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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창욱] 급한 운명의 로또 (1/2) by별유

작성일 작성자 별유






지이잉- 지이잉-



조용한 사무실 안.
느닷없이 시작된 진동소리가
모니터와 눈싸움을 하던 나의 집중력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내 건가? 아닐 거야.
딱히 전화 올 데도 없고.



지이잉- 지이잉-



누구든 빨리 좀 받아라.
자꾸 신경 쓰여서 다음 문장을 못 읽겠단 말이다.
내가 토익 공부 할 때도
이렇게 집중해서 영어 문장 읽은 적이 없는데.
오늘은 하루종일 영문 이메일만 읽고 있....



지이잉-



“후....... 어잉?”


뭐야, 내 거였어?


하필이면 서류뭉치 사이에 껴있던 내 휴대폰.
애처롭게 온몸을 떨어대며
주인을 찾던 게 바로 너였구나.


미안.



[예원쓰]



아, 이 기집애 말 엄청 많은데...


잠시 망설이다 시간을 확인하곤
전원 버튼을 눌렀다.


6시 5분. 딱 5분만 통화하고 일 마무리하면
8시 전엔 퇴근할 수 있겠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어 왜”


“여보세요? 야, 뭔 전화를 그렇게 받냐?”


“바쁘다. 용건만 간단히”


“기집애가, 반갑지도 않아? 내 목소리?”


“하루 이틀 듣냐? 저번 주에도 통화했잖아”


“그건 저번 주고!!”


“할 말 없음 끊는다”


“야야! 할 말 있어! 완전 있어!”


“뭔데”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싫어”


“뭔 줄 알고?”


“그냥 다”


“씨, 너 저번에 내 소원 하나 들어주기로 했었잖아!”


“그거 저번 달에 만료된 거 아니었냐”


“쿠폰이니? 뭐 그런 걸 따져”


“뭔데. 짧고 간결하게 말해”


“들어줄 거야?”


“봐서”


“음.......”


“돈은 안 꿔준다”


“그런 거 아니거든?”


“차도 안 빌려 줄 거야”


“나도 차 있어”


“아 빨리 말해 그럼”


“너 화내기 없기다”


“화나게 하지를 말든가”


휴대폰을 귀와 어깨 사이에 낀 채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던 서류를 훑어보던 중
옆 부서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먼저 갈게- 라고 말하는데, 뭐랄까, 그 모습이 마치
엄청 얄밉고 엄청 재수 없었지만
나는 언제나 그랬듯
밝은 미소로 그녀를 떠나보냈다.


‘사회생활은 곧 이중생활이니라.’
우리 엄마가 가르쳐준 철학이자 가치관이었다.


“흠흠. 야 ㅇㅇ아”


“.......”


“너 소개팅 안 할래?”


“언제”


“어? 진짜? 진짜 하게?”


“어. 나 요즘 계절 타”


“오오- 남자가 고프시다?”


“언젠지나 말해”


“누군진 안 궁금하고?”


“내가 따질 처지냐?”


“니 처지가 어때서”


“오늘 이거 다 못 하면 내일 야근해야 될 처지”


“으... 암울하네”


“너 내 이상형 대충 알지?”


“아니?”


“알잖아”


“뭐. 느낌 오는 남자?”


“응”


“니가 느끼는지 안 느끼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딱 봤을 때 느낌이 오는, 대충 그런 거”


“그건 니가 직접 만나보고 느끼든가 해”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근데 사실은 ㅇㅇ아”


“뭐”


“오늘이거든?”


“뭐가”


“소개팅”


“.......”


“7시”


“.......”


“한 시간이나 남았네? 하하”



얘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다른 게 싫다는 건 아니고
뭐든지 좋은 것부터 말했다가
나중에 슬쩍 안 좋은 걸 말하는 스타일? 이랄까.


예전에 한창 취준할 때도,


‘이번에 공채 많이 뽑는대’


‘오 웬일이냐. 잘 됐다 야.
항공사가 많이 뽑는 거 흔치 않은데’


‘그치’


‘어딘데? 아시아나? 대한?’


‘대한’


‘축하한당 서류는 잘 넣었음?’


‘아니’


‘?’


‘대한 빼고 다 넣었어’


‘.......’


다행히 그 해에 붙어서
지금은 스튜어디스 여신이 됐지만
아무튼 그 때 생각만 하면 어이가 없...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참.



