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이 먹는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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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넷이 먹는 밥상

빈티지 매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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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누라 안개 끼었다 "

새벽부터  말똥말똥 깨어나 온 집을 휘젓고 다니던 영감이

드디어 못 참겠는지 자는 방에 들어와서 

불을 켰다 껐다 소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새벽 두시 세시 덩달아  잠을 설치다 설핏 잠이 들었구만

고만 일어나란 소리지...

오랜만에 나란히 창문에 붙어서서 건너편 언덕을 바라보았다.

아직 온 세상이 깊은 잠에 빠져있을 일요일 새벽

정원 건너편 언덕아래 지붕위로 옅은 안개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이번 가을에 처음 보는 안개였다.

" 빵 사오까? "

일요일 빵집은 여덟시가 되어야 문을 연다는 사실을 매번 까 먹나

승질 급한 영감 아니랄까  빵집 문열기를 시계를 노려보다 

면봉다리를 쥐어주자 총알처럼 달려나간다.

한 개 두개 어쩌다 세개의 매트가 깔리던 식탁에  네개를 깔았다

허전했던 한 귀퉁이가 채워지자 오랜만에 식탁이 꽉찼다.

그리고 오랜만에 일요일 아침이 분주했다.

오렌지쥬스를 꺼내놓고 커피를 안 마시는 놈에게 차를 끓이고

커피잔을 꺼내 놓고...

식탁을 다 차리기도 전에

 따끈한 빵봉지와 집앞에서 주운 호두 한알을 올려 놓는다.

일요일 넷이 다 모인 우리집아침식사시간은 

놈들이 이구동성 거의 아동학대수준에 가깝다는 여덦시반

마저 식탁을 차리고 있는데 이층에서 우당탕탕 아부지와 아들놈들간

한바탕 요란스런 소리가 들려왔다.

저항이 별 소용이 없었던지

 거의 체념수준으로 아부지 손에 끌려 내려와

 지정석으로 철푸덕 와 앉는 두넘들

창문쪽으로는 남편과 작은 넘

부엌쪽으로 큰 넘과 내가 앉는 자리이다.





 네 명이 합석을 하자 흐믓하게 식탁을 둘러보던 영감이

오렌지쥬스잔을 높이 들고는 이른 아침부터

  뜬금없이 건배를 외쳤다.

  아부지가 하자고 하면 뭐가 되든 일단은 하고 보는 놈들이라

   눈은 여전히 반쯤 감은채  잔을 들었다.

" 이제 우리 다시 네명 되었네 "

전날 도착한 아부지를 마중하러 나갔을때

무거운 여행가방을 받아들며

무심할것 같은 작은 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뜬금있던 건배의 의미였다.






지 형이 수도 없이 커피 심부름과  기타 잡심부름으로 

벌떡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 하는동안 작은넘은 

아부지옆에 찰싹 달라 붙어 앉아

약올리듯 빵에 버터를 바르고 있었다.

"내가 이노무 자리를 바꾸던지 

얌마  다음부터는 이쪽에 앉아 니가 심부름 좀 해 "

이 날따라 영감과 내가 번갈아가며 빈 커피잔을 큰 넘에게 내밀자

건너편에 앉은  동생넘이 더욱 얄미운 모양이다. ㅎ

허나 형의 투덜거림이 채 끝나기도전에 

아부지한테 깐죽거리다 기어이 귀를 잡히고 마는데

넷이 모인 식탁에 빠질수 없는 광경이다.

악악 귀 떨어진다는 작은 넘의 비명소리가 

아침식탁에 요란히 울려퍼졌다.

그사이 머리가 굵었다고 심하게 깐죽거리더라니

세상사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우리집식탁은 이래서 조금은 공평하다.

밥 먹다가 귀찮게 벌떡 벌떡 일어나는 일은 있지만

대신 귀때기가 벌개지는 일은 없으니 ㅋ

한 놈은 귀를 잡혀가며

또 한놈은 심부름하느라 툴툴거리는 사이

가을햇살이 식탁창문에 환히 비쳐들고 있었다.

  심부름해준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단풍이 완연한 준베리나무를 

하염없이 바라볼수 있는 일요일 아침시간

갖 구운 빵에는 버터만 발라도 맛이 있다.




새로 산 노란 국화가  따뜻한 아침가을햇살을 맞아 

자잘자잘 꽃몽오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영감이 돌아 온다는 소리에 가장 먼저  달려간

꽃집에는 노랗고 붉은 하얀국화들이 한창이었다.


우리동네 누구는 우리집을 잘 돌아가는 방앗간에 비유를 했다.

쉴 새없이 돌아가는 방앗간

계절을 막론하고 힘차게 힘차게 돌아가는 소리가

집 근처언저리에만 와도 들리고 보인다고 했다.

부지런한 방앗간주인이 집으로 돌아오면 깊은 잠에 빠져있던 

방앗간이 순식간에 돌아가기 시작하고 금새

   반짝반짝 빛이 난다고 했다.



봄이면 기다렸다는듯 

정원을 뒤집고 꽃샘추위로 얼어죽을거라는 만류를 귓등으로

 영감은 성질 급하게도 어린 봄꽃을 사다 심곤 했다.  

