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친일파!! 이 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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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친일파!! 이 늠들!!

하얀바람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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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하고 있는 민족반역자 친일파 후손들.대한민국을 썩게 만드는

작자들,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무색,온갖 편법과 부동산 투기,

병역면제,세금포탈 등등을 일삼고 있는 대한민국의 더러운 피들을

공개합니다.더러운 피는 계속 흘러갑니다. 대한민국에 더러운 뉴스를

창조하고 있는 작자들이며, 이들의 피가 조상의 피와 달라지길 학수

고대합니다.조상이 지은 죄를 국민들께 사죄하고 깨끗한 피가 되어 대한민국에 노블레스오블리주라는 말이 되살아나길 더욱 더 노력하길 바랍니다.

정치계에 한나라당에 민족반역자 후손이 많은 이유를 밝힙니다.

정당별, 친일파재산환수법 서명자 수 (2005년 4월19일 현재)
-친일파의 재산이 확인 된 것만도 약 440만평으로
시가로 수십조원에 이른다.
이들 재산을 환수하는 특별법의 발의에 서명한 국회의원이 169명입니다. 
열린우리당-------149명 전원 서명
한나라당---------121명 중 6명 서명 (말로만 친일청산 30년간)

민주노동당-------10명 전원 서명
민주당-------------9명 중 3명 서명 (말로만 친일청산 30년간)
자민련-------------4명 중 1명 서명 (말로만 친일청산 30년간)

친일규명특별법 개정안에 서명하지 못하거나 안한 국회의원
신라호텔 자위대 50주년 참석했던 한나라당 의원 전부.서명안
함(송영선,나경원,안명옥,김석준)
한나라당(114) 열린우리당(0) 민노당(0) 민주당(5) 자민련(4) 무소속(3) (가나다라 순)
강재섭 고경화 고흥길 공성진 곽성문 권경석 권영세 권철현 김광원 김기춘
김기현 김낙성 김덕룡 김명주 김무성 김문수 김병호 김석준 김성조 김애실
김양수 김영덕 김영선 김영숙 김용갑 김재경 김정부 김정훈 김충환 김태환
김학송 김학원 김형오 김희정 나경원 남경필 류근찬 맹형규 박계동 박근혜
박성범 박세일 박세환 박순자 박승환 박재완 박종근  박  진 박찬숙 박창달
박혁규 박형준 박희태 서병수 서상기 손봉숙 송영선 신국환 심재엽 심재철
안경률 안명옥 안상수 안택수 안홍준 엄호성 유기준 유승민 유정복 윤건영
이강두 이경재 이계경 이계진 이군현 이규택 이낙연 이덕모 이명규 이방호
이병석 이상득 이상배 이상열 이성권 이승희 이윤성 이인기 이인제 이재웅
이재창 이종구 이주호 이한구 이해봉 이혜훈 임인배 임태희 장윤석 전여옥
전재희 정갑윤 정두언 정몽준 정문헌 정의화 정종복 정형근 정화원 주성영
주호영 진수희 진 영   최경환 최구식 최병국 최연희 최인기 한선교 한화갑
허   천 허태열 홍문표 홍준표 황우여 황진하

 

 

친일파 후손들을 보시요

친일파 후손들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고있다

 

조선일보(방상훈)
일제 식민지 시대때부터 역사왜곡 언론왜곡,가장 대표적 민족반역 친일신문.방상훈의 부인도 민족반역자(친일파)윤치호 손녀.끼리끼리 결혼.조선일보는 원래는 민족지였으나 민족지 조선일보가 일제에의해 폐간된후 민족반역자 친일파 방응모가 일제의 움으로 조선일보를만듦.그래서민족반역신문
동아일보(김학준(사장)
조상 민족반역자 고려대학교창립자 - 독립운동가 애국자를 가장한 "김성수"의 후손임.
민족신문이라고 지금까지 떠벌리고 다님.나라팔고 민족팔면 민족신문인가 봄.동아일보도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원래는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만든 신문이었으나 일장기말소사건을
계기로 일제의 억압과강압에 의해 폐간된후.일제협력자 김성수가 다시 개간함.민족반역신문
중앙일보(홍석현사장)
일제시대 경주지법 판사를 지낸 친일파 홍진기,친일인명사전에도 등록되어있는 악질친일파,해방후친일에서 친미로 변신,대한민국 역사상 42세로 최연소 장관을 지냄,홍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을 강력히 설득해 계엄령을 선포,진기 전 법무부장관은 4·19 뒤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특사로 풀려났다.검찰, 홍석현씨 소환통보 이 더럽고 역겨운 친일파신문들이다

