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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술김에 나누는 의미없는 이야기 by별유

작성일 작성자 별유






(You Are My Love - 서강준)







“후우...”


반쯤 풀린 눈으로 창밖을 내다보던 ㅇㅇ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밤 11시.

누군가는 독서실 자리를 정리할 시간이었고,

누군가는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간신히

버스에 오를 시간이었다.


ㅇㅇ 또한 퇴근길이었지만

이미 술을 여러 잔 걸친 상태였고,

벌써 내일 출근 생각에

짜증이 치밀어 오른 상태이기도 했다.


“후...”


그녀의 깊은 한숨이 모든 걸 설명해줬다.


ㅇㅇ은 방금 전까지 미터기를 쳐다봤지만

얼마 안 있다 그만 뒀다.

미친 듯이 오르는 요금을 보는 건

퍽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휴대폰의 안부가 걱정 돼

신경질적으로 핸드백 안을 뒤졌다.


“씨...”


간신히 찾은 휴대폰은 깜깜 무소식이었다.


검은 화면을 여러 번 터치해도 켜지지 않자

ㅇㅇ가 입술을 깨물며 다시 미터기를 쳐다봤다.


정확히 본 건 미터기 위 시계였는데,

11시는 넘었으나 11시 30분은 넘지 않은 것에

작은 위안을 얻은 ㅇㅇ이었다.


“어?”


사실 그깟 시간은 중요치 않았다.

눈앞에 더 큰 위안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기사님 저 여기 세워주세요”


“네? 아직 더 가야되는데...”


“괜찮아요. 저 사람이랑 가면 돼요”


방금 전까지 짜증만 가득했던 ㅇㅇ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찼다.

턱 끝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는 그녀를 보던 기사도

알았다는 듯 말없이 돈을 받았다.


“헤헤”


택시가 멈춘 자리의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고,

그 앞에는



어딘가 초조해 보이는 남자가 서있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잔돈 가져가요!”


“괜찮아요!!”



쿵-



ㅇㅇ가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택시 문을 쿵, 닫자




남자가 옆을 돌아봤다.


ㅇㅇ의 목소리를 들은 건지

문 닫는 소리에 놀란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더 이상 초조한 걸음을 이리저리 옮기지 않는 걸 보니

둘 중 하나는 통한 듯했다.



부웅-



택시는 떠났고,

길 위엔 여자와 남자만이 남았다.




싱긋 웃는 여자

인상 쓴 남자

 

 

그런 모습이 귀여운 여자

그런 모습이 화나는 남자




“왜 여기 있어?”


“전화 왜 안 받아?”


“회식 있다며”


“회식 끝났다며”


“오래 걸릴 거라더니?”


“금방 끝날 거라더니”


“나 보고 싶어서 온 거야?”


“.......”


“.......”



“.......”


“(피식)”


“하...”


저만치 서있던 남자가 손을 내밀자

ㅇㅇ가 꾸물대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대답해”


“빨리 와”


“보고 싶어서 온 거 아니구만?”


“빨리”


“난 보고 싶었는데”


“그런 애가 전화 한 통도 없이, 아 빨리 오기나 해”


“지금 화내냐?”


“화 안 나게 생겼어?”


“.......”


우뚝, 걸음을 멈춘 ㅇㅇ.

가만히 서서 팔짱을 낀 채 남자를 째려보기 시작했다.


“이번엔 내가 화낼 거야.

내가 화내는 게 맞아”


“.......”


“휴대폰 꺼진 걸로는 설득 안 돼”


“.......”


“10시가 넘었는데 여친하고 통화가 안 되면

화나거나 미치거나야.”


“.......”


여전히 대치 상태인 두 사람


“.......”


“.......”


“충전기라도 빌릴 수 있었잖아”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동료 휴대폰 빌리는 건”


“그런 거 싫어”


“그럼 나는”


“.......”


“나는”


꿈쩍도 않는 ㅇㅇ을 향해 결국 발을 떼는 남자.


가까이 다가가 코앞에 마주서자

ㅇㅇ가 고갤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집에 가서 전화하려고 했다고오...”


