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님을 뵈러 서울나들이를 다녀왔다.

 미세먼지로 연일 뿌연 봄날

 가로수 벚꽃들이 막 피기 시작할때였다

지난 여름 낙원상가에서 뵌 이후로

계절이 여러번 바뀌고 해가 바뀌었는데도

안부인사 한번  못 드린 불충이

머리뒷꼭지에 묵직하게 매달려있던터

더는 미룰수 없는, 라스트 미닛 순간에

죄송스러운 연락을 드렸던것이다.

부디 게으른 제자를 용서해주십사며 

봄날이 가기전에  뵙고 싶다는 청에

은사님으로부터 답신이 왔다.

아 오랜만에 소식 듣네...

늙어가는 제자에게 이제 하게체를 쓰시는 선생님

거꾸로 안부를 물으시는 은사님의 글은

 언제나 따뜻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식당에서

 뵙기로 약속장소가 정해졌다.

일찌감치 도착해서 박물관 안도 슬쩍 들러보고 

시간을 떼우다가 식당쪽으로 내려 가는데 

작은 인공호수가 보이고 그 옆에 자리한 식당은

그래서 상호가 거울못식당이다.

은사님이름으로 예약된 자리로 가는데

여느 한식당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알고 있는 한식당도 얼마 되지않지만은

 그 너른 공간이 적당하게 나뉘어져 있어 

사적인 대화를 조용히 이어 나갈수 있는 

모르긴해도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은 한식당일듯하다.

 박물관스런 서늘한 분위기하며

긴 낭하처럼 생긴 복도를 따라 들어갔다





 친구나 선후배들과 연락이 

거의 두절되다시피 살고 있는 탓도 있지만

은사님근황은 뉴스나 인터넷매체를 통해

소식을 들을때가 많다.

어찌된 셈인지 점점 더 맡겨지는 일이 늘어나...

조용히 물러나 생애의 마지막 글쓰기에

전념하실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는 말씀을

답신에 밝히셨는데

와중에 시간을 내어주시니 나로서는 황송할수밖에

남편은 은사님 만날일에 나보다 더 들떠

아침부터  서둘러야 한다며 채근을 해댔더랬다.

언젠가 남편을 보고 

참 천성이 밝은 사람이라고 하셨다는

말씀을 전해들은 뒤부터는 

더더욱 은사님의 열혈팬이 되어버린 남편이다  







 남편이 내 은사님을 뵌지도 햇수로는 

벌써 삼십여년이 넘었다

그간 몇번 뵐때마다 꼭 낑겨

꼽사리 한자리 차지하고 있은터라

왠만한 졸업생보다 더 자주 만났으니

이정도면 편입생으로 받아주셔야겠다고

내가  농담삼아 말하곤 했었다.

늦깍이 편입생영감과 동행한 서울나들이

거울못식당의 호젓한 분위기는 

 사람 북적이는거 싫어하는 남편도

꽤나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먼저 가서  세팅해놓은 그릇들을 구경하며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반가운 은사님내외분이 들어오셨다. 





이거는 귀국 축하하는 자리로 생각하고 

내가 낼테니... "

은사님은 언제나 이러셨다.

독일방문에서도 그러셨고 

한번씩 다니러 와서 뵐때도, 

지난번 낙원상가에서도 그러셨다

한번도 내게 지갑 꺼낼 기회를 주지 않으셨다.

아마도 그 예전 유학생시절의

 가난하고 불쌍한 학생신분이

 지금까지 이어지는걸게다.





정갈한 음식들이 코스요리로 나오는 곳이었다.

나오는 요리 하나 하나 입에 맞고

플레이팅도 훌륭하다.

깔끔한 미식가(?) 이신 은사님덕에

모처럼 눈호강,입호강을 하게 되었다.

지난번 데리고 가주신 인사동밥집도 

여느 식당과는 다른, 요즘 보기 드문 

노포가 주는 시간의 품위가 느껴졌던 곳

독일의 식당에서도 자주 가는 나보다도

 아마도 이건 원래 이런맛이 아닐것 같은데 

날카롭게 평가해내시곤 했다.





예전같았더라면

분명 따라해보고 싶은 김치누름적

굽이 있는 그릇은

따뜻했고 갖 구워온 전은 

바삭하고 간이 맞다.














 

아직 젊게 사는것 같은데....

넌지시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

연신 스마트폰을 꺼내드는 늙은 제자가

신기하셨던지 어쩌면 마뜩잖으셨는지 모르겠다

....선생님 제가 한때 

요리블로거놀이를 한 적이 있어서요 끄윽...

속으로 꿀꺽 되뇌이며 스마트폰을 

가방 깊숙히 넣어버렸다.

사진이 다 무에라고


이 식당은 음식들이 적당한 속도로 나와주는게

또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옆 테이블의 말소리가 들려오지 않은점도,

조용히 대화 나누며 식사하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호텔식당같은 서비스도

 마음에 들었다


선생님은 양평살이가 어떠한지

남편의 은퇴후 삶이 어떠한지 물어오셨고

  천성이 밝은 편입생은

그간의 고초와 예상하고 있는 앞날에 대해

 밝은 표정으로 토로하고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부지는 산책코스로도 좋았다.

말로만 듣던 구상나무란것도 처음 보았는데

독일에서는 한국 탄넨바움으로 알려져 있다.

크리스마스트리용으로 

한 그루 심었으면 해서 알아보니

무척 귀하고 비싼 나무였다

 식물원처럼 잘 가꾸어진 나무들과

봄꽃들을 바라보며 걸을수 있는

여유 있는 길이 이어진다.

은사님과 남편이 앞서 걸으시고

사모님과 내가 그 뒤를 따라가는데

 교통이 좋으면서도 한적한 곳이라서

한번씩 오시게 된다는 말씀을 하신다.

번잡한 도심의 식당이었더라면

식사후 근처 카페를 찾아다니는 번거로움을

피할수 없을텐데 

공원같은 산책길로 막바로 이어지니 

그럴수 없이 여유롭고 한가로웠다.

사모님의 조용조용하고 맑고 나즉한 음성은

 마울브론 수도원 광장에서의 고즈넉했던 장면과 

슬쩍 오버랩되기도 했는데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다....

박물관 부지 너머로 희뿌연 도시풍경이 보인다.

 천천히 은사님뒤를 따라가자

 길은 자연스레 

주차장쪽으로 이어졌다.


녹음이 짙어가는  유월 즈음에 

양평으로 한번 시간을 내보시겠다는 은사님내외분

전원에서의 시간 흐름은 

산을 보면 금새 알수있는데 

우리집 테라스를 마주보고 있는 

작은 산중턱이 그렇다

얼마전까지만해도 듬성 듬성 

연한 녹색이었던 숲이

아침  저녁이 다르게 뭉실뭉실  

어느새 빈틈하나 없는 녹음으로 우거져버렸다.

유월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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