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탕 좋아해?”


“네”


“너 주량이 어떻게 되지?”


“소주... 3병?”


“오- 꽤 마시네?”


“하, 뭐, 제가 좀 그런가보죠?”


“국주 선배가 2병인데”


“하하하... 아무렴 여자보단 남자가,”


“근데 소맥 11잔을 마셔도 끄떡없더라고”



“.......”


“아무렴 소주보단 소맥이 목넘김이 좋으니까.”


“네...”


“아마 국주선배 이기려면
저~ 한참 선배 정도는 돼야 될 걸?
강동원 선배님 정도?”


“그 분은 얼마나 드시는데요?”


“언리미티드”


“헙”


한계가 없는 주량은 어떤 느낌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람이 어떻게 취하지 않을 수 있지?
술은 원래 취하려고 마시는 거 아닌가.


.......
내가 여기서 주량을 더 늘린다면
과연 내 위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야. 과도한 음주는 피부 노화를 부른댔어.
아마 강동원 선배님? 누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분도 폭망한 피부를
가지고 있겠지. 음핫핫


“으.. 안 그래도 배고팠는데 잘 됐다.
아구몬 따라 컵라면 먹었음 엄청 후회했을 듯.
역시 굽쭈선배가 짱이야”


여기서 아구몬은 우리 우빈 형이고
굽쭈선배는 58기 이국주 선배님이시다.


잘은 모르겠지만
앞에 앉은 회장 선배의 말을 추측해보면,
선배는 여기 오기 전 우빈 형을 따라

편의점에 가게 될 운명이었으나
‘갑자기 감자탕이 땡기네.
국영수랑 같이 가 있어. 술 한잔 하게’

라는 이국주 선배님의 메시지를 받고
이곳에 오게 됐다.
물론 열심히 전공 서적을 보던
엘리트 영화인인 나를 이끌고....



“근데 빈이 형 아구몬이랑 안 닮은 것 같아요”


“닮았어”


“아닌데...”


“닮았다니까? 보여줘?”


휴대폰을 꺼내 이것저것 만지더니
선뜻 나에게 내미는데.....



“크크크큭킄크.... 아 언제 봐도 웃겨”
 
닮았... 아니 안 닮았다.
진짜 안 닮았다.
.......
닮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안 닮았다.
자세히 보면 더 안 닮았다.


“안 닮았는데요?”


“아 자세히 봐봐!!!”


“안 닮았어요”


“눈 뜨고 봐라”



“.......”


아, 이성과 감성의 괴리란 이런 것이란 말인가.


“크롱보단 아구몬이 더 닮았어”


“저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마. 우리도 너 인정 안 해”



“네...에?”


“오오 저기 선배 보인다!  선배님!!! 여기요!!!!!!”


.......
나를 인정하지 않는단 말인가.
어떻게 아구몬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 개인의 불인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인가



“어, 일찍 왔네?”


“수업 끝나자마자 얘 데리고 왔어요.
야, 경수야 뭐해”



“에? 아,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영화과 63기...”


“알아. 앉아”


“넵”


“감자탕 시켰어?”


“네. 세 사람은 中자로 시켜도 충분하다고 해서 그거랑,”


“뭔 소리야, 大자로 바꿔”


“그럴까요?”


“어. 너 내 사이즈 알잖아”


“맞다. 히히”



“술은?”


“술은 뭐.. 간단하게 소주 두병?”


“맥주도 시켜”


“네. 들었지 경수야?”


“저, 저요? 갑자기?”


“막내잖아. 막내는 원래 이런 거 하는 거야”



“.......”


다 맞는 말인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다.


“저기, 이모님!!!!”


“밥도 하나 달라고 해”


“밥은 마지막에 볶는 게 더 맛있지 않아요?”


“어. 이따 또 볶아 먹을 거야“


“아.......”


“이모님!!!!!!”


“주방에 계셔서 잘 안 들리시나보네.
직접 가서 말씀 드려”


“네”


볶아 먹고 죽으로 먹고
남은 죽으로 전 만들어 먹고
그 전 또 상추에 싸먹고
먹고 또 먹고.......


“이모님!”


“어어!!”



“여기 있는 거 다 주세요”


“잉?”


“다...”


“뭐라고?”


“아, 아니요. 그 말이 아니라....
...저희 감자탕 大자로 바꾸려고요.
맥주도 두 병 주시고 공기밥 하나도 주세요”


“알았어”


“많이 주세요 많이. 아낌없이 주세요.”