“.......”


“부장님 바로 옆에 앉아 있어서

눈치 엄청 봤단 말야...”


“.......”


“밥도 잘 못 먹어서 배고픈데...”


핸드백 어깨끈을 꽉 움켜쥔 채

괜히 발장난만 치던 ㅇㅇ.

반응 없는 남자를 살짝 쳐다보곤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미안해”


“.......”


“미안하다고”


“.......”


“야 서강준”


“.......”


“미안하다고”


결국 심통이 났는지 입을 삐죽 내밀며

앞을 쳐다보는 ㅇㅇ.


“근데 왜 택시타고 와. 버스 타라니까”


“빨리 전화하려고 그랬다!! 왜!!!!”


피식, 강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럼 집까지 타고 가지 뭐하러 내렸어”


“너 보이니까 내가, 야!!!!!!!”


“하하하하하”


ㅇㅇ가 얄미울 정도로 크게 웃는 강준을 보더니

옆을 지나쳐 걷기 시작했다.


“짜증나”


“같이 가”


“저리 가”


“이리 와”


하지만 몇 걸음 떼지도 못하고 강준에게 잡힌 ㅇㅇ.

ㅇㅇ의 손을 꼭 잡은 그는 그녀의 얼굴을

요리조리 훑어보며 말했다.


“얼마나 마셨어”


“몰라. 주는 대로”


“그러지 말라고 했지”


“그럼 뭐, 전 여기까지만 마시겠습니다, 해?”


“응”


“장난하냐?”


“아니?”


“어우 씨”


“우리 회사는 그러던데”


“너네 회사는 그런다고?”


“응. 애들이 못 마신다니까 술 안 주던데?”


“너는”


“난 마셨지”


“왜”


“잘 마시니까”


“.......”


강준이 ㅇㅇ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자,

ㅇㅇ가 옆을 돌아보며 말했다.


“안 취했어?”


“응”


“얼마나 마셨는데”


“두 병”


“뭐??”


“두 병”


“너 괜찮아?”


“괜찮으니까 왔지. 

그리고 너 기다리다 다 깼어”


“언제부터 기다렸는데”


“10시”


“진짜?”


“그래 이 여자야”


강준이 잡고 있던 ㅇㅇ의 손을

자신의 허리춤에 옮기곤

자신 또한 ㅇㅇ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평소 그의 습관이자 버릇이었다.

이미 가깝지만 더 가까워지기


“거짓말 안 하고 10분만 더 기다리다가

경찰서에 신고하려고 했어”


“헐...”


“이거 봐봐. 걱정 안 되게 생겼나”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내미는 강준.

화면엔 카톡창이 켜져있었다.





내꺼♥

자기야

강준아


서강준

어 끝났어?


내꺼♥

곧 끝나려고 해


서강준

난 아직 상황 좀 봐야될 거 같아


내꺼♥

구랭?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벌써 마셨냐?


서강준

ㅋㅋㅋㅋㅋㅋ

니가 마신 거 같은데ㅐ


내꺼♥

뭔소리야 난 아주 적당히

적 당 히


서강준

불안한데 


내꺼♥

ㅋㅋㅋㅋㅋㅋ


서강준

자기야 거기 어디라고 했지?

장소


내꺼♥

여기가


서강준

?


서강준

ㅇㅇ아


서강준

ㅇㅇㅇ


서강준

ㅇㅇ아ㅏㅏㅏ


서강준

끝나면 전화해


서강준

아니 지금 전화해


서강준

ㅇㅇㅇ

!!!!!!!!!!!!!





“그러네?”


“어딘지 말만 빨리 해줬어도

당장 데리러 가는 건데”


“헤헤...”


“으유”


“그럼 집 앞에서 기다리지

왜 저기서 기다렸어?”


“집엔 벌써 갔다 왔지”


“진짜?”


“가서 너 없는 거 보고 바로 여기로 뛰어온 건데”


“.......”


