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대로 고하라. 이것이 정녕 사실이냐”


“저, 전하…”


“사실이냐 물었다!!!”


“그러하옵니다...”


깊은 밤에 접어들었을 때 즈음
주상의 눈빛은 더욱 또렷해져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벌벌 떨며 고하는 이 하찮은 이를
그는 어떤 심정으로 보고 있을까.


“다시 한번 말해보라.
세자가 어찌 역모를 꾀한단 말이냐”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전하,
저하께오선 지난 한 달간 평양에 머무르셨다 하옵니다”


“…….”


“제가 그곳 사람들에게 들은 바로는
저하께서 다수의 장병들을 양성하여...”


“해서,”


“.... 곧 지존의 자리에 오르실 거라...”


“…….”


“그뿐만이 아니옵니다.
군사를 키우기 위해 그곳 백성들의 피같은 돈을,”


“네 이놈!!!!!!!!!
네놈이 정녕 사실만을 고하는 것이렷다!!”


“그, 그러하옵니다 전하”


죽일 듯 나경언을 노려보던 주상이
이내 고갤 돌려 상선을 쳐다봤다.


“과인이 며칠 전 세자의 행방을 물었었다.
그때 동궁전에서 뭐라 하였느냐”


“편찮으시다 하였사옵니다”


“분명 가벼운 고뿔에 걸렸다 하지 않았더냐”


“그렇사옵니다”


“한달간 몸이 성치 않았단 이유로 문안 인사 한번 오지 않았다.
과인의 말이 맞느냐”


“그러하옵니다”


“헌데 지금 이 자는,”


“…….”


“이 자가 하는 말이 사실이면,”


“전하...”


주상의 눈에 회오리가 몰아쳤다.



“당장 세자를 데려오라.
또한 이 일과 관련된 모든 이를 데려오라”





*





왠지 세자는 볼을 스치는 찬바람으로부터 포근함을 느꼈다.
지난 시간 온몸을 짓누르던 갑갑함에서
해방됨을 느꼈던 것도 같다.


달리는 말 위에서 짓는 옅은 미소


세자빈과 현이를 맞이할 생각에 전에 없던 웃음도 픽 나왔다.


전처럼 빈과 현이의 웃음소리가
온 천지에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




.
.




“아바마마!”


“어 그래, 현이구나. 뛰지 말거라!”


“아바마... 아!!!”


“현아!!”


아장아장 뛰어오던 현이 넘어지자
뒤에 따라오던 임내관과 한상궁이 급히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뛰지마라 일렀거늘!”


세자의 걸음을 따를 순 없었다.
그는 누구보다 빠른 걸음으로 현이를 일으켜 세웠다.


“소자 괜찮사옵니다 아바마마!”


“내 마음이 편치 않다”


“송구하옵니다...”


“휴. 어찌 이리 빈을 똑 닮았을꼬”


“예에? 저하!”


“히히..”


“아, 빈궁 오셨소”


세자의 뒤로 나타난 세자빈


“방금 뭐라 하셨습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만. 아니 그러냐 현아”


“그러하옵니다!”


“제가 똑똑히 들었습니다!
현이가 저를 닮아 넘어진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그리 말했느냐 현아”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요 어마마마?”


“어어-?”


“하하하하”


“히히 어마마마~”


“다음엔 꼭 공주를 생산해야겠습니다.
어미 마음 알아주는 건 딸자식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대 마음은 내가 잘 알지”


“소자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정말 다들 이럴 거예요?”


“현아 어서 안아드려라.
눈물을 보이실지도 모르겠구나”


“어마마마~”


“눈물이라뇨!”


현이 세자빈을 껴안자
뒤에서 지켜보던 세자가 눈을 찡긋거렸다.


“나의 품은 밤에 내어드리겠소.”


“저하!”




.
.




“저하!!!!!!”


찰나였다.

세자가 미소를 머금고 말에서 내리던 찰나,

박 내관의 다급한 외침이 세자의 귀에 꽂혔다.


“웬 소란이냐”


“어서, 어서...!”


“저하”


“너는 또 왜,”


뒤이어 우익위도 달려와 세자의 앞을 막았다.
그리곤 세자의 칼을 건네며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 피하셔야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자세한 이야긴 나중에 하겠습니다.
어서 몸을 피하십시오. 이곳은 신이 맡겠습니다”


“우익위 말대로 하시지요 저하.
한 시가 급합니다!!”


“이게 대체 무슨...”


얼떨결에 우익위가 내민 칼을 잡은 세자가
당황스러운 얼굴을 할 때 즈음,
저 멀리서 웬 무리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저기 있다! 어서 잡아라!!!”



깜짝 놀란 세자는 뒤로 물러섰고
박내관은 그를 더욱 뒤로 끌어당겼다.
곧이어 이들 눈앞에 여러 군졸들이 나타나 에워싸기 시작했다.


“어서 피하십시오”


“하늘아!!!”


그 말을 끝으로 우익위는 군졸들을 향해 나아갔다.
칼을 서서히 꺼내며 무리를 맞는
그의 얼굴에서 비장함이 느껴졌다.


“이얏!!!!!!”


“…….”



