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대합실 맥도날드를

2주만에 또 와 앉아있다.

일찍 집을 나선 덕에 

사십분은 넘게 기다려야했던 기차시각

올 봄 금자씨가 딸을 뿌듯하게 바라봤던

경이로운 키오스크앞에 서서 커피를 주문했다.

오렌지색 머그컵에 담아준

뜨거운 커피잔을 들고 조심조심 

비좁은 좌석을 비집고 들어 앉다보니

금자씨와 세 번이나 마주보고 앉았던 

바로 그 자리이다.

건너편 금자씨 핸드백이 놓였던 자리에

시커먼 에코백을 던져놓고는

짧은 카톡을 보냈다. 

"엄마 나 지금 서울역 "

방긋 웃는 이모티콘앞 1자가 금새 사라졌다.

2주전 입원때 서울역에서 서성일때보다는 

그래도 훨씬 가벼운 마음이다.

조심해서 내려오라는 

 금자씨의 목소리에 힘이 없는게 걸리긴 했지만,


수술전 엄마는 몇년 상간에 

무슨 수술을 세번이나 받냐며

다 복이 없어서 그런거라며 우울해했다.

"요새 무릎수술은 수술축에도 안 든데 "

"뇌수술은 내가 그래도 인정

그러니 엄마가 수술은 딱 한번만 한거지 "

5년전 무릎수술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이번엔 절대 수술 안 받겠다며 

동네의원에서 주사로 약으로 

버틸때까지 버티신 금자씨

그러다 도저히 어찌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동생이 부랴부랴 수술날짜를 잡았던것인데

수술날이  다가오자 금자씨는

많이도 불안해하고 우울해했다.

"우리 엄마가(내게는 외할머니)가 

지금 내 나이에 돌아가셨거던...

요새는 너거 외할매 생각이 자꾸 난다 

이 정도면 나도 오래 살긴 살았제..."

전화 할때마다 옛날 이야기 

특히 외할머니 이야기가 잦아졌다.

"엄마 그 사이에 의료기술이 많이 좋아졌데...

구십노인이 수술받고 날아다니는거 

 지난번 명의인가 어딘가 TV에서 안 봤어? "

수술에 대한 불안감 또 지난번 수술후의

긴 고생이 생각나서 그러신줄 알았더니

눈물바람끝에 결국 아부지이야기가 나왔다.

" 너거 아부지 밥은 우짜꼬

너거들 고생 안시킬라믄

 너거 아부지가 먼저 가고 내가 가얄낀데  

하루라도 내가 더 오래 살아야하는데... "

아부지 삼시세끼걱정은 급기야 

금자씨꿈자리까지 몹시도 사납게 만들고 말아

내가 한참을 위로를 해야했다.

입원하루전날까지 금자씨는 아픈 다리를 끌며

평상시보다 더 바삐 움직이시는듯 했다.

"큰일이다 너거 아부지 

아무래도 진짜 오래 살것 같데이"

삼시세끼 정확한 시간에 맞추어

정량 꼬박꼬박 잘 드시는 아버지가

어떨때는 진심으로 걱정이 된다면서 

내게 여러번 하신 이야기다.

말은 그러면서도 엄마는 

아버지밥상 차리는 일에 지극정성

새벽 다섯시 아침식사,

오전 열시 간식타임,

11시반 점심식사,

오후 다섯시 저녁식사

아버지의 삼시세끼는 

정확한 스위스시계처럼 움직였다.

남들이 징글징글하다던 삼시세끼도 모자라

보너스로 간식타임까지!!!

미워 못살겠다시며 끓는 속을 

한번씩 내게 토로하면서도

꼬박꼬박 챙기는 간식들은

내용도 얼마나 다양하고 손이 많이 가는것들인지

젊은 나도 들으면 놀라자빠질 지경이다.

부지런한 금자씨의 손은 

도대체 언제 쉬나 싶게

찐빵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갖구운 부침개를 올리기도 하고

만두를 만들어 올리기도 하고

계절떡을 접시에 담아냈다.

그런 영감님을 홀로 두고 집을 비워야했으니

왜 걱정이 안 되실까

아버지의 보름간의 삼시세끼를 준비

냉장고에 냉동고에 가득 쟁여두고

그리고 사지멀쩡한 중늙은이딸에게까지

   반찬이 든 택배상자를 부치고 나서야 

엄마의 입원준비가 끝이 난듯 보였다.


수술하루전 입원날 

집에 계시라는 오빠와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옷을 차려입고 병원동행에 앞장서셨다.

다정하게 동부인하여 어딜 가신적이 있던가...

예상치 못했던 아버지의 행동을 

  바라보는 금자씨의 얼굴에 

뭐라 설명할수 없는 표정이 돌았다.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너거 아버지란 사람 원래 정이라고는 없다.

박복한 내탓이지 누굴 원망하겠노"

엄마의 표현에 따르면 아버지는 같은 말을 해도

팍 물어뜯듯이 말해

평생 상처와 한으로 남아있는데

엄마의 크고 작은 수술이 연달아 이어지자

눈에 띄게 순해지신것은 사실이었다

이 길이 두분이서 떠나는 

가을나들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병원에 도착했다.

이미 수술을 받은 환자들, 

다음날 받을 환자들이 섞여있는

병실로 안내를 받았다

연한 녹색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엄마를 

 내려보는 아버지의 그때 처연한 표정이란

아버지가 떠난 뒤 

원래 잠이 없는 엄마도,

 간이침대에 쪼그리고 누운 나도 

병원에서의 첫날밤을 설쳤다.

