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통 2020 미주 평화통일 문예공모전 에세이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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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통 2020 미주 평화통일 문예공모전 에세이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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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통 2020 미주 평화통일 문예공모전 에세이 수상작
보스톤코리아  2020-07-30, 17:08:56 



나 홀로 평양에

 

최서경 (Sally Choi), 협의회 최우수상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인천국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춘 후…” 비행기는 약간 덜컹 거렸지만 안전하게 착륙했다. 초록색 안전 벨트 사인이 꺼지자 많은 사람들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하도 깊게 잠이 들어서 하마터면 못 일어날 뻔 했지만 여름이라 그런지 창문으로 햇빛이 너무 쨍쨍하게 비쳐서 어쩔 수 없이 깨서 하품을 하고 팔을 뻗으며 스트레칭을 했다.

 

비행기에서 내린 후 나는 입국 수속을 하고 짐을 찾고 공항 리무진 타는 곳을 찾아 갔다. 주변에는 사람들과 많은 소리들로 북적거렸다. 처음으로 가족 없이 혼자서 여행을 와서 긴장 돼서 그런지 심장이 아주 빨리 뛰었다.

 

평양행 버스 정류소 . 드디어 도착했다. 오랜 시간 동안 찾아 헤매던 정류소에 도착했을 때 온 몸에 힘이 한 번에 풀리는 것 같았다. 얼굴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땀을 닦으며 옆에 있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순간 비행기에서 먹은 밥 이후에는 물 한 모금 조차 먹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대편에 앉아 있는 어느 가족이 ‘평양찐만두’라고 써져 있는 통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나눠 먹고 있었다. 주위를 슬쩍 둘러보니 주변은 온갖 식당과 가게로 둘러 싸여 있었다. 시간이 조금 남은 것을 확인 하고 바로 ‘평양찐만두’라고 써있는 음식점에 달려 들어갔다.

 

너무 배가 고파서 그런지 먹기 시작한지 몇 초 되지 않아 만두가 사라진 것 같았다. 하지만 시계를 보니 거의 버스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다. 짐을 들고 서둘러 버스 창가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배도 부르고 너무 피곤한 나머지 한숨을 내쉬면서 머리를 창문에 기댔다. 뜨거운 여름 햇살이 내 몸을 간질었고 나는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 보니 해는 어느 정도 기울어 있었다. 두 팔을 쭉 뻗으며 하품을 하고 있을 때 버스가 고속도로에서 벗어나서 숲속 같은 길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푸른 나무들과 식물들이 하늘을 감싸버렸다. 조금 멀리 내다보니 갈색 간판이 보였다. DMZ 생태 환경 공원. 그 옆에는 많은 관광버스와 차들로 가득 차 있는 주차장이 있었다. 흥분한 아이들과 부모들, 학교에서 단체로 온 외국 고등학생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저기는 어디지?’ 하며 궁금증이 생겼으나 버스가 너무 빨리 지나가는 바람에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마침 앞 좌석 뒤에 꽂혀 있는 관광 안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보았던 DMZ 생태 환경 공원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어서 책을 꺼냈다. “3년 전 남북 통일 직후 설계된 DMZ 생태 환경 공원은 한때는 남한과 북한을 갈라 놓으며 두 나라가 갈라진 시간 동안 나라의 허락 없이는 밟지 못했던 땅이었다. 그래서 두 나라가 갈라진 시간 동안 이 땅에는 5900이 넘는 종류의 야생 생물이 살게 되었다. 다행히도, 현재 DMZ 생태 환경 공원은 전 세계로 부터 보호를 받고 있는 우리나라에게는 보석같은 지역이다.” 책 다음 장에는 그곳에 사는 사향노루, 두루미, 저어새 등의 사진이 있었다. ‘와! 이런 곳이 있다니! 다음에는 여기도 한번 와 봐야겠다!’

