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급하게 서울을 가야할 일이 생겼다.

블로그 시작하면서 거금을 주고 샀던 카메라가 

두어달전부터 슬슬 말썽을 일으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아예 셧터가 눌러지지 않는

중증 고장이 나버렸던것인데

행여나 하고 검색해봤지만 

 양평근처 어디에도 

C사 카메라를 수리해주는곳은 없었다.

몇개의 서비스센터중 

충무로지점이 여기서는 가장 가까운곳이라 한다.

꼼짝않고 가만 앉아 있어도 땀이 삐질삐질 솟는 더위에

어딜 움직이는것이야말로  끔찍한 일

집에 앉아 택배로 보내고 받을수는 없을까 

약은 수를 생각해보았지만

예민한 기계라 책임 질수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반갑잖은 나들이를 할수밖에

전철역 시간표를 들여다보며 투덜거리자

기름때, 밀가루 또는 양념인듯한 불순물들이

 꼬질꼬질 말라붙은 내 카메라를 볼때마다

잔소리를 늘어 놓던 영감이

 옛다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쏘아붙힌다.

"고장 왜 안 나나했다 "

물건을 지저분하게 쓸때 알아봤다나 어쨌다나

잔소리도 잔소리지만

요즘들어 블로그에 글 올리는일이 저조한것이

마치 카메라탓이라기도 한듯

더위에 축 늘어진 몸을 끌고 서울 가는 전철에 올라탔다.

카메라는 그간 하도 열심히 찍어대서

교체해야 할 소모품이 고장난거라 했다.




 며칠뒤 찾으러 오라는 문자가 오고 

다시 한 사나흘 일부러 묵힌뒤

 이번엔 둘이서 함께 길을 나섰다.

우선 충무로로 가서 카메라를 찾고, 

고속터미널역근처로 와서 두번째  볼일을 보고

마지막 코스로 저녁 역삼동 모호텔에서 S를 만나는 일이

그 날의 순서였다.

비가 예보된 날이어서 가방안에 우산을 챙겨 넣었다.

전철안은 노인전용칸이라도 되는듯 젊은 사람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우리 두 늙은이도 합석을 했다.

이때부터  슬픈 마음이 든걸까

 비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충무로역에 내리면서부터 

멀미끼 비슷한 울렁거림이 일기 시작했다.

이러면 조짐이 좋지 않은건데...

꾹꾹 참다

3호선을 타고 한강을 막 건너는 중 

강물을 바라보다 눈물보가 터져버렸다.

아 주책 어쩌자고 이 사람 많은 지하철안에서 

출입구벽쪽에 바짝 붙어서서 

억지로 억지로 눈물을 집어넣어보는데

눈이 아렸다.

이 낯설음은 대체 언제쯤이면 적응이 될까

 마누라의 울음보가 한번 터지면 대략 난감인 남편은

고속터미널옆 백화점에서도 역삼역에 내릴때까지도

말없이 내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호텔이 가까워지자 눈이 빨개져있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긴했다.

인천공항에서 역삼동까지 차가 밀릴거라 예상했던 S는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있었다.

사람 좋은 S가 독일식으로 인사하자해서

반가운 포옹을 나누었다.

한국출장을 오면 묵는 호텔이어서 근처지리에 익숙한 S가

참치횟집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참치가 부위별로 자꾸 나오고  술이 나오고 

그간의 안부들이 오고 가는데

S가 불쑥 묻는다.

"여기 살기 좋으세요?.... "

여기서 우리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가 이제는 독일이 아니라 한국에 있다는 사실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한다.

S부부와 우리가 안지 십오년 

S의 부인은 작년 가을 

우리가 없는 독일은 상상할수 없다고

많이 슬프다고 했다.

"앞으로 자기네 동네 지나칠때마다 내 마음이 많이 아플것 같아"

내가 몇년전 크게 아팠을때 누구보다도 정성스레

나를 보살펴주었던 사람인데

외로운 이국땅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정이 깊어갔던 모양이다.

우리집 초대를 받으면 꼭 들고 오는 바구니가 있는데

눈물나게 그립다.

 그녀의 땡땡이무늬 바구니 !


