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중부내륙고속도로와 경부선고속도로를 양평장 드나들듯

 낯익게 오고 갔던 지난 열흘

2박3일 친정방문에 연이어

부모님의 릴레이맞방문이 있었더랬다.

금자씨가 그간 짧게 다녀간 적은 두어번 있었지만

이번엔 영감님을 대동, 몇박을 예정하면서 

다녀가시기로한것은 처음있는 일

게다 바쁜 일들은 왜 한꺼번에 몰아닥치는지...

생신과 김장, 부모님방문으로 열흘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온 토요일낮 

늘씬하게 두들겨 맞은듯 나는 아주 축 늘어져버렸다

중늙은이인 나도 이지경인데

금자씨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난번 봄방문때의 집정리는 서곡에 불과했던것이다.




예상대로 오라버니는 

부모님을 모시고 꽤나 이른시간에 도착했다.

왠만한 집이면  겨우 아침상을 물렸을 시간에

이럴줄 미리 알고 그나마 테이블셋팅을 해놓았으니 망정이지

그렇치 않았으면 얼마나 혼이 빠질뻔했나

친정집 삼시세끼는

마치 군대처럼 정확한 시간을 엄수하기로 유명하다.

아침 여섯시, 점심 열한시반, 저녁 다섯시

(아 어떨땐 네시반일때도 ) 

한끼도 빠져서는 안되는 말그대로 

<삼시세끼> 칼시간엄수에다

 아침과 점심사이에는 간식타임까지 

그러니 열한시반 점심에 맞추려

슈페츨레국수 반죽하랴, 고기 구워 오븐에 넣고

소스 만들랴

감자 삶아 슬라이스해서 팬에 베이컨넣고 

크리스피하게  구우랴

얼마나 바빴겠나

와중에 크리스마스장식으로 쓸 솔방울을 

접시위에 장식으로 얹어보기도 했는데

이런 상차림을 분명 어색해할 아버지를 위해 

도착하시기전에 빼버렸다.


난리법석끝에 차린 점심상

이삿짐컨테이너에 넣어온, 꼬불쳐두었던  와인을 꺼냈다.

오라버니가 남편옆에 앉고 

아버지가 중앙에 앉으시고

엄마와 내가 나란이 앉았다.

이런 조합도 분위기도 조금 낯설기도 해

내가 와인잔을 높이 들고 건배사를 

"아부지 만수무강하시옵소서 " 

아버지는 와인이 맛있다 하시고

오라버니는 내가 차린 음식이 

유학시절 대학식당 멘자에서 먹어본 맛이라며

한접시를 너끈히 비우고 있었다.





오라버니가 그 날 오후로 돌아간뒤

금자씨는 기다렸다는듯 옷을 갈아입고는

집안 구석구석을 다시 매의 눈으로 살피기 시작했다. 

나이드신 부모님들이 할 일 없이

우두커니 가만앉아계시게만 하는 일이

얼마나 불효하는것인지 잘 아는 효녀인 딸은

 머리가 아프도록 스케줄을 짜놓고 있었겠지.

짠 하고 금자씨에게 우선 먹태몇마리를 내밀었다.

 "아이구 이런건 니가 당연히 손질 못하지"

 동작도 재바르게 금자씨는 먹태의 몸통을 불리고

 양념장을 만들어 바르고는

굽기 좋게 쟁반위에 눕혀놓았다.

윤기가 흐르는 빨간 양념장이 발린 먹태는 

얼마나 맛있어보이던지

"대가리는 말려서 나중에 국물낼때 넣으면 된다"

테라스에 먹태대가리 달아두는것은 

아버지 담당

(원체 자상이니 다정다감과는 거리가 먼 아버지지만

어느때부터였던가 

딸은 아버지가 더이상 무섭지 않고 

착 달라붙어 아부지잉...하며 없는 애교도 부리곤 한다)

  우리집 테라스는 황태덕장 

먹태대가리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고 

어제는 그 위로 눈이 소복히 내렸다.




무료하실수도 있는 아버지를 위해 내가 꾀를 낸것은

장작 패는 일을 하시게 하는거였는데

 눈치없는 남편이 

며칠전 이미 다 뽀개 놓아버렸다.

아버지와 나는 하는수 없이 

어슬렁거리며 일거리를 찾아 나섰고

눈에 띈것이 집터 닦을때 뽑아낸  나무를

엔진톱으로 자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톱날이 무뎌 나무둥치는 꿈쩍을 않고

결국 아버지와 양평읍 공구사로 드라이브길에 나서야했다.