어지간해선 해결이 안 될 것 같아 그래요.
 





“야, 너네 회식했다며?”


“아 네. 김우빈이 쐈어요.
원래 RACC 후배들만 모아서
사주려고 했는데 일이 커져서...”


“아니 뭐, 나 안 불렀다고 뭐라 하는 건 아니고..”


“다음에 선배님들 모시고 자리 한번 만들게요!”


“아니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뭔가 말끝을 흐리시는 것 같더니
갑자기 날 홱 돌아보는 선배님.



“허업”



“야 강준이 어떻게 된 거야?
걔가 거기 왜 있었어?”


“아.......”


“너랑은 사진도 찍었던데.”


“그거는... 술김에 그랬을 거예요.
걔가 되게 붙임성이 좋더라고요”


“음. 강준이가 좀 그렇지”


“그리고 그날 아마 얘 따라 왔을 걸요?”


“너 강준이랑 많이 친해?”


“음.......”


“언제부터 친한데?”


“엄.......”


“어떻게 친하냐고”


“그게 그러니까.......”


어떻게 만났더라, 하며 생각에 잠기려는데
내 앞에 있던 회장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씨익 웃는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예쁘면서도 소름 돋는달까.
뭔가 다 알고 있단 느낌.


“선배 이거 때문에 불렀구나?”



“어?”


“에잇, 날도 날인 만큼
오늘 선배 연애상담 제대로 해드릴게요!”


아... 연애상담 같은 거였구나....
 역시 여자의 촉이란.


근데 난 왜 부른 거지?


“야 아니야~”


“맞잖아요~”


“그냥 좀 궁금한 게 있어서...”


“맞는 것 같은데요”



“뭐?”


“아닙니다 선배님”


“푸흐. 선배 얘 되게 웃겨요.
은근히 말대꾸 하고 반항도 하고.”



“제가 언제요!!”


“우와 눈 커진 거 봐”


“원래 커요”



“그러니까. 너 눈 왜 이렇게 크냐 신경 쓰이게”


“.......”


“아우 귀여워!!”


회장 선배가 내 볼을 꼬집는다.
정말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인데
나는 조금도 동의할 수 없다.


쳇, 육군 병장 만기 제대한 대한건아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어.
내가 아무리 어려도
38선 근처에서 나라 지키다 온 남자라고!
생 남자. 있는 그대로 남자. 수컷.
전쟁나면 내가 당신들 지켜줘야 된다니까?


그런 의미로,



“근데 선배님 저는 왜 부르신 거예요?”


“엉?”


“저는 선배님 연애상담에
그닥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서요”


“니가 왜 적합하지 않아! 완전 중요한 역할인데!”


“제가요? 왜요?”


“서강준 친구잖아”


“.......”


“걔에 대해서 아는 거 있음 다 불어.
하나도 빼놓지 말고”



.
.





“강준이가 뭘 제일 좋아한다고?”



“피아노 치는 거요”


“세상에, 감수성 풍부한 것 좀 봐”


“이상형은”


“음....... 대화가 잘 통하는 여자?”


“연상도 괜찮대?”



“네, 뭐. 상관 없댔어요”


“대박”


“또”


“웃을 때 예쁜 여자도 좋다고 했어요”



“나 어때?”



“예, 예쁘세요”


“또 다른 건?”


“음... 얼굴은 안 본다고 했어요.
그냥 성격 좋고, 지혜로우면 좋다고...”


“여자 연예인 누구 좋아하는데”



“수지요”


“아 씨.......”
“아 씨.......”



여자들은 남자들 군대 얘기가 그렇게 싫단다.
맨날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
사격 및 훈련 얘기, PX배 축구시합 얘기,
완장 무게 얘기, 완장 차고 축구한 얘기,
또라이 선임 얘기, 그 선임이랑 축구한 얘기 등
여자들은 군대 얘기(축구 포함)만 들어도
벌써부터 하품이 나온다던데,



나 같은 남자들은
여자들의 연애 상담만 들어도 눈이 풀린다.
절대 술 때문은 아니다.
그냥 이야기가 끊임없이 반복 돼 어지러울 뿐.


“음... 걔가 선배한테
아예 마음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내가 알기론 없다.



“그런가? 그렇겠지?”


“그럼요! 아니면 걔가 선배 번호를
먼저 물어봤겠어요?”


교양시간 팀 과제 때문에 물어본 것뿐이다.


“하긴.. 연락도 계속하고”


“그러니까요. 선배 카톡 씹은 적 한번도 없죠?”