챙- 챙-



하늘은 장정 여럿과 칼을 맞댔다.
비록 혼자 상대해야 했지만
최고의 칼솜씨를 이길 자는 없어보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 군졸들은 더 모여들었고
하늘은 거친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어서 가셔야 합니다!!”


그의 칼에 하나둘씩 나가떨어지는
군졸들을 쳐다보던 박내관이 세자를 붙잡아 당겼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세자는 박내관이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우익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





덜컹 덜컹-



“쉬이. 소리를 낮춰라. 조용히 움직여야 한다”


“예”


잠결에 익숙한 목소릴 들었다.
깊이 잠든 아이의 숨소리만 들리던 이곳에
왠지 모를 낯선 발걸음 소리가 하나, 둘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급히 입궐해야 하니 당신이 마마를 맡아주시오”


“이게 웬 소란이랍니까?”


“세자의 관서행을 알렸소.
일의 마무리만 남은 셈이니 걱정 마시오”


“허나,”


“다 우리 가문을 위한 일이오.”


“...예”


“마마껜 집안에 간자가 들었다 전하시오.
피치 못해 거처를 옮겨야 한다고, 아시겠소?”


“네 대감”


“이제 곧 정국의 안정이 이뤄질 것이오.
큰 걸림돌 하나가 없어질테니”


“…….”


“흠흠. 그럼 이만 가보겠소. 당신도 어서 채비하시오”


“예, 이따 연통하겠습니다”


“그러시오”





“…….”


온몸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문밖에서 들리는 대화 소리에 두 손으로 입을 막고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간신히 삼켰다.


분명, 궁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세자저하의 안위가 달린 일이었다.


“현아 일어나 보거라. 현아”


“으음...”


“당장 입궐해야 한다. 어서 채비하거라”


“어마마마...?”


“쉿. 조용히 움직이거라”


“하지만 아직 날이 밝지 않았는걸요?”


“시간이 없다. 어서 일어나 어서..!”


“마마, 쇤네이옵니다”


“김상궁!!”


나의 떨리는 목소릴 알아챘는지
급히 방안으로 들어오는 김상궁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마마”


“당장 궁에 들어가야겠습니다.”


“허나 마마,”


“저하의 안위가 달려있어요. 내가 가봐야 합니다.”


“…….”


“어서요. 어서 가마를 준비해 주세요.
가마꾼이 없다면 말이라도 준비해 주세요.
제가 현이를 안고 가겠습니다”


“가마를 준비하겠습니다”


간절한 눈빛을 보던 김상궁이 속히 방을 빠져나갔다.


“현아”


“어마마마... 아바마마께 가는 것이옵니까?”


“…….”


“어찌 눈물을 보이시는 것이옵니까?”


“아니다 현아, 아니야.”


“어마마마...”


내 눈을 스치는 현이의 손길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전에 저하께서 말씀하신대로
함부로 눈물을 보여선 안 됐다.
저하를 위해서라도


“저하가 보고싶어 빨리 들어가려는게야.
괜한 염려 말거라”


“참말이옵니까?”


“그럼. 우리 현이도 아버지가 보고싶지?”


“네!!!”


“그래, 어서 가자.
가서 만나 뵙고 꼭 안아드리자”


“네!!!!”





그새 신나하는 현이의 손을 붙잡고 방문을 열었다.
밖은 고요했지만 왠지 모를 한기가 느껴졌다.


“어미 손을 놓지 말거라”


“네 어마마마”


“가자”


그리고 다른 이의 눈을 피해
황급히 대문 앞으로 나서는 순간,


“마마!!!!”


누군가 우리 앞을 막아섰다.


“나가실 수 없습니다!”


“어, 어머니...”


“궁에 들어갈 생각이라면 포기하십시오.
절대 들어가실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마마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


“들어가시지... 않는 것이 좋을겝니다”


“저하를 봬야겠습니다”


“그저 흐르는 대로, 그냥 두십시오.”


서서히 눈물이 차올랐다.
내 앞을 막아선 어미가 미웠고,
이 지경에 이른 내 자신이 미웠다.


“마마를 위한 일입니다”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저를 위한 일이라니요.
언제 제 마음 한번 들여다 본 적 있으세요?
제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얼마나 아리고 쓰린지 아시냐고요!”


“현이를 생각하세요.”


“.......어머니,”


“장차 이 나라 지존이 되실
원손마마를 생각하시란 말입니다!”


어머니의 눈이 현이에게 닿았다.
어느새 현이는 말없이 훌쩍이고 있었다.
내 손을 꼬옥 잡은 채, 무서움을 삼키 듯.


“현이는 당연히 아비를 따라 지존이 될 겁니다”


“지금 마마께서 입궁하신다면
모든 것이 물거품 될 수도 있습니다”


“어찌 이러시는 것입니까!!!”


“선택을 해야합니다 마마.
쉬운 선택이 아닌 줄 알지만
마마, 지금이 바로 마마의 현명함이 필요한 때입니다.”


“지금 제게 저하와 현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말씀이십니까?”


“…….”


“똑똑히 들으세요.”


"......."


“저는 둘 다 선택할 것입니다.
아버님, 대신들, 주상 전하를 포함한 그 누구도!!!!
저에게서 저하와 현이를 데려가진 못합니다.
아시겠습니까?”


"......."


