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의전은 조선시대에 전조인 고려조의 왕들과 공신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조선조 태조 6년(1397년)에 건립한것이 시초이다.

태조가 숭의전을 건립한것은 조선이 유교국가임을 드러내고

고려조와 화해를 모색하려는 의도로 보여진다.

사당 건립 이후 1399년 정종 1년에 고려 태조를 비롯하여

 혜종, 성종, 현종, 문종,원종, 충렬왕, 공민왕등 8왕의 위폐를 봉안하였다.


이후 1425년 (세종7년)에 이르러 조선의 종묘는 5왕을 제사하는데

고려조의 사당에서 8왕을 제사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하여

태조, 현종, 문종, 원종등의 4왕만을 봉향토록 하였다.


1451년(문종1년) 숭의전이라는 이름을 지었고 4왕 외에

고려조의 충신인 복지겸, 홍유, 정몽주등 16명의 위패를 모시고 배향토록 하였다.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숭의전로 382 - 27  (사적 제 223호 자료: 연천군청)



숭의전은 남한에 있는 고려왕들을 봉향하는 유일한 곳이다.

 입구에 숭의전의 대문격인 홍살문이 서있다.



나라가 망하고 왕권을 빼앗아간 왕조의 손에 세워진 사당

진정으로 고려왕들을 위한것이기 보다는 사당을 세운 왕조의 필요성에 따라 세워지고

전란으로 소멸되었다가 다시 중건하는 곡절을 겪었다.

지금의 숭의전은 왕조의 종묘로는 좀은 초라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숭의전을 이 곳에 세운 이유는

왕건이 궁에의 태봉국 신하로서 태봉국 도읍지인 철원에서 개경을 오갈때

중간지점에 있는 영암사라는 절에 묵었는데 그 절이 없어지고

숭의전을 지을때 이 절터에 건립하게 되었다 한다.



숭의전은 높은 돌담으로 둘러저 있다.






태조왕건의 위패를 모신 숭의전

숭의전은 조선 선조8년(1605년), 영조3년, 정조13년,

고종5년, 순종2년 등 총 5회에 걸쳐 개수와 중수를 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 중에 전소되었고 1971년에 숭의전 터를  사적으로 지정하였으며

그 다음해 부터 재건에 착수하여 오늘날의 건물이 있게 되었다.



숭의전안에는 태조 외에 현종, 문종, 원종등 네분 왕의 위폐가 모셔저 있다.




배신청

고려조의 공신 16분의 위패를 모신 곳

태종에게 죽임을 당한 정몽주의 위패가 있다는 것이 다소 의아로움을 자아낸다.




이안청

건물 수리나 청소등을 할 때 숭의전과 배신청의 위패들을 이곳에 임시로 보관한다.




재례때 사용하는 향, 축, 폐등을 보관하고 제관들이 제례준비를 하며 머무는 곳



개성에 있는 왕건능과 왕건의 동상(평양박물관 소장)

발굴시에는 전라의 동상이었는데

 음경이 아주 작아서 많은 왕자와 공주를 생산한

왕건의 성기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전시할때는 아랫부분을 천으로 가려서 관람객은 음부를 볼 수 없다고 한다.






숭의전 앞에 있는 노거수(수령 500년 추정)

숭의전 역사의 산증인이라 하겠다.




숭의전 입구에 있는 약수터 어수정과

입구에 서있는 하마비




숭의전을 지나는 평화누리길을 따라 100여미터를 오르면 잠두봉이 있다.

봉우리라기에는 너무 낮아보이지만 경치가 빼어나다.





잠두봉 아래를 지나는 임진강

건너편에서 보면 깎아지는 절벽으로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좋은 계절에 역사공부 겸해서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로

한번쯤 가보는 것도 좋을 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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