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부님 훈장증(독립유공자)


시조부님 위훈비




시부모님


연안김씨 대종회보



연안김씨 대동보












시어머님 진명여고 졸업증서



 


연안김씨는 총 22개 파()로 구분되며, 현존하는 파는 17개 파이다

()라는 것은 한 사람의 조상에서부터 아들. 손자. 증손(曾孫). 현손(玄孫)으로 자손이 퍼져 나가는 과정에서 형과 아우의 자손이 각각 하향다기(下向多岐)로 뻗어 나가게 될 때 그 어느 한 갈래를 말한다. 이 때에 형의 자손들은 형파(兄派)이고 아우의 자손들은 제파(弟派)가 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파가 갈리게 되는 것은 형제가 갈라질 때마다 분파(分派)가 되는 것이 아니고 어느 특출하거나 유명한 조상 또는 거기서 갈라진 자손 집단이 상당히 클 때에 그 어느 쪽인가를 분간하기 위하여 파()의 이름을 붙이게 된다.
그리고 파의 명칭은 대개 갈라진 조상의 관직명(官職名)이나 시호(諡號)에 공()()를 붙여서 ○○공파(公派)라고 한다
이와 같이 파가 형성되다보면 여러 대를 내려가면서 파내에 또 파가 생기고 갈라져서 무슨 파 중에 무슨 파식으로 중첩이 되어 나중에는 지극히 복잡하게 된다. 따라서 일정한 규칙을 정하여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우리 연안김씨는 시조 박사공의 큰 아드님이신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 준구(俊龜)공의 후손을 호부원외랑공계(戶部員外郞公系)라 하고, 작은 아드님이신 대장군(大將軍) 준린(俊麟)공의 후손을 대장군공계(大將軍公系)라 한다.
그리고 서기 1765년 을유보(乙酉譜)와 서기1870년 경오보(庚午譜)를 편수(編修)하면서 사용하던 종파의 호칭을 기초로하여 1979년 대동계보 편찬시 시조(始祖) 7대손인 8() 22분을 기준으로 하여 22()의 파명(派名)을 정하였다.
이 가운데 관찰사공파. 정선공파. 군수공파. 교수공파. 현감공파는 자손이 끊기어 현재는 17개 파만이 존재한다

설명: http://www.yeonkim.or.kr/attach_files/gva00000b600001.gif

이상 17개 파 내에서 다시 종중(宗中)과 문중(門中)으로 구분된다

각 파()에서 다시 분파(分派)하게 될 때에는 파()라는 칭호를 쓰지 않고 '연안김씨○○파 ○○종중(宗中)'이라고 부르며, 또 종중에서 다시 분파가 되면 이를 '연안김씨○○파 ○○종중 ○○문중(門中)'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종중 또는 문중의 호칭은 분종조상(分宗祖上)의 관직명을 쓰지 않고 낙향지(落鄕地) 또는 그 자손의 집단거주지(集團居住地)의 지명(地名)을 쓰고 있으며, 종중, 문중의 구분과 호칭은 일정한 기준에 따라 대종회에서 정하는 것이다.
종회의 구성은 파종, 종중, 문중단위로 구성하고 있으나, 파종이나 종중 내에서 특정한 조상의 후손을 구성원으로 하여 선조의 봉사와 묘역수호를 목적으로 종회를 구성할 수도 있다. 이 때에는 조상의 관직명을 사용하여 '연안김씨○○파 ○○공종회'라 칭하여 공식적인 파종, 종중, 문중과 구별하고 있다

파종별 인구현황(2007년도 발행 병술대동보 기준)

설명: http://yeonkim.or.kr/attach_files/gva000015a800012.gif
 

 

大宗會報(대종회보)

