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8세기에 시작하여 기원후 5세기에 끝나는 것이 로마사라는 역사관에서 보면, 로마의 전체 역사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왕정 -- 공화정 -- 초기, 중기 제정(원수정) -- 후기 제정(절대군주정) -- 말기

 

 

   

 

 

 

 

                                                                                 콘스탄티누스 대제

 

 

 

 

 

                                                                             콘스탄티우스 황제

 

   서기 312년은 콘스탄티누스(서기 337~361년)에게도 로마 제국에도 그후의 운명을 결정하는 해가 되었다,

  이 해에 `밀비우스 전투`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결전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콘스탄티누스 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313년, 이제 제국

 서방의 `정제`로 올라선 콘스탄티누스와 동방 정제인 리키니우스가 밀라노에서 만나 회담의 `코뮈니케` 같은 느낌으로 발표한 것이

 그 유명한 `밀라노`칙령이다, 이로써 로마 제국은 아직도 온갖 신이 뒤섞여 있는 `제신론재` 상태이긴 했지만, 기독교를 종교의 하나

 로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 밀라노 칙령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명기 되어 있다,

 

 " 오늘부터 기독교든 다른 어떤 종교든 관계없이 각자 원하는 종교를 믿고 거기에 수반되는 제의에 참가할 자유를 완전히 인정

   받는다, 그것이 어떤 신이든, 그 지고의 존재가 은혜와 자애로써 제국의 사는 모든 사람을 화해와 융화로 이끌어주기를 바라

   면서,,,"

 

 `밀라노 칙령`은 제국의 각 지방에서 실제로 행정을 담당하는 지방장관에게 말하는 부분에서 그 주된 취지를 되풀이 하고 있다,

 

 " 기독교도에게 인정된 이 완전한 신앙의 자유는 다른 신을 믿는 자에게도 똑같이 인정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가 완전

   한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기로 한 것은 그것이 제국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고, 어떤 신이나 어떤

   종교도 그 명예와 존엄성이 훼손 당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밀라노 칙령`의 문면만 보면, 로마 제국의 방향타를 크게 꺾지 않았다, 기독교를 공인하기는 했지만 국교로 삼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칙령을 공표한 뒤 콘스탄티누스가 보인 언행에 있다, 마치 칙령의 문면은 표면상의 방침일 뿐이고 본심

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것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탄압으로 몰수당한 교회의 재산과 반환을 명령한 칙령의 마지막 부분에

감추어져 있었다, 그 문면은 다음과 같다,

 

  " 몰수된 뒤 경매에 부쳐진 교회 재산을 사들여 소유하고 있는 자에게는 그것을 반환할 때 국가로부터 정당한 값으로 보상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여기에 명기한다," 

 

 

  또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사유재산을 기독교회에 기증한 것이었다, 제정으로 이행한 지 300년이 지난 이 시대, 자작농의 쇠퇴로

그 땅을 흡수한 황제의 소유의 농경지는 그야말로 방대해져 있었다, 말하자면 황제는 로마 제국의 최대의 지주였다,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장` 이라고 불리는 그것은 중세에 오랫동안 유럽의 왕과 제후들을 속박하게 된다, 이문서에는 콘스탄티누스 황

 제가 유럽 전체를 로마 교황청에 기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라티아누스 황제가 `최고제사장`에 취임하기를 거부한 것은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신교 세계인 고대에는 개개인의 종교와 그 개인의 집합체인 국가의 종교가 병존했는데, 그것은 왜냐하면 고대에는 신앙을 갖지 않은

개인도 없고 국가 종교를 갖지 않은 국가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고대 국가의 우두머리인 황제가 국가 종교를 관장하는 `최고 제사장`에 취임하기를 거부했다는 것은 이제 그 종교는 국가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모든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시대로 분명하고 결정적인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었다,

 

 그라티아누스 황제는 삼위일체설을 취하는 카톨릭파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삼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다, 로마의 전통 종교는 이제 로마

의 국교가 아니라고 선언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라티아누스의 이 결정으로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가 되

었다,

 그라티아누스 황제가 `이교`를 배척하기 위해 실시한 마지막 시책은 옛날 공화정 시대부터 원로원 회의장 정면에 안치되어 있었던 `승리

의 여신상`을 철거한 것이다, 이 여신상을 철거하자는 말을 맨 처음 꺼낸 사람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였지만, 실행되지 않은 채 30년이 지났