이회창(뉴라이트회원)
부친 이홍규는 일제 식민지 시대 황해도"검찰서기" 해방후 그 경력이 인정되어 특채로 검사가 됨.요즘처럼 사법고시같은 자격검증도 없이..친일파 대부분이 그러함..해방후 더더욱 출세의 길이 열림.이회창가족이 대한민국의 귀족이라니.귀족이 아니라 쓰레기 집안이었음.특권층이라..글구 대통령후보에까지.얼마전 이회창 아들(인간:미이라.군면제)이 연세대 교수 임용.....이 나라 정의가 어서빨리 구현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김종필(뉴라이트회원)
부친이 일제의 면장을 지낸 덕택으로 일찍 일본유학을 다녀옴. 박정희 집권시절,1956년 굴욕적 한일회담을 주관함, 당시 일본측 조차 놀랄만큼 대일 청구권, 독도 문제에서 양보를 하였다. 독도를 제3국에 맡기려고 일본측에 제의하자, 일본측 대표가 "한국 국민의 반대가 심할 것"이라 하며 주저하고 나섬. 이 당시 "제2의 이완용이가 되더라도"란 망발을 하면서 "김-오히라 비밀메모" 작성

박근혜(뉴라이트회원)
대구 소재 "영남대학교"재단 이사장.정수장학회 이사장, 부산일보,MBC부산방송 지분 30%소유,대구에 많은 토지 소유..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제하 행적에 대해서...박전 문경보통학교 교사로 재직중이던 박 전 대통령은 1930년대말 만주로 건너가 일제의 괴로국 만주국의 사관학교격인 신경군관학교를 졸업(2기)하였으며, 졸업 당시 우수한 성적자에게 주는 특정으로 일본 육사에 편입했다. 팔로군과 조선의용군 토벌한 장본인, 혈서를 천황에게 바침.  친일파 중 특a다

박관용(뉴라이트회원)
부친 "박희준일제시대 순사경남도경 부산경찰서 산하 사법계 순사

정두언
할아버지(조부) : 일제강점기 군수 (뉴라이트회원)
 
한나라당 최돈웅 - 조선총독부 자문기관인 중추원의 참의를 지낸 최준집 아들(뉴라이트회원)
 
한나라당 김용균 - 부친이 일제시 면장과 금융조합장(뉴라이트회원)

정우택(충북도지사) (뉴라이트회원) 친일관료 "정운갑" 후손
 
김무성(뉴라이트회원) 김무성의 부친인 김용주(金龍周)는,전방(구 전남방직) 설립자이자 ,전 정치인, 전 국회의원 역임,김무성의 어머니는 방상훈(조선일보사장) 고모,조선일보가 외가,민족반역자 친일파 현준호의 후손인 현정은(현대그룹회장)의 삼촌.현정은은 김무성의 조카가 됨.민족반역 친일파 가문끼리 역시 혼인,부산 남구을에서 당선,김무성 집안은 전라남도 출신,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부산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음.
재산은 101억9천967만원으로 국회의원 10위권안에 듬.땔래야 뗄수 없는 민족반역자 집안임.