 

DMZ에 대해 써있는 것을 전부 읽고 나서 다시 앞에 의자에 꽂아놨다. 그리고 다시 잠에 들려고 했지만 버스 앞쪽에 앉아 있는 외국인 부부가 밖에 무언가를 보고 놀라는 모습을 보니 나도 호기심에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창문 밖으로 조금 앞을 내다보니 38선, The 38th Parallel이라고 써있는 큰 간판이 보였다. ‘이게 진짜 그 38선이 맞나? 이렇게 한동안 이 나라를 둘로 나눠서 많은 사람들에게 슬픔과 괴로움을 주였던 그 선’. 38선을 보니 6.25 때 함흥에서 피난 오신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금강산에 가보고 싶어 하셨지만 결국 못 가보고 몇년 전에 돌아가셨다.

 

38선을 멀리하고 버스는 계속 북쪽으로 달렸다.

얼마 되지 않아 조금 전과는 달리 큰 건물들, 많은 사람들과 물건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호기심에 다시 한번 관광 안내 책을 꺼내어 봤다. 개성공단. “통일 전 북한과 남한이 함께 건설한 개성에 위치한 공단이다. 당시에도 남북경제협력에 좋은 영양을 끼쳤다.  그 후에 몇년 동안 닫히긴 했으나 지금의 개성공단은 우리 나라 경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다시 한번 개성공단을 봤다.  넓고 납작한 하얀색 건물들에서 사람과 트럭이 쉴틈 없이 들어갔다 나갔다 하고 있었다.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일이 되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적 힘이 되어주는 개성공단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이런 것들을 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지만 가는 길에 이런 신기한 것을 볼 수 있어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는데 벌써 평양 시내로 들어가고 있었다.

 

서울 처럼 바쁘고, 시끄럽고, 높은 고층 빌딩들로 혼잡했지만 평양만의 특별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했다. 조금 가다 보니까 앞쪽에 어느 거대한 아치가 보였다. 이번에도 안내 책을 꺼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의 독립을 상징하여 만든 개선문이었다. 이것 말고도 만수대대기념비, 주체사상탑, 사람들이 끝도 없이 줄 서 있는 옥류관까지, 모두 새로웠고 머릿 속에 인상 깊게 남았다.   

 

잠시 눈 만 감고 있으려고 했는데 일어나 보니까 벌써 거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앞에 있는 간판을 봤다. 능라도 5.1 경기장. 안내 책을 열고 읽었다, “이곳은 통일 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사람들에게 연설을 했던 곳이다.” 하지만 오늘 나는 연설을 듣거나 운동 경기를 보러 온 것이 아니다. 오늘 내가 힘들게 여기까지 온 이유는…

 

김남준! 김석진! 민윤기! 정호석! 박지민! 김태형! 전정국! BTS!

 

4년 전 부터 나는 방탄소년단의 팬이었다. 작년에 처음으로 어렵게 방탄소년단 콘서트 티켓을 구했지만 안타깝게도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못가게 되었는데 올 해 방탄소년단이 평양에서 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운 좋게도 표를 사서 한국까지 와서 나의 첫 방탄소년단 콘서트에 오게 되었다. 솔직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정도로 기뻤다.

 

서둘러 나는 응원봉을 파는 줄에 가서 섰다. 줄은 끝도 끝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시간이나 때울까 하고 앞에 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여학생에게 말을 걸어 봤다. “어디에서 오셨어요?”

 

“내래 여기 피양에서 왔시오. 동무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억양 때문에 조금 놀랐지만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저는 미국에서 왔어요. 제일 좋아하는 멤버는 누구예요?

 

“내래 피양 최고의 아미입니다. 최애는 전정국, 매력 쩝니다!”

 

“저는 뷔를 제일 좋아해요. 우리 엄마랑 동생은 정국이를 제일 좋아해요.”