해마다 새 나무를 심고 겨우내내 끼인 잔디밭의 이끼를 뽑았다.

여름날의 방앗간 돌아가는 소리는 또 얼마나 경쾌했나

아침 저녁으로  스프링쿨러는 힘차게 돌아갔고

사랑받는 잔디들은 그 누구의 잔디밭보다 빛이 났고 쑥쑥 자랐다.

구년전 무릎높이도 채 안 되었던 체리월계수나무들도

방앗간주인의 애정어린 눈길과 함께 

어느새 삼미터도 넘게 훌쩍 자라 튼튼한 울타리를 이루었다.

가을이면 체리월계수나무아래로 옆집 펠스영감님네 체리나무 낙엽들과

여름에 떨어진 체리들이 마치 건포도처럼 말라있는데

그러면 또 안방 거실 못지 않게 싹싹 빗자루질을 해주는것이다.

가을정원도 말끔하기 그지 없었다.

바깥 할 일이 그닥 없어진 겨울도 예외는 아니어서

부지런한 그의 손길이 구석구석 와 닿지 않는곳이 없었다. 

 비바람에 떨어져 있는 잔 가지들을 모아 모닥불을 피우고

전지가위를 얼마나 들었다 놓았는지 우리집나무들은 

보기에도 깡총하니

다른집 나무들보다 일찍 따뜻한 겨울잠에 들수 있었다.




주인의 부재가 뜻밖으로 길어지기라도 하면

정원의 꽃과 나무들은

주인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렸고

때를 놓치기라도 할라치면 주인의 속 또한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이럴때 대부분 안주인은 있으나 마나

바깥주인의 부지런함이 하늘을 찌르니

안주인까지 덩달아 부지런 떨 필요가 있겠나...

집 지키는 여편네의 게으름이 하늘을 찌르니

어찌 내 속이 타지 않으리...

먼길에서 돌아오기가 무섭게

어수선한 정원과 집안안팎을 살피며  늘어 놓는 장탄식이다.

 우리들의 대화는 늘 이런식으로 시작되곤 했다.




" 나는 말이야 내게 2016년이 올 줄 몰랐어 "

올 봄 드디어 작은 넘의 아비투어, 대학입학자격시험을 앞두고

술이 얼콰해진 그가 컴퓨터 모니터안에서 

감회에 젖어 중얼거리던 말이었다.

칠년이란 세월이 흘렀던거였다.

칠년전  우리의, 남편의 목표는 더도말고 딱 삼년을 버티는거였다.

그런데 삼년 목표치를 달성하고서도 곱절이 훨씬 지난

2016년의 봄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사는것이 아닌, 버티는 날들의 하루하루 

 더디게 더디게 흘러갔던 그 긴 세월들을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달리 표현할게 없는데)

주마등처럼 스쳐지나친 모양이다.






칠년전 

사랑하는 아덜놈들, 그의 땀과 애정이 서린 집과 정원,

겁많은  울보 마눌을 두고 떠나야하는 

남편의 작은 어깨가 몹시도 흔들리는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남편을 보고 역기러기라고도 했고

일년에 반이상 집으로 날아올수 있는

팔자좋은 독수리라고도 했다.

독수리가 되어 힘차게 날아왔다가도 돌아갈때는

언제나 쓸쓸하고 외로운 기러기꼴이 되어 날아갔다.

늙은 기러기아빠는  주말아침이면 아덜놈들 귀를 잡아당기지 못해,

공식적으로 맥주를 마실수 있는 열여섯 나이의

아들들과 첫 맥주잔을 들지 못해,

무엇보다도 쑥쑥 성장해가는 아들놈들의 

 일상을 같이 하지못해  얼마나 안타까워했었나

옆에 있었으면 당연히 해야 할 말들을 멀리 떨어져있다는 이유로

삼켜야 할 때도 많았고 또 거꾸로 

하지 않았어야하는 말들 , 가르침들을 

조바심으로 반복하는 일도 많았다

우리들의 목표였던 삼년째가 되던해 

 큰 넘의 대학입시자격시험을 앞두고

남편은 궁서체로 애절하게 쓴 장문의 편지를 큰 넘에게 보내왔다.

편지라고는 평생 써본일이 없는, 

문자도 세 단어 이상을 넘기지 않은 

그런 남편이 쓴 장문의 편지라니

원조 기러기아빠인 정약용선생이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가르침의 내용을 쓴 편지글들인 하피첩에 비유해

나는 우리집 하피첩이라며 편지상자에 보관을 해 두고는

한번씩 꺼내본다.


내 사랑하는 아들 ....에게 로 시작해서

멀리서 ...에게 응원을 보낸다.

힘내라 ...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내 아들 ...에게

아빠가 로 끝을 맺은,

구절구절마다 곁에 두고 보지 못한 큰 놈을 향한

사랑이 뚝뚝 묻어 있었다.








모처럼만의 시끌벅적한 일요일 아침식사가 끝이 나고

집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남편이 정원으로 나간 사이에 두 넘들은 장단이 맞아

 슬그머니 침대속으로 들어간듯했다.

그 사이 안개는 걷혀있었다

건너편 언덕으로부터 

환한 가을햇살이 눈부시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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