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도 덥다했다. 

그냥 조금 더운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이 덥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록적인 폭염의 해로 

1994년의 여름을 떠올리는데

그 해 여름은 다행히 우리가 한국행을 하지 않았으니

개인적으로 와 닿지 않아 모를일이고

1994년 한국여름에 버금가는것이 

독일은 2003년 여름이었다.

독일뿐 아니라 서유럽전체가 사하라여름이라며 

왼갖 기록을 다 갱신하였는데

이번 더위는 더 길었고 더 강렬해서 

2003년을 능가할 모양이었다.

칠월초 쯤 여름이 시작되자

더위에 특별히 취약한 작은 넘의 예의 투덜대는 소리가

서서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매사에 리액션이 큰 작은 넘답게

전화할때마다 방방 흥분된 목소리로 

더워죽겠다는 소리를 달고 있었다.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 한대 없으니 오죽할까

미국도 덥긴 매한가지

큰 넘이 가 있는 도시의 여름 날씨가 원래 그런지

아니면  올해 특별한 폭염인지 모를 일이지만

그나마 동생넘이 들으면 땅을 치고  부러울것이

집이고 연구소고 

너무 냉방이 잘 된다는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큰 넘은 또 추위에 약하다)

우리 가족들 대화는 삼각편대를 형성해서

한달반 전부터 서로 서로 누가 더 덥네로 시작해서

어디가 더 덥다는 결론으로 이야기를 끝내곤 했다.

그러다 독일도 정말로 덥긴 덥구나 라는 생각이 든것은

어느 시점부터 작은 넘의 눈이 가늘어지면서 

더 이상 더위이야기니 뭐니 

일체 말수가 급격히 줄어든것을

보고 알수 있었는데

방방 흥분 잘 하는 놈이 착 가라앉은듯 말수가 없으면 

그건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뜻이다.

놈을 위로할 작정으로 

"여기 오늘 사십도야 " 말을 건네보았지만

"엄만 뭔 걱정이야 에어컨 있는데..."

  볼멘 목소리가 들려왔다.




꿈에 그리던 에어컨이(우리가 아닌) 있는 집으로 

드디어  작은 넘이 돌아왔다.

바리바리 또 부탁한 물건들을 싸들고서

사실 이번 여름은 (아직도 진행형이지만)

너무나도  더운 나머지

장보기 리스트를 써 보낼 의욕마저 상실할 정도였다

놈이 떠나오기 삼일전에서야 

겨우 리스트를 보낼수 있었는데

말은 의욕상실이라고 했지만  

막상 부탁거리를 떠올리자 줄줄이 길게도 써내려갔다

우리는 마일리지를 모을 요량으로

한 항공사의 표만을 구입하는데

녀석이 이번에 구매한 비행기표에는 어찌된 영문인지

 비즈니스 뭐뭐란 말이 붙으면서 

23킬로 가방을 무려 세개나 

들고 갈수 있다는 티켓이라고 했다.

"엄마 꿈을 마음껏 펼쳐봐 !!!

갖고 싶은거, 먹고 싶은거 다  말해!!!"

더위를 잔뜩 먹어 만사가 귀찮아진 작은 넘이

그래도 떠나오기 며칠전부터는 기분이 업 되었는지

들뜬 목소리로 장보기를 자처해왔다.

놈이 기분 좋아진 틈을 타서 리스트를 보내고 나니

냉장식품들을 사는것 까지는 어떻게 산다치고

하루를 보관하였다가 또 한나절 기차를 타고 공항까지,

다 상해버리지는 않을까 무더운 날씨가 

 또 걱정이 되는거였다.

에구 꼭 이렇게 먹고 살아야 하나 

아주 잠시동안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지만

가방 세개의 유혹은 커서 

마지막 날까지 리스트는 점점 길어졌다


그녀의 사연있는 선물

스펠트 밀가루와 스펠트밀누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쨈,사우어 키르쉬 


녀석은  묵직한 가방 세개, 

 진짜 칠십여 킬로를 들고 나타났다.

차가 있는 친구와 함께 

새로 이사한 집 근처 디스카운터 수퍼를 

녀석의 말에 의하면 싹 쓸어담다시피했다고 한다.

 아이구야 아포칼립스가 따로 없네




스펠트밀가루와 함께 

그녀가 보내준  장바구니 

그러고 보니 독일에는 참 멋진 장바구니가 많다.

내가  독일여자들 멋있다고 생각하는 모습중 하나는

젊은 여자고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이고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모습인데

정말 멋스럽다. 

(장바구니 든 중년의 신사들도 멋있긴 했다.)

아 실용적이고도 멋스런 디자인의 장바구니들이 

얼마나 많은지

디자인상까지 받은 저 장바구니(가방)는 

플라스틱마개안으로 

또로록 말려들어가게끔 제작되어있다.

 부피도 작고 무척 가벼워서

평상시 가방안에 넣어 다니기도 좋고...

아직 많은것을 기억하고 있는 고마운 그녀가

내 장바구니사랑을 잊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리스트목록 1호였던 종류별 치즈

구멍이 찔끔찔끔난 틸지터 Tilsiter는

고무 씹는 맛이 났던게

 왕년의 내 장바구니에 들어가 있을 일은 

거의 없었을터인데

어쩌자고 이것도 집어 왔는지 

그렇지만 여기서는 귀하신 몸 아니신가  

맛있었다.

바바리아 블루는 말할 필요도 없이 감동이었고

거 아들아

디스카운터 수퍼 말고 

이왕 사오는거 치즈전문매대에

갔다 오질 그랬냐 

프랑스,스위스 치즈도 좋고

독일 떠나오기전에 맛들었던

 영국 블루치즈 스틸턴 같은거 ...라고 말했다간

앞으로 일체 국물도 없을터니

그저 맛있다며 고맙다며 꿀떡꿀떡 삼킬수밖에 






녀석이 돌아오기가 무섭게

 다시 우리집은 바쁘고 시끄럽게 돌아간다.

영감과 나는 그간 굶주렸던 독일빵과

치즈, 슁켄 등속으로 차린 아침밥상으로,

작은넘은 이 무더운 여름날 

아침부터 국물을 찾아대는 통에

소고기국을 끓여 한 상,

고된 시집살이가 시작된것이다.

삐질 삐질 땀을 흘리며 

아침겹상을 거의 다 차려갈 무렵

큰 넘에게  온 영상전화

스마트폰속 큰 넘을 식탁가운데 앉혀두고 

온가족이 모여 옹기종기 아침식사를 한다.

"이 넘땜에  우리 곧 망할것 같아 "

동생넘이 온 이후부터 벌어진 일들을

미주알 고주알 일러바쳤다

예상은 하였지만 

작은 넘은 에어컨에 마치 한이라도 맺힌듯

아래위층 24시간  풀가동중이다.

희망온도 22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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