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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여행] 대구 계산성당 내 이인성나무(감나무)를 아시나요?.

작성일 작성자 신박사

*대구 중구 계상성당 내에는 수령 100년 이인성나무(감나무) 있습니다!

중구에 오시면 이런것도 볼 수 있습니다.

♣감나무의 꽃말은 '경의, 자애' 입니다.

그럼 이인성나무 구경 떠나볼까요!

 

 

1.이인성은 조선의 향토적인 미를 구현하여 원시성과 서정성이 강하게 배어나는 작품을 남겨 ‘조선의 고갱’이라고 불린답니다.


2. 이인성나무

위치 :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2가 71번지(계산 천주교회 내).

수종 : 감나무

나무와 연관되는 인물 : 미술가 이인성.

이인성(1912~1950)님은 우리 대구출신의 천재화가로 수창초등학교를 졸업 하였으며, 1928년 [촌락의 풍경] 이라는 수채화를 세계 아동 아동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특선을 차지하였습니다.

      

3. 이 나무는 수령이 100년정도 된 감나무로 1930년대에 그린 [계산 성당]의 배경이 된 나무 중 한 그루이므로 "이인성나무"라고 이름을 지었답니다.


4. 그후 1929년 부터 1944년까지 16년동안 한 차례도 거르지않고 조선미술전람회에 작품을 출품 하였고 14회 선전에서는 [경주의 산곡에서]으로 최고의 상인 창덕궁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5. 이 작품은 또한 1998년 모 미술잡지사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평론가 13명을 대상으로 [한국근대유화 베스트 10을 조사한 결과 1위로 선정되었으며 작가 인기도 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하였답니다.

 

6. 대구시는 대구를 빛낸 그를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이인성 미술상을 제정하여 해마다 그 해의 가장 우수한 화가를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습니다.


7. 이인성(李仁星)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서양화가이며, 대구가 낳은 천재 화가이며, 수채화와 유화 등을 가리지 않고 여러 가지 기법으로 그림을 자유자재로 그렸다고 합니다.


8. 잘 짜인 구도감과 담백한 유화를 보는 듯한 터치와 물감으로 그리는 수채화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였다고 해요.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을 미처 완성하지 못한 채 만 38세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답니다.


9. 이인성 미술가는  대표적인 근대 서양화가 중 한 사람으로, 조선의 향토색을 표현하여 일제 강점기 식민지 백성의 비애를 미적으로 승화시켰다고 평가된답니다.
그는 후기 인상주의와 표현주의 양식을 바탕으로 소재와 색채 표현에 있어 조선의 미를 구현했다고 해요.


10. 이인성화백은 1912년 8월 29일 대구 남성로에서 태어났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이 뛰어났으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 양친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보통학교 역시 11세가 되어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해요.


11. 오늘 이인성나무 포스팅하러 갔는데요.

 마침 감을 수확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하마트면 감나무에 감이 없는 포스팅을 할번했습니다.


12. 이인성의 재능을 높이 산 대구 지역 유지들이 그의 도쿄 유학을 주선해 주었답니다.

1935년, 이인성은 대구로 돌아왔고, 그해 대구 남산병원 원장 김재명의 딸인 김옥순과 결혼하면서 작품 활동에 매진했답니다.
이듬해 이인성의 양화 연구소’를 세우고 후진을 양성했으며, 1937년에는 26세의 젊은 나이로 선전의 추천 작가가 되었다.


13. 그러나 1950년 11월 4일,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던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해 39세의 나이로 요절했답니다.

당시는 한국 전쟁 중이라 경찰의 검문이 강화되었던 때였는데, 이인성은 검문하던 경찰과 시비가 붙은 와중에 어이없는 총기 오발 사고가 일어나 그 자리에서 숨졌답니다.


14. 이제부터는 감나무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감나무는 진달래목 감나무과 감나무속에 속하는 낙엽교목 이며.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온대지역 원산으로 800여 종의 품종이 있답니다.

돌감나무나 고욤나무가 근연종인데, 재배용 품종의 대목으로 많이 이용된다고 해요.


15.  키는 14m까지 자라며 수피는 회흑갈색이고 어린 가지에는 갈색 털이 있답니다.

잎은 어긋나고 가죽처럼 질기며 길이 7~17cm, 너비 5~10cm입니다.

 

16. 조그만 꽃병처럼 생긴 꽃은 황백색이며 양성화 또는 단성화로 5~6월에 잎겨드랑이에 핍니다.

수꽃은 길이 1cm 정도로 16개의 수술이 있으나 양성화에는 4~16개의 수술이 있답니다.

암꽃의 암술은 길이 15~18mm이며 암술대에는 털이 있습니다.

