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족이 놀러오기로 했다.

백수인 우리는 시간개념이 없어 

어쩐일로 가족이 함께 다 시간을 낼수 있나 싶었는데

스마트폰속 달력을 보니 방학이었다.

아직 중학생인 아들을 둔

젊디 젊은 내 친구부부는 학교에 재직중이라

 가족이 방학을 이용, 

 양평까지 먼 걸음을 계획할수 있는 모양이었다.

한국에 와서도 거리가 멀어 자주 볼수 없는 형편은 여전하지만

일년에 여름 겨울 한번씩은 볼수 있겠다고 약속을 한 터

그러니 여름 겨울방학이 친구에겐 적기였다.

양평엔 아직도 눈이 쌓여있나?

아랫지방에 사는 친구는 눈은 보기에는 좋아도

눈길운전은 아주 질색인 눈치여서

며칠전 밤새 내린 눈으로 

다시 하얀 세상으로 뒤덮혔다는 이야기는

꿀꺽 입밖에 낼수 없었다

다행히 눈은 그 날 오후 영상십도까지 올라가는 바람에

그야말로 눈 녹듯이 녹아버렸지만


아침커피잔을 내려놓을 즈음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우리 이제 출발한다"

벌려놓은 일로 허우적대느라 그간 집안일도 대충대충이었는데다 

 며칠전 영감과 소소하게 시작했던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띠는 바람에

살림살이에 무심했던 바

집정리에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국가대표급  폭풍스위핑질을 

겨우 끝내고나니  남은 시간 두시간

꼬불쳐두었던 빵재료가 들어있는 이쁜 병을 찾아냈다.

큰 넘이 벌써전에 선물로 들고 온것인데

설명서에 의하면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고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유리병속에는 뽀얀 밀가루가 아래 깔려있고  

그 위로 말린 올리브,적양파,파프리카,칠리와 각종허브들이

켜켜이 보기좋게 쌓인, 

뜯기가 아까운 예쁜 병이다.

짭조롬해서 식전용 빵으로 

샴페인, 스파클링와인에 곁들이면 좋을 빵이다.

친구남편은 우리집은 첫방문인데

독일에 살때 한번씩 다니러오면 어떨때는 친구를 대신해

귀한 시간을 내어 기꺼이 가이드를 자처해준, 

 고맙고도 선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보은과 환영의 스파클링와인은

며칠전서부터 냉장고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곁들일 빵만 구워내면 되었다.


 










청소하고 빵굽느라  점심차릴 시간이 여의치않아

  식사는 근처식당에다 차려놓았다는 말을 하자

친구는 횟감을 조금 가져왔노라며 

밥만 해 놓으라고 했다.

조금 가져온다던 그녀는 차 트렁크 한가득 횟감을 싣고

예상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싱싱한 횟감으로 급하게 차린 럭셔리 점심상 

친구의 남편이 마치 집주인처럼 큰 쟁반에 담은 회를 먹기 좋게 

야채들과 섞고 우리는 얌전히 앉아

 무쳐지는 회를 바라보는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었다.

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영감도 나도 

주인 아니 손님보기 민망할 정도로 

맛있다를 연발하며 접시를 싹싹 비워댔다.



겨울해는 조금 길어졌다지만

우리는 점심이 끝난뒤 서둘러 집을 나섰다.

친구부부의 방문 이야기가 오가면서

 제일 먼저 생각한것이 프로그램을 짜두는 일로

지난번 옛 은사님이 알려주신 임도산책이 떠올랐다.

걷기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이보다 더 좋은 프로그램이 있나 ㅎ

트래킹신발로 갈아신고 우리집 골짜기 정상에다 차를 대고

몇발자국 걸어들어가자

끝내주는 설국이 눈앞에 펼쳐졌다.

덜 녹은 눈이 조금 남아있을줄을 알았지만 이정도일줄이야

친구네 가족의 감탄도 이어지고

우리는 마치 알프스산꼭대기에라도  초대한듯 

뿌듯한 심정으로 숲속산길로 안내를 했다.

친구는 가지고 온 등산용 스틱을 눈밭에다 꼽아보며

사십센티는 족히 되겠다며 신기해하고

중학생아들은 기어이 눈밭에 누워

러브스토리 장면을 연출했다.

집 가까이 이런 설원이 있었다니

친구네가 아니었으면 우리도 몰랐을 사실이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밭을 한시간반쯤 걷다가 돌아왔다.

욱씬욱씬 내 무릎은 이미 내 무릎이 아닐정도로

아파왔음에도 기분은 그럴수없이 좋아졌다. 

저녁은 내가 준비한 간단한 치즈요리 라끌렛

느끼한 치즈탓을 하며 

와인잔을 자주 부딪혔다.




다음날 아침식사를 하며  

눈썰매 좋은 친구가

우리집옆 공터에 트럭으로 한 차 부려놓은 

통나무장작더미가 신경쓰였던지

남편더러 여기까지 왔으니 도와주고 가야지 않겠느냐며

등을 떠밀었다.

내가? 도끼를 ? 깜짝 놀란 표정으로 친구를 바라보는 친구남편

인문학적 소양이 넘치는 그는 옛날로 치자면 책만 읽는 선비인데

 스스로도 못 하나 박기도 버겁다고 실토를 하는데도

친구는 막무가내였다.

우리집 영감은 또 그 반대이고 ㅎ

친구부부는 양평투어 계획을 미리 짜가지고 온듯했다

 돌아가는 길에 들를, 

양수리에 있는 세미원인가를 이야기를 하는데

어른들틈에 끼어 언제 집에 돌아가나 

지루하게 거실소파에 앉아있던 중3아들이 

 날벼락을 만났듯  펄쩍 뛰었다.

몇해전 독일에 놀러왔을때 

헷세박물관에서 봤던 표정 그대로여서

나는 얼마나 웃음이 터지던지

친구아들놈이 안되보이기도 해서

위로란답시고 

"세미원은  멀고 서종면에 황순원문학촌이라고 

소나기마을이 있는데 말이야 ...."

사태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망발을 해댔으니

친구아들놈에게는 설상가상인 상황

녀석이 원망섞인 눈빛으로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우리집 소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는 친구네는 떠났다.

나중에 들으니 소나기마을은 월요일 휴관이라 

결국 양수리 세미원으로 향했다는 후문

친구아들놈은 분명 툴툴대며 세미원 정원을 끌려다녔을것이고

친구부부는  추사 김정희선생의 서체를 구경하느라

반짝반짝 눈이 빛났을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간에 

전날 먹었던것처럼 

다시 한번 남은 회에다 

횟집 야채 비스무리 흉내를 내 썰고는

 땀이 송글송글 맺히도록

늦은 점심으로 매운 회덮밥을 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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