“만약 그리 한다면 제 목숨 또한 기꺼이 내어줄 것입니다”


“마마...!!!”


“현아 인사 드리거라.
어쩜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구나”


“어마마마...”


“그동안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다음번엔 부디... 다음에도 혹 모녀의 연이 닿는다면,”


“…….”


“그때 저를 벌해주세요. 꼭.... 꼭.”


“마마, 어찌...!!!”




“무강하십시오. 어머니”





*





박내관과 세자는 미로 같은 궐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주변은 이들의 숨소리로 가득 찼고
그 어떤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궁 북쪽 끝 건무문 처마가 보일 때 즘
박내관이 멈춰 섰다.


“저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십시오!
병력들은 궁궐 수색에 합류했을 것입니다”


“박내관”


“말은 성 밖 가장 큰 느티나무에 대기시켜놨습니다.
경계가 삼엄해 자칫 말을 타면
금방 노출될까 하여 그리 조치해뒀습니다”


“저들이 나를 목적에 두고 있는 것이냐”


“지체하시면 아니되옵니다 저하!!”


“바른대로 고하라.
저들이 날 붙잡으려 하는 것이냔 말이다”


“....... 그러하옵니다”


“어찌하여 나를,”


“내금위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누구의 명인지 아실 것 아니시옵니까!!”


“.......전하의 명이란 말이냐”



“샅샅이 뒤져라!!!!!”



저 멀리 들리는 내금위장의 목소리에
박내관이 몸서리치며 세자를 붙잡았다.


“저하!!!”


“허면 빈은 어찌된단 말이냐. 현이는!!”


“저하께서 사셔야 빈궁마마께서도 안전하실 것이옵니다”


내관의 말에 커지는 세자의 동공.
꽤 가까운 거리에서 들리는 군사들의 발소리에
급히 건무문 쪽으로 걸음을 돌린다.


“도성 밖으로 나가셔야 합니다!”


“박내관 자네는,”


“주의를 돌리겠습니다. 어서 가십시오!”


세자와 박내관의 눈이 허공에서 만난 것도 잠시,
세자가 입술을 꽉 깨물곤 먼저 뛰기 시작했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도망치는 이유는 온데 간데 사라지고
오로지 빈과 원손의 얼굴만 떠올리던 그 때,


“이얏!!!!”


갑자기 나타난 내금위 군사 셋.
세자 앞에서도 거침없이 칼을 뽑아든다.


“감히 네놈들이”


이에 질세라 그들을 상대하는 세자.
숙련된 그의 칼솜씨에 나가떨어진 이들을 지나
더 앞으로 나아가자 또 다시 군사 둘이 나타난다.


가슴팍과 목 언저리를 베자
세자의 얼굴에 빨간 핏방울이 튀었고,
미처 닦을 새도 없이 뛰어갔을 땐


이미 문 앞을 지키고 서있는 내금위장과

군사 수 백이 있었다.


“저하, 이제 그만 하시지요”


“닥쳐라. 앞길을 트지 않는다면
네놈 모가지를 도려낼 것이다”


“저하를 모셔오라는 어명이십니다”


“전하께서 날 죽이라 하시더냐”


“당장 데려오라 하셨습니다”


“그럼 어디 한번 데려가 보거라”


칼을 고쳐 잡는 세자


“뭣하느냐!! 어서 저하를 뫼시지 않고!!”


내금위장의 명에 군사들이 세자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내가 이 나라 국본임을 잊은게로구나!!!”


“우리는 어명을 따를 뿐이다! 지체하지 마라!!!”


“예!!!”


세자가 칼을 들자 군사 여럿이 달려들었다.



챙- 챙-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는 세자.
쓰러져가는 금군 수가 늘어날수록
그의 얼굴과 도포에 더 많은 핏자국이 스며들었다.
꽤 오랜 시간 싸움이 이어졌지만
세자는 칼을 놓을 수 없었다.



자신이 지켜야 할 사람을 위해
자신을 지켜준 사람들을 위해



그 순간,



“끌고 와라!!!”


어딘가에 떨어진 내금위장의 명.
고갤 돌린 세자의 눈에,


“하늘아!!!!!!!”


다 쓰러져가는 우익위가 들어왔고, 이내



퍽-



“윽...”


내금위군 무리가 자리에 주저앉은 세자 주위를 둘러쌌다.


“저하!!!!!!!!!”


“하늘...아.......”


“저하를 모시고 전하께 간다”


“예!!!”





*









문정전 앞 뜰.
근엄한 자세의 주상 옆에는 지금의 일을 예견한 듯
침착한 표정을 한 대신들이 서있었다.


내금위군은 몇은 횃불을 들고 주변을 밝혔으며
나머지는 궐 밖을 향해 칼을 꺼내들고 있었다.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왕의 뜻이었다.



쿵-



“세자저하이십니다”


곧이어 내금위장이 들어섰고
그 뒤로는 처참한 몰골을 한 세자가
내금위군의 부축을 받고 끌려오고 있었다.


“흐음..”


주상의 바로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영상이
수염을 만지며 눈치를 살폈다.


왕의 눈은 여전히 매섭고 날카로웠다.




“하아... 전하.......”


세자가 힘이 풀린 다리를 붙잡고 간신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바로 이마를 조아리며 말을 이었다.


