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 

여름은 아주 컸고

당신의 그늘을 해시계에 올려두세요

그리고 들판에 바람들을 놓아주세요 

마지막 열매들에게 명하세요.

가득해지라고요

그들에게 이틀 더 남쪽의 날들을 주세요,

그리고 몰아주세요

마지막 단맛을 무거운 포도들에게로....


<Herbsttag>

Der Sommer war sehr gross,

Leg deinen Schatten auf die Sommeruhren,

und auf den Fluren lass die Winde los

Befiel den letzen Fruechten voll zu sein

gieb ihnen noch zwei suedlichere Tage

draenge sie zur Vollendung hin und jage

die letzte Suesse in den schweren Wein


뮌스터 Münster 에 살았던 

시인이 번역한 릴케의 가을날이다.


뮌스터는 우리가 살았던 곳에서

북서쪽으로 오백여킬로 떨어진 

인구 삼십여만명의 작은 대학도시이다.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오라버니는 유학을 염두에 둔, 

첫 배낭여행을 오게 되었는데

우리집에 와서 며칠 지나지 않아

뮌스터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선배를 만나러 

우여곡절 기차를 타고 다녀왔던 그 도시이다.

싼 기차편을 타느라 몇번을 갈아타서 

가야했던 먼곳에 있던 도시

뮌스터대학은 고고학이 유명했던 모양이다.

오라버니도 그 선배도 시인도

고고학 전공이었다.

어림잡아 스무번도 넘게 다녀왔던

네델란드바다도 방향만 살짝 틀면 

뮌스터를 지나쳐 갈법도 했는데

우리는 삼십년이나 살면서 

한번도 뮌스터는 커녕

그 근처로도 지나가보지 않았다.

지난 여름 시인의 책을 주문했다.

구십년대초에 독일유학을 온 시인이

번역한 옛 독일시인들의 시와 

<비가 많이 오고 종소리가 자주 들리고

그 둘이 한꺼번에 도시를 채우면 일요일이라는 

농담도 있는 도시> 뮌스터에 관한 이야기였다.

급한 성질을 죽여가며

한장 한장 아껴가며 책을 읽어내려갔다

 얼마나 많은 밤들을 

시인과 함께 한번도 가보지 않은 

뮌스터 구석구석을 

함께 돌아다니고 있었던지

어떤 날은 그녀의 뮌스터 거리를,

또 어떤날은 우리가 살던곳의 낯익은 거리들을

밤새 헤매고 다녔었다.




독일도시는 크고 작고간에 대개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설계가 되어있는데

광장에는 어김없이 큰 교회가 있다.

교회옆광장에는 토요일 수요일 이른 아침 장이 선다.

시인의 도시인 뮌스터에도 

토요일 수요일 장이 섰는데

도시 근처의 농가에서 재배한 채소들, 치즈, 고기,

 달걀,농가의 빵들, 새벽에 꺽어온 싱싱한 꽃들을 

파는 장이었다. 

우리가 살던곳의 토요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뮌스터는 네델란드와 가까와서 북해에서 갖 잡아온

생선들도 많이 판다고 했다.

광장에 열린 아침시장은 

얼마나 조용조용 활기가 넘쳐나는곳인지

근처 노천카페에서 커피와 아침을 먹으며

시장의 붐비는 인파들을 구경하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이었던가

노천카페에서 들리는

교회종소리는 또 얼마나 평화로웠던가

시인은  드문드문 독일음식들,

 먹는 이야기를 써놓기도 했다 . 

담담한 어조로

라이베쿠헨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가 살았던 곳에서는 

스위스쪽이 가까워서인지

라이베쿠헨보다는 뢰스티라고 더 많이 불렀다.

감자를 갈아서 계란,밀가루, 양파등을 넣고 

지져 먹는 감자전같은것인데

라이베쿠헨은 집에서 해먹는것보다

시장이 열리는 광장이나 크리스마스시장이 섰을때

사먹는게 정말 맛있다.






라이베쿠헨 Reibekuchen


<....시장한편에는 감자를 강판에 갈아 

기름에 지져서 만든 라이베쿠헨을 판다.

우리식으로라면 감자전이다.

우리는 전을 식초가 들어간 간장에 찍어 먹지만

이곳 사람들은 사과를 갈아서 설탕을 넣어 끓여

차갑게 식힌 소스를 곁들인다.....>


압펠무스 Apfelmus 병조림은 나의 비상식량중 하나로

지하실 선반대에 항상 기본 몇병 비축되어있었더랬다.

한병이면 라이베쿠헨을 서너번은 

 해먹을수 있는 양이 나온다.

구름이 잔뜩 낀 얼마전 가을날

우리집은 사과졸이는 향기로 오전내내 달달했다.

압펠무스에는 사과, 레몬,설탕이 들어간다.

점심으로 라이베쿠헨을 차려놓자

아니나 다를까

사과무스를 바르고 있는 폼이 영 마뜩치 않다.

영감은 시인이 말한대로 한국식 감자전으로 

간장을 곁들여 먹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시인도 기름에 지져낸 뜨거운 감자전을

간장에 찍어 먹고 싶었을까

오랜 외국살이에 

음식만한 지독한 향수병이 또 있을까싶게

한국식도 아니고 독일식도 아닌

국적불명의 음식들로

그리움을 달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시인이 살던곳에도 한국사람들은 있었을텐데

그녀는 누구와 밥을 먹었을까

독일에서 나는 그녀의 이름을 들어본적이 없다.

부끄럽게도 귀국하고 나서 

시인의 존재를 알게 되었던것이다.

시인이자 고고학자의 눈으로 본 

독일도시이야기와 그녀가 번역한 시!!

시인이 번역한 독일시를 읽는데 어떤 시들은

가슴이 부르르 떨려왔다

시번역은 이래야 했다.

가전제품 사용설명서라던지

의약품설명서, 레씨피를 번역할수 있어도

시를 무슨 수로 번역을 하나

시는 시인만이 번역을 할수 있다.

인터넷에는 수년전부터의 

그녀의 근황이 기록되어져 있었다.

누구와 대담을 했으며

언제 다녀갔는지, 책 출간 등

희끗희끗 단발머리에 가까운 생머리컷트의

화장끼없는 얼굴을 인터넷 기사로 만나면

왠지 모르게 반가와서 

눈시울이 붉어질때도 있었다.

그러던 며칠전

그녀에 대한 뉴스를 접했다.

너무나 놀랍게도 부고소식이었다.

그 젊은 나이에 

투병, 위암 ,별세,수목장 이런 단어들이

모니터속에서 어지럽게 떠다녔다

흐린 가을날씨와 더불어 요 며칠은 

내게 몹시도 우울한 날들이었다.

뮌스터 도시 한가운데

양로원 근처에 푸스테블루메라는 

꽃집이 있다고 했다.

푸스테블루메Pusteblume 는 

민들레홀씨를 가리키는 독일말로

불면 날아가는 꽃이란 뜻이다.

꽃가게 앞에서 

인간의 삶도 이 이름과 비슷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던 시인

<후 하고 불면 날아가버리는 한 인간의 시간>

맑고 한없이 가벼워진 시인은 

멀리 멀리 날아가고 있을것이다.

푸스테블루메처럼

 

 



 







맨위로
통합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