듬직씨네와 애플케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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듬직씨네와 애플케익

빈티지 매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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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케익을 구웠다.

도대체 얼마만에 구워보는 케익인지

불쌍한 우리집 오븐은 

얼마나 오븐으로서 제 역할을 못 맡고 있는지

 일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새것처럼 반짝반짝 빛이 난다.

부지런한 주인을 뒀더라면 당연히 묻어있을 

보기좋은 기름때흔적은

눈을 닦고 찾아봐도 없는 쿨하기만 한 오븐,

 그간 어설프게나마 오븐을 사용한것이 

다섯번도 채 안되었을것이다.

내가 아직도 적응을 잘 못하고 있는곳이 새 부엌인데

그릇들 도구들 식자재들 뒤죽박죽 

손에 익지 않아 뭐를 하나 할려해도 

예전에 비하면 몇배의 시간이 든다.

 마음에 드는 부엌이 유일한 소원이라며

방방 난리끝에

독일에서부터 이고지고 사들고 왔으면

맛있는 음식이 밥상위에 그래도 

가끔씩은 올라와야 하는거 아니냐며

영감이 성의없는 밥상을 볼때마다 투덜거리고 있지만

그럴때마다 남의 부엌에 서있는듯 어쩡쩡한 자세로

사람에게든 물건에게든 새로 적응하는데

남들보다 유난스럽다는 핑계를 댈수밖에...

아침저녁 제법 찬기운이 돌면서

그래도 제일 먼저 생각한것은 케익을 한번 구워볼까 였다.

역시나 몇배의 시간이 걸렸다.


 


"티타임 하러 건너 오실래요?"

생소한 티타임이라니 농담인줄 아셨는지

찻상을 차려놓았는데도 손님들이 등장을 하지 않는다.

기다리다 결국 전화를 하고 한참후에

나타난 손님들은 다름아닌 우리 이웃인 옆집


양평에 온지 며칠 되지 않았을때였다

바스락거리는 바람소리에도 온갖 신경이 곤두서

오돌오돌 떨며 지내던때에 

오자마자 남편이 집을 비울 일이 생겼다.

둘이 같이 있어도 무섬증에 

 현관문밖으로는 나가지도 못할때

혼자 종일 있어야 한다니

죽었구나 싶어 방 한구석에 인기척도 없이 

쪼그리고 앉아있을때 

갑자기 문을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창문으로 왠 시커먼 낯선 물체가 등장하는 바람에

거의 졸도직전까지 간 사건이 있었다.

"누구세요?"

 너무 놀란 나머지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다

 그 자리에서 온 몸이 굳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정체불명의 시커먼 아저씨는 이웃집사람으로 밝혀졌고

남편이 독일로 이삿짐정리를 하러 온사이

집 지킴이 부탁을 충실히 수행중이셨던것이었다.



옆집은 우리보다 반년정도 먼저 집을 지어 

서울양평 두집살림살이를 하는 분들로

간 떨어질뻔한 첫대면부터 예사롭지가 않았다. 

그 이후로 십겁할 정도는 아니지만

주말아침마다 불쑥불쑥 등장

듣기에 따라 애정어린 조언일수도 

참견, 간섭일수 있는 말투들로

낯가림이 심한 나같은 사람에게는 

 또 적응시간이 필요했다.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는 방식이

 초기에 약간 부담스럽기는 하였지만

좋은 사람이고 친절한 사람이란것을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거 뭐래요? 

툭 던지는듯 잘못 들으면 시비조일수도 있는

무뚝뚝한 그의 강원도 억양은

들을수록 재미있는것이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우리집은 독일집, 남편은 독일사장으로 불리는데 

 독일사장과 옆집사장님은 

(옆집은 사업체를 갖고 있어 진짜 사장님임)

 좋게 말해 간단명료한 스타일, 

거시기하게는 무대뽀기질이 서로 닮아

여러면에서 장단이 잘 맞아보였다.

옆집사장님이 독일사장보다 좀 더 욱하는 성격이 

차이라면 차이일까 

 ( 열받으면 물불가리지 않는 욱하는 성격으로

걱정이 늘어진 그 댁 사모님이 우리한테 고자질해준거임ㅋ)





그런데 이 한 승질 하시는 옆집사장님이 

부인한테는 그럴수없는 로맨틱가이라는것이 밝혀졌는데

어쩌다가 휴대폰에 저장된 부부간의 이름을 

우리에게 들켜버렸던것

"공주와 듬직이" 였다.

와 내 입에서 절로 탄성이 나왔다.

주말에 양평집으로 오면 이 공주님은 아닌게 아니라

 썬글라스를 끼고 살랑살랑 정원을 거니며 

나무구경 꽃구경 하는 일로만 시간을 보내는데

누구와 비교하자면 진짜 공주가 따로 없다.

듬직씨께서는 여름이면 테라스에 아침상을 싸악 차려놓고

공주님을 깨우질 않나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듬직하게 집안일을 해내며

게다가 평상시 부인을 바라보는 눈길은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이니

옆집 무수리여자가 보기에 어찌 부럽지 않을수가 있으랴

독일사장네부부 휴대폰에 서로 저장된 이름은

영감과 마누라 





"이거 맛이나 보세요"

별로 고마워 할 필요없다는 시크한 표정과 함께

불쑥 불쑥 등장하는 듬직씨의 손에는 항상 뭔가가 쥐어있다.

속초에 가서 사왔다는 술떡과 

싱싱한 골뱅이, 가자미식혜, 명란젓갈 등등

그리고 제일 감명깊게 받은 선물 하나

한번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흙더미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듬직씨께서 커다란 다라이를 안고 

우리집으로 오고 있지 않은가

직접 쑨 도토리묵무침에다 금방 구운 부추전, 

막걸리가 들어있는 참바구니였던것이다.

이웃간의 따뜻한 정이 고대로 느껴져왔다.

   

연세가 있으신 한국남자분이 케익같은걸 좋아할까

차라리 전이나 부쳐서 초대할껄 그랬지  

속으로 티타임이 끝나갈 무렵 후회 비슷한게 밀려왔는데

듬직씨께서 주저주저  어렵게 말을 꺼냈다.

맛있게 먹었다며 한조각만 싸주면 안되겠느냐 였는데

로맨틱가이인줄만 알았던 옆집사장님은

알고보니 딸바보이기도 했던것

남은 케익을 통째로 싸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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