“어찌 이러시는 것입니까...”


“고개를 들라”


“전하”


“들라”


주상의 엄중한 목소리에 살며시 고개를 드는 세자


“묻는 말에 답하라.
지난 한달 간 어디 있었느냐”



“…….”


“거짓을 고하는 즉시 목을 벨 것이다”


“…….”


“바른대로 고하라”


“궁에... 없었습니다”


“허면,”


“평안도에 다녀왔습니다”


“……."


“송구하옵니다 전하.
전하께서 노하실까 하여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가서 뭘 하였느냐”


“그저 유람에 불과하였습니다”


“유람이라”


“한양이 갑갑해 떠난 것이 고작입니다.
가서 평양감사 정휘량을 만나...”


“무엇을 하였느냐”


“.....얘기를 나눈 것이 전부입니다”


“정녕 그렇단 말이냐”


“예 전하”


“허면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과인이 윤급의 청지기 나경언이란 자의 상소를 받았다.
그 자에 의하면 네가 그저 평안도 ‘유람’에 그치지 않았다던데.”


“…….”


“그 상소의 내용이 심히 불충해 관련된 자들을 찾아봤더니
한 사람이 나오더구나”


“무, 무슨...”


“들라하라”


자신의 이마에서 후두둑 떨어지는
핏방울만 쳐다보던 세자 앞에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임...상궁...”


“저, 전하”


자신을 지척에서 모시던 임상궁의 등장에
세자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너의 오라비가 평양에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냐”


“그, 그러하옵니다 전하...”


“얼마 전 네가 오라비에게 서찰을 받았다지”


“예”


“그래, 거기에 뭐라 적혀 있었느냐”


“그것이.......”


“어서 고하라”


임상궁이 다 쓰러져가는 세자의 눈치를 보다
질끈 눈을 감고 말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세자저하의 행동이 이상하다 하였습니다”


“어떻게”


“백성들의 돈을 빌리는 것도 모자라
약탈한다... 하였습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그 입 다물라”


“전하, 거짓이옵니다. 소자의 말을 믿어주시옵소서”


“임상궁은 계속 하라”


“그, 그....... 또한
평양 감사를 만나 몰래 군대를 꾸리고 있다 하였습니다”


“군대라”


“예, 전하.
그 수가 자그마치 오백은 넘어 보인다 했습니다”


“…….”


“네 이년!!!!!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느냐!!!!”


“또 있느냐”


“예... 저하께서 돈이 필요하신 연유가
군기붙이를 모으는 데에 있다...”


“전하!!!!!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군기붙이라”


“예...”


“평양 금군 시찰을 한 것은 맞습니다.
허나 북방을 지키는 군사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의 군대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


“정휘량의 이야길 들어보시면..!!”


순간, 세자의 눈이 주상의 옆으로 향했다.


“과인이 안 그래도 정휘량 또한 불렀느니라.”


“…….”


“마침 한양에 있더구나”


세자는 주상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의 눈은 오로지 영상을 향해 있었다.


영상은 세자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저 측은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금세 세자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리고 세자는, 울음을 토해냈다.
분노에 찬 울음이었다.


고개를 숙이기 전 세자는 영상의 얼굴을 다시 봤다.


슬며시 올라간 입꼬리를.





*





“세자빈마마와 원손마마시다, 어서 길을...”


“당장 비키거라”


갈 길이 급했다.
성문을 지키는 이에게 무슨 잘못이 있으랴.
허나 내 앞길을 막는다면,


“네놈 목을 칠 것이야”


“......어서 비키거라!”


“예, 예...”


김상궁의 호통에 수문장이 길을 내주었다.


“한시가 급하다. 어서 움직여라”


“예, 마마”


가마꾼을 재촉하는 소리에 내 손을 꼭 잡는 현이


“어마마마...”


“괜찮다. 아무 일 없을 거야”


그렇게 두손을 맞잡고 한참을 갔다.
성문에서 궐문까지 얼마나 걸리겠냐만
나에겐 천년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내일은 웃는 얼굴로 입궁하거라'


'오랜만에 너와 후원을 거닐 것이다.
그때도 눈물을 보인다면
진짜 화를 낼 것이니 각오해야 한다'


엄한 생각은 하지 않으려 했으나
자꾸 저하의 뒷모습이 떠오르는 건 어찌할 수 없었다.
분명 행복감에 가득 차 있었는데
이런 변란은 우리의 내일에 없었는데...


'내 약속하지 않았느냐.
너와 현이를 위해서라도 노력하겠다고'


'버텨보려 한다 ㅇㅇ아'


자꾸 저하의 얼굴이 아른거려 눈물이 차올랐다.
계속 눈을 훔치니 옆에 있던 현이도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김상궁, 아직 멀었습니까”


“얼마 남지 않았사온데...”


“네?”


“세, 세상에...!”


“무슨 일이라도....”


놀람을 금치 못하는 김상궁의 소리에
밖을 내다본 순간,
나 또한 두 손으로 입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당장 가마를 내려라. 당장!!!”


“예, 마마”


“마마 아니되옵니다.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아보...”


“현아 가자. 얼른 나오거라”


“마마!!!”


“무섭습니다 어마마마...”