“택시 타고 올 줄은 몰랐네”


“...미안해”


“됐어. 괜찮아”


“아니야. 너도 회식 중이었을텐데... 아 맞다,

너도 회식 중이었지?!!”


“응”


“끝나고 온 거야? 아니면,”


“끝났어”


“끝났다고?”


“응”


“10시에?”


“응”


“.......”


“끝났다니까”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ㅇㅇ가

강준의 휴대폰을 다시 확인하기 시작했다.


“어, 야, 야!!”


“가만 있어봐”


“뭐하는 거야”


다른 카톡 대화들을 눈으로 훑어보더니

회사 식구들끼리 주고받은 대화를 보곤

입술을 깨무는 ㅇㅇ


“너 찾는데?”


“취해서 그래 취해서”


‘갑자기 어디로 튄 거야 인마’라는데?”


“내 얘기 아니야”


‘깡준이 이 자식아’


“.......”


‘전화 안 받아?’라고 써있는데”


“.......”



지이잉-



때마침 진동이 온 휴대폰을

ㅇㅇ가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변요한 대리님]



그러자 강준은 쳐다보지도 않으며

바지주머니에 욱여넣었다.


“됐어. 괜찮아”


“내가 안 괜찮잖아”


“회사는 회사고, 너는 너야”


“회사도 중요해”


“회사는 중요한데 회식은 안 중요해”


“회식도 회사 거야”


“넌 내 거잖아”


“.......”


“내게 더 중요해”


“.......”


“너랑 있는 시간이 더 좋고”


“.......”


“그러니까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내일 엄청 혼나는 거 아니야?”


“혼나야지 뭐 그럼”


“.......”



“설마 회식 도망갔다고 자르기야 하겠어?”


“야...”


“걱정하지 말라니까?

나만큼 일 잘하는 놈 못 뽑아서 못 잘라. 됐지”


“내가 여러가지로 민폐 짓 한 것 같아”


“그런 소리 할 시간에 뭐라도 먹자.

배고프다며”


ㅇㅇ을 이끌고 코너 옆에 있는 편의점으로 향하는 강준


“입맛 없어졌어”


“그럴 리 없어”


“진짜야”


“뭐라도 마셔 그럼. 속 아플 텐데”


“.......”


ㅇㅇ가 강준을 붙잡아 세우며 말했다.


“다시 가”


“어?”


“집 다 왔잖아. 데려다 줬으니까 너 다시 가라고”


“어딜 가”


“회식!!”


“싫어”


“왜?”


“가기 싫어”


“.......”


“안 가도 된다니까?”


“회식 이거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선배들이 두고두고 얘기할 거야.

어? 지금만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를 생각해서 가라고. 알겠어?”


“ㅇㅇ아”


“.......”


“나도 그 정도는 알아. 그리고,”


“.......”


“그거 다 필요없어 난”


“.......”


“.......”


“.......”


“너랑 있고 싶다는데 왜 자꾸 보내려고 하는 거야”


이번엔 강준이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그러곤 ㅇㅇ을 숨 막힐 정도로 꽉 안아주었다.


“우리 서로 걱정만하다 날 새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휴...”


“.......”


“.......”


“너 술냄새 나”


“너도”


“푸흐흐...”


“많이 나?”


“조금”


“향수 좀 뿌릴 걸”


“누구 좋으라고 뿌려 뿌리긴”


“너 좋으라고”


“난 네 술냄새도 좋아. 다 좋아”


“치... 고기 냄새는 안 나?

연기 다 나한테 왔었는데”


“나”


“아 씨”


“너한테 맛있는 냄새 나”


“고기 냄새만 맡고 먹진 못했다니까? 억울해”


“고깃집 갈까 지금?”


“아니 안 갈래. 집에 갈래”


“너 배고프면 잠 못 자잖아”


“집에 라면있어”


“가자”


“히히히”


편의점 앞에까지 갔던 두 사람이

걸음을 돌려 골목길로 향했다.

대로변에서 한적한 곳으로 옮기자

대화 소리도 점점 작아졌다.


“나 기다리는 동안 무슨 생각했어?”


