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쇼트트랙 레전드 공동 6위 – 채지훈]
@ 커리어 하이라이트
한국 쇼트트랙의 에이스 계보는 ‘김기훈 -> 채지훈 -> 김동성 -> 안현수’의 순서로 이어집니다. 채지훈은 한국 쇼트트랙의 1세대인 김기훈, 이준호의 뒤를 이어서 차세대 주자로 화려하게 등장했습니다. 김기훈, 이준호와 마찬가지로 채지훈도 역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출신으로 쇼트트랙으로 전향해서 세계 무대를 주름잡았습니다.
채지훈은 고교 재학 시절이었던 1992년에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쇼트트랙으로 전향했습니다. 1992년 3월에 캐나다 캘거리에서 개최된 세계 주니어선수권에 출전하면서 국제 무대에 데뷔했고 1992년 11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대선배 김기훈과 이준호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키며 시니어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채지훈은 시니어 무대에서의 첫 국제대회 데뷔전인 1992년 12월 아시아선수권에서 2관왕에 올랐습니다.
채지훈은 1993년 1월에 개최된 환태평양 쇼트트랙 선수권에서 3000m 금메달을 획득했고 같은 해 1월에 개최된 프레올림픽에서 1000m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채지훈은 1993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1500m 동메달, 3000m 금메달을 획득하며 개인종합 3위에 올랐습니다. 이때부터 채지훈은 김기훈과 이준호의 뒤를 잇는 한국 쇼트트랙의 차세대 에이스로 떠올랐습니다. 1993년 12월에 개최된 아시아컵 쇼트트랙 대회에서는 3000m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은 채지훈의 쇼트트랙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채지훈은 남자 1000m에서는 김기훈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고 남자 500m에서는 이탈리아의 미르코 빌레르민을 제치고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특히 남자 500m 결승전에서는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대역전극이 펼쳐졌습니다. 당시 단거리 종목의 최강자였던 미르코 빌레르민은 예선부터 준결승까지 모든 레이스에서 초반부터 압도적으로 선두를 독주하면서 뒤따라 오는 선수들을 한번씩 쳐다보는 여유까지 부리고 있었습니다.
결승전에서도 빌레르민이 초반부터 선두에서 독주하고 있었는데, 빌레르민이 방심하는 틈을 타서 채지훈은 아웃코스에서 추격전을 벌인 뒤 결승선에서 스케이트날 내밀기를 통한 막판뒤집기 대역전극을 펼쳤습니다. ‘스케이트날 내밀기’는 한국 선수들의 전매특허였는데, 1992년 알베르빌의 김기훈, 1994년 릴레함메르의 채지훈, 1998년 나가노의 김동성과 전이경이 차례로 짜릿한 명장면을 재연했습니다.
채지훈은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를 획득하며 세계 최강자로 올라섰습니다. 하지만 채지훈이 진정한 세계 최강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아직 한 가지 관문이 더 남아 있었습니다. 올림픽 이후 개최된 1994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채지훈은 1500m 금메달을 획득하며 개인종합 2위에 올랐습니다. 채지훈은 아직 세계챔피언 대관식을 치르지 못했고, 그 사이에 캐나다의 마크 가뇽은 2년 연속으로 세계챔피언에 등극하며 채지훈과의 라이벌 경쟁 구도에서 한발 앞서나가고 있었습니다.
1995년 시즌 들어서 채지훈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기량이 절정에 오른 채지훈은 1995년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 1000m, 1500m, 3000m 금메달을 획득하고 5000m 계주(릴레이)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하며 4관왕에 올랐습니다. 이어서 1995년 세계선수권에서 채지훈은 1500m, 500m, 30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개인종합 1위에 올라서 4관왕에 등극했습니다. 생애 첫 세계챔피언 등극인 동시에 개인종목 네 종목 중에 세 종목을 휩쓰는 순도 높은 활약을 통해 단일시즌 4관왕으로서의 위용을 과시했습니다. 이로써 채지훈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세계선수권자’의 지위를 모두 획득하면서 라이벌 마크 가뇽과의 경쟁구도에서도 한발 앞서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내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채지훈은 부상으로 인해 상승세가 주춤해졌습니다. 하지만 1996년 시즌 들어서도 채지훈은 여전히 세계 정상급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1996년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채지훈은 1000m와 3000m에서 금메달, 15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하고 5000m 계주(릴레이)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3관왕에 올랐습니다.
