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여행 - 중구 베스트경관20선 중 11선 사적 442호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내 (구) 대구의학전문학교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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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 - 중구 베스트경관20선 중 11선 사적 442호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내 (구) 대구의학전문학교 본관.

신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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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광역시 중구 베스트경관20선 중 11선 사적 442호 (구) 대구의학전문학교 본관 -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2가 현재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경북대학교 보건대학원, 경북대학교 수사과학대학원 내에 대구지역 근대건축사 연구 자료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뫼산자 모양의 (구) 대구의학전문학교 본관 건물을 소개합니다.

 

 

1. (구) 대구의학전문학교 본관은 대지면적 27,716㎡, 건축면적 1,130㎡, 연면적 3,016.08㎡ 입니다.


2. 이곳은 현재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경북대학교 보건대학원, 경북대학교 수사과학대학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3. 구 대구의학전문대학교 본관은 중구 베스트경관20선 중 11선과 사적제442호 입니다.

소재지는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680(동인동2가)에 있습니다.

    

4. 대구에는 1923년 관립대구자혜의원안에 사립 의학 강습소가 처음 있었고, 이것이 1924년 도립의학강습소가 되었으며 그 후, 대구 최초의 공립 대구의학전문학교가 설치 되면서 1933년 이 건물이 완공되었답니다.


5. 학교는 1951년 국립경북대학교 의과대학으로 발전 개편 되었지만, 본 건물은 지금까지 원래의 모습을 간직하면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6. 평면은 ㅁ자형으로 중복도식이며, 현관을 중심으로 외관과 함께좌우대칭이래요.


7. 이 건물은 평면과 외관 구성에서 일반적인 학교건물의 형태와 달리 표현주의 양식 색채를 띠며, 건물의 각 부분의 비례와 공간배치 등이 치밀하고,특이하여 대구지역 근대건축사 연구 자료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답니다.

 

8. 건축에 사용된 적벽돌은 당시 중국 요동산성이라고 전하여지고 있답니다.

 

9. 구 대구의학전문학교 본관(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본관)건물은 일제 강점기 때 대구지역 의료인 양성을 위해 지어진 건물로 1933년 공립 대구의학전문학교로 개교되었답니다.


10. 이 건물은 구 도립대구병원(사적 제443호, 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병원 본관)건물과 마주보며 배치되어 있습니다.


11. 남향하여 동서로 길게 배치된 붉은 벽돌 조적조 3층 건물로 정면 중앙부에는 4층으로 된 사각탑(Turret)을 두고 옥상에는 옥탑을 설치하였고, 평면은 ‘산(山)’자 모양으로 중복도(中複道)식이며, 현관 포치(Porch)를 중심으로 좌우대칭형이랍니다.


12. 건물의 외관 구성에 나타난 특징은 정면 중앙부 돌출 유리벽의 곡면처리 및 창 사잇벽과 옥상 파라팻부의 수평돌림띠는 정면성을, 옥상부의 사각탑과 창 사이의 수직벽은 수직성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안정감과 웅장함을 느끼게 한답니다.


13. 여기는 나이팅게일 선서 동상인데요.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 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나님과 여러분앞에 선서합니다.

나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던 상황에서나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간호의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겠으며 간호 하면서 알게 된 개인이나 가족의 사정은 비밀로 하겠습니다.

나의 성심으로 보건 의료팀과협조하겠으며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로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동상은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간호학과 개교 8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간호학과 학생회와 동창회의 후원으로 나이팅게일의 정신을 기르기 위하여 건립하였답니다.


14. 대구의학전문학교 본관 앞에는 거대한 반송 고목 3그루가 있는데 명품입니다.

반송의 꽃말은 '선비의 지조'라고 해요. 

반송은 소나무의 한 품종인데요.

원래의 소나무 종(種)과 비슷하지만 모양이 조금 다른 것을 말합니다.

소나무는 외줄기가 올라와 자라는 것에 비하여 반송은 밑에서부터 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15. 안행대상을 수상한 자랑스러운 동문들의 수상년도, 수상부문, 졸업회수, 성함이 새겨져 있습니다.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동창회에서 만들었답니다.

