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디자인의 창시자였던

페터 베렌스가 1901년 디자인한

아르 누보양식의 육각형 찻잔서비스





<독일 디자인 연맹 100주년> 

기념 전시회를 다녀왔다.

시골살이에다

눈,귀를 닫고 사는 형편이라

미술관이니 음악회니 

호사를 누릴 일이 전혀 없을것 같지만

그래도 간혹씩 나들이 할 기회가 생기곤 하는데

 그건 잡초들과 온갖 잡벌레들과  

씨름하고 사는

우리 처지를 딱하게 여기는

사랑스런 젊은 친구들이 몇 있기 때문이다.

서로 안부가 궁금할 즈음이면

그냥도 밥자리겸 술자리를 만들기도 하지만

이 친구들은 고맙게도

 이런 저런 전시회니 연극이니

시골사람이 쉽게 못 누릴 

도시의 문명세계로 우리를 한번씩

끌어내주곤 한다.

아 그러고보니 독일에 살때부터 그랬다.

정말 이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독일생활이 꽤나

가난하고 초라했을터

"관심 있으실 전시회 같아요.

읍내 함 나오셔야겠어요!!"

우리의 문화담당 L작가로부터 

연락을 받은건 유월말께였다.






독일 디자인 100주년 전시회는

2010년 디자인연맹( Werkbund) 

탄생 100주년을 기념으로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순회전시중인데

우리나라에는

성곡미술관에서 지난 5월 말부터

8월말까지 열리는 전시회였다.

L작가가 링크로 보내준 포스터에는

오래된 티포트들과 함께

발터 그로피우스, 알바 알토, 미스 반 데어 로에,

아르네 야콥센,빌헬름 바겐펠트...

나같은 무식쟁이라도 알수 있는 

쟁쟁한 현대건축가들의 이름이

주욱 나열되어 있었다.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오호 이런 대가들의 작품들이...

좌작가 우건축가

 내 개인가이드선생들을 모시고

친절한 설명을 들을 생각을 하자

문자를 읽는 순간부터  뿌듯해져왔다.

 음흉한 내 꿍꿍이속도 있고 해서 

L에게  당장 날을 잡자고 했다.

그런데 이노무 날씨가 문제

세상에 더워도 너무 더운거였다.

이때부터 시작  칠월 팔월 

장장 두달여간 하루도 쉼없이

끔찍한 폭염에 시달릴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말이다.

 두어번 L과의  약속이 어긋나는 가운데

 팔월말 전시회가 끝나기 며칠전이 되어서야

겨우 미술관행을 결정할수 있었다.

가이드선생들과의 만남은 

결국 다음 기회로 미룬채




 반갑게도 아는곳을 여기서 만나다 


독일 관련 전시회라 

 퍼뜩 P 떠올랐다.

이런일에 있어서 

의기투합이 잘 되는 그녀와 번개팅은

그야말로 번개처럼 이루어졌다.

 경복궁역을 나와 물어물어 성곡미술관에 도착하니

그녀는 미리 와 미술관안 언덕벤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폐관까지는 두시간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도슨트의 설명이 있는 타임은 놓쳐버렸으니 

두개의 동으로 나누어진 전시관을

시간내에 보려면

  부지런히 스치듯 전시물들을

 훑고 지나가는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와 정신없이 인사를 나누느라

 1907년 디자인연맹 창립시기부터 

시작해야하는것을

 중간부터 가로 지르는 바람에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버렸다.


우리가 8,90년대초 젊은 시절을 같이 보냈던

도시에는 세계 건축가들의 성지로 알려진

유명한 <바이센호프 주거단지>란 곳이 있었다.

Weissenhofsiedlung

" 어 여기 기억 나죠? " 

 당시부터 우리주변에는 

건축가 친구들이 많이 있던터라

귀에 닳도록 들은 기억이 났다.

그때 건축가친구들은 모여 앉았다하면

유별나게 전공이야기 하기를 좋아하며 

잘난척을 해대는 통에

나머지 비건축학도들끼리는 또 시작이다며

노골적으로 면박을 주곤 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 어깨너머로 자주 들었던게 

이 주거단지 이야기였다 

(용서하시라 에구 그때 좀 잘 들어 놓을껄 ㅋ)

1927년 슈투트가르트에 지어진

바이센호프 주거단지는

건축에서의 일대 혁명이라고 한다.

여전히 세계적으로 건축학도들에게 메카인

이 곳을 이삼십년전엔 당연히 

관심 있었을리 만무하다.

 그 유명한곳을 

일부러 피해 다니기도 쉽지 않을텐데  

인근에 있는 숲속으로만 

부지런히 산책을 다녔던 기억이 난다.

건축가 승효상씨가 

세계도시 건축순례코너에서

동행한 사람들에게 기를 쓰고 설명을 해야했던

이 건축물의 의미를, 

이 위대한 건축가들이 독일 상품디자인에

어떤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

 무식한 내 눈을 새삼 원망하고 있는데

 '이거 대학기숙사건물이랑 비슷하네요.