“어후... 복잡했지”


“어땠는데”


“경찰서 가려고 했다니까?”


“실종신고 하려고?”


“아니 일단, 내 여친이 술을 마셨는데

전화기도 꺼져있고 연락이 안 된다, 이러려고 했지”


“그걸 경찰이 들어줄까?”


“말은 해봐야 될 거 아냐”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진짜”


“제발 부탁인데 휴대폰 꺼놓지마”


“.......”


“.......”


“근데 사실 말야...”


“응”


“이해가 안 되는 게”


ㅇㅇ가 가방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며 말했다.


“배터리가 있긴 있었거든?”


“뭐?”


“근데 왜 꺼졌는지 모르겠어”


“켜봐”


“엉?”


“켜보라고”


“응”


전원 버튼을 길게 눌러보는 ㅇㅇ.

여전히 반응 없는 화면을 보며

고갤 갸웃거리던 것도 잠시,


“.......”


“.......”


보란 듯 불이 들어오자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켜지잖아”


“.......”



“배터리도 반이나 있네”


“.......”


“ㅇㅇ아”


“.......”


“배터리가 반이나 있다고”


“그, 그러게”


“.......”


“근데 왜 꺼졌지?”


“.......”


“잘못 눌렸나? 하하...”


어색하게 웃는 ㅇㅇ을 보던 강준이

한숨을 깊게 쉬며 머릴 헝클였다.


“미안”


“이거 때문에 우리,”


“.......”


“난리도 아니었는데 그치”


“나 미쳤나봐 허엉...”


많이 미안했던 ㅇㅇ가

강준의 눈치를 보며 골목 구석으로 향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였지만

눈물이 고여 있진 않았다.


강준은 멀리 떨어져 걷는 ㅇㅇ와 발맞추어 걷다

손톱을 물어 뜯으며 멈춰 섰다.


“하...”


“다시 화났어?”


“아니”


“표정이 그런데”


“아니 그냥,”


“.......”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어떤 식으로?”


“비록 한 시간 동안 지옥을 헤매긴 했지만,”


“응”


“이렇게 너랑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응”


“감사를 느껴보자”


“...응”


“네가 큰일없이 이렇게 옆에 있으니 다행이다. 이런 거”


“자위하는 거네”


“뭐?”


“자위”



“...뭐라고?”


“너 스스로 널 위로하는 거라고”


“아,”


“.......”


“‘우릴’ 위로하는 거지”


“정신승리 같은 개념인가”


“그냥 우리가 승리한 거라고 치자”


“........”


“근데 왜 또 내가 널 설득하고 있는 건지...”


“흐흐”


“...아무튼 앞으로 휴대폰 관리 잘해”


“알았어. 이번 일은 무조건 내 잘못이니까

각 잡고 반성할게”


“.......”


“그런 차원에서 일주일 동안 금욕생활을 하겠어”


“...뭔 욕?”


“금욕”


“.......”


“금욕을 통해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거지.

너한테 미안한 만큼”


“장난치지 말고”


“아니? 나 진심으로 반성할 건데?”


“금욕 생활을 하겠다고?”


“응”


“그거 무슨 뜻인지 알고 말하는 거야?”


“금욕 모르는 사람 있어?”


“너”


“너무 잘 아는데”


“.......”


“.......”


“쉽게 말해서 나랑 안 자겠단 얘기잖아”


“어. 푸하하”


“.......”


“반성의 뜻이라니까?”


ㅇㅇ의 웃음소리가 골목을 가득 채웠다.


“아 진짜...”


“크흐흐흫”


“나 놀리면 재밌냐?”


“진지한데”


“진지한데 웃어? 어? 웃어??”


ㅇㅇ의 양볼을 꼬집곤 이리저리 흔드는 강준


“진지하게 말하는데, 

금욕 같은 거 다신 입 밖에도 꺼내지마”


“흠”


“탐욕이면 몰라도”


“오호- 그래서 지금 라면 먹으러 가는 건가? 집으로?”


“라면 얘긴 네가 먼저 했다”


“그랬지”



쪽-




강준이 ㅇㅇ의 얼굴을 부여잡은 채 입을 맞췄다.

