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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서구 재실탐방] 대구 달서구 월암동 청소년들에게 충효예절의 산 교육장인 달암재 (達巖齋) 탐방 - 신박사.

작성일 작성자 신박사

- 청소년 충효예절 산교육장 달암재 -

*대구시 달서구 "달암재" 를 소개 합니다.

달서구 월암동 선돌공원 동쪽에 있습니다.

도로명주소 : 대구광역시 달서구 조암로20길 46 / 지번: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암동 681.

시설규모 : 대지 906㎡(274평), 건축연면적, 132.3㎡(40평).

관리자 : 삼모회.

전화 : 053-667-2172.

재실 상시개방.

 

 

 달암재 (達巖齋)

오시는길

<버스>

조암네거리1 : 609, 달서4, 달서4-1,  성서2. 10분도보.

조암네거리2 : 609, 달서4, 달서4-1,  성서2. 10분도보.

<지하철>

1호선 친천역 4번출구 방향, 20분 도보


달암재 입구

달암재 주변은 재개발지역인지 대부분의 주택은 폐허 상태로 비어있으며,

몇몇 가구만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공장도 대부분 폐허 상태고, 고물상 비슷한 업체만 보입니다.

길은 달암재 입구만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유일하게 입석공원 이정표애 달암재가 첨부외어 있습니다.

그래도 찾아오시기가 어렵네요.



달암재 주차장

비지정문화재로 되어 있는 달암재는 달서구 월암동 삼성(三姓)의 입향조이신 

경주최씨(慶州崔氏) 참봉(參奉) 휘 최성희(聖喜),

함안조씨(咸安趙氏) 중직대부(中直大夫) 임천군수(林川郡守) 휘 조득도(得道),

성주이씨(星州李氏) 통훈대부(通訓大夫) 행강릉참봉(行康陵參奉) 휘 이언상이

1830년(순조 30) 에 건립하였으며 재실내에 유허비가 존재합니다.


달암재 중건약사 비

달암재 사업규모는 월암동 681, 684-1번지 대지 906㎡에

건축연면적이 132.3㎡이며 주요시설로는 달암재, 비각, 삼문, 사적비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건물이 노후하여 삼모회(경주 최씨, 함안 조씨, 성주 이씨)가 주관이 되어 달암재(본당),

비각(삼모각), 삼문(삼현문), 사적비 등을 복원할 것을 결의하고

총사업비 6억원(국비 5억원,과 민자 8천만원)을 들여,

대지 274평, 연면적 40평으로 2002년 5월25일에 착공, 2004년 2월에 준공하여

2004년 3월에 복원되어 청소년들에게 충효예절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처사 최만세 유혜 불망비, 가선대부 최도삼 불망비

처사 최만세와 가선대부 최도삼이 조암 면민들을 위하여 베푼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조암에 세웠던 것으로 현재는 달서구 월암동 681번지 달암재 경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달암재 해우소

주차장 가장자리에 남,여 수세식 해우소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달암재 삼현문

 삼현문은 성주 이씨, 함안 조씨, 경주 최씨의  유허비를 모시는 달암재 정문 입니다.

3성 모임인 삼모회(三慕會)가 관리를 합니다.



달암재 삼모각

경내에는 삼모각(三慕閣)이 있어서 삼현유허비(三賢遺墟碑)가 모셔져 있습니다.

원래는 삼모사(三慕祠)라는 사우가 있고 재실이 있었으나 현재는 재실만 남아 있습니다.



달암재 심현유허비

3모각은 은 1간 2평의 크기로 남향으로 지어졌습니다.

재실 내에는 유허비가 존재하며, 성주 이씨, 함안 조씨, 경주 최씨의 모임인 삼모회(三慕會)는

이곳에서 문화행사를 열기도 한답니다.



달암재 내부

192평의 대지에 2동의 목조와가가 있었습니다.

정침은 4칸 9평, 사당은 1칸 2평의 크기였습니다.

남향으로 지어졌으며, 울타리는 흙돌담 이었다고 합니다.






달암재

 192평 대지에 2동의 목조와가로서 정침(正寢)은 4간 9평, 사당(祠堂)은 1간 2평의 크기로 남향으로 지어졌습니다.

재실 내에는 유허비가 존재하며, 성주 이씨, 함안 조씨, 경주 최씨의 모임인 삼모회(三慕會)는

이곳에서 문화행사를 열기도 합니다.

임진왜란 때 월암동에 정착한 참봉 최성희, 임천군수 조득도, 참봉 이언상이 1830년(순조 30년)에

후진 양성을 위해 월암동 681번지에 건립한 재실로 당시에는 서당으로 활용했습니다.

상량(上樑)=목조건물 구조틀의 최상부에 마룻대(대들보)를 얹는 작업을 일컫는다.

 한옥을 지을 때 땅을 다진 다음 주초 위에 입주(立株), 즉 기둥을 세우는 것을

수태된 성주가 모태안에서 뼈대를 갖추어 가는 과정이라 여기면 상량은 집의 형태가 완전히 잡혀

하나의 인격체로 생명을 얻는 순간으로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따라서 상량땐 의례에 따라 예를 갖추고 축원하며 음식을 이웃과 나눠먹기도 합니다.
달암재 상량문에는 하늘을 받들어 모셔 다섯 가지 광명이 있고 땅의 순리를 따라

오복이 함께 하길 기원하는 축원글씨를 넣었다고합니다.







