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오월 어느 날

미술관 그녀가 우리를 초대했었다.

  식탁위에는  결혼 사십주년을 기념해  

그들의 살가운 아들이 선물하였다는,

샴페인 한 병이 잘 칠링되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젠가 블로그에서도 밝힌바 있는, 

그들의 감동적인 결혼역사가 뜻깊은  사십년에 이르른 모양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귀한 샴페인에 걸맞는 축배를 들었다.

 앞으로도 무한행복할 그분들의  결혼생활을 위해서

잔을 들었고 그분들은

 우리들의 귀국일정에 축복이 있길 바란다며

잔을 부딪혔다.


 



그 즈음 가로늦게 샴페인맛을 알게 된 나는 호시탐탐

샴페인타령을 하고 있던중이라 

샴페인이 안되면 스파클링와인이라도 마셔야 된다면서

  늦게 배운  술욕심을 잔뜩 부리고 있을때였다.

그러던 중에 마신 이 날의 샴페인은 최고의 것으로 기억에 남는다.

좋은 사람들과 마시는 술이어서 그럴것이다.

다정한 인생선배들과 기울이는 술잔만큼 따뜻한 위로가 또 있을까

정신과 몸이 몹시도 피곤했던 그 즈음

위로와 격려가 절실히 필요했음으로 

  




"우리 아테네에서 만나요!" 

"네?"

미술관 그녀에게서 온 문자였다.

자주 여행을 떠나는 그녀인지라 

갑작스레  아테네로 함께 여행가자는 말로 알아듣고

잠시 헷갈렸었는데 알고보니

 그녀의 집근처에 있는 그리스식당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집에서 마신 샴페인 술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예약해둔 <아테네>로 향했다.

집근처에 걸어갈수 있는 단골밥집겸 술집이 있는것도

독일에서는 큰 행운이다.

우리는 삼십여년 살면서도

 그런 행운을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듯 한데 

이분들과 알고 지낸 이후부터는 속보이게  찰싹 들러붙어

단골의 혜택을 어부지리로 누린듯 하다.





작년 5월에 이어 올해 2월이니

그사이 열달이 흘렀다.

내게는 마치 체감 오백년이 지난듯한 세월이었지만

우리들의 <아테네> 그리스 주점은 당연하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어쩜 우리는 그때 그 테이블, 똑같은 자리에 앉게 되었는지

이 사진들은 작년 5월에 왔을때 찍어둔것인데

 역시나 이번에 시킨 음식들도 똑 같았다.





 단지 술 종류가 달랐고

대화내용이 달랐던것

새끼오징어튀김인 칼라마리안주에는 맥주, 와인 다 잘 어울린다.

바삭하게 금방 튀긴 뜨거운 칼라마리에다 레몬즙을 뿌려 먹으면 

아 주당이라면 하염없이 술이 들어갈것이고

술 못하는 안주파들도 기어이 맥주 한모금,

와인 한잔 생각을 나게 하는 그런 맛이다.

우리는 작년에도 이번에도 이 칼라마리만 몇접시를 비웠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람들과 같은 음식들을 !

이런 기회가 두번 다시 없을것으로 알았기에

이 날 더 감동이 깊었나보다.

"그래 그간 어떻게 지냈어요? 

정말 궁금했었는데 연락은 없고...이야기 좀 해줘요"

서울 사대문안 그것도 북촌쪽이 고향인 그녀가 

따뜻하고도 깔끔한  서울사투리로 내게 안부를 물어오자

지난 몇달간 겪은 왼갖 고생을

어리광 피우듯 늘어놓고 싶은 마음이 펑펑 솟아나기 시작했다. 




 따끈하게 구워 나온 빵에 오레가노와  좋은 올리브유만 뿌려도

얼마나 맛이 있던가 ...

