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더위에 어쩌자고 

우리는 산행을 하기로 했을까

이글이글 푹푹 쪄대는 태양볕이 무서워

불볕 한 조각이라도 스며들라 

매일매일 빈틈없이 커튼을 내려 극장같은 날들이, 

에어컨 앞에 무기력하게 널부러져 있는 날들이

하루 이틀 삼일 보름이 지나가면서 

심신이 녹아내리는듯 무기력해있을때였다.

어느날 점심을 겨우 해결하고 여느때처럼 

소파에 축 늘어져 있던중 

"영감 우리 임도트래킹이나 할까?" 하고

나도 모르게 선언같은 말을 내뱉었는데

아마도 한 보름 에어컨 냉방증세에

정신이 어질어질 혼미해져서

 헛소리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이럴땐 영감과 의기투합이 잘 되는지

말 떨어지자 

선크림을 바르고 등산복을 차려입는데

십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현관문을 나섰을때가 오후 세시 

훅하니  뜨겁고 습한 열기가 순식간에 

온몸을 덮쳐왔다. 

집밖에 기다리고 있던  태양볕이 

잡아 삼킬듯 이글 거렸다.

너 오늘 아주 잘 걸려들었다는듯




 이 더위에 임도트래킹이라

무모한 짓이 아닐까 솔직히 걱정이 되기는 해서

여차하면 털어 넣을 포도당 캔디와 얼음물병, 

그리고 휴대폰을 꼬옥 챙겨 나선 

오후 세시 산행길에는

다행히 스펙타클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불볕더위가 생각보다는 덜 끔찍한데다

에어컨의 냉풍과는  질적으로 다른

어쩌다가 계곡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줄기가

땀으로 범벅이 된 온 몸을 한번씩 식혀주기도해서

임도의 어떤 구간들은

오히려 자비롭기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불볕과 맞짱뜨며 두어시간 도보행군이 지나자 

  흐물거리던 몸과 마음이

탱탱해지는것 같은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면서

급기야 야무지게도 2차 헛소리  

"폭염이고 뭐고 간에

이제부터 매일 기본으로 뒷산 등산에

일주일에 최소 한번 임도트래킹 어땟 !"

불볕에 벌겋게 익은 영감이 

저 마눌이 더위를 먹어도 단단히 먹었구나

 라는 표정이었다.




아침 등산중 벌어진 일들


우리집은 아침 저녁으로 

운동하기 아주 적합한 산을 하나 끼고 있다.

산책로를 따라 봉우리 정상인 헬기장까지

왕복 한시간 반 거리인데다 

아주 아름답게 조성되어있기까지해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체력을 단련할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문제는 이 산책로가 개인소유지라는거였다.

아쉬워하던중에

동네주민들에게는 입산이 허용된다는 소문을 듣고

작년 봄 폼잡고 처음으로 올라갔다가 보기 좋게 

쫓겨나온적이 있는 인연이 깊은 산이다.

등산로 좌우로 조각품들이 있고

좋은 조경수들이 줄을 지어 서 있어

카메라를 들이댔던것이 화근이었던 모양,

새로 이사온 동네주민임을 설명할 틈도 주지 않고 

내쫓김을 당했던것이다.

우여곡절끝에 바깥주인의 허락을 받고 

등산겸 산책을 할수 있게 되었는데

안주인의 까탈스러움도 알고보니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아니온듯 다녀가소서>

조경수 곳곳에 매달아 놓은 주인의 간곡한 팻말이

저간의 사정을 말해주듯

무례한 방문객들의 무례한 짓들로

주인이 진절머리가 났던 모양이다.

삼십만평이나 된다하니 

 여러 입산로를 무슨 수로 다 막을수 있을까 

그러니 그저 사람들의 양심에 호소하는수밖에

때마침 몇번의 등산길에

산주인과는 눈인사를 나누며  

선량한 동네주민임을

인증할 여러번의 기회가 있었다.

그러던 며칠전 아침 등산길에 올랐을때 일이다.




 그날은 새벽부터 찜통이라

 작은 물병하나가 겨우 들어갈만한

 조그마한 배낭을 하나 메었던것이

여느때와는 다른 복장이었는데

내려 오던길에 

주인의 예리한 시선에 포착이 되었던것

안면이 있어서인지 부드러운 어조로

배낭은 삼가해 돌라는 부탁을 해왔다.