아버지도 빈 집에서의 

허전하고 긴 밤이었을것이다.

엄마가 제일 첫번째순서로 수술실에 들어갔다.

나이가 많은 순대로 수술순서가 잡히는데

금자씨가 환자중에 최고령이었다.

수술시간은 길지 않았다

입에 젖은 거즈를 문채 수술이 끝난 엄마가

다시 병실로 돌아오고

 아직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은 엄마옆에는

어느새 와 계신 아버지가 서있었다.

" 아버지 식사는 챙겨 드셨어요? "

"너거 어마이 해 놓은거 먹고 왔다 "

입원하던 날 간호사들에게 

어머 할머니 화장하시면 안되는데 라며

오해까지 받은 피부미인 금자씨의 

화사하고 뽀얀 얼굴은 오간데 없고 

파르라니 영락없는 노인환자얼굴이었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허허롭던 표정

엄마말대로 세번의 수술이니

아버지는 세번이나 이런 광경을 보셨던것이다

두분이 결국 이렇게 늙어가시는구나 싶자

눈 안쪽이 아려왔다.




병원에서 이틀밤을 보내고 양평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이번 수술은 지난번과 달리

예후가 좋은듯 보였다.

엄마의 목소리는 힘은 없지만 밝았다.

아침 여섯시면 아버지에게 전화가 온다고 했다.

그리고 저녁이면 또 전화가 온다고 했다.

매일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밤새 통증은 어땠으며, 식사는 하였는지

필요한건 없는지,재활치료는 어떤지 ...

그러면 엄마가 되묻고

아버지는 식사는 하였는지, 무얼 하는지 

두분이서 주고 받고 대화라니! 

평생 영감님과 대화라곤 모르고 사시다

세상에 이런 일이...였다.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하루 이틀 하시다 말겠지 생각했다.

나중에 들은바 보름 입원기간 내내 

아버지는 아침 저녁으로

엄마와 조곤조곤 얼마나 정 넘치는 

대화를 나누었는지

병실의 다른 환자들의 시샘을 살 정도였다고 한다.

한번은 병원에 오셔서 같은 병실환자들을 위해

아버지가 한턱 쏘셨는데

병원 근처에 있는 맘스 터치에 가셔서 

6인분의 버거를 사오셨다고 했다.

아버지 평생에 패스트푸드점이라고는

 처음 가보셨을텐데

그것도 직접 주문을 하셨다니

허연 백발의 노인이 주문을 하고 

진동벨을 쥐고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는 도저히 상상이 안된다

오로지 엄마를 위해!! 

병실 할머니환자들의 갈채를 받았다고 했다

아 이런 스윗가이를 보았나

어쩌면 원래 아버지는 달콤한 분 아니었을까

그 시절 사는게 신산하고 팍팍해서

젊은 아버지는 늘 화가 꽉 찬 상태로 

 살았던거 아닐까

그 화를 풀 곳은 오로지 금자씨뿐이었을거고

이제 지나간 모든 세월이  후회스러워

돌이키고 싶으셨는지 모르겠다.

나도 아버지와의 대화가 한결 편해졌다.

엄마 정도는 아니지만

짧은 수다도 가능해졌으니




퇴원해서 집으로 오는 도중에

식당에 들렀다.

냉면과 갈비탕을 맛있게 하는집으로

엄마가 최근에 알아낸 곳이다.

아버지가 갈비찜의 고기를 

먹기 좋게 잘라 엄마에게 건넸다. 

이 광경 또한 있을수 없는 일이어서

 조금 어안이 벙벙해졌다.

우리 아버지가 달라졌어요 ㅋ

보통은 이렇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고기를 건네주면

내 알아서 먹을테니까 내비두라는 말을

몹시 기분 나쁘고도 정 떨어지게 

말씀하시는 스타일

오랜만에 맛있게 먹은 냉면과 갈비찜이었다.

엄마도 아버지도 동생도 나도

보름전과는 다른 안도의 얼굴로

편안하게 즐긴 점심이었다.

아버지는 드디어 마음이 놓이시는지

느긋하게 소주반주를 걸치셨고 

나도  한잔 하사 받았다.

낮술로 살짝 기분이 좋아지길레

겁도 없이 아버지에게 한 말씀 

"아버지이~~ 이번에

한방에 엄마 맺힌 한 다 풀어드렸네요 히히 "





엄마는 아버지가 홀로 보름간 계셨던

빈 집을 지팡이를 집고 구석구석 휘 둘러 보셨다.

깔끔히 정돈이 되어 있었다.

아침에 드신듯한 밥그릇 국그릇이

말끔하게 씻겨 엎어 놓은 광경을 보고

엄마와 내가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집청소도 해드리고

아버지 엄마 밥도 해드리러 간다며

큰소리 땅땅 쳤던게 무색하게

내 할일은 없었다.

병원서 가져온 캐리어의 짐들을 정리하는것과

오후 다섯시  엄마의 진두지휘아래 

아버지 저녁밥상을 차린것 외에


새벽에  두런두런 소리가 나서 

잠이 깨버렸는데 4시 반이었다.

밥솥에 밥이 다되면 금방 섞지 말고

십분쯤 밥이 사르륵 갈아앉기를 기다렸다가

주걱으로 살살 섞어야 한다고

아버지한테 가르켜주셨다했다.

"너거 아부지 이제 시키면 시키는대로 잘하네 "

양평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그래도 한결 가벼워졌다.

 "꾸꾸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나도 이제 밥솥에서 소리가 들리면

십분쯤을 기다렸다가 밥을 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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