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틀 바짝 집정리를 해버린 다음

홀가분하게 여행이나 다녀올까 하는 생각은

남은 짐들을 보는 순간  싸악 사라지고 말았다

남겨둔 자잘한 짐정리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것들이 남아있었기때문이다.

(버리거나 필요한 누군가에게 줘야할 것들을 그냥 남겨두고 왔음으로)

얼핏보면 휑하니 빈집 같아 보여도 구석구석 박혀있던 짐들은

끝도 한도 없이 나왔다.

  웬만한 단촐한 집

살림살이세간을 방불케하는 규모였다.

도대체 이사를 몇 차에 걸쳐서 해야 하다니

사태의 심각성도 모른채

도착해서 얼마동안은 그노무 감상에 또 젖어 지내는 바람에 ...

그간 헤어져있던 나무들과 꽃들을 하염없이 바라본다던지

늘상 다니던 가게, 길거리등을

쓸데없이 쏘다닌다든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들로 

시간들을 보내야 했기에

막바지 다시 떠나올 무렵엔 

지난번 컨테이너이삿짐 보낼때와는 비교가 안 되리만치

혼이 쏙 빠지는 나날들이었다

짐정리뿐아니라 서류정리는 또 어떻고

팔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도록 낮에 짐정리,

밤엔 컴퓨터에 매달려 아덜놈들에게 넘길 서류정리와

각종보험이라든지 여러 관공서에다

"떠난다"는 신고를 머리가 지끈거리도록 해야했다.


 그간 사연들을 시간순으로 정리하자면 

1월초 크리스마스방학, 휴가가 끝난 아이들은 각자의 도시로 돌아가

큰 넘은 대학원진학전 인턴생활로  작은넘은 시험준비로 정신이 없는,

우리는 우리대로 양평집짓기 막바지작전으로 

 각자의 바쁜 일상으로 돌아간듯했는데

2월 중순 

예상보다 빨리 독일을 다녀올 일이 생겨버렸다.

부랴부랴 비행기표를 끊고 다시 짐보따리를 싸며

아이들에게 이 급작스런 변동사항을 알려야 했었다.

정신없는  와중에 큰 넘과 공모한 일이 있었는데

작은 넘에게 우리의 독일행을 비밀로 하자는거였다.

아 지금 생각해도 대책없는 모자지간이다

깜짝쇼, 몰래카메라 뭐 이런거였는데

연출은 큰 넘이 맡았다.

작은 넘은 마지막 시험중이라 

그즈음 우리에게 안부전화 한통도 없을때고

우리 또한 비슷한 사정에다 

어차피 스마트폰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던중이라

한국에 있건 아프리카 어디에 있건

속일려면 얼마든지 속일수가 있다는거였다.

형넘이 계획한  몰카는 이렇다.

(참고로 큰넘은 근무중이라 우리끼리 거사를 치루는것으로) 

시험이 끝난 다음날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서 녀석을 집으로 오게 만든다.

작은 넘이  열쇠를 따고 들어오면 

우리는 태연하게 놈을 맞이하며

어 왔냐? 시험은 잘 쳤고? 라고 묻는,

놈을 깜짝 놀래킬  상황을 만들어보자는 거였다.

큰 넘은 지가 생각해놓고도 기발함에  신이 난듯 

  어때 재밌겠지 하며 깍깍 넘어갔었더랬다. 

작은 넘이 놀라자빠지는  표정을 

 상상하자  큰 넘보다 더 신이 난 나는

 주방옆 다용도실에 숨어 흐느끼는 귀신소리로

작은넘 이름을 불러보까 한술 더 뜨기까지 했는데

우리가 이런 비슷한 장난질을 할때마다 매번 한심하다는듯

고개를 젓는 남편도 이번엔 왠일로  공모의 미소를 띄고 있었다.

그래서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녀석이 마지막 시험을 친 날

우리는 독일집에 앉아  

 천연덕스럽게 한국에서 전화하는것처럼 통화를 하며

완벽하게 미끼를 투척했다.

드디어 녀석이 오기로 한 하루전날 밤

 시차적응도 안 된 상태에 하루종일 볼일들을 보느라 

또 다음날 벌어질 거사를 위해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어 놓느라 녹초가 되어 

거실소파에 쓰러져 나는 깊은잠에 빠졌고

남편은 티브이 시청을 하고 있었다.

자정쯤 되었나

외마디비명소리와 함께 

거짓말 안하고 정말 소파에서 일미터는 공중부양을 한 일이 벌어졌다. 





" 나 홀로 집에 " 에 나오는 주인공 케빈이  

비명지르는 모습 기억들 하시는지

그날밤  우리집 거실상황이 그랬다.

가방 들고 들어오다 혼비백산 자지러지는  작은 넘

어어 너 버벅 놀라서 덩달아 비명 지르는 아부지

자다깨서 영문도 모르고  더 큰 소리로 비명 지르는 엄마

 




작은 넘은 낮시간 우리가 장을 보러간 사이 집에 들렀다고 했다.