 

17. 열매인 감은 처음에는 단단하지만 탄닌을 제거하면 말랑말랑해진답니다.


18. 감나무는 연평균기온이 11~15℃인 지역에서 재배하기에 적합하지만 단감나무는 이보다 더 따뜻한 지역에서 재배해야 한답니다.


19. 추위에 약한 편이어서 빛이 잘 드는 양지와 약산성을 띠는 흙에서 더 잘 자랍니다.

 

20. 주로 감을 수확하기 위해 심지만 열매와 붉게 물든 단풍의 어우러짐이 아름다워 정원수로도 널리 심고요.

목재는 가구재·조각재로 널리 쓰인답니다.


21. 감의 효능을 알아보면 잎은 차로 애용되며, 감 열매의 꼭지는 한방에서 야뇨증, 구토 등의 증세에 약재로 사용됩니다고 해요.


22. 대구 계산동 성당은 1886년 대구 지역 선교 활동을 책임 맡고 부임한 로베르 신부가 지금의 계산동 성당 부지를 매입하면서 건립되기 시작하였답니다.


23. 대구계산동성당은 사적 제 29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대구계산동성당은 영남지방에 천주교를 토착화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였으며, 1911년 조선교구로부터 분리, 대구대교구 주교좌 본당이 되었는데, 초대 주임신부에는 로베르를 임명하였답니다.



*이인성나무

위치 :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2가 71번지(계산 천주교회 내).

수종 : 감나무

나무와 연관되는 인물 : 미술가 이인성.

이인성(1912~1950)님은 우리 대구출신의 천재화가로 수창초등학교를 졸업 하였으며, 1928년 [촌락의 풍경] 이라는 수채화를 세계 아동 아동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특선을 차지하였습니다.

그후 1929년 부터 1944년까지 16년동안 한 차례도 거르지않고 조선미술전람회에 작품을 출품 하였고 14회 선전에서는 [경주의 산곡에서]으로 최고의 상인 창덕궁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또한 1998년 모 미술잡지사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평론가 13명을 대상으로 [한국근대유화 베스트 10을 조사한 결과 1위로 선정되었으며 작가 인기도 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하였답니다. 

대구시는 대구를 빛낸 그를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이인성 미술상을 제정하여 해마다 그 해의 가장 우수한 화가를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습니다.

이 나무는 수령이 100년정도 된 감나무로 1930년대에 그린 [계산 성당]의 배경이 된 나무 중 한 그루이므로 "이인성나무"라고 이름을 지었답니다.



*이인성(李仁星)

출생 : 1912년 08월 29일, 대구 남성로

사망 : 50년 11월 04일

대표작 : 〈가을의 어느 날〉, 〈경주의 산곡에서〉, 〈한정〉, 〈카이유〉, 〈여름 실내에서〉 등.

조선의 향토적인 미를 구현하여 원시성과 서정성이 강하게 배어나는 작품을 남겨 ‘조선의 고갱’이라고 불린다.

이인성은 대표적인 근대 서양화가 중 한 사람으로, 조선의 향토색을 표현하여 일제 강점기 식민지 백성의 비애를 미적으로 승화시켰다고 평가된다. 그는 후기 인상주의와 표현주의 양식을 바탕으로 소재와 색채 표현에 있어 조선의 미를 구현했다.

이인성은 1912년 8월 29일 대구 남성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이 뛰어났으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 양친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보통학교 역시 11세가 되어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3학년 때 담임선생의 권유로 도쿄에서 열린 세계아동작품전에 출품해 특선을 수상했으며, 6학년 때는 동아일보사가 후원한 세계아동예술전람회에서 〈촌락의 풍경〉으로 개인 부문 특선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드러냈다.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집안 형편 때문에 상급학교로 진학하지 못했으나, 사생대회에서 이인성을 눈여겨본 서양화가 서동진의 배려로 그가 운영하던 대구미술사에 기숙하며 그림을 배울 기회를 얻었다.

1929년, 18세 때 제8회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수채화 〈그늘〉로 입선했고, 1931년 제10회 선전에서는 수채화 〈세모가경〉으로 특선을 받았다. 이인성의 재능을 높이 산 대구 지역 유지들이 그의 도쿄 유학을 주선해 주었다. 이인성은 이러한 후원으로 1931년 미술용품을 만들던 킹 크레용 회사에 취직하여 그곳 화실에서 공부했으며, 이듬해 도쿄의 다이헤이요(太平洋) 미술학교에 들어갔다. 그는 1935년까지 미술학교에 적을 두고 도쿄와 대구를 오가며 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했다.