 

신기남:독립운동가와 후손들에게 사죄
부친 신상묵 - 일본 헌병 오장 시게미쓰 구니오(重光國雄·신상묵씨의 창씨개명 이름), 조선인들의 일본군 지원입대를 독려하고,독립투사를 거꾸로 매달고 코에 물을 붓는가 하면 목도로 왼쪽 다리를 심하게 치는 등 혹독하게 고문,헌병오장은 민족반역자 김창룡,그도 헌병오장,헌병 오장은 당시 조선인들,우리 선조들은 치를 떨고 피부에 가장 와닿는 행위를 한 악질 민족반역자 중 하나이다. 신기남의원은 국민들과 독립운동가와 그분들의 후손들에게 사죄하였다.

 
조순형
부친 "조병옥" 독립운동가를 가장한 민족반역자!
1941년 8월25일 부민관강당. 삼천리사 주최 대동아성전 임전대책협의회에서 죽음으로써 일본에 보답한다는 각계 명사 120명 결의 아래 신흥우, 윤치호, 장덕수, 최린, 이광수, 주요한 등 친일 거두들과 자리를 함께 한 조병옥은 자못 비장한 어조로 소신발언에 목청을 돋궈 부민관 중강당을 제압했다. "우리는 오늘 제국의 신민으로서 이 마당에 모였습니다. 전 세계를 통하여 역사적 드라마가 전개되는 현 단계에 있어서 유사 이래 처음 위급존망지추에 입각한 제국의 위정자로서는 조선인이 과연 절대적으로 제국신민으로서 현하 국책에 협동하느냐 않느냐 함에 있어서 조선민중에 대해서 듣고 싶은 대답이 많을 줄 압니다. (…)그러나 조선민중은 아무 요구도 없이 무조건으로 협동하여 전승해서 동아공영권 건설에 매진함으로써 위정자에게 안심을 줄 것입니다. (…)성전이 관철된 뒤의 전쟁은 민족적 투쟁에 있는데 그것은 세계를 이분하여 백색인종과 유색인종의 투쟁인 것입니다. 요컨대 이 모임의 목적은 조선민중으로 하여금 제국신민으로서 국책에 절대 협력할 것, 그리하여 위정자로 하여금 안심케 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옥숙(노태우부인)
노태우 前 대통령 영부인 일제시대 참의원 "김영한"의 딸 

홍라희(이건희부인)
배우자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부친 : 민족반역자 홍진기 (일제치하 판사) 

현영원은 현정은의 부친
형영원의 부친은 호남지역의 최대 거부,중추원 주임참의 "현준호"이고 조부 역시 중추원 주임참의 현기봉.총독부 중추원 주임참의라면 친일규명법에서도 명기된 대표적 민족반역자 아직도 배부르게 살고 있다는 게 이땅의 아픈 현실.현대는 민족반역자와 상관없는 기업인지 알았는데 사돈관계.한나라당 김무성의원의 매형. 김무성의원 누나 남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고 정몽헌부인
.할아버지는 중추원 주임참의 "현준호"이고 증조부 역시 중추원 주임참의 현기봉.총독부 중추원 주임참의라면 친일규명법에 명기된 대표적 (친일파)  김무성의원 조카
박용오  두산그룹 회장
일제식민지 시대에 있음.이들의 조부 "친일 상인 자본가 "박승직"(1864 - 1950),1894년 박승직 상점 개정 일제 면포수입:조선 면포산업 잠식 1907년 공익사(면제품 판매) 창립 1919년 친일 단체 조선 경제회이사 소화 기린 맥주 이사 1938년 국민 정신 총동원 조선연맹 이사 1940년 총력 조선 연맹 평의원 두산그룹 창립자.
이인구  전 자민련 국회의원 이돈직(가짜독립운동가) 후손

김영명(정몽준부인)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딸이라네요.
김동조: 일본 구주대(九州大 큐슈대) 법문학부 졸업,일제시대 일본고등문관행정과
일본후생성근무 ,반민족행위자 99인에 들어가는 인물중 하나네요