파티가 취소되는 바람에 친구들을 만나러 

하루 일찍 집에 오게 되었는데

아주 이상한 느낌이 들더라는것이다.

썰렁해야할 빈 집에 음식냄새가 나기도 하고

거실에 널부러진 옷가지들하며

누군가가 집에 있는것 같은, 오싹한 느낌이 들어서

얼른 친구네집으로 가버렸다고 했다.

무서운 생각이 든것도 잠시 

작은 넘답게 금새 잊어버리고 친구집에 가서 신나게 놀다 

집으로 돌아올 자정무렵이 되어서야 

다시 찜찜해지기 시작했다한다.

그러다 불켜진 집을 보자 정말 등골이 오싹해져오더란다.

현관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열쇠를 꼽고는

여차하면 도망갈 요량으로 고개를 쏘옥 들이밀어보는데

거기에 상상치도않은 우리가 떠억 있었으니

순간 으악  비명소리가 절로 나왔다고 했다.

상상치도 못한것은 아빠도 마찬가지

비몽사몽간 두 남자의 비명소리에 더 놀라 

공중부양까지한 엄마까지

오밤중에  난리부르스도 이런 난리부르스가 있을까






놀랜 가슴이 진정되기가 바쁘게 

우리는 2차 몰카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번엔 동생이 하루전날 도착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형을 속여먹는거였다.

아 이번 독일행엔 정말이지 일도 많았다.

마침 큰넘 인턴기간도 끝나갈 무렵이어서 

이사를 겹겹으로 해야했던것

이삿짐차를 빌려 큰 넘이 사는 도시로 가서 이사를 해주고

방을 주인에게 넘겨주는 일인데

큰 넘은 운 좋게 부모찬스를 쓰게됬다고나 할까

(혼자하는 이사가 얼마나 힘든지 고생 좀 해봐야 하는데 ) 

" 그 자식이 버스를 놓쳐서 집으로 못오고 

주말깨나 올거라고 하네

그러니 걔 깜짝 놀래킬 일은 수포로 돌아갔다 야 "

놀래킬 일도 놀래킬 일이지만

여러 계획들을 세워놓고 있던지라 

큰 넘의 실망을 극대화시켜놓은 상태에서  동생이 짠 하고 나타나는,

작전에 강한  뭔가가  빠진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디테일은 가는 도중에 수정하기로 하고

이삿짐차를 빌려 큰 넘의 도시로 셋이서 떠났다.

녀석의 집앞에 도착하자마자 작은 넘은 

우리가 신호를 보내면 나타나기로 하고

짐칸으로 가서 숨어 있었다.

큰 넘과의 반갑고도 짧은 해후가 끝나뒤

녀석을 자연스럽게 유인했다.

"짐칸에 니가 가져오라던 빈 박스 가져왔으니

꺼내 갖고와 "

스르르 문을 여는 순간

컴컴한 곳에서 우왁 하고 덤벼드는 어떤 물체같은것으로

큰 넘 여태껏 살면서 그렇게 놀란적이 없을 정도였단다.

(너무 놀란 나머지 순간 동생인지도 몰라봤다고)

심장이 가슴밖으로 벌렁벌렁 십센티는 튀어나왔다고 했다.

작은 넘은 리벤지의 감격을 누리느라 싱글벙글 

아 바쁜 와중에  이러고 놀고 있었으니.





 두번째 몰카까지 성공리에 끝이 나고

큰 넘은 다시 돌아갔다.

대신 시험을 끝으로 방학이 시작된 작은 넘이 우리를 도와

남은 짐정리를 해야했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정도로

여태껏 해본일중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큰 넘은 큰 넘대로 

마지막 남은 인턴기간에 써내야 할것들로 

눈코뜰새없이 바쁜나날들을 보내는 모양이었다.











다시 만난 우리넷은 거의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빡센 마지막짐정리일에 열외가 되어 미안했던지 

이제 자기가 하겠노라고 팔을 둥둥 걷어부치는

큰 넘도 마찬가지로 피곤해보였지만 

그래도 맑은 얼굴을 해가지고 나타났다.

우리 동네경계선을 넘어서까지 소문이 난 식당이 두군데가 있는데

그 중 한곳은 십수년을 살면서도 가보지 못했던곳이 있다.

" 오늘 거기 가보자 "

전형적인 독일슈바벤식당이다.

이날 음식도  맛있었고 술도 맛있었다

독일식당에서 처음으로 해본건데 

시음한 와인을 거부하고 

새로 와인을 시키는 호기도 한번 부려보기도 했다.

우리는 힘든 일을 어쨌든 다 해냈다는 뿌듯함에서인지

다들 기분이 좋았다.

두 놈들을 깜짝 놀래키게 한 이야기들을 다시

거꾸로 재생해서 듣고 또 듣고

많이도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날 식당을 나오면서 차를 빼는 동안

카메라를 꺼내 들고 뒤를 돌아보는데

내인생에 있어서 참으로  좋은 시간이 지나가는구나 

처음으로 드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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