1996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채지훈은 1000m와 15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했고 5000m 계주(릴레이)에서 동메달, 30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개인종합 2위에 올랐습니다. 채지훈은 여전히 세계 정상급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라이벌 마크 가뇽에게 간발의 차이로 개인종합 우승을 내주면서 경쟁구도에서 다시 한발 뒤처지기 시작했습니다.
1996년 10월 초에는 미국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챌린저컵’ 쇼트트랙 선수권대회가 열렸고 같은 해 10월 말에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세계랭킹대회’가 열렸습니다. 레이크플래시드 ‘챌린저컵’ 대회에서는 일본의 데라오 사토루가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했고 중국의 리자준이 2위, 캐나다의 프레드릭 블랙번이 3위에 올랐습니다. 채지훈은 7위에 머무르며 부진했습니다. 몬트리올 ‘세계랭킹대회’에서는 한국의 채지훈이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했고 캐나다의 프레드릭 블랙번이 2위, 한국의 이준환과 김동성이 공동 3위에 올랐습니다. 채지훈은 1996년 연말 세계랭킹에서도 1위에 올랐습니다.
한편 채지훈에게는 데라오 사토루라는 새로운 라이벌이 등장했습니다. 채지훈과 데라오 사토루는 레이크플래시드 ‘챌린저컵’ 대회와 몬트리올 ‘세계랭킹대회’에서 각각 장군멍군을 주고받은 뒤, 1996년 11월 아시아선수권에서 격돌하며 진검승부를 펼쳤습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의 채지훈은 금메달 4개를 획득하며 4관왕에 올랐고 일본의 데라오 사토루는 은메달만 5개를 획득했습니다. 중국의 리자준은 금메달 1개를 획득했습니다. 채지훈은 데라오 사토루와의 한일전 라이벌 대결에서 완승을 거뒀지만 이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훈련하다가 다시한번 허리부상을 당했고 이는 선수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치명적인 위기로 다가왔습니다.
1997년 시즌 들어서 채지훈은 부상으로 인해서 국제대회에서 제대로 된 활약을 펼칠 수가 없었습니다.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채지훈은 부상 후유증으로 인해 개인종목 경기를 제대로 뛰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단체 경기인 5000m 계주(릴레이)에 출전해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투혼을 선보였습니다. 채지훈은 부상 후유증에서 회복하지 못하며 1997년의 나머지 시즌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해야 했습니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채지훈은 재기를 노리며 절치부심했지만 개인종목에서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습니다. 채지훈은 남자 1000m에서 6위를 차지했습니다. 단체경기인 남자 5000m 계주에서는 채지훈, 이준환, 김동성 트리오가 주축을 이룬 한국 대표팀의 금메달이 유력해 보였지만 중국 선수가 넘어질 때 우리나라 선수도 같이 휩쓸려 넘어지는 날벼락을 맞으며 금메달을 놓치고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채지훈의 마지막 올림픽은 진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채지훈은 1998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도 5000m 계주(릴레이)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마지막 불꽃을 태웠지만, 개인종목에서는 메달 획득에 실패하며 끝내 재기하지 못하고 은퇴했습니다. 채지훈의 라이벌이었던 마크 가뇽은 이 대회에서 통산 4회째 개인종합 우승을 달성하며 채지훈과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한국 대표팀에서도 채지훈의 후배 김동성이 개인종합 3위에 오르며 새로운 에이스로 떠올랐습니다. 이로써 채지훈의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 세계선수권에서의 활약
채지훈은 세계선수권에서 1993년 개인종합 3위, 1994년 개인종합 2위, 1995년 개인종합 우승, 1996년 개인종합 2위에 올랐습니다. 통산 우승 1회, 준우승 2회, 3위 1회로 개인종합 3위 이내에는 총 네 차례 시상대에 올랐습니다. 각 개별 종목별로는 세계선수권에서 통산 금메달 7개, 은메달 4개, 동메달 5개를 획득했습니다.