 

그 이후로 평양 아미 민지 언니랑 공연이 시작하기 전 까지 K-POP과 한국 드라마, 평양 맛집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드디어 공연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서른 곡이 열 곡 같이 느껴졌다. 하도 응원 봉을 많이 흔들어서 팔은 아프고 소리는 너무 많이 질러서 목도 쉬어버렸다. 마지막으로 멤버들이 한 명 한 명 씩 멘트를 할 시간이 왔다. 리더 RM이 마이크를 들었고 경기장 전체가 조용해졌다. “저희 방탄소년단이 이렇게 지난 8년 동안 월드 투어를 하면서 많은 팬 분들과 좋은 경험과 추억을 쌓게 되었는데요. 저희가 데뷔 할 당시에는 북한 이라는 나라에 발을 들일 수 있을 거라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처럼 우리가 한 공간에 모여 이 시간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평양에서 이번 투어의 마지막 공연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나는 눈이 촉촉한 상태로 공연장을 나왔다. 이미 늦은 저녁이어서 하늘은 컴컴하고 달은 밝게 떠 있었다. 멀리서나마 방탄소년단을 만날 수 있게 돼서 소원이 성취된 느낌이었다. 택시를 타고 미리 예약한 유경 호텔로 가자고 기사님께 부탁했다.

 

가는 길에 대동강이 보였다. 낮에 본 것과 다르게 알록달록한 색깔들로 물들여져 있었다. 창문을 여니 시원한 여름 저녁 바람이 느껴졌다. 오늘 하루를 처음부터 다시 돌아 보았다. 나 혼자 한국에 온 것도 처음이라 긴장되었지만 무사히 도착했고 무엇보다 서울이 아닌 평양에서 방탄소년단 콘서트를 본 것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그리고 내일 무조건 민지 언니가 말한 옥류관에서 밥을 먹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나는 택시에 앉아 꿈만 같은 하루를 보내고 콘서트장에서 슈가가 불타오르네를 부르는 장면을 다시 떠올리며 잠에 들고 말았다.

 

“불타오르네! Fire~~”

 

“뭐야! 너무 시끄러워!” 알람 소리에 정신없이 일어났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나는 택시에도 유경 호텔 방에도 있지 않았다. 벽에는 방탄소년단의 포스터와 사진들, 방 군데 군데에 놓여져 있는 물병과 과자 봉지들, 그리고 자는 동안 침대 양쪽으로 떨어진 베개들이 있었다. 여기는 한국과 약 10800 킬로미터가 떨어진 내 방이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좋은 꿈에서 깨면 느끼는 그 실망과 아쉬움이 나에게도 밀물처럼 들어왔다.

 

‘다음에 엄마, 아빠, 동생과 함께 한국에 갈 때는 남북이 통일이 되어 평양에 가서 민지언니가 추천해 준 옥류관에서 시원한 평양냉면을 먹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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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ing of reunification as our job, not just a challenge

 

김진아    협의회 우수상

 

 

Ever since I was younger I've heard people identify Korea as two separate countries; North Korea and South Korea. I was more naive back then and did not care to learn about the problems caused by the separation. I did not envy other countries that had one name for their land and reunification was the least of my worries as it was not something I would casually think about. 

However, about a year ago my parents showed me a movie about two siblings who had gotten separated at an early age and tried to look for each other as they grew older. They remembered small things about each other such as where each others' birthmarks were. After years of searching, they were able to meet up on a TV show and as I watched them run into the open arms of their long lost sibling with tears rolling down their cheeks, I realized how most people including me take family for granted. Not having to wonder and worry about seeing our family again is a great happiness and something that should be more appreciated. The movie stuck with me and sometimes I would ponder about how so many Korean citizens' lives could've been different, but not too long ago I stumbled upon a video where more families separated by the Korean War all gathered in a room while they sat with their family discussing all the things they could not talk about before. The room was buzzing with all the sounds of friends and family talking about their current lives. Some laughed and some had tears of joy running down their faces as they comforted one another. I realized that not everyone had a choice to meet up with their family whenever they wanted and that made me think about why people would want unification. Some people might even describe it as necessary and as people of the same ethnicity, it should be something we try to help achieve.