달암재 정원

당시 뜰 안에는 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단풍나무, 향나무, 동백나무, 베롱나무, 회양목 등이 식재되어 있습니다.    



달암재 주차장

주차장에는 벚나무, 향나무, 회양목 등이 식재되어 있습니다.

 

달서구 월암동 달암재를 취재 하면서 느낀점은 아직 비지정문화재로 되어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공사가 마무리 되지않아서 귀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인 재실이 회손 될수도 있습니다. 

청소년들에게 충효예절의 산 교육장으로 추천 합니다.

- 이상으로 달서구 달암재 취재를 마칩니다 -



*달암재 (達巖齋)

위치 : 대구 달서구 월암동681번지.

지정별 : 비지정문화재(재실).

복원일 : 2004년 3월.

관리자 : 삼모회.

전화 : 053-667-2172.

비지정문화재로 되어 있는 달암재는 달서구 월암동 삼성(三姓)의 입향조이신 경주최씨(慶州崔氏) 참봉(參奉) 휘 최성희(聖喜), 함안조씨(咸安趙氏) 중직대부(中直大夫) 임천군수(林川郡守) 휘 조득도(得道), 성주이씨(星州李氏) 통훈대부(通訓大夫) 행강릉참봉(行康陵參奉) 휘 이언상이 1830년(순조 30) 에 건립하였으며 재실내에 유허비가 존재합니다. 192평 대지에 2동의 목조와가로서 정침(正寢)은 4간 9평, 사당(祠堂)은 1간 2평의 크기로 남향으로 지어졌으며 울타리는 흙돌담이 있었습니다, 뜰 안에는 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월암동에 정착한 참봉 최성희, 임천군수 조득도, 참봉 이언상이 1830년(순조 30년)에 후진 양성을 위해 월암동 681번지에 건립한 재실로 당시에는 서당으로 활용했습니다.
192평의 대지에 2동의 목조와가가 있었습니다. 정침은 4칸 9평, 사당은 1칸 2평의 크기였습니다. 남향으로 지어졌으며, 울타리는 흙돌담이었습니다.
그러나 건물이 노후하여 삼모회(경주 최씨, 함안 조씨, 성주 이씨)가 주관이 되어 달암재(본당), 비각(삼모각), 삼문(삼현문), 사적비 등을 복원할 것을 결의하고 총사업비 6억원(국비 5억원,과 민자 8천만원)을 들여, 대지 274평, 연면적 40평으로 2002년 5월25일에 착공, 2004년 2월에 준공하여 2004년 3월에 복원되어 청소년들에게 충효예절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192평 대지에 2동의 목조와가로서 정침(正寢)은 4간 9평, 사당(祠堂)은 1간 2평의 크기로 남향으로 지어졌습니다. 재실 내에는 유허비가 존재하며, 성주 이씨, 함안 조씨, 경주 최씨의 모임인 삼모회(三慕會)는 이곳에서 문화행사를 열기도 한답니다.

달암재 주변은 재개발지역인지 대부분의 주택은 폐허 상태로 비어있으며, 몇몇 가구만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공장도 대부분 폐허 상태고, 고물상 비슷한 업체만 보입니다.

경내에는 삼모각(三慕閣)이 있어서 삼현유허비(三賢遺墟碑)가 모셔져 있습니다. 원래는 삼모사(三慕祠)라는 사우가 있고 재실이 있었으나 현재는 재실만 남아 있습니다.

처사 최만세 유혜 불망비, 가선대부 최도삼 불망비.

처사 최만세와 가선대부 최도삼이 조암 면민들을 위하여 베푼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조암에 세웠던 것으로 현재는 달서구 월암동 681번지 달암재 경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달암재는 1830년(순조 30년) 임천군수 조득도와 참봉 최성희, 참봉 이언상이 후손들의 훈육을 위해 건립한 건물로 재실에는 후손들이 3현을 기리기 위해 새긴 삼모각(三慕閣)과 3현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달암재 사업규모는 월암동 681, 684-1번지 대지 906㎡에 건축연면적이 132.3㎡이며 주요시설로는 달암재, 비각, 삼문, 사적비 등이 있습니다.

상량(上樑)=목조건물 구조틀의 최상부에 마룻대(대들보)를 얹는 작업을 일컫는다. 한옥을 지을 때 땅을 다진 다음 주초 위에 입주(立株), 즉 기둥을 세우는 것을 수태된 성주가 모태안에서 뼈대를 갖추어 가는 과정이라 여기면 상량은 집의 형태가 완전히 잡혀 하나의 인격체로 생명을 얻는 순간으로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따라서 상량땐 의례에 따라 예를 갖추고 축원하며 음식을 이웃과 나눠먹기도 합니다.
달암재 상량문(上樑文)에는 ‘龍단기4335년(서기2002년) 10월14일 午시 입주상량龜, 應天上之五光, 備地上之五福’ 즉, 하늘을 받들어 모셔 다섯 가지 광명이 있고 땅의 순리를 따라 오복이 함께 하길 기원하는 축원글씨를 넣었다고합니다.




*웃자퀴즈 419 : 신이 화나면? 정답:신발끈.

*힌트:인터넷에 검색하면 정답이 있습니다. ㅎㅎㅎㅎ 매주 월요일 정답 공개 합니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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