[참고] 1990년대 이후의 세계선수권에서 단일시즌 3관왕 이상을 차지한 선수들
1992년 김기훈(5관왕), 1995년 채지훈(4관왕), 1997년 김동성(4관왕), 1998년 마크 가뇽(4관왕), 1999년 리자준(4관왕), 2000년 민룡(3관왕), 2001년 리자준(3관왕), 2002년 김동성(6관왕), 2003년 안현수(4관왕), 2004년 안현수(5관왕), 2006년 안현수(3관왕), 2007년 안현수(3관왕), 2009년 이호석(3관왕), 2010년 이호석(4관왕), 2011년 노진규(4관왕), 2012년 곽윤기(3관왕), 2013년 신다운(3관왕), 2016년 한티안유(4관왕), 2017년 싱키 크네흐트(3관왕), 2018년 찰스 해멀린(3관왕).
위의 명단에서 이름이 누락된 선수들은 대부분 개인종목 네 종목 중에서 금메달 한 개를 따내고 개인종합 포인트 합계에서 간발의 차이로 1위에 오르며 2관왕에 오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통계자료에서 알 수 있듯이 세계선수권에서 우승 안정권에 들기 위해서는 개인종목 네 종목 중에서 금메달 2개 이상이 필요하며, 여기에 개인종합 포인트 1위에 오르거나 또는 단체종목인 계주(릴레이)에서 금메달을 추가해서 3관왕 내지는 4관왕에 올라야 압도적인 챔피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체 경기인 계주(릴레이)를 제외한 순수 개인종목 성적만으로 따졌을 때는 김기훈(1992년)과 김동성(2002년)은 개인종목에 걸려 있는 금메달 4개를 모두 싹쓸이했고 채지훈(1995년)과 안현수(2004년), 노진규(2011년)는 개인종목에 걸려 있는 금메달 4개 중에 3개를 쓸어담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순수 개인종목 3관왕 이상’의 성적을 달성한 5명의 선수들은 모두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한시대를 풍미한 간판스타였습니다.
따라서 채지훈(1995년)은 단일시즌 최강자로서 확실한 임팩트를 남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관왕(500m, 1500m, 3000m, 개인종합)이라는 기록 자체만으로도 찬사를 받을 만하지만, 개인종목의 성적만으로 달성한 업적이라서 그만큼 순도도 높았습니다. 역대 세계챔피언 중 대표적인 ‘단일시즌 최강자’를 꼽는다면 김기훈(1992년), 채지훈(1995년), 김동성(2002년), 안현수(2004년), 노진규(2011년)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채지훈은 세계선수권에서 1993년부터 1996년까지 4년 연속으로 개인종합 3위 이내에 입상하면서 통산 우승 1회, 준우승 2회로 매우 훌륭한 성적을 거뒀습니다. 채지훈이 쇼트트랙 선수로 활동한 기간이 6년에 불과했고, 세계선수권에 출전한 횟수는 겨우 다섯 번뿐이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전성기 시절의 채지훈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전성기가 길지 않았던 채지훈은 세계선수권 통산 금메달 개수에서는 1990년대 이후의 선수들 중 안현수(20개), 마크 가뇽(14개), 찰스 해멀린(13개), 리자준(12개), 김동성(11개), 이호석(9개), 아폴로 안톤 오노(8개), 김기훈(8개)에 이어서 7개의 금메달로 역대 9위에 올라 있습니다.
