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겨레신문 사설   등록 : 2014.04.21 18:44 수정 : 2014.04.21 19:03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세월호 선장과 일부 승무원의 승객 구조 방기 행태를 ‘살인과도 같은 행위’라고 질타했다. “강력히 책임을 묻겠다”며 공무원들도 질책했다. 대통령의 강경한 발언은 전반적으로 질책과 처벌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런데 왠지 공허하다. 뭔가 초점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번에 침몰한 것은 세월호만이 아니다. 정부의 재난구호 시스템과 위기관리 능력에도 구멍이 숭숭 뚫렸다. 초동대처는 미흡했고 부처들 간에 협업은 이뤄지지 않았으며, 재난대응 매뉴얼들은 결정적 순간에 멈춰버렸다. 정부는 일사불란해야 할 때 허둥대고 일목요연해야 할 때 오락가락했다. 이 점에서 청와대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남 얘기 하듯 선장 욕하고 공무원 질책하기에 바쁘다.

 

박 대통령은 ‘강력한 재난대응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정부의 위기대응시스템과 초동대처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먼저 반성해야 할 곳은 다름 아닌 청와대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재난관리 업무 일원화를 위한 통합시스템 구축’은 박 대통령의 공약이었고, 이는 취임 뒤 안전행정부 산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컨트롤타워를 맡는 것으로 구체화됐다. 하지만 요즘 날마다 목도하고 있는 바대로 이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비판과 질책이 아니라 이 시스템을 수리하는 일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안보 외에 재난사태 위기관리 사령탑 기능도 지니고 있었다. 그때 청와대 지하 벙커에 설치된 첨단 상황실에는 주요 정부기관으로부터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재난 현장의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자상황판이 돌아갔다. 재난에 대한 신속하고 체계적인 대처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참여정부 흔적 지우기’로 이 기능은 없어지고 말았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복원되지 않고 있다. 청와대 안에 이런 시스템이 있었다면 ‘천금 같은 93분’이 속수무책으로 허비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상상해보는 것은 비약일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박 대통령의 강성 발언이 지지율 관리엔 득이 될지 모르지만 상황을 수습하는 데엔 얼마나 도움이 될지 솔직히 의문이 든다. 선장·승무원을 욕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온 국민이 치를 떨며 이들의 행태에 분노를 터뜨리고 있는 판이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살인 행위’ 운운하는 게 상황 정리에 무슨 도움이 될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대통령이 ‘강력한 처벌’을 거론하며 현장 구석구석의 깨알 같은 문제들을 지적하는 데 몰두하면 공무원들은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고 움츠러들기 쉽다. 당연히 사고 수습이나 대책 마련의 효율성도 떨어진다. 관료사회에선 오히려 책임지게 될 일은 회피하고 책임질 필요가 없는 일만 하려 드는 ‘복지부동의 논리’가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일부 관료들이 국민 정서나 상식과 동떨어진 행태를 보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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