“어!!”


단답도 답이라고 치면 그렇긴 하다.


“거봐요. 걔도 호감 있다니까요? 선배한테?”



“으으 어떡해...!!”


“어떡하긴요. 이제부터 잘 하면 되죠.
밀당만 잘하면 금방 넘어올 거예요”


“저기...”


“밀당? 어떻게 하는 건데?”


“그냥 뭐, 좀 잘해주는 듯하다가
갑자기 차갑게 대하고 그러면,”


“그런 거 너무 유치하잖아”


“아니에요! 예를 들어 이런 거죠.
맨날 마주치다가 갑자기 안 보이면
뭔 일 생겼나 궁금하잖아요.
그럼 먼저 연락 할 테고.
거기다 좀 MSG 쳐서 ‘아팠다’ 그러면
어디 아프냐, 많이 아프냐, 지금도 아프냐 하고
막 물어볼 거 아니에요!
그런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모이면
이제 사랑이 되는 거죠. 애정이랄까?”



“오!!!!!!! 진짜? 대박 대박!!!!”


“저기요 선배님...”


“당장 내일부터 해봐요!”


“아 벌써부터 떨려... 어떡하지?”


“너무 떨지 마세요.
세게 밀어붙여야 되요 이런 건.”


“선배님”


“어?”


강준이는 선배한테 호감 없습니다.


“아 왜”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밥 볶을까요?”


벌써부터 설레 하는 국주 선배님을 보곤
애써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밥? 그럴까? 술이 좀 남았는데...”


“밥 먹으면서 마시면 돼”


“아... 흐흐 알겠습니다.
밥은 한 공기만 볶죠 뭐”


“두 개”


“이모님!!! 여기 밥 두 개 볶아 주세요!!”


씨익 웃으며 이모님을 쳐다봤다.
그러자 고개를 가로저으며 밥 두 공기를 꺼내오셨다.


“술은 이제 더 안 시킬 거지?”


“한 병 더 할까?”


“벌써 소주 다섯에 맥주 네 개나 마셨잖어.
더 마시면 안 될 거 같은디”




“감자탕이 너무 맛있어서 그래요~ 호호호”


“술 안 시킬게요 이모님”


“야”


“그려. 밥 맛있게 볶아줄 테니까
이거 먹고 얼른 집으로 들어가. 잉?”


“너, 이 막내 주제에,”


“선배 많이 취하셨어요.”


“아니거든?”



“아까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선배 왼손에 힘이 없어요 지금”


“엉? 나?”


“네”


왼손으로 힘겹게 오이를 들더니
고추장에 박아놓고 먹질 못했다.
왼손이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오이였다.


왼손으론 술잔도 못 들었고 휴대폰도 못 집었다.


그 때 불현 듯 생각났다. 두준 형의 말이.


'쟤 술 많이 마셔도 괜찮아 보이잖아.
 언뜻 보면 그런데
자세히 보면 어디 하나가 고장 나 있어.
손, 발, 눈, 입 이런 데 있잖아.
움직이질 못 해. 그게 너무 웃겨'


“취했네 그새”


“아니에요!!”



“어우, 이래서 어린 것들이랑은 마시지 말아야 된다니까?
벌써 취하면 어떡하냐고-”


“선배님도 그만 드세요”


“뭐?”



“여자 몸에 안 좋아요. 술”


눈이 동그래진 국주 선배.
그리곤 이모님이 자리를 뜰 때까지 계속 날 쳐다봤다.


“으으, 좀 어지럽긴 하다. 저 화장실 다녀올게요”


“야 괜찮아? 갈 수 있어?”


“그럼요!!”


“선배 제가 부축이라도...”


“싯 다운”


“네에...”


다행이다. 다리엔 힘이 남아있어서.


삐뚤삐뚤 잘도 걷는 회장 선배를 보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푸흐...”


“ㅇㅇ이 귀엽지?”


“웃긴데요?”


“그게 귀여운 거야”


“웃긴 건데..”


“너 그래도 ㅇㅇ이한테 딴 맘 가지면 안 된다?”


“안 가질 거예요”


“쟤는 이미 임자가 있걸랑”


“어? 진짜요? 선배 연애 하세요?”


“지금은 아닐 걸?”


“네?”



“아마 지금은 아닐 거야.
근데 언젠간 한다 쟤. 두고 봐”


분명하다.
이국주 선배도 취했어.
내가 이긴 거야!!!!!!!!!!!
내가 우리 동아리에서 술 제일 잘 마신다!!!!!
도경수 만세!!!!!!!!!!!!!