“뒤지고 싶냐?”


“크흐흐흫”


“땜빵하란 소리잖아. 누구 땜빵인데 내가”


“내 동생”


“예진이?”


“응. 그 기집애가 오늘 소개팅 있는 거 까먹고
제주도로 놀러간 거 있지”


“취소하면 되잖아”


“근데 남자가 너무 괜찮아”


“너라도 나가 그럼”


“어우 야, 나 요즘 썸 타는 오빠 있는 거 몰라?”


“몰라”


“베프한테 관심 좀 나눠줘라. 엉?”


“베프한테 땜빵이나 시키는 주제에”


“그래서. 안 할 거야?”


“.......”


“내가 아는 선배가 추천한 사람인데,
되게 괜찮대. 남자답게 생기고 성격도 좋고”


“후.......”


“그 선배가 신경 써서 해준 건데
취소는 못하겠고 미루는 것도 영 찝찝하고 해서...
어떻게든 마무리는 해야겠어서 그래.
가보고 별로다 싶음 그냥 밥만 먹고 헤어져. 응?”


“장소나 문자로 보내놔”


“진짜??!? 진짜지 너??”


“어. 아, 나이는?”


“서른하나”


“이름”


“이광수”


“알았어”


“진짜 얼굴 안 궁금해? 사진도 안 보고 싶고?”


“잘 생겼어?”


“음... 착하대”


“아니 얼굴”


“착하대”


“.......”


“참 착하대”


“세 번 착하면 미련한 건데.”


“푸흐..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아니다, 야, 그냥 사진 보내줄게 봐봐”


“됐어. 바빠. 지금 튀어나가도 늦겠구만”


“어 그러게. 얼른 가 일단”


“장소나 보내라고”


“오키 오키”


“덕분에 야근하게 생겼네. 참 고맙다 베프야”


“다음엔 네 소원 들어줄게!”


“끊는다”


“야!!!!”



툭-



“후...”


한숨을 쉬며 시간을 확인하던 것도 잠시,



[예원쓰]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46길 5-2
예진이 이름으로 예약해놨으니까
그런 줄 알아!! 파이팅!!!!!!!



주소가 담긴 메시지를 받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남자를 만나야 연애를 하고”


“연애를 해야 인생이 즐겁고”


“인생이 즐거워야 오래 살지.”


가방에 기획안을 넣고,
또 다른 기획안을 넣고,
회장님이 쓰신 자서전을 넣고
(회식 자리에서 내용 물어보니까)
라이벌 호텔이 내놓은 마케팅 보고서도 넣고
(참고로 나는 스탠퍼드 호텔 마케팅팀 소속)
올 여름 시즌을 겨냥한 호텔 식음료부서
기획서도 넣고...
그렇게 뭔가를 계속 넣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래 살아서 뭐하냐 어차피 일만 할 거...


그리고 서류 밑에 깔려
거의 생을 마감하다시피 한
파우치를 간신히 꺼내며 말했다.


“운명하셨습니다”




.
.
.





“아 긴장 돼”


퇴근길 러시에 걸려 반포대교에서는 저녁하늘을
올림픽대로에서는 지나가는 외제차를 구경하다
가까스로 도착한 어느 레스토랑.


“6시 58분. 딱 좋네”


왠지 느리게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얼굴 상태와 옷 매무새를 확인했다.


“아침부터 유난히 치마가 입고 싶더라니”


치마는커녕 세상 칙칙한 바지를 입은 내 모습이
참, 어딘가 모르게 안 돼 보였다.


“화장도 별로고.. 머리도 별로고.......
하아, 망했어 망했어...
연애하긴 글렀어... 시집도 글렀어...”


벽에 머리를 콩콩 박으며 좌절하던 것도 잠시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도착한 엘리베이터.
다시 허리를 곧게 펴고 올라타려는데



“지금은 안 될 것 같고...
이따 한 8시 넘어서 다시 연락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건물 입구 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아 잠시만요!”


그리고 문이 닫힐 때 쯤 모습을 드러낸 남자.


깜짝 놀라 급히 열림 버튼을 누르니
다시 문이 열렸고,
남자는 꾸벅 인사를 하며 내 옆에 섰다.


좋은 향이 났다.
급히 뛰어 들어오면서 바람을 몰고 왔는데
온통 좋은 향뿐이었다.
무슨 향수지? 되게 좋네. 스킨 냄샌가?


