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넘이 왔다.

마지막 시험이 끝난 며칠이 지난뒤 

아들놈은 야무진 계획대로 인천공항에 나타났다.

녀석은 마무리해야할 일들을 

덜 마무리한 상태에서

 하루라도 빨리 

집으로 오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댔었더랬다.

일년간 미국대학엘 가 있어야 하는 일로

큰 넘은 이사를 해야했다.

아주 중요한 짐들만 추리고서는

 소지하고 있던 가재도구 등속인

모든 짐들을 없애야하는 이사였다.

원래 시험을 마친뒤 독일에서 곧장 

미국으로 가기로 한 계획을 수정,

여기 와서 잠시 쉬었다 미국으로 가겠다라고

하면서 일이 복잡게 되가고 있었다.

부수적으로 처리해야하는 생기면서

여간 골치 아파지는게 아닌 상황이 되버렸던것

그럼에도 놈은 시간상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일사천리로 밀어부치고 있었다.

차분히 마무리짓고 오는게 어떻겠냐는 내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채

몇달 남은 방계약에 급하게 후임자를 찾고

몇몇 물건들은 헐값에 팔아치우고

쓸만한 가재도구들은 친구들에게 넘기고

타고 다니던 차를 위탁판매에 넘기는 등

떠나오기 며칠전은 이삿짐정리와 서류정리,관청방문등으로 

꼴깍 숨이 넘어갈 정도로 정신이 없다는

하소연을 늘어놓을때만해도 오는 날짜를

뒤로 미룰줄 알았더니 

기어이 계획했던 날 아덜놈은 나타났다.

큰 여행용가방을 두개를 밀고

어깨엔 또 하나 묵직한 가방을 매달고

생각보다는 쌩쌩한 모습을 하고서





일년 동안 입을 사계절 옷가지, 신발등이 가득한

빵빵하니 터질듯한 가방에서

부시럭부시럭 

 빵봉지와 꿀과 쭈커뤼벤시럽을 꺼내 놓았다.

내가 좋아하는 꼬뜩꼬뜩하니 단단한 잡곡빵,

아부지가 좋아하는 빵에 발라먹는 크리미한 꿀,

또 잊고 있었던, 뭐라 설명할수 없는 맛의

쭈커뤼벤시럽 한병을 

이 난리통에

챙겨 오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던터라

울컥 감동을 받아버렸다.

 "이걸  어떻게 생각해냈어?..." 

"  쭈커뤼벤시럽은 

엄마가  좋아했던거잖아

그리고 그거 뚜껑 제대로 안 닫아서 개미떼 몰려왔던거 기억 나?"

옛 부엌의  오븐 아래쪽에

 베이킹재료들을 넣어두는 서랍속에는

 노오란 쭈커뤼벤시럽통이 놓여있었다.

플라스틱병에 든게 아니라 

동그란 종이곽에 들어있는데

여러번 꺼내 먹다보면 종이뚜껑이 헐거워져

 마지막 얼마 남지 않을때는 늘 덜 닫힌 상태가 되곤해서

어느해는 급기야 개미떼가 몰려들었던것을

큰 넘은 잊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노오란 쭈커뤼벤시럽병을 보자

나는 일초의 주저함도 없이

 손에 착 붙어 마치 내 몸의 일부와도 같던

 내 옛 부엌의 구석구석이 떠올랐다.





종류별 잡곡이 다양하게 들어있는 잡곡빵

귀리가 빵 뒷면에도 알차게 붙어있다.

촌득한 잡곡빵

꼭꼭 음미하면서 카메라를 꺼냈다. 

흐음 독일빵이 이렇게 맛있었나 




약간 흥분된 아침식사시간

놈이 가져온 호밀잡곡빵에 

나는 버터위에 쭈커뤼벤시럽을 바르고

영감은 크림형태의 꿀을 발랐다.

사탕무우로 만든 시럽은 

독일말 쭈커뤼벤시럽으로 불러야 

더 어감이 와 닿는다.

<쭈커> 짝 달라붙지 않나

쭈커는 슈거의 독일말

달짝하니 특유의 향기가 감도는 서양조청인

쭈커뤼벤시럽은

매일 먹으면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잊어버리듯 어쩌다가 한번씩 발라먹으면

정말 향기로운 맛이다.

(지금은 삼일내내 연거푸 아침식탁에 올리고 있지만)

예전에도 한병 사 놓으면 두고두고 일년은 먹었든듯 싶다.



아덜놈이 오고 며칠 지나지 않은 날

제법 굵은 봄비가 후둑후둑 하루종일 내렸더랬다.

"아 좋다 정말 집에 온거 같아"

소파에 누워 비소리를 들으며 아덜놈은

 혼잣말인듯 내게 건네는 말인듯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느날 아침 아랫층을 향해 큰소리가 울려왔다

"엄마아  리버풀 이겼다"

"누구랑 경기했는데?" 

"레알 마드리드"

방바닥에 나뒹구는 양말짝, 여기저기 벗어놓은 티셔츠

아침마다 이불밖으로 나온 아덜놈의 발바닥을 

쓰윽 간지려보는것,...

둘이 왔을때보다 확실히 조용하기는 하지만

 큰놈이 온 이래로

 우리집은  다시금 들썩거리고 있다.

이렇게 보면 더없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일상같지만

요 며칠 아주 애간장 녹이는 일도 벌어졌더랬다.

 이제는 지나간 일이 되었지만

 큰 넘은 일 처리들을

 덜 마무리짓고 복잡게 만들고 와버리는 바람에 

  가뜩이나 있는 걱정, 없는 걱정

 오만걱정꺼리로 팔자가 늘어진 내가

 국제우편물 행방추적을 하느라

십분마다 클릭질을 삼일 밤낮을 해댔으니

에구 내가 이눔을 그냥 콱



난생 처음 받아본 어버이날 카네이션

녀석은 서프라이즈의 대가다

어버이날이라고 금자씨에게

전화를 넣을 정신은 있었지만

내가 어버이라는 사실은 깜빡 잊고 있었던것 

큰 넘은  운동을 갔다온뒤

헐레벌떡 샤워를 마치더니 

급하게 양평읍에 볼일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깜짝 등장

분홍색 카네이션 한다발과

아이스크림케익 한통! 을 들고서

아 이 시키들은 한번씩 내 속을 태워서 그렇치

참 달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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