난 이런 상자곽같은거 싫더라"

P가 투덜거렸다.

"맞아 딱 그 기숙사삘이 나네요"

 슈투트가르트대학기숙사를 

어쩌면 르 코르뷔지에의 후계자들이 지었었나?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 읊는다는 식으로

건축가 친구들 옆에 수십년 따라다니다보니

 르 코르뷔지에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등을 

겁도 없이 주절거리고 있다 어흠)

폐관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미술관안은 젊은 관람객들 

내눈엔 미술,디자인, 건축을

전공하는 사람들로 적당하게 붐볐다.

무척 비싼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왼쪽부터 1930년대 빌 게이츠의 모습 ㅋ

아래 중앙이 미스 반 데어 로에


슈투트가르트 미술관에 

카메라쌤과 같이 관람할때의 일이다.

미술관 복도의 좋아보이는 가죽 철제 의자에 

편안히 앉아 있는데

쌤이 내게 한 말

"저어기 행님

지금 앉아 있는 의자요! "

어디 잡지에서 본 적이 있는 

고급의자로만 알고있다고 하자

행님 엄청 무식하십니다요 라는 표정으로

미스 반 데어 로에 라는 

유명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라고 

설명을 길게 해주는데

Mies van der Rohe 란것은

나중에 알게 된것이고 

차마 Miss 라고 이해한것은 끝끝내 숨겼다.

행님 진짜 무식하십니다요 라며

쌤들이 안 놀아줄까봐 ㅋ

 

 


반갑게도 수집한것을  만나다.


"난 솔직히 독일 디자인 백주년 이래가지고

뭐 디자인사적 물건들이 대개 많을줄 알았어요.

근데 죄다 읽어야 하는것들 뿐이네 "

전시관벽을 따라 시대별로 포스터와 설명이 

눈이 아프도록 작은 활자로 되어있는데다

그녀 말대로 과연 물건(?)들은 얼마 보이지 않았다.

 건너편 전시관에  따로 전시되어있나 하고

인내심있게 인쇄물들과 포스터를 읽어가는데

물건들과 포스터옆의 짧은 설명글중 

단순한 지명이나 사람이름에서부터 

오탈자가 하나 둘도 아니고

계속해서 그것만 눈에 띄자

설명글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아니 요새 우리말 잘하는 독일사람들도

부지기수던데 이런건 한번만

감수를 받았어도 되는거 아니에요

너무 성의가 없는거라며

 내가  투덜거리자

이십년전 귀국한  P가 

자기는 이젠 이런거에 흥분하는것도 지쳤다며

고개를 내 저었다.

속으로만 꿍시렁 꿍시렁 대고마는 누구와는 달리

 내가 알고있는 깐깐한 성격의 그녀는

더군다나 지금부터 이십여년전이었다면

 결단코 그냥 넘어갔을리가 없다.

매사 싸웠을게 틀림없다

 적극적으로  틀린것을 바로 잡으려

조목조목 따져들고 개선책도 내 놓으며

의견을 개진했으리라

그녀는 그사이 은발의 헤어스타일만큼이나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뭘 그딴걸 갖고 흥분하냐는 투였다.

흥분하다가 발견한 포스터

" 저거 빨간 테두리 티포트들 있잖아요

그리고 글라스 화병들

 다 내가 수집한것들이네  "

헤벌쭉 자랑을 늘어놓고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였던 

헤르만 그레치가

1931년 아르츠베르크 도자기를

위해 디자인한 Form 1382

밀라노 트리엔날레 금상수상작품이기도 하다.

제2전시관에서 발견하였다.

 P에게 설명을 하며 계속  잘난척을 해댔다.


이 티포트와 찻잔은 쌤들도 

 침을 흘리며 부러워했는데

벼룩시장에서 이걸 구입했을때는

헤르만 그레치니 독일 디자인연맹이니

바우하우스란것도 모를때

오로지 나의 심미안(응?)으로 집어들었던거여서

다른건 몰라도 <좋은 형태>를 알아보는

기본적인 눈은  갖고 있지 않냐며

나도 쌤들에게 조금 잘난척을 할수 있었다. ㅎ










마지막 코너였던 제 2전시관의 3층

 오십년대 디자인제품들이다.

삼사십여년이 지난 팔구십년대

유학생활에서 사용했던 물건들도 보이는데

(사진에는 없지만)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젊은 시절의

우리들의 세간살이를 보는 느낌이어서

 감회가 조금 새로웠다.

두어시간 

그래도 (옛)독일에 흠뻑 빠져 들었는지

미술관을 나오자 

마치 컴컴한 영화관을 막 나왔을때의

 낯설은 현실감같은게 와락 느껴져왔다.

미술관앞 밥집에서 밥을 먹고

걸어내려와 서촌근처 어디에서

커피를 마시고 P와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지는데

바람이 몹시도 어지럽게 불어댔다.

재난급 태풍이 예고된 전날이었다. 








11월 2주 이 블로그 인기글



맨위로
통합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