“.......”


남자를 힐끔 쳐다봤다.
키도 크고 잘 생기고 옷도 잘 입고.
와-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네.
아까 들어보니 목소리도 좋던데.



.......
이제야 말하는 거지만 난 소문난 금사빠였다.
누군가의 긴 손가락에도 반했었고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셔츠에도 반했었으며
두툼한 입술에도 반했었었다.


-었었다. (그것마저도 오래 됐단 뜻)


그리고 사실 내 이상형은
아까 예원이에게 말한 느낌 오는 남자가 아닌

‘처음 보는 낯선 남자’였다.


지금 내 옆에 서있는 이 남자처럼.



지이잉- 지이잉-



엘리베이터 안의 적막을 깨는 진동 소리.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방을 귀에 대자
진동이 내 고막을 사정없이 때려댔다.


“후.......”


오늘따라 뭔 전화가 이렇게 오냐.
평소엔 너무 조용해서 고장났나 싶더니


“아 쫌,”


근데 이 망할 휴대폰이 대체 어디까지 들어간 건지
가방 안에 손을 넣고 아무리 휘저어도 잡히질 않는다.


“하아.......”


점점 격해지는 나의 손놀림에 놀란 듯
힐끔힐끔 쳐다보는 남자.


“어!!”



쿵-



“아 씨.......”


결국 내 힘을 견디지 못한 가방이 바닥에 떨어졌고,
입 밖으로 나오려는 욕을 간신히 삼키며
튀어나온 서류들을 주우려는데


“.......어?”


옆에 있던 남자가 나보다 더 빨리 서류를 줍기 시작했다.


“아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대박 대박 대박
완전 대박
뒤통수도 잘 생기고
손가락도 잘 생기고


“여기...”


“감사합니다!”



띵-



내게 가방을 건네는 남자.
이제야 눈 좀 마주치려는데
그 새를 못 참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만다.


눈치도 없어요 이 망할 승강기


“그럼,”


“네...”


남자는 긴 다리를 휘적거리며 가버렸고
나는 혼자 남아 미처 하지 못한
욕을 씨부렁거리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예원쓰]



“아 왜”


“만났어?”


“지금 도착했어”


“근데 얼굴을 몰라서 어떡하냐. 알아볼 수 있겠어?”


“어떻게든 되겠지”


“근데 내가 지금 쫌 불안한 게,”


“뭔데 또”


“그 선배가 연락이 안 돼”


“뭐?”


“그래서 혹시... 오늘 소개팅 해주기로 한 거
까먹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너 진짜 뒤질래?”


“이건 단순히 내 추측이니까 너무 화내지 말고,”


“그걸 말이라고 하냐 지금? 이 미친,”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터덜터덜 걷던 찰나,
레스토랑 입구에 서있는 남자를 발견하곤
급히 소리를 낮췄다.


“오늘 나 팽 당하면 너 죽인다 진짜”


“야... 무섭게 그러지마”


“평생 시집 안 가고 처녀귀신 돼서 쫓아다닐 거임”


“지금도 귀신같긴 해”


“뒤졌어”


“야 일단 가서 기다리기나 해봐. 어?”


“그럴 거야 기집애야”


“파이팅”


“꺼져”



툭-



다시 휴대폰을 가방에 찔러 넣고
입구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살짝 자리를 비켜주는 남자.


“어서 오십시오. 예약 하셨습니까?”


“네”


“성함이?”


“어... 김예진이요”


“김예진 씨... 어? 두 분이 일행이십니까?”


“네?”


“.......”


순간, 남자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손님께서도 아까 김예진 씨라고...”


“아, 네”


“두 분... 일행 아니세요?”


“....그, 그게...”


“.......”


“저희가 지금 확인해본 바로는
김예진 씨로 예약된 테이블이 하나라서요.
혹시 착오가 생긴 건지 확인해보겠습니다.”


“아니요. 맞습니다 일행”


“네?”


“가시죠.”


“아.......”


“그럼 자리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
오 마이 갓
.......


이 남자가 오늘 그 남자라고?
내 소개팅 상대?
이광수?????


대박
완전 대박
진심 이거는, 그냥 대박.


대!!!!!!!!!!!!!!!!!!!!!
박!!!!!!!!!!!!!!!!!!!!!