1932년, 선전에서 〈카이유〉로 특선을, 그해 일본 제국미술전람회(제전)에서 〈여름 어느 날〉로 입선을 차지했다. 그는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조선의 천재 소년 이인성 군’이라고 소개되는 등 한국과 일본에서 젊은 천재 서양화가로 이름을 날렸다. 1944년 마지막 선전이 개최될 때까지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작품을 출품하여 입선과 특선,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받았으며, 일본 문부성 미술전람회와 제전, 광풍회전 등에서도 수차례 입선과 특선을 수상하며 ‘조선 화단의 귀재’라고 불렸다.

1935년, 이인성은 대구로 돌아왔고, 그해 대구 남산병원 원장 김재명의 딸인 김옥순과 결혼하면서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이듬해 ‘이인성의 양화연구소’를 세우고 후진을 양성했으며, 1937년에는 26세의 젊은 나이로 선전의 추천 작가가 되었다.

짧은 그의 인생에서 20대의 젊은 날들이 예술가로서의 전성기였다. 그의 대표작 〈가을의 어느 날〉, 〈경주의 산곡에서〉, 〈한정〉 등은 이 시기의 작품이다. 그는 수채화로 그림을 시작했으나 유화로 매체를 바꾼 지 2∼3년 만에 자신의 독특한 화풍을 유화로 완성했다. 그는 이미 〈카이유〉, 〈여름 실내에서〉 등에서 강렬한 원색 사용, 짧고 조밀한 붓 터치 등 수채화로 표현하기 힘든 강렬한 작풍을 선보인 바 있었다. 유화를 사용하면서 이런 기교를 더욱 발전시켜 거칠면서도 강한 붓 터치, 치밀한 공간 구성, 강렬한 원색 사용, 두터운 마티에르 등 후기 인상주의 기법에 더해 향토성이 묻어나는 색을 사용하여 조선의 토속성을 살리는 화풍을 형성했다.

무엇보다 이인성은 풍경과 인물을 결합한 구상화를 조선 화단에 최초로 도입한 화가이다. 〈가을의 어느 날〉은 한국 최초의 구상풍경화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가을 들녘을 배경으로 여인과 소녀가 화면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림 속 배경은 현실의 이미지가 아닌 작가가 재구성한 풍경이라는 데 혁신성이 있다. 또한 그때까지 풍경화에서는 인물이 배경의 일부로 처리되었으나 이 작품은 인물을 그림의 주인공으로 삼는 독창적인 구도를 취하고 있다. 청명하고 푸른 가을 하늘과 짙은 흙빛을 한 인물의 피부색, 불그스름한 흙색은 원시적인 강렬함을 풍기는 한편, 조선의 흙색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추구한 이런 향토색은 〈경주의 산곡에서〉, 〈한정〉 등으로 이어지며 더욱 발전했다.

이인성은 이런 작품들을 통해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원시 세계로의 회귀를 추구했으며, 이것을 조선의 땅과 들녘, 즉 향토라고 표현했다. 그는 1935년 〈신동아〉에 기고한 〈조선 화단의 X광선〉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1942년, 이인성은 아내와 사별하면서 정신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는 1940년대에 주변 인물이나 정물을 많이 그렸다. 이 시기 작품에서 그는 기존의 강렬한 색상 대신 담담한 색채로 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주력했는데, 1944년 작품인 〈해당화〉에는 인물들의 애환이 잘 묻어나 있다. 이러한 화풍의 변화는 개인적인 아픔에 더해 시대 상황에 따른 고민과 성찰의 결과로 여겨진다.

그런 한편 1940년대 중후반에는 작품 활동보다 후진을 양성하고 화단의 중진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1945년에는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서, 이듬해에는 이화여대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설립 추진위원회에도 참여했다. 1949년에는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을 맡았다.

그러나 1950년 11월 4일,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던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해 39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당시는 한국 전쟁 와중이라 경찰의 검문이 강화되었던 때였는데, 이인성은 검문하던 경찰과 시비가 붙은 와중에 어이없는 총기 오발 사고가 일어나 그 자리에서 숨졌다. 이후 이인성은 화단에서 잊힌 화가가 되었다.

1954년, 회고전이 한 차례 열렸으나 가난을 극복한 천재 화가, 요절한 천재 화가라는 인생 역정에 더욱 많은 관심을 받았고, 그의 작품에 대해서는 제대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그는 관전 중심으로 활동한 작가, 하나의 양식을 체계적으로 추구하지 못한 작가라는 비난을 받는 등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또한 일본 관전의 아카데미즘을 바탕으로 성장한 화풍 때문에 친일 논쟁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1974년 〈한국 근대 미술 60년전(展)〉과 함께 서울 한국 화랑에서 회고전이 열리면서 이인성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국내 서양화가들은 1910년 서양화가 국내에 유입된 후 식민지 시대라는 열악한 상황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관점이 대두되면서부터다. 그러면서 조선의 향토색론이 대두되었고, 이인성은 조선의 향토성을 가장 잘 구현한 선구적 작가로 인정받았다.