지이잉- 지이잉-



“선배님 전화 오는데요?”


“내 거 아닌데?”


“제 것도 아닌데...”


“얘 거네. ㅇㅇ


“아.......”


“크흐, 야 이거 봐. 내 말이 맞다니까?”


“네?”



[두두]



씨익 웃으며 휴대폰을 가리키는 선배님.
액정엔 두준 형의 이름이 떠있었다.


“두준 형이 왜요?”



“왜긴 왜야”


“에?”


“가만 있어봐”


선배는 누구보다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어이 윤두준. 그 새를 못 참고 전화하냐?
술? 많이 마셨지. 여기 싹 쓸었어 우리가.
크하하하, 야 괜히 내 걱정 하는 척 하지 말고
와서 ㅇㅇ이나 데려가.
여기 거기야. 후문에 있는 감자탕 집.
어. 한.... 30분? 어어. 오케이”


선배는 전화를 끊자마자 허허 웃으며 남은 소맥을 들이켰다.


“징하다 징해. 그치”



“뭐, 뭐가요?”


“얘네”


“.......”


“얘네 몰라?”


“뭐를...”


“헐?”


“헐?”


“너 진짜 몰라?”



“제가 뭘 모르죠?”


“한 번도 안 들어봤어? 얘네 관계에 대해서?”


“무슨 관곈데요?”


“.......”


“.......”



“너 왕따니?”


“아니요?”


“그럼 혹시, 편입 하셨어요?”


“아닌데요”


“근데 왜 몰라? 신입생도 알 텐데”


내가 뭘 모르지?
뭘 놓치고 있는 거지?
영화과라면, 특히 RACC라면 모르는 게
없다고 자부했었는데. 뭐지?



“얘네 사겼었잖아”


“아....... 그래요?”


아 뭐야. 난 또 엄청난 건 줄 알았네.


“그것도 몰랐다니... 너 은따야 은따.
이런 걸 은따라고 하는 거야.
강준이랑 노는 것도 좋지만
과 동기들하고 좀 놀아. 어?”



“에이, 사람이 사람 만나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그런 거 몰라도 저는,”


“이래서 니가 은따인 거야”


“.......”


“한 번 사겼으면 내가 이런 말 하겠니?
자그만치,”


“선배!!! 우리 2차 갈까요 2차?”


그 어떤 드라마 예고편 보다 궁금한 다음 말을
국주 선배는 삼켜버렸다.
곧 ㅇㅇ선배는 비틀거리며 자리로 왔고
나와 국주선배를 번갈아 보며 싱글벙글 웃었다.


“2차는 노래방 어때?”


“저 노래 못해요”


“그래서 가자는 거야.
못하는 노래 듣고 놀리게. 크흐흫”



저 악마.......


“아 뭔 2차야. 여기서 끝내”


“에? 진짜요? 선배 원래 2차 좋아하잖아요!!”


“늙으니까 체력이 안 돼.  나도 집에 들어갈란다~”


“헐.......”


“그리고 두두 오기로 했어”


“두두요? 걔가 왜요?”


“왜긴 왜야. 너님 데려다 주려고 오는 거지”


“여기 있는 거 말 안 했는데...”


“아까 전화 오길래 받아서 알려줬어.”


“아 왜요!!!!”


“곧 올 거야. 30분 있다 오라고는 했는데
걔 성격에 그 시간 채워서 올 것도 아니고...
뛰어오면 한, 5분?”


“망했어 망했어...”


“데려다 줄 남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라”


“안 감사해요 저는”



“나는 엄청 감사해 할 거야.
맨날 108배 하고 자야지”


말을 마친 선배는 볶음밥을 한 입 먹었고
그 모습을 마냥 쳐다보던 나 또한
숟가락을 들어 볶음밥을 펐다.


그리곤 다시 앞 접시에 내려놨다.


배불러서 숨도 간신히 쉬는 판국에
무슨 볶음밥이람.
이게 다 맛깔나게 먹는 국주 선배 때문이다.
뭐든 맛있게 잘 먹는 선배님...


“야 국영수”


“네”


“너 여자친구 있어?”


“아니요”


“왜?”


“지금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연애”


“야 니 나이 때 연애 안 하면 뭐해?”



“영화 공부하죠”


“.......”


“.......”


“.......”



“ㅇㅇ아 쟤 은따야. 알고 있었어?”