『연안김씨 대종회보』는 1980년3월10일에 창간하여 2008년 1월로써 335호를 발간하였다. 월간으로서 335호이니 사람으로 치면 만 28살의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하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였는데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한 오랜 세월이다. 그간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단 한 번의 결간도 없이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은 우리 연안김씨의 저력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종회보를 발간하게 된 동기를 찾아보면 1979년10월 당시 대종회총무 대영(旲泳)씨가 한국씨족협회에 참석하였다가 진천송씨 회장으로부터 진천송씨종회보를 받아보고서 우리도 종회보를 발간해야겠다고 작심한데서부터 시작 된다.
신문발행은 3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한다. 첫째는 신문을 발간할 수 있는 재원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신문지면을 채울 수 있는 기사가 있어야 하고, 셋째는 신문을 발간할 수 있는 인재가 있어야한다. 그런데 당시의 여건으로서는 이 세 가지 요건을 구비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초심을 관철하려는 의지 하나로 동분서주하며 많은 종원들을 설득한 결과 1980년2월20일 임시이사회를 개최하여 종회보발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위원장 수영(壽泳:대종회장) 부회장 사원(思元), 인기(麟基), 문기(文基), 종성(鍾聲), 동건(凍鍵), 종갑(鍾甲), 광제(光濟), 총무 병기(昞基), 대영(旲泳), 편집주간 장각(長脚), 편집위원 종석(鍾奭), 종호(鍾昊), 기린(起麟), 재린(在麟), 그리고 경비는 인기(麟基) 20만원, 종성(鍾聲) 20만원, 고원군사공파종회 10만원, 문기(文基) 10만원, 영회(永會:內) 10만원, 종성(琮成) 5만원, 동건(凍鍵) 5만원, 등 80만원의 찬조금으로 1980년3월 10일 드디어 연안김씨대종회보 창간호 2000부가 인쇄되어 그중 1700부를 종원들의 가정에 송달하였다. 이는 조상님께서 돌보신 덕이요, 10만종원의 숙원을 해결하는 쾌사였다.

종회보 편집인으로는 초대 장각(長脚:開), 2대 종석(鍾奭:內), 3대 종윤(鍾潤:內), 4대 사균(思均:內)으로 계속되면서 그 소임을 다하고 있다.
종회보는 기사중심 소식지로서 타불로이드 판 4면인데 1면과 3면은 기사중심으로 하되, 1면은 그래도 무게가 있는 기사, 3면은 조금 가벼운 기사, 2면은 학술적인 기사와 교양기사, 4면은 문화면으로 시, 수필 잡문 등으로 교양적인 소양을 높이는 내용으로 원칙을 세우고 있다.

종회보는 발간이래로 대종회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대종회의 크고 작은 행사나 소식을 전 종원에게 알림으로써 대종회와 지역 종원간의 격차해소․유대강화는 물론 종원 상호간의 돈목을 강화하였고, 저변을 확대하여 많은 종원들이 동참하게 되어 일족으로서의 동질감․일체감을 함양하였다. 지상보학 등으로 조상을 알고, 뿌리를 아는 데에 좋은 자료를 제공하였고, 현조들의 문집이나 벼슬, 사회적 지위, 국정에 미친 영향 등 생활상을 기술하여 후예들의 긍지를 높였을 뿐 아니라 후손들의 나아갈 지침을 제공하였으며, 파뭍혀 사장될 뻔한 귀중한 문집이나 사료들을 발굴하여 전 종원에게 알렸으며, 그릇됨을 시정하였다. 또 교양이나 문화면에 격조 높은 작품들로써 독자의 기호를 충족시키고, 교양을 드높였다.

현재 편집인의 좌우명은 “오늘의 오류가 내일의 정사(正史)가 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된다”이다 종사에 관여하면서 절실히 느낀 것은 선대의 현조들께서 기록한 내용에 오류나 오기, 미확인된 기록이 많다는 사실이다. 이럴 때 후손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득관 이래 9백년, 안락당집이 발간(1514년간)되고 5백년, 기해보가 간행(1719년간)된 후로 3백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현조들의 기록이 너무 신성시되고 불가침적인 성역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기록의 수정이 없어서 오류나 오기가 계계대대로 전승되어온 것이다. 그래서 더욱 오늘의 종회보가 백년후의 종사에 양질의 자료가 된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활자하나, 사진 한 장에도 세심한 주의와 애정이 깃든 정성으로 오류를 미연에 방지하여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08780)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1668(신림동, 연안빌딩 지하1층) 연안김씨 대종회 / 전화 : (02)871-9154, 874-9154 / 팩스 : (02)873-9154
Copyright © 2017. 연안김씨. All right reserved.

멀티미디어는 표시되지 않습니다.







맨위로
통합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