“어서 이리와 어서!”


무서워하는 현이를 등에 업었다.


궁 안은 온통 피비린내로 가득했고,
그것을 증명하듯 길목마다 시체가 즐비했다.


“어마마마...”


“눈을 감아라. 아무 것도 보지 말아야 한다 현아”


“마마! 이러다 마마까지 다치십니다!!”


“어디부터 가야 한단 말이냐.
어디... 어디.......”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고
정신없이 앞만 보고 가던 와중,



챙-



“꺅!!!!”


“웬 놈이냐”


“…….”


목에 닿은 차가운 느낌에 걸음을 멈췄다.


“마마!! 괜찮으십니까!!”


“하아, 하...”


“어마마마!!!!”


“네 이놈!!!!
어찌 세자빈마마께 칼을 댄단 말이냐!!!”


“소, 송구하옵니다 마마! 죽을 죄를 지었사옵니다!!!
주변 경계를 엄격히 하라는 어명이 있어서...”


“네놈 목을 베어버릴 것이다!!”


“됐어요. 됐습니다 김상궁”


“마마!! 피, 피가...”


“죽여주시옵소서 마마!!!”


벌벌 떨며 자리에 주저앉는 내금위군.
놀란 김상궁이 황급히 내 목덜미에 손을 가져다 댔다.


“난 괜찮으니 어서 저하가 계신 곳을 가르쳐 주게”


“세, 세자저하께서는 지금...”


“한 시가 급하네. 어서”


“문정전에 계십니다”


“알았네”


“마마! 위험합니다!!”


답을 듣자마자 김상궁의 손을 뿌리치고 앞을 향해 걸었다.


“어마마마...! 피가 납니다!!”


“눈을 감으라 하지 않았느냐"


“허나,”


“현아 잘 듣거라.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저하를 봬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다.
저하가 계셔야 너와 내가 있을 수 있어.
사람답게 말이다”


대답없이 날 더 꼭 붙잡는 현이


“한 시가 급하다. 한 시가 급해.......”


소릴 죽인 채 흐느끼는 현이를 다시 고쳐 업고

문정전을 향해 갔다.


전각을 환히 비추는 횃불이
마치 불이라도 난 듯 넘실거리고 있었다.





*





“전하”


“…….”


“한번만, 한번만 소자의 말을 믿어주십시오”


“네 말을 어찌 믿겠느냐.
너의 행실을 알고 있는 자가 족히 백 명은 넘을 것이다!”


“단 한번이라도!!!!!!”


“…….”


“너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리 말씀해 주세요 아바마마”


주상의 눈이 흔들렸다.


'아바마마'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소리였다.



‘아바마마.’



“저들의 농간에 속지마세요...”


“…….”


엎드려 울분을 토하는 세자


“제발 제 말을 들어주세요 아바마마...
소자의 진심을.......”


“뭐, 뭣들하느냐! 어서 정휘량을 들이지 않고!”


“예!”


흐느끼는 세자 너머로
평안 감사 정휘량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딘가 심히 불편한 얼굴이었다.


“전하, 신 정휘량이옵니다”


“이제야 제대로 된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겠구나”


정휘량의 등장에도 고갤 들지 않는 세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영상이
정휘량을 향해 고갤 끄덕인다.


“최근 세자를 만난 적이 있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자가 직접 평양에 찾아간 것이냐”


“예, 연통도 없이 오셨사옵니다”


“연유가 무엇이라더냐”


“…….”


“연유가 있을 것 아니냐”


“큰 뜻을 품고 오셨다 하셨사옵니다”


“큰 뜻이라면,”


“.......”


“그것이 무엇이냐!!!!”


“하루 빨리....”


“…….”


“용상에 앉고 싶다 하셨습니다”


말을 끝낸 정휘량은
이마를 조아리며 벌벌 떨기 시작했고
주상은,


“세자는 답하라. 이 자의 말이 사실이냐”


세자에게 진실을 요구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지 않사옵니까”


“뭐라”


“어떤 답을 원하십니까. 그 답이 곧 제 뜻입니다”


“네 이놈!!!!!”


“정휘량은 들으라.
해서, 연로한 노모의 약값은 마련하였는가.
방납으로 인한 제정 문란은 눈감아 주기로 했는가 말이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게야!!!!”


“충심을 돈에 팔아 넘긴겐가.
아니면 요직에 팔아 넘긴겐가”


세자의 말에 더욱 더 몸을 떠는 정휘량.
영상의 얼굴도 따라 굳어간다.


“누구에게 팔아 넘겼단 말이냐”


“…….”


“누구의 사주냐 묻지 않느냐!!”


한참 뜸을 들이던 세자의 눈길이 영상에게 닿는 순간,



“열지 못하겠느냐!!!”



빈의 외침이 사방을 깨트렸다.





*









“어마마마.......”


“당장 열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자결할 것이다”


“마마!!!”


“어찌하겠느냐.
내가 죽는 꼴을 기어코 보겠느냐?”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어명이 있었사옵니다 마마!
제발 칼을 거두어 주십시오!!”


“오냐. 네 놈이 진정 원한다면”


다른 수는 없었다.
내가 가진 힘이라곤 이것 뿐이니까,
앞을 가로막는 이 자에게 내밀 수 있는 건
미천한 몸뚱아리 뿐일테니.