기억하건데 지난 술자리는 

성토의 장이었다. ㅎ

남편은  중차대한 시기에 마눌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고 마눌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일에

멀미를 느끼며  주저주저 뒤만 돌아보고 있는 날들이니

서로 복장 터지는 일들이 한두가지였을까

우리는 생각하고 접근하는 방식이 

하나에서 열까지 그렇게 다를수가 없었다.

다른것을 확인할때마다 다툼은 자동으로 이어졌다

내가 워낙 뒷끝이 없는 단순무지한 사람이어서 그렇지

왠만한 여자같으면 두고두고 상처가 될

그때 입은 내상은 꽤 깊었었다.

인생선배들인 이 두분들은 이 날 

잔이 비기가 바쁘게 위로주를 채워주고

격려차 인생살이가 다 비슷하다며 좋은 금슬에

없는 흠집을 부러 내주시는 쇼도 보여주어야만했다.

 




 우리가 지난 열달간 고군분투하고 있는 동안

이 두분들에게는 좋은 일들만 벌어진듯 했다.

"그 사이 아기가 태어났어요. 손녀딸이에요"

한국말로도 독일말로도 

내가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는 예쁜 이름이었다.

순우리말 이름이기도 하다는데

" 마리솔 "

몰타섬 여행중 그림같은 푸른 바다와  태양을 바라보고 있던중에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마리 솔은 바다와 태양을 일컫는 스페인말이기도 하다니

이 두분은 아마 평생 

몰타섬의 푸르디 푸른 바다에 떠있는 태양을 잊지 못할것이다.

그때의 그 감동이 잊혀지지 않는다듯

이제는 나도 조금 알아듣게 된 미묘한 차이가 나는 

정제된 사대문안쪽 말씨로 그녀가 

 들떠 있지만 차분한 톤으로 내게 전하고 있었다.





사연많던 우리의 양평집 이야기를 들으며

건축가부부인 딸사위의 집짓는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아 얼마나 부럽던지

독일도 돈 있는 집들은 자녀들이 집을 사거나 짓게 되면

부모들이 큰 돈을 보태주기도 한다는데

이분들은 그럴 큰 돈이 없으니 평생 바라볼 나무를 한그루 

심어주겠다고 약속하셨다한다.

독일건축법이 얼마나 까다롭고 엄격한가하면

집의 위치와 면적에 따라 심어야 할 수종과 갯수가 정해져 있다는 소리를

우리도 이번에 처음 들었다.

외래종이어서는 안된다는 규칙도 있단다

집터가 다져지고 정원이 형태를 드러내면

이 분들은 흥분된 마음으로 나무학교로 달려가시리라





지난 오월 아테네 술집을 나선 뒤 풍경


식당 건너편에는 오월의 밀밭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모퉁이를 돌아 삼사분 걸어가면 집이 있는데

그 모퉁이에 내가 좋아하는 자작나무 몇그루가 무리지어 서 있었다.

사진속 왼쪽에도 자작나무들이 보이고

서늘한 초여름 바람이 사각사각 

자작나무이파리를 기분좋게 흔들고 있을때

나무아래 서서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이것도 사대문안쪽 양반가사람들 습성인지 모르겠는데

그녀는 만나고 헤어질때마다 꼭 선물을 안기는 

고마운 버릇을 갖고 계시다는것이다 ㅋ

바쁘다는 핑계로 빈손으로 갔는데도

보라빛이 도는 화려한 붉은 꽃잎의 프린트된 식탁보를 

염치없이 받아들고 올때도 있고

이쁜 화병을 , 그릇 좋아하는줄은 어떻게 아시고

특이한 그릇들 하며 구하기 힘든 식자재들... 

이삿짐을 살때 그간 그녀에게 받았던 수많은 선물들이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왔다.

이번엔 우리가 일전에 맛있다고 꼴깍 넘어간 

프랑스국경지역의 와인까지

그러니 이제 우리는 숙제가 생겼다.

선물받은 꽃무늬 식탁보를 깔 테라스를 빨리 만들어놓을것 !

 단골이 될만한 좋은 밥집과 술집을 알아 놓을것 !

마음이 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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