 

The more I think about it, unification seems to become more important. In both countries there are separated families who cannot see each other even though they deserve the right to meet their loved ones when they want to, but that is just one effect of the war. In North Korea there are many adults and kids who barely have enough nutritious food to eat. They have to beg for food and are left to look for any type of food on the ground no matter how dirty it is. Not only that, the leaders of the two countries have different ideologies and because of that lots of money is being wasted right now. North Korea is spending its money on making more and more nuclear weapons while South Korea is spending money on armies provided by the USA as well as weapons because of the fear that something like the Korean war might occur again. Even though we are separated, South Korea tries its best to help out North Korea with providing things such as jobs to raise the economy for North Korea. South Korea had a factory built in Gaesung for North Korean citizens who did not have a job, but that was not enough. Even with the South trying its best to help out we need North Korea to open up its heart and communicate with us as well as putting in effort for a greater and unified country. Although there will be some problems in the beginning if unification does occur, we all need to be more open minded than we are now. Germany, who was in a similar situation to us suffered with economy for some time, but they are now doing well. It will not be easy for both the economy and people, so both countries' citizens should try to understand each other economically and personally. The situations that we are in right now is not acceptable and it's heartbreaking to see and hear about.  If the countries are able to come up with a plan to slowly but surely unite, the starving kids of North Korea and poor adults could live a better life while families from both sides of the country could meet up with each other as they please. Not only that, if things go well we will be one strong and peaceful country that no other countries could look down on anymore. I hope that in a few years our current generation and future generations are able to be friends with kids whose ancestors used to live on opposite sides of the country and laugh while they walk to the same school. I look forward to being able to travel to North Korea and visit the landmarks that were once not able to be seen by many people. To be able to take a subway with the once separated citizens from Seoul to Pyongyang and back would be a dream that will hopefully be achieved in the near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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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통일에 대해서 알려줄까?

 

곽 나 연, 협의회 장려상 

 

“정우야 넌 통일에 대해서 알아?”

 

“음…몰라 통일이 뭔데?”

 

“그럼 누나가 통일에 대해서 알려줄까?”

 

“좋아”

 

“무슨 이야기부터 해 줄까?”

 

“아! 우리나라가 왜 갈라지게 되었는지부터 알려줄게.”

 

“응 좋아”

 

“옛날에 1945년에 미국이랑 일본이랑 크게 사운 태평양 전쟁이 있었어 그런데 그 태평양 전쟁에서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은 지고 미국이 결국 이기고 끝났지. 미국도 이기긴 했지만 전쟁하느라 힘도 많이 들였을 테니 보상이 필요했겠지. 원래 전쟁하고 그러면 전쟁에서 진 나라는 물어주고 그런가 봐. 아무튼 그때 우리나라는 일본이 차지하고 있던 건 알지?”

 

“응, 일본 나빠.”

 

“아무튼 그래서 우리나라는 자연스럽게 미국의 영향 아래로 들어가게 되었지. 근데 그 전쟁에서 이긴 나라가 미국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소련이라는 또 다른 힘센 나라도 있었어. 두 나라는 일본이 전쟁에 지면서 놓고 간 우리나라를 두고 질서를 잡아주겠다고 들어와서 38선을 긋고 북쪽에는 소련이 힘들 실어주었고 남쪽에는 미국이 도와주면서 서로 조금씩 다른 길을 가게 되었지. 원래는 너랑 나처럼 우리나라는 나누어 지지 않고 한 나라 형제로 살았는데 점점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지.”

 

“그럼 6.25는 뭐야?”

“응 그럼 6.25 전쟁에 대해서 알려줄게. 아까 이야기 한 것처럼 남한과 북한이 점점 갈라 져서 각자 정부를 세우고 선을 긋고 살았는데 그런데 어느날 북쪽이 소련의 힘을 빌려서 소련에서 빌려준 탱크를 가지고 남쪽으로 밀고 들어 온 거야. 그날은 일요일 새벽이라 남한 사람들은 다 곤히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쳐들어오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당하고 말았지. 당장 필요한 것만 싸서 도망가는 걸 두고 피란이라고 하는데 놀란 사람들은 우리 외할아버지 고향인 남쪽 끝까지 밀려갔데. 그러자 그 소식을 듣고 미국의 맥아더 장군이 인천 쪽으로 들어와서 남한을 도와줬지, 그래서 쭉 밀고 올라가서 거의 통일을 했는데 중국이 북한을 돕겠다고 엄청 많은 사람을 보내서 또 다시 남한이 다시 밀리고 말았지. 그 뒤로 싸움이 3년동안 계속 되어서 다들 지쳐갔지. 그래서 미국과 소련이 중심으로 38도 선을 긋고 우리 그만 싸움하는 거 쉬자고 해서 지금까지 우리는 전쟁을 쉬고 있는 상태로 70년이된거야.”