다시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늦은 밤 전철안은 낮과는 달리 젊은 사람들로 붐볐다.

 서울은 얼마나 복잡하고도 피곤한지

독일까지 헤매고 오느라 더 지쳤는지 모른다.

집에 오자마자 약통을 뒤져 아스피린부터 찾았다.







남편이 지난번 독일에 가서 사가지고 온 정원조명으로

하나는 오리, 하나는 고양이이다.

낮에 태양광으로 충전되었다 밤에 불이 켜지는데

오리는 꺼벙하게 생긴것이 꼭 두째넘을 닮은듯하고

장난끼 똑똑 떨어지게 생긴 고양이는

지 동생 놀려먹는 첫째넘을 닮아 

우리끼리는 아덜놈들 이름을 붙여놓고 부르고 있다.

우리 아이들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보여주면서 닮지 않았냐고 확인까지 해대면서


오리새끼는 봄에 다녀간뒤로 손꼽을 정도로 연락이 없었다.

지 형이 우리와 열번도 넘게 통화하는 사이 

한번이 채 안되었으니

걔는 별 일 없데지? 하고 

우리도 지 형을 통해 안부를 묻고 말 정도로

이쪽도 바쁜 노가다 일상이어서 

생각이 나 전화를 할려치면 시차가 맞지 않곤 했다

그러다 아주 간혹 전화기속에 들려오는 

어이 어이 아줌마 라고 시작하는 

오리새끼의 목소리는 얼마나 달콤한지

언제나 끝은 엄마 사랑해였다.






드디어 칠월말 
시험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연락을 했는데 연락이 되질 않는거였다. 며칠이 지나도록

요즘 세상에 몇시간도 아니고 며칠째 연락이 되질 않다니

시간이 지날수록

오리새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게 틀림없다는 생각은

세상 걱정 다 이고 사는 나 뿐만 아니라 

세상 단순한 남편에게도 든 모양이었다.

이넘이 아무래도  중요한 시험을 망친게 아닐까

전공이 맞지 않아 

혼자 끙끙 고민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쪽으로 

그래서 우리는 지 형에게 

동생넘에게 무슨 일이 있는것 같다며

그런 일이라면 다같이 의논을 해보자는 이야기를 전하라했다. 


지 동생을 만난 후 큰 넘으로부터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이야기가 나왔다.

" 엄마 걔 요즘 슬프데 "

순간 얼굴을 쳐다보고 통화하는 페이스톡에

가슴이 컥 막혀 더 이상 아덜놈 얼굴을 볼수가 없었다.

작은 넘은  우리가 살던 동네로

한번씩 친구들을 만나러 갔던 모양인데

하아 커다란 자작나무가 서 있는 옛 우리집을

지나칠때 그 기분이 어땠을까  

형은 지 동생이 그럴꺼라 예상을 했다는데 

우리는 사내녀석들이라서 무덤덤할줄 알았지

방학때마다 다녀가면 괜찮을줄 알았지...

아덜놈들에게 따뜻한 집을, 안식처를 없애버리다니,

슬프고 외롭게 만들다니

가슴이 미치도록 아려왔다.

집이란것은 생각날때 

단걸음에라도 갈수 있는곳이어야했다.

비행기를 타고 멀리 날아와야하는곳이 아닌


전화를 끊은뒤 얼마후 큰 넘에게서 

작은 넘이 계속 우울하거나 슬프거나 그런건 아니고 

옛날 생각이 나면 슬퍼진다는 소리니 너무 신경쓰지말라는 

문자가 날아왔다.

울보엄마를 위한 위로문자일 뿐

그리고 며칠이 지나 작은 넘하고 통화가 되었다.

밝은 목소리였다.

어이 아줌마 외치더니 곧바로 독일말이다

몇달 사이에 한국어실력이 형편없어져버린 모양이다

자기가 왜 그간 연락을 못했는지 십초만 들으면

화 낼일이 전혀 없을거라며

히히 엄마 사랑해를 연발하고 있다.

 이노무시키 

어두운 밤  

우리집 테라스식탁위 오리, 고양이에 불이 환히 들어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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