다,

 전해오는 기록에 따르면, 이 여신상은 둥글고 커다란 지구 위에 날개를 좌우로 펼친 여신이 왼손에는홀을 들고 오른손에는 창을 들고서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고 한다, 원로원 회의가 열리는 날에는 로마의 승리를 상징하는 이 여신상 앞에 향이 피워지고, 의원들은 거기

에 예배를 드린 뒤에 회의를 시작하는 것이 적어도 500년 동안 계속 이어져온 전통이었다, 그라티아누스 황제는 그 여신상을 철거 한 것

이다, 하지만 여기에 항의하여 그 조치의 철회를 요구하는 상소문을 황제에게 보낸 원로원 의원은 아무도 없었다.

 

 서기 383년, 파리에 머물고 이떤 그라티아누스 황제는 브리타니아에서 반란을 일으킨 사령관 막시무스의 공격을 받아 도망치다가 살해

되었다, 겨우 24세의 나이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국 서방의 황제가 공석이 되었다, 그 뒤를 이을 자격이 있는 발렌티니아누스 2세는 아직 열두 살의 어린애였다, 결국

36세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동방과 서방을 합친 로마 제국을 사실상 혼자서 다스리게 된다, 그것은 동방과 서방을 합친 로마 제국 전체

가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생각되로 기독교 국가가 되어간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라티아누스 황제의 명령으로 원로원 회의장에서 철거된 `승리의 여신상`을 원래대로 복원해달라는 심마쿠스( `이교 로마의 자랑

스러운 마지막 불꽃`, 미라노 수도장관) 청원에 대해 암브로시스(54세가 된 미라노 주교)가 반대하는 편지를 보낸 것으로 설립된 논

전이다,

 

 이 논전은 출생도 성장 배경도 교육도 반생의 경력도 거의 같은 4세기 로마의 두 지성인이, 한 사람은 사라져가는 문명을 구현하기

위해, 또 한 사람은 떠 오르는 또 다른 문명을 대표하여 싸운 전쟁터였다, `법정`이 아니라 `전쟁터`라고 말한 것은  중립적 입장에서

내릴 재판관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쪽이 편지를 보낸 황제는 검사 역활을 맡은 암브로시우스와 친밀한 기독교도였다,

 

 

 

 

                                                              첼리오 언덕에서 발굴된 심마쿠스의 비석

 

 

 수도장관 심마쿠스가 테오도시우스 황제에게 보낸 편지,,,

 

<영광에 대한 강한 생각 이외의 무엇이 우리 조상이 만들어낸 법률과 거기에 바탕을 둔 조국의 방위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우리 아버

지들이 이해하고 있었던 이것이 어긋나지 않는 한, 페하에게도 계속 영광이 동반할 게 분명합니다,

 

 우리<로마 원로원>는 페하께 청원하고자 합니다, 우리 조국에 오랫동안 영광을 준 요인 가운데 하나인 종교에 대한 대응을 신중히

배려해주실 것을 간청하고자 합니다,

 역대 황제들은 각자의 종교심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옛날 황제들은 그 이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신들을 경배했고, 요

즘 황제들도 경배는 하지 않을 망정 배척은 하지 않았습니다, 페하께서는 옛날의 예를 답습할 마음이 나지 않는다 해도, 최근의 예를

존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승리의 여신으로 구현되는 사상을 존중하지 않는 자는 야만족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페하 자신은 여신상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그 여신상이 오랫동안 받아온 경의를 고려하시어 우리들에게 여신상을 돌려주고, 그것이 옛날부터 놓여 있던 곳에 돌려놓

을 수 있도록 조처해주시기 바랍니다,

 

 황제의 지위를 안정시킨 것은 뭐니뭐니해도 적에 대한 승리였고, 앞으로도 이 사실은 오랫동안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또한 페하 자

신도 승리의 여신이 계속 미소를 던져주기를 무엇보다도 간절히 바라고 계실 것입니다, 누구나 자기한테 상응하는 승리의 여신의 가

호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을 기대할 수 있다면, 아무도 그것을 거절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바라고 있는 것

을 방해하고 배척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을 것이고, 승리의 여신상을 철거하는 것은 사람들의 희망을 때려부수는 도발행위가 될 수

