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궁.
사적 제117호. 도성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북궐이라고도 불리었다.
이성계가 왕이 되어 즉위 3년째인 1394년에 신도궁궐조성도감을 열어 궁의 창건을 시작하였으며 이듬해에 완성하였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후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조선 말기 고종 때 중건되어 잠시 궁궐로 이용되었다.









광화문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다.
광화문은 조선의 법궁에 해당하는 궁궐의 정문으로서 다른 궁궐들의 정문과는 달리 돌로 높은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중층구조의 누각을 세워서 마치 성곽의 성문과 같은 격식으로 장대하게 지어졌다.









광화문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건춘문 북쪽으로 옮겼다가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문루가 모두 소실되었다.
1968년에 경복궁 정문의 위치로 다시 옮겼으나 나무가 아닌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위치 또한 제자리를 찾지 못하였다.
현재의 광화문은 2010년에 원래의 모습으로 제자리를 찾아서 다시 복원한 것이다.
또한, 광화문 홍예 개판에는 ‘사령’ 인 기린, 봉황, 거북이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1968년 광화문 복원시 그려진 것을 현황 모사한 것이다.









국립고궁박물관 


조선 왕실의 법도와 문화 그리고 왕을 비롯한 왕실 사람의 문화 등을 주제로 2007년에 개관한 박물관이다.
수많은 왕실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왕실의 여러 의례와 생활상 등에 대한 자료를 볼 수 있다.
박물관은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로, 계단을 올라 정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2층으로 들어가게 된다.
2층은 상설전시실로 운영되는데, 조선의 국왕실, 조선의 궁궐실, 조선의 생활실로 꾸며져 있다.













홍예문


흥례문 일곽의 가운데에는 백악으로부터 흘러 내려온 금천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도록 한 어구가 있고, 중앙에 영제교라는 다리가 놓여 있다.
어구는 경복궁 뿐만 아니라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등에도 있으며, 고려궁궐, 중국의 궁궐, 베트남의 궁궐에도 있다.
어구와 영제교는 근정문에서 이루어지는 왕과 신하들의 조회 시에 신하들이 도열할 위치를 구별하는 경계이기도 했다.









금천 영재교


영제교를 중심으로 북쪽에 2품 이상의 관원이 서고, 남쪽에 3품 이하의 관원이 정렬하였다.
흥례문 행각의 서북쪽에는 서쪽 궐내각사와 빈청으로 출입하는 유화문이 자리하고 있다.
흥례문 일곽에서는 조회뿐만 아니라 국문이나 교서반포 등이 이루어졌으므로,
궐내각사와 빈청의 관원들이 원활히 움직일 수 있는 문이 필요했고
그 역할을 유화문이 한 것이다. 
 












근정문


근정문에서는 왕과 문무백관이 조참의식(소조회)를 행하였다.
또는 즉위식이 거행되기도 하였는데, 단종은 근정문에서 즉위를 한 첫 번째 왕이다.
근정문에서 의례를 거행할 때는 영제교의 북쪽으로 정2품 이상이 서고, 남쪽으로는 정3품 이하가 자리를 잡았다.

 












근정전 (국보 제223호)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이다.
왕이 신하들의 조하(조회의식)를 받거나 공식적인 대례 또는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정전인 근정전은 궁궐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건물로 면적도 가장 넓게 차지하고 있다.
























중층으로 된 근정전 건물은 2단의 높은 월대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전면에는 중요행사를 치룰 수 있는 넓은마당이 있고,
그 둘레를 행각이 감싸고 있다. 
 




















사정전과 사정문의 이름은 정도전이 지은 것으로 ‘천하의 이치를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잃는다.
임금이 진실로 깊이 생각하고 세밀히 살피지 않으면 어떻게 사리를 분별할 수 있겠는가.
더욱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경연과 정사가 주 기능인 편전에 걸맞은 이름인 것이다.













사정전 (보물 제1759호) 


편전은 왕이 평소에 정사를 보고 문신들과 함께 경전을 강론하는 곳이다.
또 종친, 대신들과 함께 주연을 즐기고, 왕이 직접 지켜보는 가운데 과거 시험을 치르기도 한 곳이다.
근정전 영역으로 통하는 사정문과 침전영역으로 통하는 향오문 사이에 만춘전, 천추전이 남향하고 있으며,
그 주변을 행각이 감싸고 있는데 경복궁의 편전 영역은 사정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정전 (보물 제1760호)


경회루 연지 남쪽에 위치한 수정전은 세종대에 집현전이 위치한 궐내각사지역에 고종대에 새로 지은 전각이다.
고종대 초기에는 임시로 편전의 역할도 하였으며, 1894년 갑오개혁 당시 내각 본부인 군국기무처로 사용되었다.
사정문은 3간으로 되어 있고 이 문 역시 가운데 칸은 왕이 드나들 때 사용하였으며, 신하들은 좌우의 문을 이용하였다.