옆에서 문을 지키던 자의 칼집에서 칼을 꺼내 들고
내금위장을 겁박했다.


"당장 이 자리에서 숨을 거두마”


“아니되옵니다 마마!!!”


잠시 멎었던 상처에 칼을 대니
또 다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어마마마!!!”


“뭣하느냐 어서 문을 열지 않고!!”


피를 보고 화들짝 놀라 급히 문을 여는 내금위군


“하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칼을 내려놓자
김상궁이 내게 달려왔다.


“마마,”


“괜찮아요.”


울먹거리는 김상궁을 두어번 토닥였다.
이제 다 됐어요, 저하를 뵐 수 있게 됐어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는 다 이해한 듯 보였다.


“드시지요”


흐느끼는 김상궁을 지나
현이와 함께 들어선 문정전 앞뜰에는


“저하...!!!”


저하께서 엎드려 계셨다.
온통 피칠갑을 하신 채 말이다.


“아바마마!!!”


“현이야”


“아바마마....!!”


저하를 향해 달려가는 현이를 보고
나도 조금씩 걸음을 뗐다.
마음 같아선 성큼성큼 걸어가 꽉 안아드리고 싶은데
넘치는 눈물 때문에 똑바로 걸을 수 없었다.


“아무도 들이지 말라 일렀거늘!!”


“계속 말렸으나 세자빈마마께서 목에 칼을...”


“ㅇㅇ아”


내금위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저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곤 현이의 손도 놓고 오로지 나를 향해 걸어오셨다.


“당장 세자를 붙잡아라!”


“예!”


“이 나라의 지존이 되실 분이시다!
감히 어디에 손을 대느냐!!!”


나의 눈물 섞인 외침에 희미하게 웃어 보이시는 저하.
코앞까지 와서야 내 목을 쓰다듬으신다.


“누구의 짓이냐”


“저하...”


“정녕 네가 그랬단 말이냐”


“어찌 이리 다치신 것입니까!!
어찌, 어찌...”


“겁도 없이 목에 칼을 댔단 말이냐!!!”


“흐윽, 저하.......”


주륵, 한 방울 눈물을 흘리시는 저하


“제발 그러지 말거라. 다치지 마 제발”


“지금 제 걱정을 하시는 것입니까”


“내가 아니면 누가 네 걱정을 한단 말이냐”


하지만 금세 옅은 미소를 지으신다.


“저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이까짓거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저하께서 무사하시기만 한다면 더한 것도 할 수 있습니다”


“ㅇㅇ아”


“…….”


“미안하다”


“저하,”


“명일은 정말... 밝을 줄 알았는데”


“저하!!!!”


“그 짧은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이리 큰 사달이 났구나.
내 탓이야. 내 잘못이다”


“내일도 모레도 저하와 함께할 것입니다.
그러니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


“ㅇㅇ아”


“…….”


“현이는 성군이 될 것이다.
만백성이 따르는 최고의 지존이 될게야”


“…….”


“그러니 현이가 용상에 앉을 때까지
네가 잘 보살펴야 한다. 알았지?”


“그만 하십시오. 더 이상 듣지 않을 것입니다”


“너 또한 아프지 말고 혼자 눈물 보이지 말고...
외로워하지도 말거라.”


“그만 하세요 저하!!”


“내가 항상 보고 있을테니”


“제발 그만.. 그만 하세요 저하...”


“울지 말거라. 전에도 말하지 않았느냐.
남들 앞에서 눈물 보이지 말라고.
내 체면도 생각해서, 응?”


자꾸 마음에도 없는 말씀을 하신다.
우리 곁엔 항상 저하가 계실건데,
저하께서 현이에게 용상을 넘겨주시면 될텐데.


“약조도 못 지키고 떠나 미안하구나”


제발 그만하시라고 외치고 싶은데
목구멍에 탁 막힌 설움 때문에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꾸역꾸역 눈물만 삼킬 뿐이었다
저하가 어루만져주시는 손길만 느낄 뿐.


“세자빈과 원손을 데리고 나가라”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전하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사방에서 내금위군이 나에게 다가왔고,


내가 저하를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전하!!!! 제발 세자저하를 살려주시옵소서!!”


“아바마마를 살려주세요 할바마마!!”


두 손 싹싹 비는 것밖엔 없었다.


“뭣하는 게야! 어서 내보내지 않고!!”


“할바마마! 아바마마를 살려주세요!!”


“제발 한번만... 이번 한번만.......”


“가시지요 마마”


“이거 놔라!!!”


“할바마마!!!!”


날 잡아끄는 내금위군.
가만히 보실리 없는 저하께서 한 마디 하자


“함부로 손대지 말거라.
감히 네놈 따위는 우러러 볼 수도 없는 분이시다”


어찌할 줄 몰라 하며 손을 뗀다.


“저하!! 저하!!!!”


“먼저 나가 계세요 빈궁. 곧 따라 나가겠습니다”


“아니되옵니다 저하!!!
같이 가셔야 해요!! 저와 함께 가셔야 해요!!”


“금방이면 됩니다. 걱정 마세요”


“저하!!!”


“현아”


“아바마마...”