세계선수권에서 거둔 성적을 분석해본 결과, 채지훈은 단일시즌의 활약 면에서는 압도적인 최강자의 임팩트를 보여주었고, 전성기는 짧은 편이었지만 통산 기록에서도 그리 나쁘지 않은 성적을 보여주며 역시 쇼트트랙 세계 최강국 대한민국에서도 4대 레전드 계보의 일원으로서 자랑스러운 성적을 올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올림픽에서의 활약
채지훈은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 500m금메달과 1000m 은메달을 획득했고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5000m 계주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통산 두 차례의 올림픽에 출전해서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채지훈이 선수로 활동하던 1990년대 당시까지만 해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수식어 자체만으로도 세계 최강자임을 설명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올림픽에서 도전할 수 있는 금메달 수가 적었기 때문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수식어 자체만으로도 희소가치가 충분했고 별도의 부연설명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의 동계올림픽을 통해서만 쇼트트랙을 접한 팬들은 통산 메달 개수만 단순하게 살펴보고 채지훈의 기록이 초라하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시대상을 고려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 500m 금메달과 1000m 금메달의 가치에 차등이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쇼트트랙의 세계 최강자를 다투는 선수들은 대부분 중장거리 종목인 1000m와 1500m에서 강세를 보이는 경우가 일반적이었고, 500m에서는 단거리 전문 선수가 따로 존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습니다. 따라서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이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당시에도 1000m 종목의 금메달리스트가 곧 세계 최강자로 인식되면서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특히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는 쇼트트랙이 처음으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서 개인종목이 1000m 한 종목뿐이었기 때문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곧 세계 최강자임을 의미했습니다. 게다가 김기훈은 단체 종목인 5000m 계주(릴레이)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금메달 2개를 모두 획득했기 때문에 명실상부한 쇼트트랙의 황제로서 대관식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은 하계올림픽과의 개최 주기 조정을 위해 2년 만에 개최되었습니다. 이때부터 500m 부문 경기도 신설되었지만 여전히 1000m 경기가 메인이벤트로 인식되었고 여기서 2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한 김기훈에게 여전히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으며, 은메달을 획득한 채지훈은 차세대 스타로 주목받았습니다. 당초 500m 종목은 크게 기대를 걸고 있지 않았었는데, 채지훈이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면서 금메달을 획득한 것이었습니다.
올림픽에서 ‘개인종합’이라는 개념이 공식적으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는 채지훈이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로 참가 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을 올렸고,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는 김동성이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로 참가 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을 올렸습니다. 사실상의 ‘개인종합 1위’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수식어를 ‘올림픽 챔피언’ 또는 ‘올림픽 세계챔피언’의 의미로 사용해도 크게 무리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부터는 1500m 종목이 하나 더 늘어나게 되면서 단순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수식어 자체만으로 세계 최강자라고 할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2006년 토리노의 안현수(3관왕), 2010년 밴쿠버의 이정수(2관왕), 2014년 소치의 빅토르 안(3관왕)은 사실상의 ‘개인종합 1위’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올림픽을 제패한 세계 최강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세계선수권처럼 ‘개인종합 세계챔피언’에 대한 공식적인 시상식이 따로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1990년대의 세 차례 동계올림픽에서 김기훈, 채지훈, 김동성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수식어 자체만으로도 희소가치가 충분했기 때문에 사실상의 ‘세계 최강자’, ‘세계 챔피언’의 의미로 인식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팬들에게 이해를 시키기 위한 부연설명을 위해서 편의상 ‘개인종합 성적’의 개념을 한번 대입해서 분석을 해본 것이고, 실제로도 ‘사실상의 개인종합 1위’에 해당됨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다만 1992년 알베르빌의 김기훈은 ‘적수가 없는 쇼트트랙의 황제’로서 대관식을 치른 느낌이라면 1994년 릴레함메르의 채지훈과 1998년 나가노의 김동성은 ‘출전 선수 중 간발의 차이로 1등을 한 선수’로서의 느낌이기 때문에 그 무게감에는 차이가 있는 편입니다. 1994년 릴레함메르의 채지훈은 개인종목 두 종목 성적만을 합산했을 경우에는 ‘사실상의 개인종합 단독 1위’에 해당하는 성적을 올렸고, 계주(릴레이) 성적을 합산했을 경우에는 이탈리아의 미르코 빌레르민과 함께 ‘사실상의 개인종합 공동 1위’에 해당하는 성적을 올렸습니다.
릴레함메르의 채지훈과 나가노의 김동성은 메달 숫자는 똑같지만 채지훈의 기록이 순수하게 개인종목 성적만으로 거둔 성과이기 때문에 좀 더 순도가 높은 편입니다. 그리고 올림픽 통산 성적에서도 채지훈(금 1, 은 2)이 김동성(금 1, 은 1)보다는 약간 더 성적이 좋습니다.