만춘전









천추전









강녕전 


사정전을 뒤돌아 가면 행각에 연이어 있는 향오문이 나오는데 이곳이 궁궐의 침전영역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경복궁에는 왕과 왕비의 침전영역이 둘로 구분되어 있다. 하나는 왕의 침전인 강녕전이고,
다른 하나는 강녕전의 후면에 있는 양의문을 통하여 들어가는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이다.









궁궐에서 침전은 왕과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는 곳이며, 내외 종친을 불러 연회(내진연)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정사와 관련한 일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왕이 신하들을 불러 은밀히 정사를 논의하는 곳 또한 침전이다.

























교태전


세종 때에 임금이 오래 머물 곳이라 하여 규모를 크게 하여 고친 후 온돌을 수리하는 도중 화재가 발생하는 등 세 차례의 화재를 당하였다.
역시 경복궁 중건공사 때 다시 세워졌으나 1918년 창덕궁의 침전이 소실되자 그 목재를 조달한다는 목적으로 헐렸으며
1920년 창덕궁의 희정당을 짓는데 사용되었다.









지금의 강녕전은 1995년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강녕전의 공간구성은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두고 전면에 넓은 월대를 꾸민 것이 특징이다.
이 월대는 의례를 행하는 공간으로 내진연, 외진연 등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잔치 때에는 주변에 보계를 설치하여 보조하기도 하였다.













함화당

















집경당





















집옥재


집옥재, 협길당, 팔우정 이 3채의 건물은 당초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으로 지어진 건물이었으나,
1888년 고종이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이 전각들도 옮겨온 것이다.
고종은 이 건물들을 어진의 봉안 장소와 서재 겸 외국사신 접견장으로 사용하였다.









이 3채의 건물은 경복궁의 다른 전각들과 달리 중국식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신식이라고 생각되던 중국풍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집옥재의 현판을 송나라 명필인 미불의 글씨를 집자하여
중국풍으로 만든 것도 이런 연유 때문이다. 









건청궁    
 

경복궁이 중건되고 5년이 지나서 고종 10년(1873년)에 와서 지어진 건물이다.
경복궁에서 가장 북쪽 한적한 곳에 위치하며 왕과 왕비가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면서 거처할 목적으로 지어졌다.
앞에는 향원지라는 큰 연못을 파고 연못 가운데 정자를 꾸몄다.









건물은 민간 사대부 집의 형태를 따르면서 화려하고 섬세한 치장을 가미하여 지었다.
왕이 사용하는 장안당과 왕비가 머무는 곤녕합, 그리고 장안당 뒤에 서재로 관문각을 지어서
마치 사대부가의 사랑채, 안채, 서재를 연상시키는 구성을 하였다. 
궁 안에 최초로 전등이 설치된 곳이기도 하다.

















1895년 일본인들이 궁궐을 습격해서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은 이 건물 곤녕합의 누마루인 옥호루였다.
이 사건 이후 건물은 한 동안 방치되었다가 철거되고 말았으며, 2006년에 와서 다시 옛 모습대로 복원되었다.  
 








향원정 (보물 제1761호)


향원정은 1873년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그 앞에 연못을 파서 연못 가운데에 섬을 만들어 2층의 육모지붕을 얹은 정자이다.
향원정으로 가는 섬에는 나무로 구름다리를 만들어 취향교라 하였다.
취향교는 조선시대 연못에 놓인 목교로는 가장 긴 다리이다.









지금은 남쪽에서 나무다리를 건너서 섬에 가게 되어 있지만, 원래는 취향교가 북쪽에 있어 건청궁 쪽에서 건널 수 있었다.
이 다리를 남쪽에 다시 지은 것은 1953년인데 본래의 모습을 갖추기위해 현재 복원공사중으로 보인다.
향원지의 근원은 지하수와 열상진원샘이며, 이 물은 경회루의 연지로 흘러 가도록 되어 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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