    

16. 여기는 히포크라데스선서 동상인데요.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으매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의 은사에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노라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노라 나는 환자가 알려준 모든 내정의 비밀을 지키겠노라 나는 의업에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지키겠노라 나는 동업자를 형제처럼 여기겠노라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나는 인간의 생명을 그 수태된 때로부터 지상의 것으로 존중히 여기겠노라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이상의 서약을 나의 자유의사로 나의 명예를 받들어 하노라"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본동상의 토대 돋움 80cm. 조명 주위개선 공사는 아래의 1956년도 제24회 졸업생들이 졸업50주년을 기념하여 의학도들의 이상적인 인간상인 히포크라데스의 모습과 더널리 후배들에게 알려 모범적인 의사상을 한층 더 깊이 가슴에 새겨 두개 함에 뜻을 모아 함께 시공 하였답니다.

       

17. (구) 대구의학전문학교 본관 현관입니다.


18. 여기는 6.25참전전몰학우추모비 인데요.

조국은 빛나도 너희들의 죽음은 헛되지 안았도다.

그날 1950년 6월 28일 바로 여기 배움의 터전에서 혈서마다 부르짖음마다 나가지! 구하자! 위태로운 조국을! 젊은 피 성난 민물되어 함께 내달려 적도 죽음도 아니 두려웁던 벗들이여! 이윽고, 융의그대로 우리는 돌아  왔건만 그대들만이 다시 이 터전에 아니 나타남을 꽃다운 나이, 푸른꿈, 배움의 뜻 꺽이였음을 넉두리하던 날 그 얼마였드뇨! 오늘 이마당의 젊은이들이여 우리의 자랑, 조국에 바쳐진 꽃봉오리 모두 여기 동인벌 아늑한 모교의 품안에 인제사 돌아 와 다시 영영 함께 있음을! 가륵한 하나 하나의 얼굴, 그 흐뭇한 웃음을! 

1980. 4. 13. 53춘추회가 만들었답니다. 

                   

19. (구) 대구의학전문학교 본관 전경입니다.


(구) 대구의학전문학교 본관은 한국 근대 의학교육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 중요한 건물로,

전체적으로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전체와 세부 구성이 치밀하고, 건축사적으로도 매우 수준 높은 건물로서

근대건축으로서의 건축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교육사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중요한 유적입니다.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수고하시는 의사선생님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출처 : 경북대학교삼십년사(경북대학교 출판부, 1977).



*(구) 대구의학전문학교 본관

설립시기 : 1923년 9월 1일

해체시기 : 1951년 10월

면적 : 대지면적 27,716㎡, 건축면적 1,130㎡, 연면적 3,016.08㎡
구대구의학전문학교본관 사적 442호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1가 101 일제시대
1923년 대구에 설립되었던 공립전문학교.
1923년 7월대구자혜의원(大邱慈惠醫院)을 터전으로 대구의학강습소(大邱醫學講習所)로 인가되어, 같은 해 9월 1일에 개교하였다. 이듬해 3월 경상북도 도립의학강습소로 개칭하였으며, 1929년 12월 도립의학강습소로 정식 설립인가를 받았다.
1930년 3월 의학교로 지정되었고 1933년 3월 공립학교의 관제 개정에 따라 대구의학전문학교로 개편되었다. 같은 해 11월 지금의 동인동에 교지를 구입하고 본관을 비롯한 부대시설을 갖추었다.
전문학교 승격 당시의 직원구성은 교수 16명, 생도감(生徒監) 1명, 조교수 4명, 서기 1명, 강사 8명, 조수 6명 등이었으며 재학생수는 한국인 76명, 일본인 177명 등 총 253명에 달하였다.
민족항일기의 모든 교육이 그러하듯이, 전문기능에 속하는 의료요원 교육의 기회 취득에 있어서도 소수집단이었던 일본인이 거의 2배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졸업생은 대구의학강습소 시기에 제1회 29명, 제2회 29명, 제3회 11명, 제4회 14명 등 총 83명이었으며, 제2회 졸업생부터 「조선의사법」에 의거하여 정식 자격을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고 의학전문학교로 개편된 뒤 1933년 3월의 졸업생은 한국인 16명, 일본인 49명이었으며, 광복까지 모두 14회에 걸쳐 838명의 졸업생이 배출되었다.
이 시기 한국인 학생의 입학은 계속 억제되어 한국인 대 일본인의 졸업생 비율은 1:3 이상으로 확대되었다. 광복과 함께 고병간(高秉幹)이 교장으로 취임하고, 1945년 10월 1일 단과대학으로 승격하여 대구의과대학으로 개편되었다. 그 뒤 1951년 10월 경북대학교가 발족하면서 이 학교의 의과대학으로 통합되었다.
구 대구의학전문학교 본관(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본관)건물은 일제 강점기 때 대구지역 의료인 양성을 위해 지어진 건물로 1933년 공립 대구의학전문학교로 개교되었다.
이 건물은 구 도립대구병원(사적 제443호, 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병원 본관)건물과 마주보며 배치되어 있다. 남향하여 동서로 길게 배치된 붉은 벽돌 조적조 3층 건물로 정면 중앙부에는 4층으로 된 사각탑(Turret)을 두고 옥상에는 옥탑을 설치하였다. 평면은 ‘산(山)’자 모양으로 중복도(中複道)식이며, 현관 포치(Porch)를 중심으로 좌우대칭형이다.
건물의 외관 구성에 나타난 특징은 정면 중앙부 돌출 유리벽의 곡면처리 및 창 사잇벽과 옥상 파라팻부의 수평돌림띠는 정면성을, 옥상부의 사각탑과 창 사이의 수직벽은 수직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안정감과 웅장함을 느끼게 한다.
한국 근대 의학교육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 중요한 건물로, 전체적으로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전체와 세부 구성이 치밀하고, 건축사적으로도 매우 수준 높은 건물로서 근대건축으로서의 건축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교육사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출처 : 경북대학교삼십년사(경북대학교 출판부, 1977)