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신상은 원로원의 상징이 된 지 오래입니다, 믿는 안 믿는 상관없이, 우리 조상이 오랫동안 마음의 지주로 삼아

온 여신상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폐하게 간청하는 것은 단순히 여신상의 철거를 철회해달라는 게 아닙니다, 어릴 적에 아버지한테 배운 것을 우리도 자식한테 가르칠

수 있는 상황으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훌륭한 삶을 살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전통에 대한 사랑만큼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폐하의 명예가 영원하기를 우리도 바라고 있는 이상, 폐하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결정에 대해서는 우리도 큰 소리로 시정을 요

구하는 것을 게을리 할 수 없습니다,

 

 승리의 여신상이 없는 회의장에서 어떻게 국법에 대한 충성 맹세를 할 수 있겠습니까, 거짓으로 충성하는 자를 무슨 권위로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겠습니까, 각자가 제멋대로 독자적인 권위를 휘두르게 되면, 권위 자체가 붕괴하고 세상은 거짓 선서로 넘쳐나게 됩니다,

승리의 여신상은 이런 권위의 무정부 상태를 구해주었습니다,

 

 수도를 제외한 제국의 각 지방에서도 사람들은 이 신에게 바쳐진 제단 앞에서 공생을 서로 확인하고, 개인은 국가에 충성을 맹세하고,

통치자는 자신의 정책에 권위를 부여했습니다,이 제단 앞에서 행한 선서만큼 제국을 하나로 통합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은 없습니다,

 상징을 잃은 원로원 회의장은 조만간 허위와 부정의 소굴로 변할 것입니다, 신하의 경의를 온몸에 받는 황제들이 이런 상태를 바랄리

가 없습니다,황제들에 대한 충성도 무언가에 의지해야만 효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맨 처음 이 여신상의 철거를 생각한 것은 콘스탄티우스 황제라고 합니다, 하지만 선례라면 뭐든지 답습해야 하

는 것은 아닙니다, 콘스탄티우스 황제의 업적 가운데에는 답습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정책이 많습니다, 폐하는 그쪽으로 생각하셔야 합

니다,

 예를 들면 콘스탄티우스 황제는 여사제들이 누려온 특전을 박탈하지 않았습니다, 사제들의 지위도 수많은 로마의 공직 가운데 가장 고

귀한 것으로 존중해주었습니다, 로마의 종교와 관련된 제의를 거행하기 위한 비용 지출을 거부한 적도 없습니다, 수도 로마를 방문할 때

는 이 여원한 도시를 구석구석 돌아보고, 원로원 회의에 참석하고, 신전을 돌아다니고, 신전 정면 위에 새겨진 신의 이름을 읽고, 사람들

의 참배가 끊이지 않는 성소를 방문했을 때는 그 유래를 묻고, 그런 신전이나 성소를 세워 사람들에게 기중한 자를 상찬했습니다, 그 개

인의 신앙이 무엇인지는 전혀 비밀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콘스탄티우스 황제는, 제국의 영광을 상징하는 이런 기념비는 제국의 백성

들을 위해서 남길 필요가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인간에게는 각자 다양한 생활 습관이 있고, 각자의 필요에 따라 신앙하는 대상이 있습니다, 도시도 제각기 수호신을 갖고 있습니다, 이

것은 인간이 태어났을 때부터 각자의 정신을 가진 존재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각 민족에게는 제각기 `혼`(게니우스)이 있어서 그

민족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정신과 각 민족의 혼을 통합하여 지고의 신들과 맺어주는 역활을 맡기 위해 국가의 종교가 있

습니다,

 

 이성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를 벌충하는 데 역사를 돌이켜보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까요, 장래의 번영을 쌓아올리는

데에도 이미 번영을 이룩한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스러운 과거는 우리 조상들이 경의를 바쳐온 신

들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이제 로마 전체가 폐하께 심사숙고를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황제 중에서도 한결 우수하고 국가의 아버지이기도 한 폐하께 간청하고

자 합니다, 오랜 과거를 존중해달라고 말입니다,

 저 개인에 대해서 말하면, 그것은 제가 그동안 익숙해진 제의를 계속 거행하는 것을 인정해주고 그로써 제가 자유롭게 살아가는 한 인간

으로서 뉘우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일생을 마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로마의 전통 종교는 제국 전체의 통합에 도움이 되었고, 그 종교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진 희생이 하니발을 로마 성벽에서 물리치고, 캄피