실제 성적과는 별개로 이미지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알베르빌의 김기훈과 나가노의 김동성은 메인이벤트 격인 1000m에서의 금메달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릴레함메르의 채지훈은 메인이벤트 격인 1000m에서는 금메달을 놓쳤지만 500m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둠으로써 최후의 승자로 떠오른 케이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대의 팬들에게 있어서는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채지훈’이라는 수식어는 곧 ‘릴레함메르에서 세계를 제패한 쇼트트랙의 왕자 채지훈’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 기타 국제대회에서의 활약
1980~90년대에는 쇼트트랙 선수들이 참가할 수 있는 국제대회가 그다지 많지 않았고 세계랭킹이라는 개념도 희박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시절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이외의 국제대회 중에서 비중이 높았던 대회는 각 대륙별 선수권 또는 동계 유니버시아드 정도였습니다. 1995~1997년 사이에는 ‘챌린저컵’ 같은 컵대회나 ‘세계랭킹대회’가 몇 차례 개최되었는데 오늘날의 ‘쇼트트랙 월드컵 시리즈’의 시초 격이었습니다.
국제빙상연맹(ISU)에서 역대 기록이나 역사자료 관리를 워낙에 엉망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 전설적인 선수들의 활약상에 대한 자료를 찾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저 당대에 TV 중계를 통해 나왔던 해설자의 멘트에 대한 기억력에 의존한다든지 또는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검색을 통해서 과거 신문기사를 찾아보는 정도로 그나마 부족한 기억력을 보충해 가면서 간신히 퍼즐조각을 맞춰가는 정도로 그나마 사라진 역사자료를 아주 약간은 복원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아시아에는 아시아의 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아시안게임’이라는 스포츠 이벤트의 존재로 인해 타대륙과는 다른 특수성이 있습니다. 축구에서 ‘아시안컵’과 ‘아시안게임’이 별도로 존재하듯이 1990년대 초~중반까지는 쇼트트랙에서도 ‘아시아선수권 또는 아시아컵’과 ‘동계 아시안게임’이 별도로 존재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시아선수권’과 ‘아시아컵’은 흐지부지 사라졌고 오늘날에는 ‘동계 아시안게임’만이 존속되고 있습니다.
채지훈은 1996년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에 올랐고 그밖에 1992년 아시아선수권에서 2관왕, 1996년 아시아선수권에서 4관왕에 오르는 등 아시아 무대를 주름잡았습니다. 이 시절에 채지훈과 아시아 무대에서 자웅을 겨뤘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일본의 데라오 사토루였고, 중국의 리자준의 이름도 과거 기사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는 세계선수권이 열리기 전에 개최되어서 사실상의 ‘세계선수권 전초전’과 같은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1991년에는 당대 세계 최강자를 다퉜던 김기훈과 윌프레드 오레일리의 맞대결이 있었고 1995년과 1997년에는 남자부에서는 중국의 리자준, 일본의 데라오 사토루, 여자부에서는 중국의 양양 A, 왕춘루 등이 우리나라 선수들과 치열한 경합을 펼쳤습니다.
이 대회에서도 우리나라 선수들이 특히 강세를 보였었는데 남자 쇼트트랙에서 김기훈은 1989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3관왕, 1991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4관왕에 올랐고 이준호는 1989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2관왕, 1993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4관왕에 올랐으며 채지훈은 1995년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 4관왕에 오른 뒤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도 계주(릴레이) 금메달 1개를 추가했습니다. 여자 쇼트트랙의 김소희와 전이경도 1995년,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 두 대회 연속으로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1996년~1997년 사이에 열린 컵대회의 결과도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검색을 통해서 간신히 과거 기록을 일부 복원할 수가 있는데, 1996년에는 ‘챌린저컵’ 대회에서는 일본의 데라오 사토루가 우승했고 ‘세계랭킹대회’에서는 대한민국의 채지훈이 우승했으며 1997년에는 ‘챌린저컵’과 ‘세계랭킹대회’에서 모두 대한민국의 이준환이 우승했습니다. 그 무렵 여자부에서는 대한민국의 전이경이 세계랭킹 1위를 거의 휩쓸고 있었습니다.