예원아 사랑한다
처녀 귀신 말고 수호신이 돼서 지켜줄게.
역시 내 베프. 하나뿐인 절친.
김밥에 단무지 같은 녀석. 순대에 간 같은 녀석.
삼계탕에 인삼 같은 친구.






“이쪽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직원이 안내해준 테이블에
조용히, 천천히, 눈치를 보며 앉았다.


그리곤 살짝 고갤 들어 남자를 쳐다봤다.


“.......”



“신기하네요”


“네? 아, 네. 그쵸?”


미친. 방정 떨지 말고
침착하게 말하라고 이 멍충아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지창욱이라고 합니다”


“네?”


“네?”


“성함이... 이광수 씨라고.......”


“아, 얘기 못 들으셨나 보네요.
광수 형 대신 나왔거든요 제가”


“네?”


“죄송합니다. 미리 말씀 드렸어야 되는데”


“아.......”


“형이 급하게 출장을 가게 돼서요.”


“그러셨구나”



“많이 실망하신 것 같은데...”


“에? 아닌데요?!!?”


“.......”


제발 침착해 ㅇㅇ아
없어 보이려고 한다 너 지금


“그게 사실, 저도 대신 나온 거라서요”


“네?”


“저는 ㅇㅇㅇ이라고 합니다.”


“정말요?”


“네. 그게 그렇게 됐더라고요”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앞에 있던 물을 벌컥벌컥, 아니 찔끔찔끔 마셨다.


“.......”


“.......”


“주문할까요?”


“네!”



제발요.



.
.
.



“제가 아까 보려고 한 건 아닌데..”


“네?”


“엘리베이터에서 가방....”


“아 네”


“서류를 보니까 호텔 관련된 내용이더라고요.”


“네. 제가 호텔에서 일하거든요”


“아...”


“스탠퍼드 호텔 마케팅팀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러시구나. 멋있으신데요?”


“제가요? 에이, 맨날 사무실에 쩔어 있...”


에라이 이 등신아
그냥 입 다물고 밥만 처먹는 게 낫겠다


“......는 건 아니지만
일이 많아서... 야근도 많고.......”



피식-



어? 웃었다.
왜 웃지? 내가 웃긴가?
웃기는 이미지로 가면 안 되는데?
내가 막, 너무 편해지면 안 되는데!!!


.......
근데 웃으니까 또 귀엽네


하.......



“그래 보이더라고요.
서류가 너무 많아서 놀랐어요”


“네... 저도...”


“네?”


“흠흠. 아, 무슨 일 하세요?
저만 바쁜 건 아닌 것 같고,”


“저는 회계 법인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럼... 회계사?”


“네”



심지어 엘리트야!!!!!!!!!
뭐야, 이거 사기캔데?
진짜 사기꾼 아니야?
이런 캐릭터가 지구상에 있었다고?
이렇게 완벽한 사람이????



“우와...”


내 반응에 부끄러운 듯 고갤 숙이던 것도 잠시,
다시 날 보며 하는 말이



“저도 맨날 사무실에 쩔어있는데요 뭐”


-란다.
그것도 아주 귀엽게 씨익 웃으며.


“쩌, 쩔어 계시는구나.......”


“네. 아, 잠시만요”


갑자기 재킷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든 남자.
전화가 온 듯 해
‘괜찮으니 받으세요’란 신호를 보내자
고갤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금방 오겠습니다”


“네”


남자가 화장실 쪽으로 사라진 걸 확인 하자마자
황급히 물을 들이켰다.


“죽는 줄 알았네.  하....... 아 심장 떨려”


내가 아무리 남자를 오랜만에 만난다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떤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미치겠네”


내 인생에 있어 역대급 남자를 만나서 그런가
심장도 떨리고 손도 떨리고
머리도 떨리고 다리도 떨리고..


“나 원래 이런 캐릭터 아닌데”


어디 가서도 기 안 죽고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당당해서
사람들이 장군이라 부르는데.
철면피? 종종 그렇게도 부르고.
뻔순이도 있고.


근데 이 남자 앞에선
완전 무장해제 된 기분이다.
모르는 사이에 금사빠 기질이 더 심해진 건가.
이러면 곤란한데.......



지이잉-



[예원쓰]
야 만났어?



“훗. 이 사랑스러운 기집애같으니”



[ㅇㅇㅇ]


[예원쓰]
진짜? 어때? 괜찮아? 맘에 들어?