“이제부턴 니가 어미를 보살펴야 한다. 알겠느냐”


“아버지..!!!”


“꼭 성군이 되어라”


저하께서 현이를 붙잡았던 손을 거두시곤
내금위군에게 눈짓을 보냈다.


“가시지요 마마”


“저하!!! 저하!!!!!”


현이와 함께 끌려 나가는 날 쳐다보지 않으시는 저하.
그저 고갤 숙인 채 뒤돌아 계실 뿐이다.


“이거 놔라!! 저하!! 함께 가셔야 합니다!!”


“아바마마...”


“전하!! 저하를 살려주시옵소서!!!!
저하는 아무 잘못이 없사옵니다!!”



“살려주시옵소서!!”



그리고 문이 닫히는 순간
작은 틈 사이로 저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옅은 미소를 봤다.


흐르는 눈물과 반대로 살며시 짓던 미소를



“아니되옵니다 저하... 저하.......”





*





“다신 문을 열지 마라. 알겠느냐!!!!”


“예 전하”


세자빈과 원손이 끌려 나가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세자.


이젠 고갤 돌려 주상이 아닌 영상을 쳐다본다.
원망과 슬픔이 뒤덮인 눈으로


“세자는 뭣하느냐!
어서 진실을 말하라. 누구의 짓이냔 말이냐!”


“…….”


“너의 말이 사실이라면 분명 사주한 이가 있고
너 또한 그가 누군지 안다는 것 아니냐!!!!”


“…….”


“말하지 않을 것이냐.

오냐 그럼 정휘량 니가 말해보거라.
널 사주한 자가 누구냐”


“그, 그런 자는 없사옵니다 전하...”


“이것은 엄연히 역모죄다.
과인과 국본을 욕보이게 한 죗값은
목숨으로도 치를 수 없을 것이야.
지금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네놈도 역적모의를 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겠느냐”


“저, 전하...!!”


“그 가문을 박멸시켜버릴 것이다.
이래도 말하지 않겠느냐”


주상의 섬뜩한 목소리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정휘량은 식은땀만 뻘뻘 흘렸고
그를 지켜보는 영상의 이마에도 땀이 맺혔다.


그 때, 무언가 결심한 듯 주먹을 꽉 쥔 채 고갤드는 세자


“전하”


“…….”


“소자의 명이 다 한 듯 싶습니다”


“뭐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세치 혀를 놀렸사옵니다.
죽여주시옵소서”


“네 이놈!!!!!!!!”


“죽여... 주시옵소서.......”


세자의 말에 급격히 흔들리는 영상의 눈.
세자 또한 영상을 보며 입술을 꽉 깨문다.


“네 놈이 정녕 미친게로구나!!!!”


화가 난 주상이 옆에 있던 금군의 칼을 빼앗아

세자 앞으로 성큼 걸어갔다. 그리곤,


“감히 과인을 농락한 것이냐”


목에 칼을 들이댔다.


“전하”


“…….”


“소자의 불충함을 용서해주시옵소서”


“정녕, 이 모든 게 너의 짓이란 말이냐”


“…….”


“대답하라!!!!!”


“소자가 용상에 앉았다면
가장 먼저 노장파를 쓸어버렸을 것입니다.
국정을 어지럽히는 자들을 처단하는 것이
이 나라 지존이 해야할 일 아니겠사옵니까”


“이, 이놈이..!”


“그리하여 전하가 이뤄내지 못한
탕평의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고분고분 대답하는 세자를 보고 부들부들 떠는 주상.
금방이라도 내리 칠 것 같아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세자에게



챙-



칼을 던져주곤 다시 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곤,


“더 들을 것도 없다.
지금부로 세자를 폐서인하도록 한다.
그리고 네놈은”



“자결하라”



뜻밖의 명에 금군과 대신들이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역모의 죄는 죽어 마땅할 터, 이 자리에서 직접 끊어라”



고요함과 적막이 흐르는 이곳.
세자가 더듬거리며 칼을 향해 손을 뻗자
몇몇 금군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하아.......”


칼의 손잡이를 잡곤 밤하늘을 쳐다보는 세자


오늘따라 영롱한 달을 보던 그의 눈에서
눈물이 주륵, 흘렀다.




'저하, 그거 아십니까?'


'무엇을 말이오'


'금슬이 좋은 부부는 한날한시에 죽는답니다!'


'그런 게 어디 있소'


'정말입니다! 설란이가 그러는데
옆집 살던 노부부도 한날한시에 갔답니다.
근데 그 부부 금슬이 어찌나 좋았던지,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답니다'


'흠.......'


'신기하지 않으십니까?'


'그럼 우리도 한날한시에 간단 말이오?'


'음....... 글쎄요'


'글쎄요?'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요'


'두고 봐야 안다....... 참말이오?'


'예!'


'우리 금슬도 궐내에 소문이 자자한 것 같던데'


'그, 그렇습니까?'


'아니 그러냐 하늘아'


'그러하옵니다 저하'


'아.......'


'허나 난 그러기 싫소'


'예?'


'빈궁과 한날한시에 죽는 것 말이오. 난 원치 않소'


'왜, 왜요?'


'그대보다 하루 더 살 것이오'


'예에? 그럼 저 혼자 죽게 그냥 놔두실 것이옵니까?
저하!! 너무하십니다!!'


