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가 엄청 밀리네 "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문자가 왔다.

주말 양평으로 오는 도로들이  얼마나 막히는지

 그간 여러번 직간접으로 체험을 해본지라

도로에서 꼼짝 못하고 있을 그녀들을 위해

내가 할수 있는 일이라곤

미안한  마음을 담뿍 담은 

"저녁 차려놓고 기다릴께 "라는 답밖에 없었다.

 연이어 밥은 너무 늦을수 있으니 조심스럽다는

문자 도착에 

꺼내놓았던 오븐요리고기를 다시 냉장고에 집어 넣는다.

점심때 만들어 놓은 가스파초는 냉장고안에서 

차갑게 잘 식어가는 중이고 

식탁에다 매트를 까는데 

서쪽으로 넘어가는 햇볕이 

식탁에 길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옛 친구들의 방문!

어린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우리집을 방문했던 친구는

재작년에 만났지만 다른 한 친구와는 팔년전,

또 다 함께 만난지는 십여년도 전의 일이다.

사십년지기친구들이 갑자기 온다는 소식에 살짝 흥분이 되

아침부터 설친데다 차가 막혀 늦어진다는 문자에

김이 빠졌나 보다.

철푸덕 소파에 잠시 앉았다

쓰레기봉지를 버릴려고 돌계단을 내려가는데

못보던 하얀 차한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차옆에는 불과 십분전 차가 엄청 막힌다며 

분당을 못 벗어났다던 그들이

깜짝 놀랐지 라는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서있었다.

" 야아아아아 "





이런 하이톤의 반가운 비명도 얼마만에 질러보는지

십년만의 만남에  요런 발칙한 장난을 계획하다니

나와 문자를 주고 받던 친구는 오래 교직에 있어 그런가

평상시 장난끼  충만한 나에 비해 

 근엄하고 진지한 편인데

 앙큼하게 집주인을 속여먹은 죄로

이날 저녁 어수선하고도 정신없는 밥상을 받아야 했다.

변한듯 변하지 않은듯한 친구들얼굴 쳐다보며 이야기나누랴

후라이팬에 고기 구워 오븐에 집어 넣으랴

슈페츨레 국수 뽑으랴 

혼이 쏙 빠져버렸던것이다.

친구들은 친구들대로

 아직도 어수선한 집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집 텃밭에서 수확한 토마토, 오이를 넣고 만든 

스페인 냉수프 가스파초 한그릇씩들을 

전식으로 안겼더니

갸우뚱한 표정들이란 ㅎ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들이었으리라

저녁식탁은 테라스로 옮기자 한다.




"여기 별 많이 뜨겠다"

친구들은 우리집 테라스가 참 좋다고 했다.

밤이면 달려들 모기떼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최근 알아낸건데 선풍기를 틀어 놓으면 

모기떼가 바람때문에 접근을 못한다는 사실

모기향보다 더 좋은 방법이다.

선풍기바람인지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인지

바람은 선들선들 불어오고 

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총총 뜨기 시작하자

친구가 차에 가서 기타와 하모니카와 악보대를 가져왔다.

남편은 악보를 비출 손전등을 찾아왔다.

친구는 하모니카는 목에 걸고 한 손으로는 기타를 치고

우리들 연식에 걸맞는 노래를 연주했다

노래라면 완전젬병인 나는 

순식간에 벌어진 낯선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서 가만히 듣고만 있는데

남편과 다른 한 친구는 금새 까딱까딱 

분위기에 맞춰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조용한 골짜기에 울려퍼지는 하모니카 기타소리

하모니카를 눈앞에서 보기도 듣기도

아 사십년도 더 되었을것이다.

모르고 있었던 친구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건

신선한 즐거움이다.

요새 우리 또래 아줌마들에게 유행하는 취미가 

하모니카, 기타연주 일까 싶었는데 

 친구는 이미 선생님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 날도 레슨이 끝나자마자 달려온 길이라고 했다.




십년만에 모여 앉으니 오죽 할 말들이 많았을까

알고지냈던 부모형제들 이야기서부터 

걔 이름이 뭐니 기억나냐?,

 소식 끊긴 친구들 이야기까지

잊고 있었던 옛 일들을 하나하나 소환해냈다.

그러자 십몇년전 재미있는 옛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때 여름휴가라고 다니러 왔을때 

우리 친정집에 모였을때 이야기다.

금자씨는 어릴적 내 친구들을 삼십여년만에 마주하고는

마치 먼데 시집갔다 친정에 돌아온 딸들 대하듯

나보다 더 반가워하며 밤이 새도록 

우리들사이에 끼여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는데

이야기는 자연스레 

늦게 결혼해 막 두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나타난

근엄하고 진지한 선생친구의 시집살이에 맞춰졌다.