유인촌(뉴라이트회원)-한성 고등학교 졸업,
유인촌의 조부가 친일파 유치진이라는 1999년 4월호 여성동아 기사에서 밝혀졌다.
"하지만 집안의 가업이나 다름없는 문화예술계를 벗어날 수 있을까? 할아버지인 희곡작가 유치진과 작은할아버지 청마 유치환 시인, 형인 유길촌 PD, 아버지 유인촌과  강혜경 성악과 교수 등등, 이 화려한 핏줄과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김동길  친일파 김활란의 측근 김옥길의 동생(뉴라이트회원)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뉴라이트회원)
 뉴라이트 재단 이사장 & 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이사장
"위안부 영업자의 절반은 조선 사람이었다. 그들이 무슨 권력이 있어 동원했겠느냐." 
 
이주영 건국대 교수(뉴라이트 회원)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 집필참여

한승조 고려대 명예교수(뉴라이트회원) 
"식민지 지배는 축복"
  
신지호     "정신대는 일제가 강제동원한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상업적  매춘이자 공창제였다" 고 대학에서 강의(뉴라이트회원)
서울대 .이용훈 교수(뉴라이트회원)  
"정신대, 자발적 참여"
 
이장무(서울대총장)   이완용 직계 손자(뉴라이트회원)
이건무(문화재청장)   이완용 직계손자(뉴라이트회원)

최연희    부친 일제시대에 면장으로 주민들을위에 고발해  피해를 줌 (뉴라이트회원)
 
조갑제:일본이 고향(뉴라이트회원)
이명박:일본이 고향(뉴라이트 회원)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8월 29일, 경술국치 100年。1910.08.29 - 2010.08.29

경술국치 100年。100년전 지금,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경술국치

 

 

 

 

 

 

 

 

History is the communication
between the past and present。

歷史.29.com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독일 대통령은 제2차 대전 패망 40주년 식사(式辭)에서

‘과거에 대해 눈을 감는 사람은 현재에 대해서도 장님이 된다’는 말을 했다.

 

바이츠제커의 말은 독일인의 반성을 촉구한 말이니 그 의미를 달리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역사의 본질을 지적했다는 점에서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29일)은

우리나라가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경술국치 99년이 되는 날이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전후의 혼란,

을미년 명성황후가 왜의 흉인(凶刃)에 잔인하게 시해당했을 때 이미 망국의 맹아는 크게 자라고 있었다.

 

당시 열강과 손을 잡고자 했던 사람들은 ‘어느 외국도 진실로 우리 편이 되어 줄 수는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간과했

던 것 같다. 1870년대부터 1910년의 근세사 자료에서는 국가를 위한 원려는 없고, 망해가는 나라의 권력을 잡기 위

한 치졸한 음모의 그림자만 어른거릴 뿐이다.

 

1895년 을미사변 당시 고종은 누구도 믿지 못할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시해당한 왕비의 ‘폐서인 조서’에 날인을 강요

하는 친일 내각과 미우라 고로(三浦梧樓)에게 “내 손가락을 잘리는 한이 있어도 날인하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저들은 자기들 멋대로 ‘폐서인’ 조서를 만들어 공포하였으나 세자가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며 반발하자 폐서인을 면

하고 ‘빈’으로 승격(?)시키기도 하였다. 명성황후의 시신은 고종의 의도된 핑계에 의해 국장이 몇 번이나 연기된 끝

에 ‘황후 추존’ 직후인 1897년 11월 22일 아침 홍릉에 모셔졌다.

 

참혹하게 살해당한 것도 모자라

시신이 땅에 묻히는 데 2년 넘는 세월이 걸렸다니 지하에서 어찌 편히 잠들 수 있었겠는가.

 

일제의 간교한 계략과 미국·일본의 태프트·가쓰라 밀약 아래 1905년 을사늑약이 이루어졌을 때 민영환 선생의 자결

과 신규식 선생의 자결 기도는 조선 민족의 저항정신을 보여주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

(伊藤博文)를 총살해 조선 민족의 의기를 세계 만방에 알렸다.

