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의 중용 - 도올 김용옥의 중용 인간의 맛 25강 언言과 행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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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이야기

도올 김용옥의 중용 - 도올 김용옥의 중용 인간의 맛 25강 언言과 행行

재휘애비.溢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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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aBlHhQSaicE

도올 김용옥의 중용 - 도올 김용옥의 중용 인간의 맛 25강 언言과 행行_#001

 

 

* 중용을 실천하려면, 

  (순임금이 순임금 된 까닭은 이러한 時中을 행한 연유이다)

 

  (1) 호문 好問 _ 묻기를 즐겨하십시오

  (2) 호찰이언 好察邇言 _  가까운 이의 말을 잘 살피십시오

  (3) 은오이양선 隱惡而揚善 _ 남의 추한 점을 가려주고 좋은 점을 드러내십시오

  (4) 집기양단, 용기중어민 執其兩端, 用其中於民 _ 양 단/극단을 취한후, 그 중간을 백성에게 적용하십시오

 

1. 기소불욕, 물시어인  /  己所不欲, 勿施於人 _ 논어 15-23

   "네가 원치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하지) 말라."

 

   * 이 명제는 논어 뿐 아니라, 유대교 지혜문학, 희랍철학, 불교 원시경전, 이슬람 문헌에도 나타나며

      대개 '부정형'을 취하고 있다. 기독교 황금률만이 예외이다.

 

   * 기소욕, 시어인  /  己所欲, 施於人

     남이 나에게 해주었으면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네가 그들에게 행하라.(마태 7:12, 누가6:31)

 

     "남에게 베풀라"는 긍정태의 메시지는 오히려 윤리적 보편명제가 되기 어렵다.

      내게 좋은것이라 해서 남에게도 좋은 것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니 모두가 원한다고 믿는 것은 선행이 아니며, 오히려 폭력이 될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 하버마스(프랑크푸르트학파의 거장)는 "생활세계의 합리화"가 체계 system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지화"를

     초래하였다고 비판한다. 

 

 

2. 군자지도사, 구미능일언  /  君子之道四, 丘未能一焉

   "군자의 도는 네가지가 있으나, 나 구丘(공자)는 그 중 한 가지도 능하지 못하는구나."

 

   - (계속) 자식에게 바라는 것으로써 아버지를 잘 섬겼는가? 나는 이것이 능하지 못하도다.

     신하에게 바라는 것으로써 임금을 잘 섬겼는가? 나는 이것에 능하지 못하도다.

     아우에게 바라는 것으로써 형님을 잘 섬겼는가? 나는 이것에 능하지 못하도다.

     붕우에게 바라는 것을 내가 먼저 베풀었는가? 나는 이것에 능하지 못하도다. 

 

   * 군자에게 있어서 수신修身의 문제

 

     수신修身은 "신독身獨"이다.

     수신이란, "주체의 심화과정 the deepening process of subjectivity" 이다.

     신독이란, 혼자 있을 때 삼가는 모습이며 자기 내면으로의 침잠이다.

 

    "위로는 하늘을 탓하지 말며, 아래로는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말라." _ 중용 

 

   * 주체(인간)의 종적 심화는 반드시 횡적인 연대, 즉 수평적 인간관계를 통하여 구현되어야 한다. 

     그런 인간관계의 총칭이 바로 오륜 五倫 이다.

 

   * 선진시대의 유교는 이미 20세기 서구의 실존주의 Existentialism 가 지향하는 모든 인간의 가능성을

     구현하고 있다. 유교에서는 실존 existentia 이 본질 essentia 에 앞선다는 핵심적 명제가 상식이다.

 

 

3. 용덕지행, 용언지근  /  庸德之行, 庸言之謹

   "사람이란 모름지기 항상스러운 범용의 덕을 행하며, 항상스러운 범용의 말을 삼가하여야 한다."

 

    언고행, 행고언, 군자호불조조이!  /  言顧行, 行顧言, 君子胡不조조爾!

    "말은 반드시 행동을 돌아보아야 하며, 행동은 반드시 말을 돌아보아야 하니,

     군자가 어찌 삼가하여 독실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오!"

 

   - 인간이 쓰는 언어는 모든 요소가 고도의 상징체계 symboliic system 이다. 

     인간이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만물의 영장이 되었지만, 언어는 항상 인간의 모든 비극의 연원으로

     남아있다. 언어는 비극이다. _ 도올

 

   - 인간언어의 위대함은 상징체계에 있다. 

     인간은 행동하기 전에 말을 하는 존재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존재이다.  

 

   - sign  :  (의미의 대응관계가) "1:1" 이다

     symbol  :  "1: 다多" 이다

 

    cf. mother tongue _ 엄마의 혀 (모국어가 아인 모어 母語)

        모국어와 모어는 다를 수 있으며, 모어는 반드시 국가권력의 지배를 받는 체계는 아니다.

 

   * "이 시대를 지배하는 언어, 즉 에피스팀 spisteme 이 개별적 사고를 빌어 자신을 표현한다."

