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와인 한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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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오래된 와인 한병

빈티지 매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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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한켠 와인랙 제일 아랫칸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독일서부터 애지중지 모셔온 와인 몇병중

가장 아끼던 와인 한병을 꺼냈다.

발음도 어려운 <샤또네프 뒤 빠쁘>

" 특별한날, 좋은 날에 석형하고 한잔 하소! " 

(아 선생님의 투박한 경남억양은 얼마나 정감이 넘치는지 )

칠팔년전 K선생님이 선물하신 와인이다.

이 날이 좋은 날인지 어쩐지 앞으로도 두고봐야겠지만

그래도 숫자로 따지자면 조금은 특별한 날 아니겠는가

와인병에 쌓인 먼지를 닦으며

삼십년전 지금의 남편보다 훨씬 젊으신 K선생님이 떠올랐다.




삼십년전 이날 

 앳띤 신랑신부는 엄숙한 자세로

 K선생님앞에 나란히 서 있었다.

훗날 이 결혼식사진을 본 신부의 친구들은 

요절복통 웃느라 눈물까지 흘리며 

제발 사진한장 얻어가기를 소원해마지 않았다는 소문이 있는데

요새 (구십년대 중반) 연변에서도 이렇게는 결혼 안한다는 이야기였다.

신부는 면사포를 거꾸로 뒤집어쓰고 있질않나

신랑은 양복이 사람을 입었는지 사람이 양복을 입었는지

신부화장이란것은 당연히 없었다

흠 육십년대 빈티지웨딩 쯤이라고 할까 ㅋ

 어쨌든 애송이 신랑신부를 앞에 세워두시고

분명 앞날의  축복과 결혼생활에 교훈이 되실 말씀들도 

많이 해주셨을텐데  기억에 남는 구절은 이랬다.

"....그러니 유학생 여러분

앞으로 도서관이나 연구실에서의 학업정진도 좋지만 

 전철역에도 자주 나가 주변도 살펴보고 하세요.

뜻밖의 소득이 있을수가 있어요 

오늘 이 신랑신부처럼 말입니다."

여기저기서 킥킥 웃음이 터져나왔다.

대학 캠퍼스로 가는 전철역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던중

남편이 내게 독일어로 혹시 한국사람이냐고

물어왔던 사연을

주례사 마지막에 언급을 하셨던것인데 

그때 나는 학기시작전 아르바이트자리를 찾아

내가 살던 도시를 떠나

 독일 남부의  도시에 잠시 머무르던중이었고

 전철역에서 우연히 남편을 알게 되었던것

......

그 이후로 이맘때만 되면 나는 남편의 한탄섞인 소리를

 이십구년째 듣고 있는것이다.

" 내가 그때 기숙사방을 빌려 주는게 아니었어 "






이번에 아덜놈들이 가지고 온 까망베르치즈를 오븐에 굽고

사과 처트니를 만들었다.

밤이 늦어서야 일이 끝나

뒤늦게 식탁위 와인을 본 영감이 씨익 웃더니 

 무슨 날인지는 이미 알고 있다는 말투였다.

" 아이구  내 아니었으면 

 다라이 머리에 이고 콩나물 팔러다닐낀데 

마누라 니는 오늘 아주 기쁜 날이제 "

 이십구년을 어쩌면 토씨하나 안 바꾸고 

똑같은 말을 반복할까

누가 요새 다라이 머리에 이고 다니며 콩나물 파냐

좌판에 앉아서 팔지 라는 말또한

최소 스무번이상은 들었을텐데도 말이다. 






 이번 여름 땀흘릴 일이 많고 부터

시원한 맥주에 맛이 들린 남편은

 간만의 귀한 와인 한잔에 나가떨어져버렸다.

특별하달수 있는 날에 특별한 대화없이

그저 이십구년째 똑같은 멘트만 주거니 받거니

샤또네프 뒤 빠쁘는 아주 훌륭했다.

남은 까망베르 반쪽을 오븐에 넣으러 가는데

휘이청 술이 올라왔다.

둘째넘이 출국장안으로 들어가다가

손을 흔들며 당부한 말이 떠오른다.

" 어이 아줌마 아저씨 제발 싸우지 말고 "

술도 오르겠다

속 넓은 내가 영감 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으며

기어이 한마디한다 

" 친구친구 우리 사이 좋게 노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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