 

경술국치 때는 황현 선생의 자결이 민족의 충의를 흔들어 깨웠다. 당나라 때 역사가 유지기(劉知幾)는 ‘사관에게는

재능·학문·식견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나라 조선 성종과 연산 때 김일손의 직필이나 중국 춘추시대 진

(晉)나라의 ‘동호직필’ 고사와 제나라 태사 백·중·숙·계(伯仲叔季) 형제의 이야기도 역사 기록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고사다.

 

한국인 모두가 일본과의 독도 영유권 분쟁에 분노하고, 중국의 동북공정에 목소리를 높이지만 대다수 젊은 지식인

조차 ‘독도(獨島)’나 ‘동북공정(工程)’이라는 기초 한자어조차 읽고 쓸 능력이 없는 우리에게, 옛 자료를 찾아내

고 해독하여 연구할 능력은 있는 것인가.

 

아직도 ‘경술국치’를 ‘한일합방’이라 가르치고 정당한 절차에 의해 ‘황후’로 추존된 분을 ‘민비’라고 폄훼해 부르며,

소리 높여 민족과 애국을 외치는 이는 많지만 국치일임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국가가 편하지 않은 이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치욕의 날을 맞으며

순국선열의 유지(遺志)와 국가 장래를 생각하는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박광민 국어문교육연구회 연구위원

 

 

 

한일병합 []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을 상실한 1910년의 경술국치 전반을 이르는 말.

 

개항 초기 조선을 둘러싼 청나라와 각축전을 벌이던 일제는 1894년 청일전쟁을 일으켜 승리하였다. 이에 일제는 조선에서 우월한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아울러 일제는 러일전쟁과 동시에 1904년 2월 한국에 군대를 파견하였다. 이러한 군사력에 기초해서 한국정부를 위협하여 ‘한일의정서()’를 체결하였다. 이로써 한국은 일제에게 군사적 목적을 포함한 모든 편의를 제공하였으며, 많은 토지와 인력도 징발당하였다.

일제는 같은해 8월에는
제1차 한일협약(한일협정서)을 강제로 체결하여 일본정부가 추천하는 고문을 재무와 외무에 두어 재정권과 외교권을 박탈하였다. 또 일제는 한국식민화를 앞두고 열강의 외교적 승인을 얻는 공작에 전력을 기울여, 미국과는 1905년 7월 ‘가쓰라-태프트밀약[-Taft]’, 영국과는 8월에 제2차 영일동맹을 맺었다. 또한 일제는 9월 러시아포츠머스조약을 맺어 러시아를 한국 안에서 배제하였다.

한국식민지화의 국제적 승인까지 얻은 상황에서 일제는 1905년 11월 고종을 협박하고 매국리들을 매수하여
을사조약(제2차 한일협약)을 늑결()하였다. 이 조약으로 한국은 국권을 강탈당한 채 형식적인 국명만을 가진 나라로 전락하였다.

고종은 을사조약의 무효를 선언하고 한국의 주권수호를 호소하기 위해 1907년 6월
헤이그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이것을 빌미로 고종을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이어 7월 24일에는 정미칠조약을 체결하여 한국의 내정권도 합법적으로 장악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제는 같은 달 27일에는 언론탄압을 목적으로 광무보안법을 잇달아 공포하여 한국민의 항일활동을 한층 강화하였다. 더욱이 일제는 8월 1일부터 한달동안 한국식민지화에 최대 장애요인이었던 한국군대를 강제로 해산한 뒤 ‘남한대토벌작전’을 통하여 항일운동을 강력하게 진압하였다.

한국군대를 강제로 해산한 일제는 ‘남한대토벌작전’을 통하여 항일운동을 강력하게 진압하였다. 그뒤 일제는 1910년 5월 육군대신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3대 통감으로 임명, 한국식민지화를 단행하도록 하였다. 데라우치는 헌병경찰제를 강화하고 일반경찰제를 정비하였는데, 일제는 이미 1907년 10월부터 한일 경찰을 일원화하여 전국의 경찰 직무를 장악한 상태였다. 여기에 1910년 6월 각서를 교환하여 종래의 사법·경찰권 이외에 일반경찰권까지 탈취하였고, 8월 16일 비밀리에 총리대신 이완용에게 합병조약안을 제시하고 수락할 것을 독촉하였으며, 같은 달 22일 이완용과 데라우치 마사타케 사이에 합병조약이 조인되었다.

