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 전날 우리집 점심


고구마와 렌틸콩이 주재료인 수프

<Suesskartoffel Linsen Suppe>

뉴스레터로 받아보는 독일음식잡지에서

최근 소개 받은 메뉴다.

각종 곡물, 밀가루등이 들어있는 서랍속을 뒤졌다.

오렌지색 렌틸콩이 다행히 보인다.

에구 하구 많은 날들 중에 

명절 전날 한가로이

평상시에도 하지 않던 

수프나 끓여댈 생각을 하다니

청개구리 날라리 명절주부가 따로 없네 

쉬이 구할수 있었던 굵은 밤 만한 

보라빛 샬롯만 제외하면

재료도 간단해서 얼른 행동으로 옮긴다.

"우리는 추석 준비 안 하나?"

부엌일에 전혀 관심없는 영감눈에도

꺼내놓은 렌틸콩과 고구마, 낙엽같은 월계수이파리가

추석과는 무관해 보이는게  불안한 모양이었다.

"다 준비되어 있고 송편만 한 팩 사면 되 "

그래도 변명을 하자면 

명절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것은 아니고

성묘상에 차릴 한 접시정도의

전과 산적재료들은 

이미 냉장고에 준비해 놓고 있었더랬다.



재료: 고구마, 오렌지색 렌틸콩, 치킨스톡, 샬롯(양파),

버터 한큰술, 월계수 이파리 한잎, 물

소금, 후추







그리고 수프에 고명으로 뿌릴

차이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는 이태리 파슬리)


우리집 허브 텃밭에 뿌리를 잘 내려준 차이브는

6월 낙원상가에서 뵌 초면의 K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이런 저런 대화중에 초면임에도

식재료 구하기 힘들다고 꽤나 징징댔던 모양이다.

서양식재료 파는 사이트와 함께

차이브뿌리를 보내주겠다는 말씀

왠만한 선물은 정중히 사양했겠으나 (응? ㅋ)

차이브라고 하지 않으셨나

독일에서도 이상하게 차이브농사는 잘 안되어서

필요할때마다 한 줌씩 봉지로 사서 쓰곤 했던

차이브와는 영영 이별이구나 하던차에

그것도 뿌리째라니 눈이 번쩍 뜨일 선물이 아닐수 없다.

차이브가 지천이어서 부추전 굽듯이

차이브로 전도 부쳐 먹는다는

그녀는 식물원이 직장이라고 했다.

내게 일하고 싶은 직장이 있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식물원이다.

날마다 각종 꽃들과 나무들과 함께 하는 일터라면

 꼴보기 싫은 사람들과 부대끼지도 않을테고

  아무리 무딘 손가락이라도 

언젠가는 초록엄지가 될터이니...

차이브로 전을 부쳐먹고 싶어서가 절대 아니라. ㅋ

K님 감사합니다. 인사가 늦었어요 




 동그란 식탁 매트를 깔면서

접시가 들어있는 서랍을 열었다 닫었다 

그릇들을 이리저리 매치를 해보자

영감이 떫떠름한 표정으로 식탁을 째려보고 있다.

주구장창 한식 지겹지도 않나

한끼라도 이런거 수월하게 먹어주면 좀 좋아

이러니 내가 요리블로그를 계속 할수 있겠냐고 ㅋ

하는수 없이 냄비에 물을 얹고 

누룽지라도 끓여야했다.




독일 고구마들은 속이 주황색이어서인지

잡지속 사진은 수프색이 훨씬 더 노랬다.

내가 끓인 수프는 마치 녹두죽같은 

누리끼리한 색을 띠기도 했는데

오랜만에 먹어보는 수프맛은 고소하니 훌륭했다. 

적어도 누룽지보다 스무배 정도

점심을 먹고 급할것도 없이 

어슬렁 어슬렁  마트로 가보니

양평읍내 조그마한   마트앞 주차장은 

주차요원을 두명이나 배정시켜둘 정도로

라스트 미닛 명절 장보기로 북적인다.