[ㅇㅇㅇ]
너 이 기집애야


[예원쓰]
별로야? ㅠㅠㅠㅠ


[ㅇㅇㅇ]
짱이야


[예원쓰]
?? 뭔 소리야


[ㅇㅇㅇ]
역대급이라고!!!!!!


[예원쓰]
진짜? 역대급?????
그 정도라고??


[ㅇㅇㅇ]
완전 대박. 야 땡큐다 땡큐


[예원쓰]
사진으로 봤을 땐 별로였는데...
너 눈 낮아진 거야?


[ㅇㅇㅇ]
광수 아니고 창욱 씨.


[예원쓰]
엥?


[ㅇㅇㅇ]
완벽한 땜빵이 나왔어.
얼굴은 말 할 것도 없고
키도 크고 목소리도 ㅈ



“죄송합니다. 업무 전화 때문에..”


“아, 괜찮아요! 바쁘신 거 다 아는데요 뭐”



[예원쓰]
어떻게 된 거지? 뭐야?


[ㅇㅇㅇ]
이따 전화함 ㅃㅇ



다시 휴대폰을 가방에 던져 놓고
앞에 앉은 남자를 쳐다봤다.
크흐.. 보면 볼수록 잘났단 말이지.


“또 회사 들어가 보셔야 되나요?”


“아, 아닙니다.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 때문에 일이 미뤄지거나 그러면..”


“급한 일 아니라서 괜찮아요.
내일 해도 되는 일입니다”


“.......”



“진짠데.”


‘진짠데.’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나도, 그도 씨익 웃었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좋아서?
좋아서.



“와인 한 잔 할까요?”


“좋아요”




.
.
.




“쉬는 날엔 주로 뭐하세요?”



“글쎄요. 최근에는... 영화보고 책보고
그랬던 것 같아요”


“저도 영화랑 책 되게 좋아하는데”


“어떤 장르 좋아하세요?”


“좀비요”


“네?”


“좀비 나오는 거”


나는 사실 와인에 약했다.
분위기에 취하는 편이라 어떤 술이든
주면 꼬박꼬박 받아 마시곤 했는데
유독 와인은 나랑 잘 맞지 않았다.
소맥에 길들여져 비싼 술은 안 받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났다.


“제가 최근에 좀비물을 봤거든요”


“아... 안 무서우세요?”


“무서웠죠. 근데도 봤죠”


“왜요?”


“그냥요”


“........”


“너무 징그럽게 분장을 잘해서 그런지
신기하더라고요”


“아...”


“사실 제가 새벽에 축구를 보는 편인데
날짜를 잘못 안 거 있죠.
그래서 잠도 안 오고해서 TV로 본 거였어요”


“축구 좋아하시나봐요”


“네! 저 바르샤 팬이에요”


“어?”


“왜요?”


“저돈데”


“진짜요??”


“네”


“대박!!!”


“하하. 그러게요”


“새벽에 경기 보면서 막 소리 지른 적 없어요?
전 자주 그러는데”


“저도 그래요”


“우와... 신기하다”


“뭐가요?”


“그냥, 전부 다요.”


“.......”


“헤헤”


뭐가 신기하냐면요.
조용히 책 보는 거 좋아하실 것 같은 분이
소리 지르면서 축구 본다는 게 신기하고요.


또 그런 분이 제 앞에 앉아 계신다는 게
참 신기하네요.


헤헤. 웃음이 그냥 나올 정도로 신기해요.


“ㅇㅇ씨”


“네?”


“우리 이제 와인 그만 마실까요?”


“네”



“....괜찮아요?”


“네”


“안 괜찮죠”


“네”


“...푸흐.......”


“웃지마요”


“아, 죄송합니다”


“헤헤”


“.......”


“지창욱 씨”


“네”


“가까이 와 봐요”


“네?”


“이렇게”


양 손을 턱에 괸 채
몸을 더 앞 쪽으로 바싹 당겨 앉았다.


그러자 머뭇거리며 날 따라하는 이 남자.


“왜 그런 말 있잖아요”


“.......”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그러니까 자세히 봐야죠.
예쁜지 안 예쁜지 알려면”


“.......”


“.......”


“예쁜데.”


“.......”



“예뻐요. ㅇㅇ씨”

 


.......
.......


방금 뭔가 쿵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쿵, 쿵.
심장인가?
심장인가 보다.