채지훈의 선수 시절 커리어 중에서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이외의 대회 중 가장 의미 있는 커리어’를 꼽자면 ‘1995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4관왕’, ‘1996년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 3관왕’, ‘1996년 아시아선수권 4관왕’, ‘1996년 세계랭킹 1위’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순위 선정 근거
일단 채지훈에게 붙는 수식어인 ‘릴레함메르의 영웅’,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세계선수권자’라는 수식어 자체만으로도 쇼트트랙 역사에서 전설이라 불릴 만한 자격은 충분합니다. 실제로 현미경을 들이대고 그 내용을 정밀분석을 해봐도 역시 매우 훌륭한 성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채지훈은 단일시즌 최강자로서의 활약 면에서는 더욱더 순도 높은 1인자로서의 임팩트를 보여주었고, 라이벌인 마크 가뇽과의 경쟁 구도에서도 단일시즌의 임팩트에서만큼은 우위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채지훈이 두 차례나 부상과 재활을 거듭하며 고군분투하는 동안 라이벌 마크 가뇽이 ‘세계선수권 통산 4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해버렸기 때문에 아쉽게도 김기훈의 계보를 잇는 쇼트트랙 황제의 이름에는 채지훈의 이름이 아닌 마크 가뇽의 이름이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채지훈은 전성기가 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알차고 밀도 있는 커리어를 기록했습니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이외에도 동계 유니버시아드, 동계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세계랭킹대회 등 그 시절 쇼트트랙 선수가 출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대회에서 최강자의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그것도 단순한 1등이 아니라 최소 3관왕, 4관왕은 기본으로 할 만큼 압도적인 위용을 과시했습니다.
따라서 채지훈이 역대 쇼트트랙 황제의 계보인 ‘김기훈 -> 마크 가뇽 -> 김동성 -> 안현수’의 계보에 들지 못하게 된 것은 다소 아쉽게 됐지만 그 바로 다음 서열에 오를 만한 자격은 충분합니다. 그리고 쇼트트랙의 세계 최강국인 대한민국에서 ‘김기훈 -> 채지훈 -> 김동성 -> 안현수’의 계보는 ‘전설 중의 전설’, 즉 왕중왕이나 다름없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만 본 시리즈에서는 채지훈과 리자준의 쇼트트랙 경력을 비교하는 데 있어서는 도저히 우열을 판가름하기가 어려워서 역대 레전드 공동 5위로 처리했습니다. 채지훈의 경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세계선수권자’를 비롯해서 그 시절 쇼트트랙 선수가 도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타이틀을 섭렵하며 단일시즌의 압도적인 최강자로서의 위용을 과시했다는 데에 강점이 있고, 리자준은 올림픽 금메달과는 인연을 맺지 못한 반면 ‘세계선수권 2회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고, 그밖에도 1990년대 중반의 컵대회에서부터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월드컵 시리즈에서도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는 등 오랫동안 롱런했다는 데에 강점이 있습니다.
한편 1980년대 빙상의 전설들인 게이튼 바우처(캐나다), 가이 데이그놀트(캐나다), 미첼 데이그놀트(캐나다), 이시하라 다쓰요시(일본), 가와이 도시노부(일본) 등의 선수들 역시 채지훈이나 리자준 같은 1990년대 전설들과의 직접적인 우열을 비교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본 시리즈의 쇼트트랙 역대 레전드 순위에서는 1990년대 이후의 선수들만을 다루었고, 1980년대의 과거 전설들은 번외로 처리했습니다.
[본 시리즈를 처음 기획하던 시점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개최되기 이전의 시점이었습니다. 따라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의 성적은 당초에 기획한 역대 레전드 순위에 반영되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2018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찰스 해멀린이 예상을 뒤엎고 개인종합 세계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결국 역대 레전드 순위에서도 이 부분을 반영해서 찰스 해멀린의 순위를 8위에서 5위로 상향조정하는 것이 불가피해졌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영웅 채지훈의 순위가 한 계단 밀려나는 것이 무척 가슴 아프기는 하지만, 채지훈과 리자준의 순위는 공동 6위로 조정되었습니다.]
{출처: 야후 위키피디아,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과거 신문, 방송 뉴스기사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