“왠지 그럴 거 같았어요”



“저 은따 아니에요”


“힘내라. 너무 괴로우면 연락 하고.
선배가 술 사줄게”


“아닌데, 아니... 아니에요 진짜”


선배들은 이미 안타까운 눈빛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교내 폭력 근절 캠페인이라도 해야 되나”


“관련 영상 찍을까요? 캠페인용으로 짧게?”



“아서라. 일 벌이지 말고”


“도갱 너만 준비 되면 찍을게”



“.......”


폭력은 지금 당하는 기분인데...
언어폭력.
이렇게 말하면 또 혼나겠지?
.......
그냥 입 다물고 있어야겠다.



드르륵- 쾅!




“ㅇㅇㅇ 가자!”


“으악, 진짜 왔어!!”


“선배 안녕하세요. 어? 너도 있었어?”


“형 안녕하세요”



“야 내가 30분 있다 오랬잖아~”



“벌써 11시 반이에요. 집에 가야죠 다들”


형은 선배의 가방과 휴대폰을 자연스레 챙겼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얘 데리고 먼저 가”


“더 마시게요? 이미 많이 마셨구만”


“많이 안 마셨어!! 방해하지 말고 너나 가”


“눈은 정상이고 입도 괜찮고.
이번엔 손이야? 아니면 발?”



“왼손입니다”



“오른손 아닌 게 다행이네. 일어나 빨리”


“씨.......”


“책임지고 잘 데려다줘라”


“선배는 어떻게 가시게요?”


“나야 뭐. 버스타고 가면 돼”


“야 경수야 너 집 어디지?”


“목동이요”


“진짜? 야 잘됐다!!”


“그러게. 경수야 선배 양평 사니까
너가 데려다 드려”



“아 됐어”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선배님”


“.......”


“오 도갱- 믿음직스러운데?”


“하하하..”



“그럼 너 믿고 간다!
선배 쟤 막 부려먹으셔도 됩니다~”


“ㅇㅇ이나 잘 챙겨!!”


“선배님 내일 봬요!!!
경수야 안녕!!! 조심히 가!!”


“안녕히 들어가세요-”


“응~ 아 야!! 내 가방 줘!!!”


회장 선배와 두준 형은
가게를 나서면서도 투닥거렸다.
그래도 형은 선배의 팔뚝을 꼭 잡아줬고
선배는 자석처럼 이끌려갔다.



“으... 나도 가야지”



“가시죠”


“됐어. 넌 네 갈길 가”


“지하철 타고 가실 거잖아요.
같이 가요. 방향도 같은데”


“뭐... 그래라, 그럼”





쿨하게 계산을 마친 선배님의 뒤를 졸졸 따랐다.
그러다 슬쩍 옆으로 가서 섰더니
선배님이 깜짝 놀란 듯 움찔했다.


“선배님”


“왜”


“아까 얘기 이어서 해주시면 안 돼요?”


“무슨 얘기”


“두준 형이랑 ㅇㅇ선배요. 사귄 횟수가 자그만치,”



“아- 다섯 번. 다섯 번 사겼어”



“......진짜요?”


“스무 살 때부터 작년까지 총 다섯 번”


“와...”


“지금은 아마 헤어진 상태일 거야.
또 언제 다시 사귈지 모르지만”


“이상한데요? 아주 많이”


“나도 처음엔 이상했어. 근데 이젠 그러려니 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요.
헤어진 이유가 있을 텐데
그걸 굳이 또 반복한다는 부분이 좀...”


“걔네 처음에 왜 헤어졌는지 알아?”


“왜요?”



“음식 취향이 너무 달라서”


“.......”


“크흐. 스무 살이니까 그랬겠지 싶으면서도
진짜 특이하긴 하다, 싶고.... 뭐 이런 거야.
두두는 파전, ㅇㅇ이는 김치전
두두는 순대국밥, ㅇㅇ이는 콩나물국밥
심지어 딸기잼, 땅콩잼 가지고도 싸우더라니까.”


“진짜 유치하네요”


“그러니까. 까짓거 다 먹으면 되지
음식을 왜 가려? 가릴 게 있어?”


“...그, 그러게요”


“하여튼 음식 가리는 것들이 제일 싫어”


“흠흠. 두 번째는요?
두 번째 헤어진 이유는 뭐예요?”


“때마침 두두 영장이 나왔거든.
2년 동안 자기 기다리게 하기 싫어서
헤어지자고 했대.”


“아.......”