손끝부터 머리끝까지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 뜰 만큼
머리도 아팠다.


이 남자 눈빛이 그랬다.



“오.......”


“.......”


“방금 완전 심쿵”


“.......”


“대애애박...”



“후.. 다 내 잘못이에요.
와인 시키는 게 아니었는데”


“아니에요. 제가 원래 술을 쪼끔 하긴 하는데,
와인이랑만 덜 친한 거예요”


“그렇구나”


“네”


“.......”


“.......”


“크흐...”


“어어!! 또 웃네?”



“흠흠. 미안해요 자꾸 웃어서”


“웃지 마요...”


“안 웃을 게요”


더 반할까봐 무섭다구요.
금사빠 앞에서 함부로 웃는 거 아니라니까..


“ㅇㅇ씨 이제 우리 일어날까요?”


“엄.......”


“차 가져오셨어요?”


“아 맞다! 저 차 있어요!!”


“음... 대리는 좀 위험한데”


“갖고 오지 말 걸.......”


“괜찮아요. 일단 나가죠”


네네- 대답하며 옆에 있던 가방을 먼저 들었다.
그러자,


“제가 들게요”


쏙 빼서 자기 팔에 걸곤,



“일어날 수 있겠어요?”


이젠 나까지 부축하려 한다.


“괜찮아요. 혼자 할 수 있어요”


“.......”


“가방도 저 주세요”


“들어드릴게요. 괜찮아요”


“저야 말로 괜찮은데”


“너무 무거워서 그래요.”


“.......”


“갑시다”



엘리베이터 안,


결국 가방을 차지한 이 남자는
계속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내 옆에 딱 붙어 서있었다.


뭐가 저렇게 좋은 거지?
혹시.......


내 가방이 마음에 들었나?

아니겠지 설마.



“ㅇㅇ씨 집이 어디세요?”


“저요? 저... 용산 쪽이요”


“아무래도 대리를 부르는 게 낫겠죠?”


“지금요?”


“네”


잠깐만. 대리는 지금 부르면 금방 올 거고,
그럼 우린 이제 세이 굿바이 한단 소린데...

왜 내 전화번호를 안 묻지?
다시 만나잔 얘기도 안 하고.


.......


나 까인 거야??!?!?!?!


“헐”


“네?”


“저기요”


“네”


“우리...”


“.......”


“좀 걸을까요?”



“걸으실 수 있겠어요?”


“네! 저 완전 멀쩡해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술 쫌만 깨고 가려고요”


“그러죠 그럼”


하....... 비참하다.......
이렇게 까이다니.
이렇게 젠틀하게 까이다니


미련도 못 버리고 같이 걷자고 한 너도 참,


불쌍하다 ㅇㅇㅇ





“후우.......”


“갈까요?”


“네에...”


결국 건물 밖으로 나온 우리.
갑자기 차가운 공기를 마시니
술이 확 깨면서
더욱 더 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예원아 나 까였어...



“춥거나 다리 아프거나 하면 말씀하세요”


“네..”


왜요. 대리 부르는 시간도 아까워서
빨리 택시 태워 보내게요?!?!?!! 라고
쏘아 붙이고 싶었지만
마지막이라도 품위를 지키고 싶어 참았다.


“.......”


“.......”


“.......”


“ㅇㅇ씨?”


“네”


“아, 아무 말씀 없으시길래..”


“.......”


“걷는 거 좋아하시나 봐요”


“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잘 걸어요”


“아...”


“생각이 많을 때도 걷고요”


지금처럼.


“저기...”


“.......”


“이상형이 어떻게 돼요?”


“이상형이요?”


“네”


내가 어디가 부족한지 어디 들어나 봅시다


“음....... 저는.......”


“키 큰 여자?”


“키는 상관없는데”


“그럼. 이쁜 여자?”


“네”


시댕. 너무 빨리 답을 알아버렸다.


“.......”



“근데 사실 저는 그냥
딱 느낌이 오는 사람이 좋더라고요”


느낌? 쳇, 개나 줘버려


“그리고,”


“.......”



“처음 본 여자”


.......엉?


“네? 뭐라ㄱ..... 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남자는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오토바이를 피해
날 자기 쪽으로 당겼고,
나는 그대로 남자의 바로 앞에 서게 됐다.




“괜찮아요?”


“........”


