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화분들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테라코타화분에 담겨있던 노란 국화, 가을꽃들,

도장나무 두 그루를 땅에다 옮겨 심을려는데

막 절정에 이른 노란 국화위로 

준베리낙엽들이 소복이 이쁘게도 내려앉아있었다.

두어달새  국화는 얼마나 힘차게 뿌리를 내렸는지

 화분에서 잘 떨어지질 않았다.

세게 힘을 주어 당기는 바람에 준베리낙엽들이 

후두둑 바닥으로 흩어졌다.





화분안에 남은 흙들을 털어내고 하나라도 잊을세라

한구석에 차곡 차곡 모으기 시작했다.

준베리나무가지에 달려있던 

새집과 하얀 새 네마리를 데리고 내려올때는

기어이 가슴 한구석이 버석거리기 시작했다.

어느해, 부지런 떨던 해에는 이맘때 벌써 

새들 목에 감아줄 목도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지 않았던가

누가 럭셔리펜트하우스 같다고 했던 새집에 깃들었던 귀여운 박새들

하얀 솜털이 어떻게 새집안에 들어갔을까 하고

살짜기 들여봤을때 옹크리고 있던 박새와 눈이 마주쳤던 기억

 그 가여운 새들은 이제 어디로 갈까... 

부엌테라스에도 현관문앞에도 

막 흙을 털어낸 화분들로 작은 동산을 이루었다.

다른 짐들에 밀려 이 불쌍한 화분들이 버림을 받으면 어쩌나

봄꽃들을 심으면서부터 걱정을 하고 있었더랬다.

" 이 화분들 다 가져갈려고? 

자리가 안될수도 있어 그럼 못 가져가 "

바쁜 와중에 한가히 화분흙이나 털고 있는 마눌을 쳐다보며

반은 기가 막히는듯 반은 안스럽다는듯  말을 건네왔다.

몇몇 화분들은 올해 마지막으로 

무려 삼모작, 세번이나 계절을 바꿔가며 꽃들을 품고 있었지 않나

올해는 계절이 바뀔때마다 기를 쓰고 꽃집을 다녔었다

이제 그 마지막, 가을국화를 내려놓고

떠날 채비를 하던 중

"응 나 다 가져갈거야 "

갖고 싶은 장난감을 두고 막무가내로 떼쓰는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아랑곳하지 않고 화분속의 흙을 털어냈다.

 꽃은 철철이 영감이 심고 가꿀때가 대부분이었지만

어울리는 화분들을 고르고 겨울채비를 해주는건 내 몫이었다. 

세월'따라 하얀 석회끼가 겹겹이 끼인 테라코타화분들,

 덜렁대는 주인과 긴 세월 함께 하느라 

금이 가고 귀퉁이가 살짝 떨어져 나간것들은

눈물이 날 정도로 내가 사랑하고 아끼던것들이었으니까




결국 이 가을은 오고 말았다.

삼십년 독일생활을 정리해야 할 날이...

컨테이너는 이른 아침 조용한 동네를 일깨우며 올라오고 있었고

떠날 채비를 마친 

삼십년 살림살이 세간은 거대한 산을 이루었다.

오래되고 낡은것들

세월의 때가 묻은것들, 지난 세월의 잔재들,

맙소사 버리지 못한 내 욕심들은 

집채만한 컨테이너보다도 훨씬 더 컸다.





짐이 떠나던 날 하늘은 아주 맑고 푸르렀다.

마치 "그간 많이 힘들었지 오늘은 마지막으로 

내가 너에게 주는 선물이야 " 라고 누군가 내게 속삭이듯

푸른 하늘도,가을햇살도 따사로웠다.

집차고앞에 즐비하게 놓여있던,

곧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내 세간살이들위로

늦가을의 햇살이 풍성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은 덜 쓸쓸해보였을까...

하나하나 자고앞 바닥에서 있던 다른 짐들은 줄어드는데

화분들은 여전히 꼼짝도 못한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컨테이너는 더 이상 들어갈 자리없이 꽉 차버렸다

화분을 껴안고 안절부절하는 내 모습을 본 누가

얼른 화분들을 가로채 빈 구석 구석에 채워 넣어주었다.

컨테이너지붕위로 펠스영감님네 호두나무 마른 이파리가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날리고 있었다.






 어느 구석, 안 보이는곳에서  분명 눈물깨나 훔칠거라는

 스스로의 예상을 뒤엎고

이 날 나는 무척 씩씩했다. 대견스럽도록

오히려 철없는 아이들처럼 신나하는 순간까지도 있었으니  말이다.

주먹하나 더 들어갈곳없이 꽉 채운 컨테이너는 브레멘항구로 떠나고 

 사람들도 다 떠난뒤 간이식탁을 닦으면서

 남편에게 건배를 하자고 제의했다.

마지막 뒷설겆이를 위해 끝까지 남아준 그녀와 함께

몇달동안 냉장고에 꼬불쳐둔 스파클링와인 한병을 꺼냈다.

이즈음 나름 우리끼리는 꽤 감상에 젖어있을때라

우리집 냉장고에는 다른건 몰라도 

언제라도 축배또는 위로주를 들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었으니까

(순간 이삿짐이 떠난줄 모르고 

목이 긴 폼 나는 샴페인잔을 찾다가  머쓱한 순간도 있었지만)

긴장이 풀린 뒤 빈속으로 싸하니 내려가는

스파클링와인은  차고 맛있었다.

겨우 한 모금 마셨을뿐인데 휘이청 술기운이 온 몸에 번져왔다.


영감 그간 (그노무 급한 승질때문에 ) 고생 많았





반쯤 넋이 나가 있는데 작은 넘 친구의 엄마가 다녀갔다.

피하고 싶은 순간이 와버린것이다

언제나 친절하고 한결같은 그녀와 문칸에 서서 나누는 작별인사

이제 시작인가

수 많은 인연들과의 이별을 

눈물많은 내가 과연 감당할수 있을까 

이별이 겁나고 싫어서라도 

 나같은 겁쟁이는 어디 붙박이로 평생 살아야 될 팔자인데 말이다.




" 캠핑 온 것 같지 응 "

식탁매트도 깔지 않아도 되고 짝짝이 잔에다 마시는 커피까지

단촐한 아침밥상을 마주하고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낄낄 웃어가며 아침을 먹었던것 같다




준베리나무가지는 그 사이 

예쁜 단풍잎들을 다 내주고는 앙상해져버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식탁 내가 앉는 자리에서 보이던 준베리나무

그리고 컴퓨터가 있는 책상에서 바라보이던 자작나무는

 힘들고 외로웠을때  내게 언제나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던 

다정하고도 든든한 내 친구들이었지않나

"나는 내가 바라보는 모든것의 주인이니..."

두고 떠나도 주인이 될만큼 충분히 바라보았나

오늘도 시간이 나는대로 창문밖을 한참을 응시하였다.


삼십년독일생활을 정리하였습니다. (아직 독일에 있으니

정리하고 있다는 말이 맞겠군요.)

언제부터인가 블로그글에 슬쩍 슬쩍 흘리기도 해서

몇몇 블친들께서는 눈치를 채고 계신듯한데...

아 이렇게 공표를 할려니 여간 쑥스런게 아니네요 ㅎ

그간 징징대는 소리 참아주신분들께 미안하고 감사한 말씀 드립니다.

정든 사람들과 정원의 사랑스런 나무들과 꽃들

풍경들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오래전부터 울컥 울컥거렸었거던요.

저라는 사람은 욕심이 많아서인지 

하아 이별이 참 쉽지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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