“그러더니 제대하고 바로 사귀더라.
참나, 언뜻 들으면 소설 같아.
둘이 아주 소설 쓰고 영화 찍고 다 해”


“거의 막장드라마죠”


“맞아. 막장이야 이거.
세 번째는 둘이 공모전 준비하다가 싸워서 헤어지고.
네 번째는 두두가 바람 피운 걸로
오해해서 헤어지고.”


선배들은 이제 스물다섯인데
대체 저런 풍파는 다 언제 겪은 거란 말인가.
역시 저런 경험들이 많아야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거겠지.



“근데 다섯 번째가 문제야”


“왜요? 왜 헤어졌는데요?”


“그걸 모르겠어.”


“네?”


“안 가르쳐 줘. 아무리 물어봐도”


“.......”


“전에는 다 말했었거든.
근데 마지막 이유는 죽어도 말 안 하더라고”


“왤까요?”


“진짜 피치 못할 사정이거나...
글쎄. 왜 그럴까. 희대의 미스터리야”


“흠.......”


“근데 지금 봐봐.
여전히 두두는 ㅇㅇ이를 데려다 주고,
걱정해주고, 챙겨준단 말이지.
뭔가 꼭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아... 그럼 혹시 두준 형이  큰 잘못을 저질러서....”


“그럴 지도 모르지.
사죄하는 마음으로 계속 ㅇㅇ이한테
잘해주는 거야. 비록 헤어졌지만
네 마음이 풀릴 때까지 내가 잘 할게. 뭐 이런 거?”


“근데 보면 ㅇㅇ선배도
딱히 싫어하는 것 같지 않던데요”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잖아.
그냥.... 보통 사이? 이런 느낌”


“몰래 사귀는 걸 수도 있어요.
안 그런 척 하면서 몰래. 주변 사람 의식해서”


“음... 그것도 재밌겠네.
차라리 그거였음 좋겠다. 덜 이상하게”


지하철을 기다리며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선배님.
뭔가 하는 것 같더니
이내 방긋 웃으며 내게 휴대폰을 들이민다.



“강준이 인스타 올렸어!
와 셀카 좀 봐. 완전 대박”


이 정도면 거의 서강준 덕후 수준인데.
그냥 놔두기엔 양심에 찔리고
솔직하게 말하자니 충격 받을까 걱정되고...


후환이 두려운 게 더 크지만.


“댓글 달아야지~”



“후...... 선배님,”


“어”


“선배님은 강준이 어디가 좋아요?”


“강준이? 잘 생겼잖아”


“그게 다예요?”



“음... 자상하고, 웃을 때 너무 예뻐.
아, 농구도 잘하더라고! 몸도 좋고, 얼굴도 하얗고.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어”


“걔가 바람기가 좀 있어요. 그래도 좋아요?”


“원래 잘생긴 애들은 얼굴 값 해”


“애가 공부도 못해요.
지금 평점이 한.. 2.5 간신히 넘을 걸요?”


“나도 잘 못해서 괜찮아.”


“음식도 많이 가리는데요?
곱창 못 먹어요 걔”


“음... 내가 다 먹으면 되지”


“돈 쓰는 건 또 얼마나 좋아하는지,
쇼핑 중독이에요 완전. 그래도 좋아요?”


“.......”


“펑펑 돈만 쓰는데?”


“야”


“에?”



“너 나 좋아하니?”



“.......”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니다.
이 질문은 잘못됐어.


“아니요”


“근데 왜 자꾸 나랑 강준이 사이를 이간질 해?”


“제가요? 언제요?
저는 사실만 말씀드린 거예요”


“.......”


“.......”



“나 좋아하지마. 너 내 스타일 아니야”



“감사합니다”


“뭐?”


“아, 아닙니다 선배님”


“헛소리 하지 말고
너도 나랑 강준이 밀어줄 생각이나 해.
우리 잘 되면 선물 사줄게. 좋은 걸로”


“.......”


“이런 거 어때?
니가 먼저 강준이랑 약속을 잡는 거야.
그리고 나랑 같이 나가는 거지.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싶을 때 쯤, 넌 빠지고”


“그거는 그냥 선배님이 연락 하셔서...”


“내 연락은 안 받으니까 그렇지”


“아.......”


“어때?”


“생각... 해보겠습니다”



“빨리 해라. 나 성격 급하다”


어떤 결론을 내든
난 둘 중 하나에게 두들겨 맞게 될 것이다.


감히, 22년 평생 처음 맞이한
‘위기’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
.
.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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