      _미셀 푸코(1928~1984)

 

   * 인간은 이미 존재하는 언어의 지배를 당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가 인간을 주장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언어의 위험성을 막는것이 행行 이다.  

    

   * 언어의 절대적 가치를 신뢰하는 서방사상과는 달리 동방사상은 대체적으로 언어를 주체를 표현하는 

     제1차적 매체로 간주하지 않는다. 언어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있다.

 

     cf. 서양철학사의 주류는 지식론 theory of knowledge 이다. 

         결국 그것은 말言의 문제이다. 이 주제의식은 플라톤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 면면이 이어져왔다. 

 

   * 언행일치 言行一致 라는 상식적 명제는 우리 고전의 메시지가 아니다. 

     언행일치는 말과 행동의 단순한 정적 일치가 아니다. 

     말과 행동의 끊임없는 변증법적 동적 교섭의 과정이다. 

     (언고행, 행고언)

 

   * 인간의 주체성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반드시 행함 行으로만 가능하다. 

 

 

4. 자왈 : "교언영색, 선의인!"  /  子曰 : "巧言令色, 鮮矣仁!"

    공자가 이르기를 "교묘한 말과 꾸민 얼굴에는 어진사람이 적다!"

 

   - 공자는 '실천력 없는 말'을 가장 싫어했다. 

 

   - 도가도, 비상도  道可道, 非常道 _ 도덕경 1장 

     도가사상은 언어를 부정한다. 언어는 실재의 정확한 표상이 될 수 없다. 

 

   - 유가와 도가는 대립되는 두 개의 학파가 아니다.

     인식론과 우주론을 근원적으로 공유하는 교섭의 두 축일 뿐이다.

 

   * 언은 행을 통해 실현되고 완성되는 것이다. 

     말에 행동이 뒤따를때 비로서 그 말에 힘이 생기는 것이다. 

 

   *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닙니다.

      이름 지을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닙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무엇이 하늘과 땅의 시원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온갖 것의 어머니

      그러므로 언제나 욕심이 없으면 그 신비함을 볼 수 있고

      언제나 욕심이 있으면 그 나타남을 볼 수 있습니다.

    

      둘 다 근원은 같은 것

      이름이 다를 뿐 둘 다 신비스러운 것입니다.

      신비 중의 신비요, 모든 신비의 문입니다.

 

      <도덕경> 제1장, 오강남 풀이

 

 

[제25강 핵심]

 

지렁이는 말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를 행동으로 옮길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행동에 앞서 말을 한다. 그리고 그 말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때가 많다.

인간의 문명은 언어와 더불어 시작하였다. 언어는 문명에 모든 가능한 생명력과 추동력을 부여했지만

인간의 운명에 비극성을 부여하였다. 

 

언행일치는 말과 행동의 일시적 일치를 의미하지 않는다.

말과 행동은 서로를 보완해 가면서 서로에게 생명력을 부여하는 변증법적 관계이다.

말은 행동으로 옮겨져야 하며, 행동은 말을 고양시킨다. 

 

도가는 언言을 부정하고, 유가는 언행 言行의 변증법을 말한다.



"호문 好問, 호찰 好察, 집기양단 執其兩端 !" 

 

 

1. 기소불욕, 물시어인  /  己所不欲, 勿施於人 _ 논어 15-23

   "네가 원치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하지) 말라."

 

   * 이 명제는 논어 뿐 아니라, 유대교 지혜문학, 희랍철학, 불교 원시경전, 이슬람 문헌에도 나타나며

      대개 '부정형'을 취하고 있다. 기독교 황금률만이 예외이다.

 

   * 기소욕, 시어인  /  己所欲, 施於人

     남이 나에게 해주었으면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네가 그들에게 행하라.(마태 7:12, 누가6:31)

 

     "남에게 베풀라"는 긍정태의 메시지는 오히려 윤리적 보편명제가 되기 어렵다.

      내게 좋은것이라 해서 남에게도 좋은 것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니 모두가 원한다고 믿는 것은 선행이 아니며, 오히려 폭력이 될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 하버마스(프랑크푸르트학파의 거장)는 "생활세계의 합리화"가 체계 system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지화"를

     초래하였다고 비판한다. 

 

 

2. 군자지도사, 구미능일언  /  君子之道四, 丘未能一焉

   "군자의 도는 네가지가 있으나, 나 구丘(공자)는 그 중 한 가지도 능하지 못하는구나."

 

   - (계속) 자식에게 바라는 것으로써 아버지를 잘 섬겼는가? 나는 이것이 능하지 못하도다.

     신하에게 바라는 것으로써 임금을 잘 섬겼는가? 나는 이것에 능하지 못하도다.

     아우에게 바라는 것으로써 형님을 잘 섬겼는가? 나는 이것에 능하지 못하도다.

     붕우에게 바라는 것을 내가 먼저 베풀었는가? 나는 이것에 능하지 못하도다. 

 

   * 군자에게 있어서 수신修身의 문제

 

     수신修身은 "신독身獨"이다.

     수신이란, "주체의 심화과정 the deepening process of subjectivity" 이다.

     신독이란, 혼자 있을 때 삼가는 모습이며 자기 내면으로의 침잠이다.