그리곤 다시 손을 맞잡으며 걸음을 옮겼다.


“근데 진짜 금욕은 반성 차원에서 말한 건데”


“그만”


“나도 웬만한 남자만큼 그런 거 좋아하는 거 알잖아”


“뭐”


“그런 거”


“그런 거 뭐”


“야한 거”


“네가?”


“응”


“.......”


“나도 너만큼이나 너랑 자고 싶은데”


“말이 이상한데”


“네가 나랑 자고 싶어하는 것만큼

나도 너랑 자고 싶어한다고. 자고 싶다고.”


“아...”


“.......”


“참 솔직해 우리 ㅇㅇ는”


“내숭 없는 게 매력이지”


“가끔 부려도 괜찮은데”


“내 스타일 아니잖아”


“그렇긴 해”


꺄르르 웃으며 걷던 두 사람은

금욕이냐 탐욕이냐를 두고 몇 번 더 대화를 주고받다

유난히 밝은 가로등 밑에 멈춰 서서

서로를 껴안았다.


“응?”


“그냥”


정확히 말하면 ㅇㅇ가 갑자기 안은 거지만.


“집 다 왔는데”


“알아”


“들어가기 싫어?”


“아니”


“그럼”


“그냥 이러고 싶어”


“.......”


“가끔 있잖아...”


“응”


“네가 엄청 엄청 좋을 때가 있어”


“가끔?”


“응”


“...실망인데”


“풉”


“자주도 아니고 가끔이라니”


“내가 말하는 엄청 엄청은”


“.......”


“감당할 수 없을 정도를 뜻하는 거야”


“흠”


“넘치면 안 되는 컵에 담긴 물이었다가”


“응”


“불이 나는 바람에 흩뿌려지는 물이 되는 거지”


“.......”


“이해했어?”


“.......”


“.......”


“기화되는 거 아니고?”


“...이과 망해라”


“푸흐...”


강준이 ㅇㅇ을 더 세게 끌어안으며

목 언저리에 얼굴을 마구 비벼댔다.


“어떻게 이 간단한 은유도 이해를 못하는 거야?”


“이해했어”


“이해한 반응이 그거야?”


“응”


“가끔씩 네가 공대 출신이라는 걸 까먹는 내가 멍청한 거지?”


“조금?”


“너랑 사귄다고 할 때

친구들이 해준 말이 생각나네”


“뭐였는데”


“똑똑한 바보를 체험하게 될 거라고”


“...진짜 문과스러운 말이다”


“.......”


“그래도 다른 이과 애들 중엔 내가 제일 나아.

최선의 선택을 한 거야 넌”


“.......”


“다른 애들은 이런 말도 못해”


ㅇㅇ의 등을 토닥이는 강준


“그래서 ㅇㅇ아,”


“응”


“내가 엄청 엄청 좋아서 안긴 거야?”


“아, 응”


“갑자기?”


“아까 택시 안에서 너 딱 발견했을 때 있잖아”


“응”


“세상이 망해도 살 수 있겠다 싶었어”


“.......”


“날 늦은 밤까지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렇게 든든하고 기분 좋은 일인지 몰랐거든”


“.......”


“물론 넌 정신이 하나도 없었겠지만.”


“.......”


“너가 지옥에서 헤맬 때

난 잠깐 천국 맛 좀 보고 왔단 뜻이야”


“약은 오르지만 참아볼게”


“큭큭”


“너라도 천국 갔다 왔으니 다행이다”


“.......”


“.......”


“사랑해”


“.......”


“탐욕적인 만큼 사랑해”


“.......”


“...탐욕스럽게? 사랑해”


“.......”


“탐욕이 넘치도록,”


“그만하면 됐어”


“아무튼 사랑해”


“나도 사랑해”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꾹 다문 채 서로를 다독였다.


가끔 가로등 불빛이 깜빡이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강준의 휴대폰에서 계속 진동이 울려도

그것 또한 개의치 않았다.