 

“그럼 왜 통일을 해야 되는 거야?”

 

“음 그건 좀 어려운 이야기라 책에서 본 걸 가지고 이야기 해 줄 수 있어. 기다려봐 내가 책 갖고 와서 알려줄게.”

 

“우리가 통일 해야 하는 이유는 첫째는 민족사적 이유야.”

 

“그게 무슨 말이야 좀 더 쉬운 말로 알려줘.”

 

“그건 우리나라가 너랑 나처럼 같은 형제라는 뜻이야. 오래전부터 같이 살아 온 같은 민족이란 말이지”  

 

“두 번째는 인도주의적 이유야.”

 

“그게 뭔데?”

 

“음, 그 뜻은 우리는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는 뜻이야. 옛날에 전쟁이 나면서 나라가 갈라졌을 때 금방 다시 만나자고 했던 가족이 엄청 많았거든 그런데 그 길로 헤어져서 평생을 못 만났지. 이런 가족을 이산가족이라고 하는데 평생 기다리다가 이산가족 만나게 해준다고 가서 이야기 조금 하고  또 다시 헤어지고 하는 거 보면 너무 마음이 아파. 남북한이 갈라져 있어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없어지면 좋겠어.”

 

“세번째는 경제적인 이유야.”

 

“경제가 뭔데?”

 

“음, 경제는? 돈을 벌어서 잘 살게 되는걸 말하지, 지금은 유럽까지 가려면 비행기를 타고 멀리 돌아가는 방법 밖에는 없지만 통일이 되면 기차를 타고 유럽까지 갈 수 있는 거야. 사람의 수를 인구라고 하는데 인구가 늘어나면 우리나라가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아지니 물건을 만드는 것도 일하는 자리도 많아지겠지. 북한에는 자원도 많이 있다고 하니 기차로 전세계에 우리나라가 만든 물건도 팔면 훨씬 잘 되어 좋지 않을까?”

 

“그럼 누나는 통일 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뭐야?”

 

“난 여행을 좋아하니 북한 사람들이 파 놓았다는 제3 땅굴을 타고 북한까지 가 보고 싶어. 그게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너무 궁금한데 지금은 아무도 모른다고 해. 난 모험심이 강하니 보통 다니는 길이 아닌 특이한 방법으로 북한에 가보고 싶어. 그럼 넌 통일 되면 뭘 하고 싶어?”

 

“응 나는 책에 나온 북한에 개성만두랑 평양냉면을 먹어보고 싶어. 엄마가 해주는 것도 맛있지만, 사람들이 맛있다는데 무슨 맛일지 궁금 하잖아”

 

“자식, 넌 먹는 거 밖에 모르냐? 아무튼 코로나도 끝나고 빨리 통일도 되어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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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ken Home

Ewan Armstrong, 협의회 장려상 

 

My grandparents are disconnected from their home.

They were born in small towns in North Korea.

Unexpected youth migrants, they fled to the south to stay safe

Only unable to return home, becoming refugees forced to grow in new soil.

 

My mom is disconnected from her family.

She was born in Inchon, South Korea.

With busy parents and separation of family, mom often had to look after her siblings,

Working hard to provide, then moved to America as a second generation immigrant.

 

My self is disconnected from my heritage.

I was born in the United States, my connection to Korea 

Waxing and Waning like the seas, unsure if the tides I’m stranded in 

Will bring me closer to the broken land my mother and grandparents call home.

 

I feel a lack of true Korean identity.

The homes of my mother and her parents are two different places, but both are Korea.

There doesn’t seem to be roots for me to look back to,

As my roots have been cut in two by the artificial blade of the 38th parallel,

One half shunned by most of the planet, the other embraced by the powers who broke it.