*구 대구의학전문대학교 본관

지정 : 사적제442호

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680(동인동2가)

대구에는 1923년 관립대구자혜의원안에 사립 의학 강습소가 처음 있었고, 이것이 1924년 도립의학강습소가 되었으며 그 후, 대구 최초의 공립 대구의학전문학교가 설치 되면서 1933년 이 건물이 완공되었다.학교는 1951년 국립경북대학교 의과대학으로 발전 개편 되었지만,본 건물은 지금까지 원래의 모습을 간직하면서 사용되고 있다. 평면은 ㅁ자형으로 중복도식이며, 현관을 중심으로 외관과 함께좌우대칭이다. 이 건물은 평면과 외관 구성에서 일반적인 학교건물의 형태와 달리 표현주의 양식 색채를 띠며, 건물의 각 부분의 비례와 공간배치 등이 치밀하고,특이하여 대구지역 근대건축사 연구 자료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건축에 사용된 적벽돌은 당시 중국 요동산성이라고 전하여지고 있습니다. 



*나이팅게일 선서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 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나님과 여러분앞에 선서합니다.

나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던 상황에서나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간호의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겠으며 간호 하면서 알게 된  개인이나 가족의 사정은 비밀로 하겠습니다.

나의 성심으로 보건 의료팀과협조하겠으며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이 동상은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간호학과 개교 8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간호학과 학생회와 동창회의 후원으로 나이팅게일의 정신을 기르기 위하여 건립하였습니다.

서기 2001년  5월 18일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간호학과장



*히포크라데스선서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으매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의 은사에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노라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노라 나는 환자가 알려준 모든 내정의 비밀을 지키겠노라 나는 의업에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지키겠노라 나는 동업자를 형제처럼 여기겠노라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나는 인간의 생명을 그 수태된 때로부터 지상의 것으로 존중히 여기겠노라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이상의 서약을 나의 자유의사로 나의 명예를 받들어 하노라

-본동상의 토대 돋움 80cm. 조명 주위개선 공사는 아래의 1956년도 제24회 졸업생들이 졸업50주년을 기념하여 의학도들의 이상적인 인간상인 히포크라데스의 모습과 더널리 후배들에게 알려 모범적인 의사상을 한층 더 깊이 가슴에 새겨 두개 함에 뜻을 모아 함께 시공 하였습니다.

서기 2006년 11월 30일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학장/ 의학전문대학원 원장



*625참전전몰학우추모비

조국은 빛나도 너희들의 죽음은 헛되지 안았도다

-그날 1950년 6월 28일 바로 여기 배움의 터전에서 혈서마다 부르짖음마다 나가지! 구하자! 위태로운 조국을! 젊은 피 성난 민물되어 함께 내달려 적도 죽음도 아니 두려웁던 벗들이여! 이윽고, 융의그대로 우리는 돌아  왔건만 그대들만이 다시 이 터전에 아니 나타남을 꽃다운 나이, 푸른꿈, 배움의 뜻 꺽이였음을 넉두리하던 날 그 얼마였드뇨! 오늘 이마당의 젊은이들이여 우리의 자랑, 조국에 바쳐진 꽃봉오리 모두 여기 동인벌 아늑한 모교의 품안에 인제사 돌아 와 다시 영영 함께 있음을! 가륵한 하나 하나의 얼굴, 그 흐뭇한 웃음을! 

1980. 4. 13. 53춘추회 이종일 바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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