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자씨의 택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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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금자씨의 택배

빈티지 매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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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배상자가 왔다.

이번엔 조금 간격을 두고 도착했다.

요 얼마간 금자씨로부터 소식이 뜸해 걱정이 되던차

제때에 (?) 도착한 택배!

이틀이 멀다하고 아침은 먹었냐로부터 시작해

마지막으로  청소잔소리까지 듣고서야 

끝이 나는 안부전화가 걸려오지 않은지가 

벌써 보름이 지나고 있었다

그동안 걱정이 되어 내쪽에서 전화를 안해본것도 아니지만

그럴때마다 금자씨의 목소리는 예전같지 않고 

서너마디 주고받는것조차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와중에도 택배를 보내줘야할텐데  걱정은 여전했다.

늙은 딸 마치 굶고 앉아있기라도 하는듯




작년 겨울 귀국후 

딸네집으로 당장 달려와보지 못한 금자씨는 

삼십여년 곁에 두고 해주지 못한것에 대한 

한풀이라도 하는듯

왼갖 먹을것들을 숨 돌릴 겨를없이 보내왔다.

문자폭탄이라더니 그야말로 택배폭탄이었다.

" 옛날 일년에 한번 

동짓날에 먹는 새알 팥죽이 그렇게 싫더니

이제 나도 진짜 늙었나봐 엄마

팥죽 생각이 간절할때가 다 있네 "

이 말을 뱉은후 딱 삼일이 지나자

봉지봉지 새알과  냉동고 한칸은 족히 차지할 만큼의

소분한 붉은 팥죽이 날아왔다.

"내가 산 고구마는 이상하게 맛이 없어 "

이삼일후면 기가 막히게 맛있는 고구마가 한상자 날아왔다.

"생선 고를줄 모르니 너는 아예 살 생각 마라"

그러면서 각종 생선들이 한번씩 구워 먹기 좋게

조려먹게 좋게 손질되어 날아왔다.

장류와 각종 김치,야채들

밑반찬들, 사위가 좋아하는 반찬들은 당연 기본

부지런한 금자씨의 택배상자는 

사흘이 멀다하고 우리집현관문앞에 놓여지고 

 염치없는 중년의 딸은

날이 갈수록 점점 게을러만져갔다.








어느 초여름날 금자씨의 뜨끈한 팥죽


금자씨는 양평이나 독일이나 

오고가기 쉽지 않은것은 매한가지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요새 대한민국 구석구석 

고속버스 케이티엑스 안가는데가 어디 있다고

하필 그렇게 가기도 힘든곳에 자리를 잡았냐는 원망이셨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정리의 여왕 청소의 여왕이시니

우리집청소를 못해주어 병이 날 지경이셨던것

아 그때 아무리 시멘트가루 날리는 공사현장인 집이라지만

금자씨만 나타났다하면 반짝반짝 윤이 났을텐데...

오매불망 기다리던 딸네집 방문은

우리가 귀국하고 한참 지나서

그사이 다시 독일에  급하게 다녀오기까지한 

삼월 하순이 되어서야  드디어 이루어질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그렇게 궁금해 하던 금자씨의 예리한 눈길이 

순식간에  온 집을 스캔하고 지나가고




문제의 동치미


급하게 독일 다녀온 여독도 풀리지 않은 시점이지만

후다닥 쓸고 닦은 보람과 함께 

엄마의 첫 반응은 '생각보다' 깨끗하네 였다.

문제는 다음날 벌어졌다.

전날 조용히 집을 스캔하신후 합격통과되는줄 알았는데

다음날 이른 새벽부터 걸레를 들고 

다락부터 훑고 내려오시는게 아닌가

그리고 최종적으로 도착한곳은 대망의 부엌

 아니나 다를까 냉장고속 물건들이 

싸그리 다 부엌바닥에 엎어져나왔다.

금자씨의 주특기인 냉장고 정리가 시작된 것이다.

냉장고정리에 관해 금자씨는 할말이 좀 있는데

동생네와 오빠네 집에서 크게 마음을 다친적이 있었다는것

아들네집에 가서 좋은 마음으로 냉장고 정리를 해주려하자

아들들이 싫어하는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더라는것인데

그렇게 서운할수가 없다는 토로를

 멀리 있는 딸인 내게 가끔씩 하셨더랬다.

나는 이 모든것이 그저 딸이 옆에 없었던탓이라 반성하고

그럴때마다 엄마를 위로한적이 있었다.

"그런건 딸집에 와서나 하는거지

나중에 우리집에 와서 엄마의 꿈을 마음껏 펼쳐

게다가 청소할게 많아서 무지 기쁠껄 히히 "

 약속처럼 우리집 냉장고속은 

산만하기 그지없는 난장판상태로

금자씨를 기다리고 있었던 셈

삼십년 밀린 효도 

한꺼번에 갚기로 작정이라도 한것처럼 말이다.ㅋ

그런데 

냉장고를 엎어놓고 잠시 엄마가 자리를 비운 사이

뭔가 불길한 예감이 스믈스믈 올라오는게 아닌가

뭘까? 뭘까...