다른친구들이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고 

되려 역으로 시어머니들에게 큰 소리까지도 칠 나이에

친구는 가로늦게 나름시집살이를 하고 있던 때라

홀시어머니의 알뜰살뜰한 간섭,애정(?)이 

여간 힘들지 않다는 토로를 털어놓는거였다. 

학교에서 돌아와 조용히 혼자 있고 싶어

안방에 들어와 있으면  문을 두들겨도 기척이 없자

베란다창문으로 타 넘고 들어오셔서까지 같이 놀자는 식이어서

이 난국을 어찌해야하냐며 

우리에게 하소연을 늘어놓는거였다.

"내 속옷까지 다 개주시는데(또는 뒤지시는 ㅋ)

나는 참 싫데... 그냥 혼자 있고 싶지...."

근엄하고 진지한 친구의 개인적인 성향을 잘 아는 나는 

친구가 안쓰럽기도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그러면 안돼 00야 

너네시어머니 하루종일 외로워서 그러는건데

살갑게 해드려야지 " 라며

착한 하모니카친구가 공자님말씀을 늘어놓지 않는가

이건 정말 과장이 아닌데 내가 아는 한

선하고 착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

  바로 이 하모니카친구다.

(아 하나님은 공평하시지도 않지  이 친구는 이쁘기까지 하다

그러고보니 이름에 아름다움과 착함이 들어있다 )

맏며느리인 동서가 모시는 치매에 걸린 시아버지를 

막내며느리인 친구가 

방학이면 한달간 집에 모셔와서 지극정성으로 돌보는데

이야기를 들어본즉 중증치매환자이신 시아버지는

친구의 집에 오면 처음에는 응아를 싸서

이곳 저곳에 막 발라놓기도 하신단다.

그러면 아유 우리 아버님 

응아도 시원하게 잘 싸셨네요 이러면서

아기처럼 욕실로 모시고 가서 깨끗하게 씻겨드리길 

여러번 하다보면

나중에는 아주 유순해지시면서

며느리도 알아보시고

공격적인 치매증세가 거의 사라진다는거였다

그러니 베란다창문을 타 넘고와 

며느리 속옷 뒤지는 시어머니쯤이야 애교 아니겠는가ㅋㅋ

"그래 너는 그럴수 있어도  사람은 다 달라

나는 그리 못해 ... "

착한 친구와 근엄한 친구간의 약간의 격론이 벌어지고

급기야 금자씨가 중재에 나섰다.

"그래 00야 니가 시아버지를 그렇게 정성으로 모시는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고  아무나 못하는 대단한 일이지

그렇다고 그 비슷하게 못한다는것이  

또 나무랠일은 아니고.... "

 금자씨 또한 그때까지도 시집살이에 맘고생이 심하시던때라

내보기에 동병상련 살짝 근엄이편이 되었던것 같았다.

너 혹시 겨드랑이쪽이 막 간지럽지 않냐?

뭐가 막 돋는것 같은 느낌 안 들어?

나는 존경스런 눈초리로 

친구의 겨드랑이쪽을 만져보았는데

 내 눈엔 암만봐도 그녀가 날개 감춘 천사가 환생한거지 

보통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밤은 깊어가고 정신은 새록새록 말짱해지고

 어쩌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지난 연말 광화문광장에로까지 이어졌다.

착하고 근엄한 내 친구들은 알고보니 정의롭기까지 했는데

우리가 인부들과  골머리를 앓고 있는동안

광화문광장에서 주말마다 촛불을 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착하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적극적인 내 친구에 의해 

거의 끌려오다시피한 친구남편은

처음에는 쭈볏쭈뼛 마지못해 촛불대열에 합류했다한다.

그러다 구호합창에 목이 쉰 친구가

옆줄에 서있는 젊은 아가씨에게 남편을 엮어주며

( 엮이다의 올바른 용례 )

같이 구호를 외치게 한 이후로

남편도 적극적으로 촛불을 들게 되었다는 이야기

나는 이런 친구들을 둔게 참으로 자랑스러웠다.

내가 독일에서 예쁜 그릇이나 주워모으며

그저 맛있는 요리같은것에 홀려있는 동안

내 친구들은 반듯하고 올바르게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고 살고 있었던것이다.


이런 친구들옆에 사노라면

자동으로 닮아갈까

잊고 있었던 한자성어도 갑자기 떠오르는것이

아닌게 아니라 조금 닮아가는 모양이다

먼곳에서 친구가 찾아와주니 

이 어찌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문제는 만나는 주기가 십년에 한번이라는 사실

 







맨위로
통합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