아버지와 단둘이서하는 드라이브

아마도 처음 있는 일 아닌가 싶은데

어릴적 그렇게 무섭고 엄했던 아버지가

부드러운 노인이 되어 딸이 운전하는 차에 

온순히 앉아 계시다니...

조근 조근 대화중에

양평 공구사에는  금새 도착했다.

아버지가 새로 교체한 엔진톱을 들고 

슝 하고 나무중앙을 순식간에 가르는데

그럴때 아버지는 덜 노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사이 엄마는 사위의 보조를 자처 

둘이서 팀웍이 잘 맞는듯했고

딸이 벌려놓기만하고 뒷감당을 못해 쩔쩔매 하던일들은

금자씨의 손길이 닿자  척척 정리가 되어갔다

"아이구 니는 일머리 없는게 천상 너거 아부지다"

 엄마딸이 아니고 아부지딸이었던것이다.



 통나무를 다 자르고 나니 이미

열두시가 넘은 시각

점심시간도 지났고 간식시간도 건너뛰어 버린 시간이다.

"아부지 맥주한잔 하셔야죠"

얼른 집으로 들어와 소세지를 굽고 시원한 맥주를 따라놓았다.

나무를 자르고 장작을 패는 일따윈

아직도 너끈히 할수있다하시는 아버지는 

얼마전 인대를 다쳐 

아쉽게도 도끼자루를 휘두르지 못하시고는

"어허 대낮에 거참 " 기분좋게 맥주잔을 휘두르셨다.



아버지가 떠난뒤 사위가 잘게 뽀개 놓은 장작더미


소나무가지는 길가에 쓰러진 소나무를 보고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쓸까하고

아버지를 대동, 큰 전지가위를 들고 가서 잘라온것이다.

양평공구사드라이브에 이어 소나무자르기작전

부녀지간에 장단이 척척 맞은 셈인데

옛날의 아버지를 상상하면 있을수 없는 일이다.

무슨 쓸데없는 일을 하냐며 

버럭 고함자락이 떨어지고도 남을일 아니었던가

이제 기운 떨어진 아버지는 

저쪽 가지가 더 좋지 않냐 시며

 딸이 지목하는 가지들외에 한참을 

이리저리 소나무를 들추어내고는 쓸만한 가지들을 잘라

차에 실어 주셨다.




그리고 마지막날 

저녁 다섯시가 넘어서도 밥할 기미를 안보이니

금자씨가 불안하신 모양이었다.

너는 밥한다더니

 카메라로 밥을 하나? 

언젠가 블로그 그거 컴퓨터살림살이 아니냐며

 블로그의 속성을 일찌기 간파하신 금자씨가 

영감님 끼니시간이 걱정되는지 

카메라만 들고 설치는 딸이 영 마뜩잖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독일로 독일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고 돌아온 사케를 덥히고

새우, 단호박, 가지, 양파, 파프리카는

엄마와 협업으로 튀겼다.

요즘 세상이면 요리블로거를 하고도 남을 금자씨는

연세에도 새로운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남다르다.

내가 한 튀김은 돌아가면 꼭 해먹어봐야겠다고 

금자씨로부터 드문 칭찬까지  들었다

뜨거운 튀김안주와 함께 오른 안주는 

아버지의 변함없는 삼시세끼타령이었는데

술상끝에도 한끼생략하는 법없이 꼭 밥상을 차리게해서 

한번씩 금자씨 열을 받게 한다는 사실이다.

장인어른이 수세에 몰리는것을 

특별히 재미있어하는 사위가

스토리를 살살 부추기자

명절전날 술상 물린뒤 또 밥타령하시다가 

처음으로 밥도 못 얻어드시고 안방으로 

쫓겨난 이야기를 막 듣고 있는데

튀김접시가  그럴싸하게 보여

보낸 사진에 동생이 까톡 답장을 날렸다.

"누나 이따가 된장 끓이셔야겠네요 " ㅋ


하루저녁은  외식 싫어하시는 아부지를 꼬셔서는

옛날 불고기 식당이라는데를 갔다

국물이 자박한 옛날 불고기에

옛 추억과  술이 어찌 빠질소냐

 옛날이야기를 하며 아버지 빈술잔을 채워드릴려했는데

젊은 시절 대단한 애주가셨던 아버지주량은 

이제 눈에 띄게 줄어버렸다.

또 눈에 띈것은 내가 어디를 가나 엄마옆에 

찰싹 달라붙어 팔짱을 끼고 다녔다는거였는데

대부분은 그게 부축에 가까웠다는것이다. 

슬펐다.

두고간 엄마의 머플러를 코에 댔더니

엄마의 화장품냄새가 난다.

모셔다 드리고 돌아온 날부터 비실비실 목감기

엄마의 머플러를 목에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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