악 김치냉장고칸의 콩나물 무나물통이닷!


사위가 좋아하는

콩나물무나물볶음을 몇번이나 보낸적이 있었다.

 먹다가 먹다가 김치냉장고에 넣어두고

갑작스레 독일을 다녀오는 바람에 맛이 살짝 가버렸던것인데 

그냥 방치해두었던것이 그제서야 퍼뜩 떠오른것이었다.

007작전이 따로 없었다.

민첩하게 콩나물통을 껴안고는 엄마의 동선을 피해 

현관문앞 꽃밭을 만들려고 쌓아둔 흙더미로 달려갔다.

쥐도새도 모르게 파묻었다.

그리고는 완전범죄에 흐뭇해하며 금자씨옆에 돌아와

앙큼맞게 애교를 살살 떨어댔다.

"냉장고청소하는게 그렇게 재미있어?

나는 요리하는건 재미있어도 뒷정리는 영 싫더구만"

"아이구 여자야 아무리 집짓는다고 정신없다지만

냉장고꼴이 이게 뭐고"

딸이 한심해보일때 금자씨는 꼭 여자야 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 나이가 되도록 철이 안들은건지 

나는 이 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을수가 없다.





오전내내 냉장고청소와 거실청소로 마무리 지어지는가 했더니

어느새 금자씨의 눈길은 테라스로 향하고 있었다.

때는 아직도 쌀쌀한  초봄

테라스는 왼갖 잡다한 물건들로 창고처럼 쓰여질때였다.

어어 거기는 치울 필요 없어...

내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금자씨는 

이번에는 빗자루를 쥐고 테라스를 누비고 있었다.

잊고 있었던 테라스 모퉁이에 있는 김치통들이  보이자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심장이 멎는줄 알았는데

여기에는 금자씨가 보내준 동치미니 각종 과일즙같은것들이 

 먼지를 덮어쓴채 버려져 있었던것이다.

(냉장고에 들어가지도 못할 어마어마한 물량을 보내주고 있었음으로)

아까 부엌에서는 잠시 자리라도 비켜줬지 

빗자루로 저쪽 코너에서부터 쓸며 다가오는 테라스는

피할 공간이 없었다.

급하게 테라스식탁으로 가려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단지크기만한 동치미통이 거의 줄어들지 않은채

테라스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던것인데

여기는 뭔데 이렇게 가려놓았노 라며

식탁을 확 걷어낼때 엄마의 눈빛,

 아 그 실망스런 눈빛이란

"먹지 않을 요량이면 버리고 말지

왜 이렇게 쌓아두냐 "

동치미통을 열어보던 금자씨의 목소리는 

어두웠고 착 가라앉아있었다.

나중에 먹을거야... 중년의 딸 목소리는 

어릴적 크게 혼날때처럼 기어들어갈듯 작아졌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금자씨는 

그 큰 김치통을 번쩍 들고는 말없이 어디론가 향했다.

엄마는 화가 나면 힘이 넘쳤다.

음식물쓰레기 버리는곳도 모르실텐데...




"어디다 버리고 왔어? 엄마아"  

감히 엄마를 바라보지도 못한채 쭈볏쭈볏 묻는 소리에

"땅에 파묻을려고 봤더니 거기다 벌써 콩나물을 버려놨데"

맙소사... 하필이면...

그게... 엄마 있잔아...

 소포 받고나서 갑자기 독일을 다녀오는 바람에...

노모가 애써 만든 음식들이 여기저기서 썩어나갔으니

모든게 다 변명으로 들리는 상황이었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혼났던게 언제였던가

한사십여년만에  금자씨한테 죽었구나 싶어 

처분만 내리소서 라는 심정으로

벌받는 자세로 서있는데

금자씨의 목소리는 뜻밖으로 처연했다.

"이게 다 내가 너무 늙어 분별없이 

자식들 애 먹이는줄도 모르고

그저 보내주기만 하면 좋은 줄 알은 탓이다. 

내가 주책맞은거지... 다 내 잘못이다 "

아 사십여년전처럼 차라리 등짝이라도 한대 때려주시지...




 문제의 콩나물과 무나물


솔직히 그날 오후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금자씨의 눈치를 살피며 

뒤만 졸졸 따라다녔던 기억은 남는데

안절부절 좌불안석 뭐 그런 심정이 아니었나 싶다.

 구석구석 엄마의 손길이 가지 않은곳은 없었다.

그렇게 금자씨가 떠난뒤 

우리집은 한동안

공사장같지 않은 말쑥하고 깔끔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냉장고 또한 칸칸이  환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한동안 보기 어려울줄 알았던 금자씨의 택배상자는

 다행스럽게도 예전과 다름없이 부지런히 날아왔다.

뜨거운 여름날에도 싱싱한 생선들이 

보냉팩들 사이에 끼어서 날아오질 않나,

포도한알, 복숭아한알 물러지지 않게 포장하는, 

금자씨는 가히 택배의 여왕

 그러니 철딱서니 없는 중년딸은

더도 말고 앞으로 십년만요...

아니면 크게 인심써서 오년은 어때요...

속으로 보채고 있는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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