조약을 체결한 뒤에도 일제는 한국민의 반항을 두려워하여 당분간 발표를 유보하였다. 조약체결을 숨긴 채 정치단체의 집회를 철저히 금지하고, 또 원로대신들을 연금한 뒤인 8월 29일에야 순종으로 하여금 양국()의 조칙을 내리도록 하였다. 8개조로 된 이 조약은 제1조에서 ‘한국정부에 대한 모든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제에 양여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로써 한국은 조선왕조가 건국된 지 27대 519년 만에 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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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100년。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또렷한 미래입니다!

 

 

 


경술국치 100年。美國 - 한일합방 과정 日本에 천문학적 재정지원

1910년 경술국치에

미국이 적극 개입하고

일본에 천문학적인 재정지원을 했다는 사료가 책으로 공개됐다.

서울대 출판부는 25일 미국의 재야 사학자 캐롤 카메룬 쇼(Carole Cameron Shaw·61·여·작은 사진)의 저서

‘The Foreign Destruction of Korean Independence(외세에 의한 한국 독립의 파괴·큰 사진)’를 발행했다.

책은 1901년부터 미국의 제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정부가 일본의 한반도 강점을 묵인하는 과정을 적나라

하게 기술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도서관과 미 국회도서관 등에서 발굴한 이 사료들은 1900년대 초 한·중·일에서 근

무했던 미국 공사가 루스벨트 대통령 및 국무장관과 한국 정책을 협의한 편지와 문서, 보도 문건 등이다.

특히 일본이 1904년 러·일 전쟁을 앞두고

루스벨트 대통령 주선으로 미·영의 대기업들로부터 전비 차관을 받은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쇼씨는 당시 루즈벨트 대통령이 앞장서 앤드류 카네기의 철강회사, 제이피 모건 등 미 대기업을 통해 일본의 전쟁비

용 약 7억엔(현재 14조원 상당)을 조달했다는 사실을 ‘강철왕’ 카네기의 편지 등을 통해 확인했다. 그는 또 미국이 19

05년 러·일 전쟁 처리를 위한 포츠머스 회담에서 한국과 중국을 배제하는 전략을 썼다는 것도 조약 참여자들의 개

인문서를 통해 밝혀냈다.

학계에서는 쇼의 책이 일본의 대한제국 강점 과정에 미국 정부가 깊숙이 개입한 사실을 미국측 원본자료를 이용해

밝혀낸 최초의 서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일본은 그 동안 미·영이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용인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쇼의 연구결과로 미국이 인정한 일본의 한반도 지배권이 부도덕하고 위법한 것이었다는 반박이 가능

해졌다.

‘한국병합에 대한 역사적·국제법적 재조명팀’을 주관해온 이태진 서울대 인문대학장(국사학과)은 “국내 학자들은 그

동안 미국 자료에 접근이 어려워 일본 주장에 대한 마땅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던 상황”이라며 “쇼의 연구는 한·일

간 역사논쟁을 정당하게 풀어나가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버드대학 동아시아 학과에서 ‘한국어’ ‘근대 중국사’등을 전공한 쇼씨는 59년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와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마쳤으며 2000년 주미 한국대사관의 역사편찬 작업에 참여했다.

쇼씨는 “100여년 전 우리(미국)가 ‘공공의 선’이란 미명하에 작은나라(대한제국)의 국권에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생각해보라”며 “미국인 한 사람으로서 사죄의 뜻을 표하고 싶어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출처 : 오다가다 만난 인연... 한평생 가는 법이지
글쓴이 : 한방에 끝내야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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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sjh7276/1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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