입구에 동산처럼 쌓아둔 식용유선물세트니

스팸선물세트 코너는

몇번을 봐도 재미있는 풍경이다.

가만 금자씨도 포도씨유를 쓰던것 같던데

어디 포도씨유세트 없나 ㅋ


추석날  아침 서둘러 집을 나섰다.

바구니에 성묘상에 올릴 전과 산적, 그릇, 수저, 컵,

가면서 마실 커피를 보온병에 담고보니

 마치 피크닉을 가는듯한 차림새가 되었다.

<청명한> 가을아침이었다.

청명이란 단어를 

이렇게 딱 떨어지게 써볼때가 있었을까

맑고 푸르른 하늘!

가을 아침햇살이 길가 가로수이파리에 

반짝반짝 눈부시게 부딪히고  

나무이파리들은 산들산들  

아침바람에 부드럽게 나부끼는게

 절로 탄성이 나왔다.

" 아 참 날씨 좋네....

바로 이런걸 보고 청명하다고 하는거지?! "

감탄하지 않을수 없는 

기분 좋은 맑은 날씨였는데

날씨처럼 청명했던 기분은

오분이 채 안되어 사단이 나버렸다.

영감의 신기한 재주가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작동을 하였던것이다.

간단한 말 한마디로 

마눌 기분을 순식간에 엉망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의 소유자가 바로 우리집 영감인데

추석날 아침나절

 영감의 신기방기한 한마디와

툭하면 터지는 내 눈물보가 만났으니

환상의 콜라보였던 것이다.

청명한 날씨라고 랄랄라 좋아했던게 무색하게

고개는 외로 꼰채 연신 휴지 뽑아대기 바쁘고...


양평을 벗어나서 얼마 안가서부터

 중부내륙고속도로길은 

짙은 안개로 한치앞이 안 보이는 구간도 있었다.

한 참을 지나서야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가는 내내 말 한마디 안 나누는 가운데 

차는 막히지 않고 씽씽 달렸나보다 

생각보다 일찍 산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영감이 

잠시 주변을 왔다갔다 하더니 

슬그머니 와 손을 내밀었다.

"여기 밤 많이 떨어져 있네"






아주버님네와 만나기로 한 시간은 오전 열한시

 먼저 도착한 우리는 자리를 펴고 상을 깔았다.

침대에 앉아 주말 느긋히 아침을 먹을수 있도록

접었다 폈다 할수 있는 조그만한 상인데

산소앞 잔디밭에 펼쳐 놓으니 

그 크기가 딱이었다.

연이어 도착하신 아주버님네는 술과 과일 담당,

시부모님 산소에 절을 올리고

도란도란 둘러앉아 청주잔을 기울이는데

나즈막한 산 아래 과수원  펼쳐지는곳의 

풍경과 날씨 또한 기가 막히게 좋았다.

아마도 성묘에서 이런 편안한 기분은 

처음 느끼는것이었을텐데

나만 그런게 아니라 

다들 호젓하니 즐거운 기분들이었다.

음복으로 나누어 마신 경주법주 술맛은 

또 얼마나 맑고 순한지 

기분좋게 음복주가 들어가자

청명이란 단어가 또 다시 떠올랐다.

좌우앞뒤를 둘러보니 모두 다 내편이신지라

의기양양 아침에 벌어진 사단에 대해 

고자질을 안 할래야 안 할수가 있나

아주버님을 특히 어려워하는

남편은 말 한마디, 꼼짝도 못하는 모습이

얼마나 꼬숩던지 ㅋ


산소 주변으로 밤나무들이 많다.

우리가 앉아 있을때도 

투투툭 사방에서 밤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밤들은 마치 보석처럼

수풀아래 떨어져 있어

자꾸 허리를 굽히게 만든다.

빈 바구니에 알밤들이 소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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