“ㅇㅇ씨?”


“아니요”


“네? 아, 안 괜찮으세요?”


“네. 너무 안 괜찮아요 저 지금”


“어디가 어떻게...”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고요!!!”


“아.. 많이 놀라셨구나.
지금도 그러세요? 아 어떡하지?”


“네 지금도 그래요.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심장이 참 잘도 남아나겠네요”


“네?”


“후....... 심장마비 걸릴 것 같으니까 좀만,”


“.......”


“이렇게.”


천천히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곤 고갤 들어 앞을 쳐다봤다.


“ㅇㅇ씨,”


“지창욱 씨”


“.......”


“나 지창욱 씨 좋아할 것 같아요”


“네?”


“내가 약간 금사빠인 것도 있고, 막,
잘생긴 남자 좋아하는 것도 있고
특히 매너 좋은 남자한테 약한 것도 있는데요.
근데 지금은 막, 막...”


“.......”


“진짜 같아요”


“.......”


“그러니까 지금 말 해줘요. 나랑 또 만날 건지”


“...네?”


“나한테 연락할 거예요?”



“지금....요?”


“네”


조심스럽게 남자의 눈빛을 읽었다.
당황스러움과 난처함이 동시에 지나가는 것 같았다.
아마 이런 생각을 했겠지.
‘이 여자 보기보다 진상이네.’ 혹은
‘잘못 걸렸어.’ 혹은
‘미친X...’


남자는 쉽게 말을 잇지 못하고
이마를 긁적였다.
그리곤 바지 주머니에 손을 쿡 찔러 넣으며
서서히 입을 뗐다.



“ㅇㅇ씨, 우리 오늘 처음 본 거 알죠”


“네”


“서로 계획에 없던 소개팅이었고”


“네”


“일 하다 나와서 정신도 하나 없었고”


“네”


“근데 방금 저한테 고백... 같은 거 하신 거고”


“그랬던 것 같아요”


“.......”


“맞아요 고백. 그러니까 지금 거절해야 돼요.
기회 드릴 때 하세요”


쭉 나열한대로
처음 봤고, 계획에도 없었고,
오늘이 지나면 또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나는 오늘 당신한테 고백할 겁니다.
아, 이미 했구나.


그리고 거절도 오늘 당할 거예요.
그래야 헛된 희망 안 키우죠.
지금 내가 사는 인생만으로도
머리 아프고 짜증나는데
사랑이라는 감정에 취해서
이리저리 휘둘리고 싶지 않거든요.



“괜찮겠습니까?”


“진짜 하게요?!?!?!!”


이런 SHIT. 망했다.
술 처마시고 괜히 객기 한 번 부려봤다가
눈앞에서 차이게 생겼네.


와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어



“푸흐.......”


?


누군 지금 초조해서 머리 쥐어뜯게 생겼는데
웃어? 웃음이 나와?


“흠흠”


“아 떨려...”


“ㅇㅇ씨”


“네”


“내일 몇 시에 볼까요”


“.......”


“데리러 갈게요.”


“진짜요? 진짜? 진짜로??”


“네”


“우왁!!!!!!!!!!!!!!!!!!!!!!!!!!!”








28년 살면서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워 보였던 적이 있었던가



지나가는 사람들은 천사가 따로 없고
날 비추는 이 가로등 불빛은
하늘에서 내려준 금빛 환영이 분명할 것이오,


고로 나는 지금



천국에 있느니라-


가 아니라,



“대박!!!!!!!!!!!”


그냥 여기저기서 날뛰고 있었구나.
사람들은 나의 우렁찬 외침에 화들짝 놀라
쳐다보기 시작했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고 펄쩍펄쩍 뛰었다.


그러다 또 다시,


“어어, 조심!”


“엄마야!!!”


달려오는 차를 피해 내 손목을 잡아
자기 쪽으로 당긴 이 남자.



“괜찮아요?”


.......
이번엔 아까보다 더 가까워...
위험해.. 위험해... 위험하다고.......


“....네.......”


“한 시도 눈을 못 떼게 하시네요”


“제가 원래 이런 애가 아닌데,”


“좋단 뜻이었어요.”


“아.......”


또 심쿵. 심장이 쿵하고 떨어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올라오기도 전에 나는,


살짝 남자를 올려다보곤 웃으며 말했다.


“저도 좋아요.”


“크흐”



.

.

.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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