절의 슬픈 자화상이다.

가난했던 시절, 끊이지 않았던 복어 중독 사고

1950~60년대엔 매년 한해 20~30여건의 복어 중독 사망사고가 났다. 오죽하면 당시 "대한민국 사망률 제1위는 연탄가스 중독이요, 두 번째가 복어 독"이란 얘기까지 신문에 실렸을까. 먹으면 죽는 줄 뻔히 알면서도 워낙 배를 곯다보니 혹시나 하는 생각에 먹고 죽은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복어 독인 테트로도톡신은 사람 몸에 들어가면 1시간도 안 돼 손발이 저리는 등 마비 증세를 일으키며 몸 전체가 경직되다 끝내 호흡곤란으로 사망하게 된다.


옛 시골에선 복어 중독자가 발견되면 양 옆구리를 부축해 주고 계속 달리게 했다. 그런 한편으로는 혓바닥이 말려들어가 기도를 막지 않도록 강제로 입을 벌리고 혀를 잡아 빼주곤 했다. 억지로 물도 먹였다. 핏속의 독을 희석하려는 거였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 중독자는 결국 기진해 쓰러지기 마련이고 숨을 못 쉬어 고통스러워하다 죽어가곤 했다.


먹음직한 '죽음의 복병' 복어알
1964. 1. 20 [경향신문] 7면

61년 한해 '신문에 보도된' 복어 중독 사망자는 9가족 21명이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굶주린 끝에 식당이나 시장 쓰레기통에서 복어내장을 주워 먹고 변을 당했다. 하도 사고가 빈발하자 2월6일 서울시경 보안과는 "복어 알을 길에 버리는 등 취급을 잘못해 사람이 죽는 사고가 나면 모두 의법 처리하겠다."며 강력한 경고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경고문을 낸지 불과 한 달 안쪽인 2월22일, 3월2일, 3월18일 잇달아 사망사고가 났다.

복어알과 바꾼 '가난한 목숨'

복어알과 바꾼 가난한 목숨
1962. 1. 29 [동아일보] 2면


그러던 62년. 이번엔 복어 내장을 먹고 숨진 사람의 관을 짜러 갔던 목수들이 죽은 이가 남긴 국을 먹고 또 숨지는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다. 그해 1월25일, 서울 성북구 삼양동 산동네에 사는 김경근 노인(65)은 부인이 주워온 복어내장 국을 먹고 숨졌다. 평소 "고깃국이나 한번 먹고 죽으면 한이 없겠다"고 입버릇처럼 외던 김 씨는 부인이 쓰레기통을 뒤져 생선내장을 주워오자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국을 끓여먹고 바로 사망한 것.


문제는 다음에 일어났다. 이틀 후. 이웃 사는 목수 2명이 "그래도 입관은 해야 한다"며 김씨 집에 와 관을 짰다. 죽은 김씨 부인은 그게 고마웠다. 뜨거운 밥 한 술이라도 대접한다며 내놓은 게 남편이 먹다 남긴 복어 국이었다. 두부를 넣고 새로 끓였다. 남편이 죽은 게 복어 독 때문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우둔한 부인의 친절한 마음씨가 화를 부른 것이다.

기자는 그 험한 산동네, 미련하게도 한 마리 복어에 세 명이 연쇄적으로 숨진 마을을 찾고 분노의 기사를 썼다. "이것은 단순한 식중독 사건이라기보다는 시궁창 생활에 지친 세궁민(世窮民)의 '가난'과 '무지'가 빚은 비극이었다." 그들은 하루 잘 벌어야 300환이며 겨울에는 그나마 품팔이도 안 돼 '주워온 생선'이 "먹어도 좋은 건지, 먹으면 죽는 건지를 가릴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기자가 본 그 동네는 모두 '삼양동 산75' 같은 번지의 비참한 판자촌으로 살림이라고는 쓸 만한 그릇 하나 변변히 없었다.