*감나무

분류 : 감나무과

학명 : Diospyros kaki

꽃말 : 경의, 자애

진달래목 감나무과 감나무속에 속하는 낙엽교목. 학명은 ‘Diospyros kaki Thunb.’이다.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온대지역 원산으로 800여 종의 품종이 있다. 돌감나무나 고욤나무가 근연종인데, 재배용 품종의 대목으로 많이 이용된다.

 키는 14m까지 자라며 수피는 회흑갈색이고 어린 가지에는 갈색 털이 있다. 잎은 어긋나고 가죽처럼 질기며 길이 7~17cm, 너비 5~10cm이다. 잎가장자리는 밋밋하다. 조그만 꽃병처럼 생긴 꽃은 황백색이며 양성화 또는 단성화로 5~6월에 잎겨드랑이에 핀다. 수꽃은 길이 1cm 정도로 16개의 수술이 있으나 양성화에는 4~16개의 수술이 있다. 암꽃의 암술은 길이 15~18mm이며 암술대에는 털이 있다. 열매는 10월에 주황색 장과로 익는다. 많은 품종이 개량되어 있다. 열매는 처음에는 단단하지만 탄닌을 제거하면 말랑말랑해진다.

감나무는 연평균기온이 11~15℃인 지역에서 재배하기에 적합하지만 단감나무는 이보다 더 따뜻한 지역에서 재배해야 한다. 추위에 약한 편이어서 빛이 잘 드는 양지와 약산성을 띠는 흙에서 더 잘 자란다. 번식은 씨로 하지 않고 주로 고욤나무를 대목으로 접붙여서 한다. 뿌리가 땅속 깊이 내리므로 옮겨 심기가 좀 어려운데, 3~4월이 옮겨 심기에 적당한 시기이나 따뜻한 지방은 10~11월에도 가능하다. 대만, 중국, 일본에도 분포하며, 한국에서는 경기도 이남 지역에서 잘 자란다. 

경기도 이남에서 과수로 널리 심는다. 주로 감을 수확하기 위해 심지만 열매와 붉게 물든 단풍의 어우러짐이 아름다워 정원수로도 널리 심고 있다. 목재는 가구재·조각재로 널리 쓰인다. 감나무의 잎은 차로 애용되며, 감 열매의 꼭지는 한방에서 야뇨증, 구토 등의 증세에 약재로 사용된다.



*대구 계산성당

위치 :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10 (계산동2가)

문화재지정 : 사적 제290호(1981년 9월 25일 지정)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성당 이다.

대구(大邱) 계산동(桂山洞) 성당(聖堂)은 1886년 대구 지역 선교 활동을 책임 맡고 부임한 로베르(1853~1922) 신부가 지금의 계산동 성당 부지를 매입하면서 건립되기 시작하였다. 1899년 한국식의 목조 십자형 건물으로 지어졌으나 1년 만에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 그 후 재건축에 착수하여 로베르 신부가 설계하고,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함석이나 스테인드 글라스 등의 재료들은 프랑스 및 홍콩에서 들여와 사용하였다. 건물은 공사가 시작되고 3년이 지난 1902년에 완성되었다. 이 건물은 대구 지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1900년대 초기의 건축물이다. 성당의 평면은 라틴 십자형 (Latin cross)으로 중심의 본랑(nave)과 양쪽의 측랑 (transept)으로 구성된다. 이런 평면 구조는 성당의 평면, 건물의 외부와 내부 공간에서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또한 건물 전체적으로는 둔중한 로마네스크 양식을 띠고 있지만 첨탑과 스테인드글라스 등의 고딕적 요소들이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구계산동성당은 영남지방에 천주교를 토착화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였으며, 1911년 조선교구로부터 분리, 대구대교구 주교좌 본당이 되었는데, 초대 주임신부에는 로베르를 임명하였다. 성당 부지에는 설계자를 기념하는 동상과 주교관이 있다. 이 성당 건물에서 동남쪽 600여m 지점에 있는 관덕정(觀德亭) 순교 기념관에는 을해 ·정해 ·병인박해 때 교우들의 은신처였던 한티고개·신나무골 등 교우촌에서 붙잡혀 처형된 순교자들의 유물 30여 점 등 65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웃자퀴즈 498 : 사람이 일생동안 가장 많이 하는 소리는?

*힌트:인터넷에 검색하면 정답이 있습니다. ㅎㅎㅎㅎ 매주 월요일 정답 공개 합니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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