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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선시대 왕실의 각종 의례(儀禮), 국립고궁박물관(國立故宮博物館)

작성일 작성자 joon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위치한 국립고궁박물관(國立故宮博物館)에는 조선왕실 및 대한제국의 황실의 각종 의례(儀禮)와 다양한 생활 유물 약 4만 여점을 소장전시하고 있다.

 

유교를 통치철학으로 한 조선은 예()로 기초로 사회질서를 지키면서 백성과 즐겁게 화합하고자 하였으며, 국왕은 길례(吉禮)흉례(凶禮)군례(軍禮)빈례(賓禮)가례(嘉禮) 5가지로 예제를 정비해 왕실의 정치적 권위와 정통성을 확립하였다.

 


 


궁궐 내에서 조회잔치 등을 열거나 궁궐 밖을 행차할 때는 가마와 의장(儀仗)이 함께 하여 왕실의 존엄을 드높였는데, 왕의 가마인 연()은 용()기린(麒麟)백택(白澤) 등 상스러운 동물들로 치장하였다.

 

의장기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자연물동물 또는 문자를 그려 넣어 왕의 훌륭한 통치를 나타내었다고 하며, 의장물(儀仗物)은 창도끼칼과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져 군사적 힘과 강력한 왕권을 상징하는 한편 신선만 사용했다는 선()() 등으로 행차의 신성함을 더하였다고 한다.








어보(御寶)는 왕실의 지위를 상징하는 예물이기에 공들여 포장해서 각별하게 보관하였으며, 어보가 완성되면 보자기로 싸서 금전지로 장식한 띠로 묶은 다음 내함과 외함에 넣어 자물쇠로 봉하였다.








조선왕실의 복식은 의례복과 일상복으로 구분하는데, 의례 시 착용하는 복식은 유교의 예를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로, 의례의 격식에 맞는 복식을 갖추었다.





흉배는 왕실 가족과 문무백관의 지위에 따라 의복의 가슴과 배에 다는 표장(表章)이며, 왕족의 흉배는 특히 보()라 하였는데, 왕과 왕세자의 곤룡포와 왕비세자빈의 대례복에는 용 문양을 금실로 수놓은 둥근 보를 가슴과 등양어깨에 붙였다.


 



어사화는 조선시대 과거에 급제한 사람에게 임금이 하사하던 종이꽃으로, 대나무 2개를 종이로 감아 비틀고 꼬아서 군데군데에 색깔 꽃종이를 꿰었다.


 


의궤(儀軌)는 국가 왕실에서 진행된 행사의 모든 과정을 기록한 보고서 형식의 왕실기록물이다.

혼례장례 등 각종 행사를 치를 때 임시기구인 도감(都監)을 설치하고 행사가 끝나면 의궤청(儀軌廳)에서 의궤를 편찬하였다.


조선의 국왕은 대체로 10세 전후의 어린 나이에 왕세자로 책봉되어 성균관 입학례(入學禮)성인식 관례(冠禮)혼례 등의 통과의례를 거치며 유교국가의 수장으로서 위치를 다졌다.









통치자의 죽음이자 부모의 죽음인 국상(國喪)은 나라의 가장 큰 슬픔으로 여겨졌으며, 엄격한 절차와 장중한 분위기에서 치렀으며 어떤 의례보다 오랜기간동안 거행되었다.

종묘(宗廟)에서 지내는 제사는 국가 제사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중요한 의례였다고 하며, 제사 음식을 마련하고 바치는 제기(祭器)는 역대 예제(禮制)를 참고하였다.











 


출처 : photo & movie 행복나눔터 | 글쓴이 : kangdante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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