이들의 서글픈 기사가 '무지의 식욕이 화근, 어차피 죽을 형편이었다.'는 제목으로 나가자 나라가 온통 뒤집혔다. 복어 알 중독사고야 항용 있는 일이었지만 사람이 먹다 죽은 그 국을 또 먹고 숨졌다니 세상에 어찌 이런 가난이 있을 수 있는가. 여론이 흉흉해지자 즉각 대통령이 나섰다. 윤보선 대통령은 김준하 비서관을 세 상가에 보내 문상하고 각각 2만환씩 조의금을 냈다. 이들 상가에서는 평생 처음 만져보는 거금이었다. 윤치영 서울시장도 각각의 집에 쌀 한가마니를 보냈다. 성북구청장과 삼양동장은 직원들을 모두 동원해 세 집의 합동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러줬다.


이 정도가 됐으면 생선 쓰레기를 주워 끓여먹고 죽는 사고는 사라져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를 않았다. 그해 봄에도 청소원 가족과 지게꾼들이 몰사하는 사고가 속출했다. 한 신문은 "죽고 또 죽는다. 일가족 두 명 ,세 명,네 명 온 식솔이 몰사하는 소식을 들어도 그다지 놀라지도 않는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불의의 복어 변사자들을 어찌하면 구출할지를 당국은 오늘의 중요한 과제의 하나로 다루어라"고 촉구했다.


서울의 춘궁지대…복어알 중독 꼬리물고
1964. 3. 13 [동아일보] 4면

일제강점기에도 빈번했던 복어 중독 사고

살인독약 복어내장- 1개월간에 경성에서만 12명 참사
1924. 1. 10 [동아일보] 3면


사실 복어 중독 사고는 50-60년대에 느닷없이 나타난 비극은 아니었다. 20년대 일제 때도 빈발해 사람들을 울리곤 했다. 24년 1월10일 신문은 "남이 먹다 내어버린 복어의 알을 집어다가 그래도 고깃국이라고 끓여먹다 죽는 일이 최근 1개월 동안 경성(서울)에서만 십이 명이라고 한다."고 보도했다. 가관은 그 다음. 이런 사고에 대해 당시 일본인 경찰부장이 "(복어 알을 먹으면 죽는 걸 알면서) 먹은 사람의 자제력이 부족한 것이요, 그렇게 죽는 사람을 어쩌겠느냐"고 말했던 것.


특히 그는 "그렇다고 다른 데서 복어 판매를 금지하는 것은 정사가 두려워서 연애를 금지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에 신문들은 한탄하며 "이것이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경찰부장의 말인가. 너무 성의가 없다"고 질타했다. 그런 덕에 일제 경찰은 복어의 알이나 내장 등 먹어서 안 되는 부속물은 태우고 땅에 묻거나 변소 통에 버리라고 강력히 지시했다. 물론 그런다고 복어 중독 사망사고가 완전히 근절된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복어 사고는 70년대 중반까지도 끊임없이 일어났다. 동물 사료용 잡어 더미에서 복어 알을 찾아내 먹고 죽은 사람, 어선 바닥에 떨어진 복어를 구워먹고 죽은 어린이들, 시장에서 버린 알을 나눠먹고 죽은 근로재건대원들 기사가 시도 때도 없이 신문에 보도됐다. 다만 70년대 후반부터는 길에서 주워 먹고 숨지는 경우보다 식당에서 처리를 잘못해 손님이 먹고 숨지는 사고가 더 많이 일어났다. 이젠 쓰레기통을 뒤지는 가난은 벗어난 것이었다.

눈에 띄게 줄어든 '복어 중독 사고'

그리고 1992년. 마산의 한 초밥 집에서 복어 회를 시켜먹던 손님 2명이 손 마비 증세가 오자 요리사를 불러 항의했다. 그러자 요리사는 "깨끗이 처리했다. 절대 그럴 리 없다"며 자신이 그 회를 집어먹고 바로 숨진 사건이 일어났다.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다시 사람들이 복어를 멀리하게 됐다.


요즘은 복어 사고가 거의 없다. 버린 내장을 주워 먹을 정도로 굶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지만 양식 복어에는 독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식가들 중에는 복어의 독을, 먹어도 죽지 않을 정도로 살짝 묻혀 먹으면 맛이 뛰어나다지만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래도 꼭 먹고 싶다면 식사 도중 요지 등으로 입술이나 혀를 자주 찔러보라는 말도 한다. 통증이 없다면 중독된 것이니 즉각 먹기를 중단하라는 우스개다. 말 그대로 세 끼 밥 굶는, 뻘건 가난은 없어졌기에 그런 농담도 나오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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