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에도 안개가 짙게 끼기 시작했다.

가을이 깊어졌다는 소리이고

겨울이 멀지 않았단 징조일것이다.

안개는 보통 아랫마을쪽으로부터 올라온다.

우리집은 약간 높아서  산과 집들이 안개에

 포위되어 올라오는  풍경을 볼수 있는데

어떤날은 얼마나 짙은 안개속인지 

바로 건너편 산속 집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안개와 독일가을은 

내게 항상 같이 따라다니는 이미지다.

노랗게 물든 우리집 자작나무,

정원끝에 서있는 스웨덴레드색의 

가르텐하우스 주변의 쌓인 낙엽들,

그리고 안개로 휘감긴 포도밭언덕,

그 아래  안개에 갖힌 빨간박공지붕의 집들이 

가을이면 자동으로 떠오른다.


이삿짐컨테이너를 떠나 보내놓고 

휑한 마음으로 큰 넘에게 갔을때였다.

그때 큰 넘은 몹시 바쁠때여서

이삿짐이 떠날때 집에 올 형편이 못되었다

대신 작은 넘이 친구 몇을 데리고 와

우당탕 농담과 장난으로

 내가 헛헛해할 틈을 안 주고 분위기를 띄우며

뒷일을 거들어주었더랬다.

"엄마 괜찮았어?"

저녁무렵 큰 넘에게 전화가 왔었다.

큰 넘이 오지 않은것은 정말 잘 된일이었다...





아들넘들과의 작별의 시간은 점점 다가왔다.

정든 모든것들과의 이별

그 해 가을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려온다.

얼마전 찾아야 할 서류가 있어 

컴퓨터속을 샅샅히 뒤지게 된 일이 생겼는데

외장하드속에서 찾았던 서류철이 튀어나왔다.

서류아래쪽  2016년 10월,11월 사진폴더와 함께!

묻어두었던, 잠시 잊고 있었던 순간들이 기억들이

와르르 쏟아져나왔다.

큰 넘에게로 가는 길

  A8 아우토반사진이 첫사진이었다.

큰 넘이 공부하던 도시로 가려면 

뮌헨 가는 8번 고속도로를 타야한다.

내 기억으로 차 안에서 찍은 

아우토반 주변풍경이 몇년에 걸쳐 여러 장이나 되는데

하나같이 비가 오거나 휘날리는 눈발속이거나

다 쓸쓸한 풍경들이다.

이 날도 잿빛 하늘에 눈 비가 섞인 풍경이었다

녀석이 지금 살고 있는 도시에는 처음 가는 길이다.

 이 길을 또 언제 올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지 않을까...

그 무렵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몹시 지쳐있었다.




 먼저 도착해서

큰 넘이 임시로 살고 있는 집근처를 잠시 산책했다.

주민수가 아주 적은 외딴 마을이었다.

근처에 울창한 숲들이 있는 호젓한 마을이지만

젊은이들이 살기에는 너무 조용한 마을이었다.

겨울이면 눈이 많아 어떨때는 차가 눈속에 파묻혀도

밤에는 오고 가는 차가 없어 

도움 받기도 힘든곳이라고 했다.

산책중에 녀석으로부터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큰 넘은 우리를 잠시 바깥에 세워둔뒤

방으로 후다닥 혼자 뛰어올라갔다.

언제나 그랬다.

(강아지판인 방꼴을 대충이라도 치워보려는 ㅋ)

어수선했지만 방은 썰렁하도록 넓었다.

우리는 릴레이이사로 죽을 정도로 지쳐있던터라

평상시 같으면 잔소리를 늘어 놓았겠지만

휘 둘러보고는 침대에 벌렁 누워버렸다.

큰 넘도 옆에 따라 누웠다.

이런 조합으로 누워보기도 정말 오래만이었다.

"엄마 기억나지?

바로 저 창문으로 여름에 

엄청나게 모기떼가 몰려왔다고..."

이사하고 모기차단제니 방충제 살 시간이 없어

거의 일주일을 밤이면 밤마다 

모기떼들에게 시달렸다고 했었다.

창밖의 풍경은 더할나위없는 목가적 풍경이었다.

지난 봄인가 여름인가 홍수로

느닷없는 모기떼들이 출몰했다고 했다.





  저녁예약을 해 놓은곳으로 집을 나섰을때는

이미 컴컴한 밤중이었다

여기는 큰 넘이 여러번 와본곳으로

내 마음에도 들거라고 했다.

비노텍이네...

시내 한가운데 있는 식당으로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었다.

식당안은  크리스마스 장식이 한창이어서

들뜬 연말분위기가 났다.

큰 넘은 늘 그렇듯 콜라 제로를 시키고

아부지는 맥주를, 나는 비노텍이어서 와인을 주문했다.

프랑스 와인을 위주로 하는지

프랑스와인지도가 걸려 있는 비노텍이다.

그날 내가 마신 와인도 프랑스와인이었을것이다.






큰 넘은 닭가슴살인지 칠면조고기인지가 들어간

파스타를 시켰고 우리는 독일 남부지방의 

전통음식들을 먹으며

큰 넘의 인턴이야기를  들었다.

학교와는 완전히 다른 생활이었으니 

녀석은 조금 흥분되어있기도 했고

하는 일에 무척 재미를 느끼는듯했다.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날은 주로 부자지간끼리 

주고 받고 대화가 이루어졌다.







녀석을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데

아우토반으로 들어가는 길을 놓치는 바람에

국도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런 일도 처음 있는 일

남편도 나도 몹시 지쳐 있다보니 생긴 일이었다.

눈발에다 안개까지 한치 앞이 분간이 안되는

꼬불꼬불 산길로 이어지는 국도였다.

 빈 집에 도착하니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 

바닥에 깔아놓은 매트리스에 

지쳐 쓰러졌던 기억이 난다.



 



집에 데려다주고 떠나오는데

울보 엄마의 눈물을 보았는 모양이었다

"엄마 우리 두 달도 안 되서 다시 만나는거 알지?"

그 두달은 또 얼마나 힘겹게 지나갔는지

크리스마스 방학이 되자

아덜놈들이 다니러 왔다.

두달여만에 만나는 아덜놈들을 공항에서 만나자

시도때도 없이 터지는 눈물보가 

가만 있을리가 있나...

매번 공항에서의 이별은 여전히 힘든 가운데

 눈물바람은 조금씩 잦아들었다.

 세월은 잘도 흘러갔다.

지금 큰 넘이 있는곳은 

양평과 시차 열두시간이 차이가 나는곳

작은 놈과는 여덟시간이다. 

바빠서 연락 잘 못하는 큰 넘

 안부톡하는데 선천적으로 게으른 작은 넘

운 좋은 날은 페이스타임으로 스카입으로 

동시상영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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