Once the same Korea my grandparents were born in, that I wish I wish was more familiar.

 

When my grandparents left, they thought they would get to return home soon after,

But found the war to go on for 70 years more.

When my grandparents left, the lives they had and the things they owned were left too,

Leaving them to start over in a country that once used to be part of home.

When my grandparents left, the families and connections they had at home stayed,

Remaining unfulfilled like their expectations to return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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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Reunification

 

Nathan Burt, 특별상 

 

The questions of when and how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North) Korea and the Republic of (South) Korea should unite have no obvious answers. Many also question if the Korean peninsula will ever reunify, but the flow of history points towards eventual reunification. North and South Koreans have the same language, culture, and ethnicity. All of these are centripetal factors more powerful than the centrifugal factors that pull them apart, making reunification inevitable. The real question is, how hard will it be to reunite? One thing that South Koreans can do now regardless of North and South Korea's political status is to better integrate North Korean defectors into their society to prepare for the consequences of reunification.

 

What we have seen through history can give us a glimpse of what might occur when reunification presents itself. But we can never be sure. For instance, during the reign of Kim Il Sung, many people thought that as soon as he died, the DPRK would collapse. The same assumption occurred during the reign of Kim Jong Il. Clearly, the DPRK is still around today. For all we know, the government of North Korea could possibly collapse tomorrow. Throughout history, we have seen entire countries fall in a short period of time due to wars, revolutions, famines, persistent trade deficits, and depletion of important resources. Although many people compare this situation to the former East and West Germany, East and West Germany did not have a bloody civil war which killed over 5 million people, nor was one country's average GDP per capita 22 times that of the other. One more accurate representation of the two Koreas' situation would be the former North and South Vietnam. Vietnam, unlike East and West Germany, had a civil war which caused about 1.5 million deaths. But one thing remained the same: both Vietnam and Germany eventually reunited. 

 

Reunification will benefit Korea in the long run. One of the main reasons that North Korea was not able to thrive as well as South Korea was that one of the necessities of life was beyond their reach: farmland. If we compared this to a staircase, South Korea had small steps that were easy to climb but only went so far. South Korea had the easy start with plenty of farmland, but because of the lack of natural resources, it had to rely on manufacturing and exports. North Korea, on the other hand, was full of potential. They had many natural resources such as coal, iron, and uranium. One basic step was much harder to climb: producing food. North Korea had plenty of resources to become a powerful country but lacked the basic resource of food. With both Koreas’ advantages, a combined Korea could be greater than what each of the Koreas could don on their own. However, the important question is, how will the two brothers become reunited once more?

 

When thinking about Korean reunification, many people look at the big issues such as the leadership of North Korea or the nuclear weapons it possesses. Reunification is not just about two governments reuniting but about two peoples reuniting. Unlike Germany or Vietnam, which both had quick reunifications, Korea has been split for over 70 years. North and South Korea’s language, culture, and economy have dramatically diverged, and because of this, the average North Korean would find it very arduous to adapt to the lifestyle of an average South Korean. North Korea has a strict society where freedom in significant choices is rarely seen, therefore North Koreans must deal with freedom in South Korea for the first time. The reason that they came to South Korea is also a big problem for them. From breakfast to bedtime, they must make many choices in their new South Korean lifestyle. To learn more, I interviewed Cho Myung Sook, the Vice Principal of Yeomyung School, a school exclusively attended by North Korean defectors. She said, “It is a struggle for North Koreans to make choices in the freedom of South Korea’s democracy.” Yeomyung School gives children from North Korea a new chance at life with more freedom but with more responsibility. It feeds and houses students unable to support themselves. If Korea were to reunify, there would be much more than a few defectors to worry about. In order to deal with 25 million uneducated, poor North Koreans, the government would need to invest time and money in them. 