돌리오에서 갈리아인을 몰아냈습니다, 그렇게 배우면서 자란 제가 왜 나이 먹은 이제 와서 자신들의 과거를 부인해야 합니까, 아무리 그

것이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게 되어버렸다고 해도, 저 같은 인간은 개샘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무엇보다도 자존심이 상하는 행위입니다,

 폐하께 간청하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우리가 마음의 양식으로 삼아 온 로마의 전통 신들을 그대로 두십시오, 많은 사람의 마음의 양식이

하나의 신에 대한 신앙에만 집약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별 아래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같은 하늘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같은 우주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 밑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이 의지하는 지주가 달라도, 그게 뭐 그리 중요한 문제겠습니까, 그렇게 킁 삶의 비밀을 풀어주는 길이 단 하나

 뿐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하늘에서 사제들의 눈물을 보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일찍이 대제가 선언한 `모든 종교를 인정하는 관용 정신`에 어

긋난다고 모욕감을 느끼시지는 않을까요, 승리의 여신상을 철거하자는 이야기를 맨 처음 꺼낸 것으로 알려진 대제의 아들 콘수탄티우스는

로마 원로원에 그 여신상이 존재하는 이유를 전혀 모르는 측근의 진언을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받아들인게 분명합니다, 심사숙고 끝에 결

단을 내린 것도 아닌 정책을 바로 잡는 것은 올바른 행위이고, 선제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은 아닙니다, 시민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

인다면 선례라 해도 바로 잡는 것이 황제의 채무이고 우리 제국의 훌륭한 전통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교 로마의 자랑스러운 마지막 불꽃` 이라는 말을 들은 44세 남자의 목소리다, 그가 승리의 여신상 철거를 반대하는 것은 후세의 눈

에는 시대착오로 보일지도 모른다, 또 4세기 로마 제국의 실정과도 거리가 있었다, 로마는 승리와 인연이 멀어지고 있었고, 원로원은 국정에

서 소외된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그 원로원 회의장에 원수정 시대와 다름없는 승리의 여신상이 계속 서 있고, 원로원 의원들은 그 앞에서 향

을 피우고 이제 아무 실효성도 없는 토론을 계속한다, 이런 시대적착오도 없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심마쿠스는 이것이 시대착오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알고는 있었지만, 직책상 의무도 아닌 편지를 썼다, 승리의 여신상 철거를 내

버려두면, 마지막으로 남은 제방까지 무너지도록 방치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제방까지 무너져버리면 둑을 터뜨리고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홍수에 모든 것이 떠내려가버린다, 이것이 그가 펜을 든 동기였다,

 

                                                                                                                -  로마인 이야기 그리스도의 승리, 시오노 나나미  -

 

 

 

 

                                             성 암브로시스, 그는 44세에 주교로 발탁된 이후, 당시 어느 주교보다도 긴

                                             23년 동안 기독교회에 군림하며 황제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54세가 된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가 황제에게 보낸 편지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고명한 로마의 장관이 폐하께 영원한 도시가 올리는 탄원이라고 눈물을 흘리며 낡은 종교 존속을 호소한 것을 알고, 이렇게 팬을 들

마음이 났습니다,

 

 저는 먼저 그에게 묻고 싶습니다, 어떤 신의 조화가 한니발의 공격에서 로마를 지켜주었고, 쳐들어와서 눌러 앉아 있던 갈리아인을 캄

피들리오에서 몰아냈는지,

 또한 그는 자기가 좋게 생각하는 종교의 유효성을 늘어놓았지만, 그 약점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설령 그런 신들이 한니발과 싸웠다,

해도, 그렇다면 왜 그 신들은 한니발이 수도 로마의 성벽까지 다가오도록 허락했는지, 갈리아인들이 캄피돌리오 공략을 체념한 것은 거

위가 우는 것을 듣고 그들의 공격을 로마인들이 미리 알았기 때문이 아니었는지, 그동안 그들의 유피테르 신은 어디에 있었는지, 거위로

변신한 유피테르 신이 울음소리를 내어 로마를 지켜주었다고 말하고 싶은지,

 