그러면서 여러 애로사항을 토로하는데

백프로 수긍이 가고도 남을뿐 아니라 오죽하면

마음 좋은 주인이 안 되보이기까지 했다.

우리가 누군가! 

말 잘듣고 염치를 아는, 

하지 말라는 짓은 당장 그만두는

착한 동네주민 아닌가 ㅋ

하지만  다음날 아침부터

한손에는 물병을 

남은손에는 등산용스틱 두자루를 들고

길을 나서다보니 

스틱이 한쪽발에 걸리적 거리는게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게다가 달려드는 모기떼들과 일전도 벌려야하니

집을 나서 등산로로 접어들기도 전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이고 주인한테 예외적으로 

좀 봐돌라하면 안될까

내려올때마다 배낭속을 까보여주는걸로 말이야 "

내가 물병과 스틱 두자루로 낑낑 씨름을 하는동안

할랑하게 앞장서서 걷던 영감이

갑자기 허리를 굽혔다.

" 어 여기 지갑이 떨어져 있네 "


제법 볼록한 명품지갑속에는 적지 않은 현금과

적지 않은 크레디트카드, 

그리고 적지 않은 명함들로 빼곡했다.

에구 어쩐대 언제부터 풀섶에 떨어져있었던걸까

누구일지 지갑주인의 동동 애타는 심정이 

마치 내게 벌어진 일처럼 느껴져왔다.

그런데 지갑속 운전면허증의

  남자의 사진이 낯이 익다.

 이런 우연이 있나

바로 산주인의 지갑이었던것이다.

와중에  번개처럼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이러면 배낭문제는 가볍게 해결된거 아임?  

 헬기장 정상까지의 가파른 등산로가

그날따라 편안한 구릉처럼 

사뿐히 오를수 있었으니 

한시간반의 등산을 가볍게 마치고 집에 와서

휴대폰부터 집어 들었다

애가 타 있을 주인에게, 고마워 할 주인에게 

연락을 취할려고 하는데  

그런데 그게 간단치가 않는거였다.

우선 지갑속에 주인의 전화번호라고 

추정될만한것이 없었고

114에 전화를 걸어봐도 소용이 없었다.

하는수없이 명함들 가운데 한곳에다 전화를 걸어

 전화번호를 가르쳐 줄수 있냐니까

알긴 한데 회장님을 왜 찾는지

함부러 가르쳐 줄수가 없겠다는 

의심에 가득찬 대답이었다.

 회장님이라... 어쩐지 풍모가




사실대로 여차 저차 이야기하자

180도 반색, 어머 어머 복 받으실꺼에요 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더니 

회장님께는 자기가 먼저 기별을 할터이니 

걱정마라 아마 곧 연락을 하실거다.

그리고 또 다시 호호 복 받으실꺼에요  

재차 마무리인사에다 

복 받을꺼라는 문자까지 날라온다.

(이 날 평생 받을 복을 아마 다 받았을것이다 ㅎ)

 몇시간뒤  전화가 오고 통성명끝에

우리가 그제 만난 바로 문제의 

배낭등산객임을 알게 된 회장님께서

멋진 중절모를 쓰고 나타났다.

연신 고맙다는 인사와 

직접 담은 오미자와인한병과 한우고기와 함께..

생각지도 못한 사례금이었다.

당연한 일에 사례라니

가당찮은 선물이지만

와인과 고기에 약한 나는

 작렬하는 태양이 서산으로 넘어가기를 기다렸다

잽싸게 술상준비에 들어갔다 

영감은 영감대로 숯불 피우느라 

테라스에서 분주했다.

거실 식탁에 차렸다가 부랴부랴 테라스로 

밥상자리를 옮겨놓고

마늘버터를 만들고 야채를 준비했다.

처음 맛 본 오미자와인은 

디저트와인으로 마시면 딱 좋을, 

달달하면서도 향이 아주 좋았다.

그리고 한우고기

 아일랜드산 프리미엄 블랙 앵거스,

와규보다  더 비싼

한우고기는 숯불에 지글지글 

폭염속 우리집 테라스는 숯불열기까지 더해

이 날 우리집은 

이열치열 이판사판  장관이었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번 더위

다 들 건강하시길

저는 냉방병인지 더위를 먹은건지

영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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