 

In 2015, President of Germany Joachim Gauk—originally from East Germany—visited Yeomyung school and shared his insights: “Prior to unification in West Germany, many East Germans left their hometown and moved to West Germany. We did not treat them differently from West Germans in education, which helped them get adjusted to West German society quickly. However, because the unification of West and East Germany was an unexpected event, we did not take into consideration accommodating East Germans. Rather, we enforced Western German values when it came to social integration. Because of that, East Germans still feel isolated. If we had established an education system and curriculum that reflected the traits of East Germany, by including voices of East Germans who relocated to the west, we would have been better prepared for unification, which will benefit both North and South Korea.” In Korea’s situation, this means that if South Koreans helped educate North Koreans defectors, they would be able to deal with the flood of North Korea’s unskilled workers after reunification and get them to more quickly adapt to a South Korean lifestyle. If South Koreans were also able to better understand the situation of North Koreans, it would be much easier for North Koreans to get along side by side with South Koreans. With more schools like Yeomyung School, South Koreans would be able to educate North Koreans defectors so that Korea will be better prepared for more North Koreans to contribute to the economy after reunification.

 

But the problem isn’t just how North Koreans themselves get along in a South Korean lifestyle but also what South Koreans think of North Koreans. Most studies about North Korean defectors focus on their adaptation to society and evaluation of government policies, and little has been done on the South Korean population’s attitude towards the defectors. Many South Koreans think stereotypically about North Koreans. They see the leader of North Korea, Kim-Jong-Un, and assume all North Koreans are like him. Also, South Koreans don’t want to employ North Koreans because they think they can’t do the work. An example of a group of people thinking stereotypically was when Yeomyung School had a contract to build a new school in February 2021. After searching for two years, the school administration found land and attempted to build the school. But the residents there found out, objected, and formed a group and started verbally attacking the Vice Principal, Cho Myung Sook. They also wrote statements on the fence surrounding the land saying that they would die before letting them build a school there. One pair of parents even went to her and asked, “Are you going to be responsible for our daughter?” They asked this because they assumed the North Korean defectors at Yeomyung school would sexually assault their daughter. The people also assumed their property values would drop if the school was placed there. They were worried about this because property values are a critical part of many South Koreans’ retirement plans.

 

As you can see, not only do North Koreans in South Korea have a hard time with freedom, but they are also constantly looked down upon by South Koreans. One might assume that was just one group of people who didn’t like having a North Korean defector school in their neighborhood, but many South Koreans look down upon North Koreans while also claiming South Koreans and North Koreans are family. Many people say they support reunification, yet most are not willing to sacrifice their time, effort, and money into making reunification happen. “South Koreans don’t think North Koreans can be lifted up to their level,” said Cho Myung Sook. To be able to change what South Koreans perceive of North Koreans is to show the good traits of North Koreans. The challenge is that North Koreans are afraid that if they show themselves in public, their family or friends still in North Korea will be at risk. To solve this, the government needs to educate people to show what North Koreans have gone through and that they are not who most people think they are. North Koreans are correctly perceived as less educated than South Koreans, but many South Koreans incorrectly think that North Koreans can’t be educated up to the level of South Koreans, but they can through education and understanding. 

 

One example of a problem that North Koreans have is PTSD. Because North Koreans do not want to be discriminated against by South Koreans, they often fail to tell the people around them of underlying problems. According to Go Myong-Hyun of the Center for North Korean Research, North Korean refugees commonly experience acute stress and trauma, especially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 PTSD usually occurs after someone goes through a traumatic event like combat, assault, or disaster. North Korean defectors have typically been exposed to traumatic events, since many of them either witnessed or experienced violence within North Korea. Some were tortured or forcefully repatriated to North Korea from China while attempting to reach the South. North Korean defectors surveyed showed PTSD symptoms such as insomnia and feelings of helplessness that made it difficult to hold steady jobs or perform well academically. If South Koreans were more aware of these challenges, North Koreans would have a higher chance of being understood by South Koreans. In 2013 when surveyed by the Database Center for North Korean Human rights, North Korean young adult defectors aged 20-29 showed that their labor force participation rate was 55%, which was substantially lower than that of their South Korean counterparts, which was 62.8%. North Korean refugees often experience cultural conflict in workplaces in the form of language barriers and difficulties in interpersonal communications. 