'하하 그런 뜻이 아니오'


'아니면요!'


'마지막까지 그대 곁을 지켜야 할 것 아니오.'


'…….'


'이승의 일은 나에게 맡기고
하루만 먼저 가 있으면 내가 뒤따라가겠소. 어떻소?'


'저하.......'


'빈궁은 걸음이 느리니 내가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오.
아니 그렇소, 하하'


'히히...'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세자가 칼을 고쳐 잡았다.


“지난 날 저와 한 약조는 꼭 지켜주셔야 합니다 장인.
장인만 믿겠습니다.”


그리곤 영상을 보며 미소지었다.


"......."


차오른 눈물을 참으며 자리에 바로 엎드리는 영상


“아바마마”


이번엔 세자의 눈길이 주상에게 닿았다.

그는 자신을 외면하는 아버지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다 못난 아들 탓이니 심히 괘념치 마시옵소서.”


답이 없는 주상을 보며

또 다시 옅은 미소를 짓던 세자가 칼을 높게 들었다.


그리곤,


떨리는 손으로 슬픔이 가득 찬 눈을 한 채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소자,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
.
.













15년 후




“전하, 소신이옵니다”


하늘이 잠깐 호흡을 가다듬고 안으로 들어선다.
가볍고도 진득한 발걸음으로 한 걸음씩 떼면
자리에 앉아있는 주상이 눈에 들어온다.


“오셨습니까”


밝은 미소로 그를 맞이하는 이 나라 조선의 지존.


한 번 인사를 올린 뒤 가만히 서있으니
자리에 앉으라는 눈짓을 보낸다.


“편전이 아니라 놀라셨겠지요”


“....예”


“마음이 번잡해 참을 수가 있어야지요.
결국 또 오게 되더이다.
어머님이 계시던... 이곳으로”


“…….”


“어린 아이도 아닌데
왜 이렇게 그 분이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


“전하...”


“눈물은 나지 않는데 말입니다, 그저,
아직도 돌아가셨단 사실이 믿기지가 않습니다.”


“…….”


“그래서 더 내금위장을 찾는가 봅니다.
내 마음 알아주는 건 그대 뿐일테니”


“망극하옵니다 전하”


“어머니께서 그러셨지요.
이 넓은 궁 안에서 믿고 의지할 사람은
오직 내금위장 뿐이라고”


“…….”


“항상 고마운 마음입니다”


“당치 않으십니다. 어찌 소신에게 그런 말씀을...”


“전이나 지금이나
그 분들을 지켜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


하늘이 고갤 숙인다.
그리곤 두 눈을 꾹 감는다.


“오늘부로 이곳을 폐쇄할까 합니다”


“…….”


“이제 보내드려야겠습니다.
두 분 다, 먼 곳으로”


“분명... 줗은 곳으로 가셨을겁니다”


“두 분 금슬은 전에도 알아주지 않았습니까.
아마 함께 있는 그곳이 좋은 곳이겠지요”


입가에 서리는 미소


“내금위장”


“예 전하”


“아바마마께서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


지난 15년 간 현은 아비에 대해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억지로 그 기억을 삼키려는 것처럼
이상하리만치 궁금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왠지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이 물음이


하늘의 심장을 파고든다.



“마마께선, 두 번 다시 없을 최고의 성군이셨습니다”



그의 대답에 씨익 웃는 주상



“그 말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


“지극한 충심이에요 내금위장”


“전하, 소신의 뜻은...”


“압니다. 무슨 뜻인지”


“…….”


“나에게도 그 분은 다시는 없을 최고의 성군이자

아버지이십니다.
물론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해 밉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말을 끝맺는 주상.
잠시 자신의 앞에 놓여진

한권의 책을 만지며 생각에 잠긴다.




“전하”


“무슨 일이냐”


“내금위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급히 내금위장을 찾는지라...”


“알았다”


“전하 소신은 괜찮으니,”


“가보세요.”


“…….”


“내금위장이 지키고 서있어야
궁궐 수비도 제대로 될 것 아닙니까”


“송구하옵니다 전하”


“일하고 있는 사람 불러낸 게 잘못이지요.
괘념치 말고 어서 가보세요”


“예, 허면 소신은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하곤 방을 나서는 하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상이
옅게 웃으며 다시 책을 들여다본다.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어마마마.
어서 가서 아바마마께 전해주세요.
정말 행복했다고, 더할 나위 없었다고.”






책의 마지막 장
어여쁜 글씨가 빼곡하게 박혀있다.






이렇게 나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아버님은 저하와의 약조대로
끝까지 우리 모자를 지켜주셨고,
그 덕에 현이는 용상에 오를 수 있었다.


허나 그 누가 알까


사랑하는 여인에게
역적의 자식이란 오명을 입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 칼을 든 그분의 마음을,


그 서러운 마음을 누가 알아줄까



생의 마지막 길목에 서있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그 분이 그립다.


이제 곧 하늘에서 만나겠지만
만약, 나에게 지난날의 시간이 생긴다면…


마지막의 그 때로 돌아가 임에게 전해주고 싶다.


그대의 여인이라 행복했다고


더할 나위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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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인별곡
不忍別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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