 한 걸음 양보하여 오랫동안 계속되어온 그들의 신앙이 로마 군단을 뒷받침했다고 합시다, 하지만 한니발도 그런 신들 가운데 하나를 믿

고 있습니다,  신들은 로마도 한니발도 평등하게 지켜줄 의무가 있는데, 왜 로마가 이기고 카타르가 지는 결과로 끝났을까요,

 

 또한 그는 민중의 눈물어린 탄원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그것도 근거가 박약합니다, 이제 민중은 그와는 다른 언어로 소

통하고 있습니다, 그 민중은 말합니다, 왜 축제일마다 효력도 없는 제의를 거행하기 위해 귀중한 가축을 제물로 바쳐야 하느냐고,

 승리는 재물로 바쳐진 가축의 내장에는 숨어 있지 않습니다, 승리를 가져오는 것은 적과 싸우는 병사들의 전투력입니다, 신들에게 의지하

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강인한 의지가 승리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캄프돌리오까지 공략하려 하고 있던 갈리아인을 절벽에서 떨어뜨린 것은, 신들에게 바치는 제의가 아니라 당시 로마인의 용기였습니다,

한니발을 이긴 것도 신들에게 기도했기 때문이 아니라 한니발의 고국으로 쳐들어간 당시 로마인의 대담성과 과단성 덕분입니다, 그리고

왜 심마쿠스는 옛 로마의 위대함만 이야기했을까요, 저는 네로 황제가 믿는 것과 같은 신들을 믿을 생각은 없습니다,

 

 야만족의 침입도 어제 오늘 시작된 일은 아닙니다, 야만족 침입에 시달린 황제들은 전통적인 신들을 업신여겼기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고 말하고 싶은 걸까요, 그중 한 사람인 발레리아누스는 적국 페르시아에서 포로가 되었고, 갈리에누스 황제는 제국을 산산조각내고 말

았습니다, 그 불행한 시절에 원로원 회의장에 있던 승리의 여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요,

 

 저는 조상들이 저지른 이런 잘못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부끄러운 것은 잘못을 고치려고 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과거의 잘못에서 배우는 데 너무 늦은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럴 용기를 가질 수 있는 나이는 있습니다, 늙은 뒤에는 더 이상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치르는 희생은 제단 위에서 가축을 죽여 그 피를 뿌리는 것뿐입니다, 제물로 바쳐진 가축만이 신의 목소리를 전할 있는

모양입니다,

 세계의 비밀을 탐구하는 것은 세계를 창조한 유일신에게 맡겨야 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무지한 인간에게 그것을 맡겨서는 안됩니

다,

 

 심마쿠스는 말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비밀에 다가가는 데 하나의 길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하지만 그에게는 비밀일지 몰라도, 우리

기독교에서는 신의 목소리로 해명되어 더 이상 비밀이 아닙니다, 그들이 탐구하려고 애스고 있는 것도 우리에게는 신의 예지와 진리를

통해 벌써 분명히 밝혀져 있습니다, 이교도들의 생각과 우리 생각 사이에는 공통점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은 황제에게 자기네 신들의

평화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황제에게 평화를 내려달라고 그리스도에게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낡은 습관을 버린 우리를 비난하도록

허용해도 될까요,

 

 하루가 시작된 직후에는 태양이 가져다주는 은혜를 충분히 맛볼 수 없습니다, 해가 점점 높이 떠오를수록 조금씩 빛이 강해지고, 따뜻함

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이른봄에는 땅이 벌거벗은 상태이고 씨도 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낙심하지 않고 땅을 갈면 반드시 수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도를 비난하는 자는 언젠가 반드시 후회할 날이 올 것입니다, 파멸의 날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태양이 암흑

을 몰아내줄 테니까요,

 

 기독교회에서 수확을 가져다주는 것은 기쁨으로 가득 찬 희망입니다, 그것은 성자들이 봄을 구가하는 시대의 시작이고, 이 기쁨은 언젠가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 사이로 퍼져갈 게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무지한 영혼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는 법률이 진실을 보여주었다고 믿어온 문명이 붕괴한 자리에, 그리

고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을 용기를 가진 사람들 위에 빛나게 될 것입니다, 

 

 

 이 `논쟁`의 결과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암브르시우스의 손을 들어주었고, 승리의 여신상은 로마 원로원

회의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 여신상의 행방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그후 찾아온 신상 파괴나 우상 파괴의 폭풍을 맞아 다른 조각상들과 마찬가지로 파괴되었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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