 

With increased empathy from South Koreans for North Koreans and with more schools such as Yeomyung School, Korea will be one step closer to reunifying as a people. Just like Germany and Vietnam, reunification is inevitable. Many people look at reunification as preventing nuclear war or negotiating with governments, but true reunification is reuniting the hearts and minds of both North and South Kor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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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미주 평화통일 문예공모전 심사평

 

장수인 (필하모니아 보스톤 오케스트라 대표, 민주평통 수석부회장)

출품한 작품들 모두가 생동감넘치고 창의력이 풍부했습니다. 심사내내 자랑스럽고 뿌듯했습니다.이들의 꿈이 이뤄지는 평화의 미래가 그들앞에 펼쳐질 날을 꿈꾸며 행복했습니다.

 

유수례(전업작가, SooRyeArt Gallery Owner)

참가자 학생들의 다양한 예술작품을 통해 남북분단의 현실과 평화통일을 글과그림으로 담아내는 흥미롭고, 아름다운 작품들이 많았으며, 순수한 감성과 창작력으로 주제에 접근하는 표현력이 훌륭했다. 뜻깊은 행사로 민족성과 정체성을 체험하여, 감사하고 뿌듯함을 느낌니다.

 

신 영(민주평통 보스톤 여성분과 위원장, 작가,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평화통일' 참으로 먼 길,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그 길. 그 길 위에서 이번 <2020 미주지역 평화통일문예공모전>을 통해서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의 생각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고, 희망을 볼 수 있어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전승희(Visiting Assistant Professor in Korean, Department of Eastern, Slavic and German Studies Boston College)

미국에서 자라는 청소년들의 발랄하고 창의적인 한반도 평화의 비전을 볼 수 있어 즐겁고 보람 있었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의 꿈이 하루 빨리 앞당겨져서 우리 모두 평화로운 한반도, 평화로운 세계를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청소년들이 있는 한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서영애(평통 부회장, 한인회 부회장, 한미노인회 총무)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의 풍부한 상상력과 함께 열심히 노력한 글과 그림의 작품들을 만나며 우리의 꿈이 바로 희망이 되겠다는 생각에 즐거웠습니다.

 

허 훈(민주평통 보스턴 협의회, 보스턴 한인 경제인협회/World OKTA 보스턴 지회 차세대 위원장/부회장)

심사를 하면서 우리 아이들의 상상력과 자유로운 표현에 감동을 받고 희망찬 미래를 엿볼수 있었습니다.  참가자 모두들 잘 하셨고 감사합니다!!

 

 

 

ⓒ 보스톤코리아




최서경, 평통 문예공모전 미주지역 결선서 우수상


보스톤코리아  2020-08-06, 18:31:15 


 


(보스톤 = 보스톤코리아) 편집부 = 평통이 주최한 온라인 평화통일문예공모전에서 보스톤 대표로 출전한 최서경(Sally Choi) 학생이 우수상을 수상했다. 최서경 학생은 상장과 상금 70만원을 수여받게 된다.

 

미주지역 결선 시상식은 8월 13일 오후 8시에 온라인 줌으로 개최된다. 당초 시상식은 시애틀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워싱턴 주의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의 악화로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돼 온라인으로 대체됐다. 

 

최서경 학생은 “나홀로 평양에”라는 제목의 수필로 보스톤 지역 예선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번 미주 결선 대상은 <철조망에 피어 오른 진달래 꽃> 수필을 쓴 마이애미 거주 이경욱 학생이 차지했다.

 

한선우 보스톤평통 회장은 “보스톤 협의회가 입상한 것은 처음”이라며 “문예공모전을 담당한 준비위원장님과 위원님들께 칭찬과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한편 보스톤 평통은 보스톤지역 공모전 시상식을 6일 오후 7시 45분 줌으로 개최한다. 



2020 평화통일문예공모전 시상식

Time: Aug 6, 2020 07:45 PM 

https://us02web.zoom.us/j/89006670936?pwd=eTlacXl0czFUM2QyVDlyZ1dQblJNQT09

Meeting ID: 890 0667 0936

Passcode: nuac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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