“부탁이 있어”


“뭔데”


“라면 자기가 끓여주라”


“.......”


라면만 예외.





.

.

.







“맛있어?”


“응”


“천천히 먹어”


“아침에 얼굴 엄청 붇겠지?”


“괜찮아. 그래도 예뻐”


“네 눈에만 그렇지”


“그럼 된 거 아냐?”


“아니야”


“또 누구한테 잘 보이게”


“다”


“쳇...”


“사회생활이라는 게 그런 거다”


“나도 해. 사회생활”


“그런 사람이 회식 자리를 말도 없이 뛰쳐나와?”



“누구 때문에 그랬더라?”


냉장고에서 직접 물을 꺼내주는 강준을 

흘깃 째려보곤

다시 맛있게 라면을 흡입하는 ㅇㅇ


“내일 뭐라고 할지 생각해봤어?”


“글쎄”


“핑계 대기 좋은 건 가족인데”


“사실대로 말하지 뭐”


“나? 내 얘기 하겠다고?”


“응”


“나 뭐, 어떻게 말하게”


“사실대로”


“...미친 거 아니야?”


“때론 정공법도 필요한 거야”


“지금은 아니지. 

지금은 어떤 핑계를 대도 될까 말깐데”


“그러니까. 통하지도 않을 핑계 대는 것보다

사실대로 말하는 게 낫지”


“아니라고 보는데”


“된다고 봐”


“.......”


“걱정말고 먹어. 맛있게”


“불안해”


퍽 인상쓰는 ㅇㅇ을 보던 강준이

김치를 직접 먹여주며 씩 웃어보였다.


“그럼 이렇게 해”


“어떻게”


“여자친구가 아팠다고 해”


“싫어”


“해”


“싫어”


“왜”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괜찮아. 허락할게”


“안 돼”


“내가 된다고. 본인이 된다니까?”


“내가 안 돼”


“어우 이 고집불통아!!!!!!!!!”


“큭큭큭”


“웃음이 나와???”


“나 때문에 너가 왜 아파야 되는데”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짜 아픈 게 아니잖아!!!”


“말이 씨가 된다고 했어”


“씨발?”


“뭐?”


“말이 씨...”


“뭐라고?”


강준이 어이없다는 듯 쿡쿡거리며 웃자

ㅇㅇ도 따라 웃기 시작했다.


“씨발”


“그만해”


“씨... 큭흐흫”


“그런 거 어디서 배웠어. 하지마”


“뭐 난 욕도 못하냐?”


“어 안돼”


“앞으로 말 안 들으면 욕할 거야”


“스읍-”


“쌍욕할거야”


웃음기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강준은 가까스로 입술을 깨물며 

ㅇㅇ을 쳐다봤다.


“혼난다”


“어떻게 혼낼 건데”


“음...”


“어떡할 건데?”


“금욕 생활”


“어?”


“금욕 생활 할 거야”


“.......”


“손도 안 잡을 거고

안아주지도 않을 거야”


“.......”


“안 자”


“.......”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ㅇㅇ의 얼굴이 일그러지자

강준이 코를 찡긋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아 안돼...”


“.......”


“안아줘어...”


“말 들을 거야 안 들을 거야”


“들을 거야. 안아줘”


“욕할 거야 안 할 거야”


“안 해. 안아줘”


젓가락까지 내려놓고 두 팔을 뻗는 ㅇㅇ.

강준이 씩 웃으며 옆으로 다가가자

폴싹 안기며 말했다.


“우린 탐욕이야. 금욕 안 돼”


“가자 그럼. 침대로”


“지금? 라면은?”


“나야 라면이야”


ㅇㅇ가 미련이 남은 눈으로 라면을 쳐다보다

마음을 굳힌 듯 결연한 얼굴로 답했다.


“너”


“오케이”



쪽-



이내 강준은 ㅇㅇ을 안아 든 채

곧바로 방으로 향했고,

두 사람은 밤새 탐욕 생활을...




.

.

.



세상 제일 탐욕스러운 두 사람이 

술김에 나누는 의미없는 이야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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