 

    "위로는 하늘을 탓하지 말며, 아래로는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말라." _ 중용 

 

   * 주체(인간)의 종적 심화는 반드시 횡적인 연대, 즉 수평적 인간관계를 통하여 구현되어야 한다. 

     그런 인간관계의 총칭이 바로 오륜 五倫 이다.

 

   * 선진시대의 유교는 이미 20세기 서구의 실존주의 Existentialism 가 지향하는 모든 인간의 가능성을

     구현하고 있다. 유교에서는 실존 existentia 이 본질 essentia 에 앞선다는 핵심적 명제가 상식이다.

 

 

3. 용덕지행, 용언지근  /  庸德之行, 庸言之謹

   "사람이란 모름지기 항상스러운 범용의 덕을 행하며, 항상스러운 범용의 말을 삼가하여야 한다."

 

    언고행, 행고언, 군자호불조조이!  /  言顧行, 行顧言, 君子胡不조조爾!

    "말은 반드시 행동을 돌아보아야 하며, 행동은 반드시 말을 돌아보아야 하니,

     군자가 어찌 삼가하여 독실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오!"

 

   - 인간이 쓰는 언어는 모든 요소가 고도의 상징체계 symboliic system 이다. 

     인간이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만물의 영장이 되었지만, 언어는 항상 인간의 모든 비극의 연원으로

     남아있다. 언어는 비극이다. _ 도올

 

   - 인간언어의 위대함은 상징체계에 있다. 

     인간은 행동하기 전에 말을 하는 존재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존재이다.  

 

   - sign  :  (의미의 대응관계가) "1:1" 이다

     symbol  :  "1: 다多" 이다

 

    cf. mother tongue _ 엄마의 혀 (모국어가 아인 모어 母語)

        모국어와 모어는 다를 수 있으며, 모어는 반드시 국가권력의 지배를 받는 체계는 아니다.

 

   * "이 시대를 지배하는 언어, 즉 에피스팀 spisteme 이 개별적 사고를 빌어 자신을 표현한다."

      _미셀 푸코(1928~1984)

 

   * 인간은 이미 존재하는 언어의 지배를 당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가 인간을 주장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언어의 위험성을 막는것이 행行 이다.  

    

   * 언어의 절대적 가치를 신뢰하는 서방사상과는 달리 동방사상은 대체적으로 언어를 주체를 표현하는 

     제1차적 매체로 간주하지 않는다. 언어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있다.

 

     cf. 서양철학사의 주류는 지식론 theory of knowledge 이다. 

         결국 그것은 말言의 문제이다. 이 주제의식은 플라톤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 면면이 이어져왔다. 

 

   * 언행일치 言行一致 라는 상식적 명제는 우리 고전의 메시지가 아니다. 

     언행일치는 말과 행동의 단순한 정적 일치가 아니다. 

     말과 행동의 끊임없는 변증법적 동적 교섭의 과정이다. 

     (언고행, 행고언)

 

   * 인간의 주체성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반드시 행함 行으로만 가능하다. 

 

 

4. 자왈 : "교언영색, 선의인!"  /  子曰 : "巧言令色, 鮮矣仁!"

    공자가 이르기를 "교묘한 말과 꾸민 얼굴에는 어진사람이 적다!"

 

   - 공자는 '실천력 없는 말'을 가장 싫어했다. 

 

   - 도가도, 비상도  道可道, 非常道 _ 도덕경 1장 

     도가사상은 언어를 부정한다. 언어는 실재의 정확한 표상이 될 수 없다. 

 

   - 유가와 도가는 대립되는 두 개의 학파가 아니다.

     인식론과 우주론을 근원적으로 공유하는 교섭의 두 축일 뿐이다.

 

   * 언은 행을 통해 실현되고 완성되는 것이다. 

     말에 행동이 뒤따를때 비로서 그 말에 힘이 생기는 것이다. 

 

   *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닙니다.

      이름 지을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닙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무엇이 하늘과 땅의 시원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온갖 것의 어머니

      그러므로 언제나 욕심이 없으면 그 신비함을 볼 수 있고

      언제나 욕심이 있으면 그 나타남을 볼 수 있습니다.

    

      둘 다 근원은 같은 것

      이름이 다를 뿐 둘 다 신비스러운 것입니다.

      신비 중의 신비요, 모든 신비의 문입니다.

 

      <도덕경> 제1장, 오강남 풀이

 

 

[제25강 핵심]

 

지렁이는 말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를 행동으로 옮길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행동에 앞서 말을 한다. 그리고 그 말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때가 많다.

인간의 문명은 언어와 더불어 시작하였다. 언어는 문명에 모든 가능한 생명력과 추동력을 부여했지만

인간의 운명에 비극성을 부여하였다. 

 

언행일치는 말과 행동의 일시적 일치를 의미하지 않는다.

말과 행동은 서로를 보완해 가면서 서로에게 생명력을 부여하는 변증법적 관계이다.

말은 행동으로 옮겨져야 하며, 행동은 말을 고양시킨다. 

 

도가는 언言을 부정하고, 유가는 언행 言行의 변증법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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