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탕-



“으악!!!!!!!!!!!!!!!!!!”



조용한 창고를 울리는 두 발의 총성이
날 소름돋게 한다.


두 다리에 박힌 총알을 보며 울부짖는
저 돼지 새끼의 목소리도 소름 돋고.



또각, 또각, 또각…



“너 뭐야!!!!!! 뭐냐고!!!!!!!!!!!!!!!!”





가까이서 다시 봐도 네 얼굴은 역시 역겨워


“너, 너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야??!?! 어???”


“나는 칼을 쓰는 사람이야.
아무리 엿같은 경우가 생겨도 무조건
칼로 사람을 죽여. 근데 오늘은,”


“하아, 하아... 나한테 왜 이래, 어?
왜 이러냐고!!!!!!!!!!!!!”


“네 몸에 손대기도 싫고...
내 칼에 네 피 묻히는 것도 싫어서
어쩔 수 없이 총 좀 썼어.
역시 총소리는 귀가 아파 그치?”


“제발, 제발 살려만 줘.
살려 주세요 제발!!!!!!”


“박상태. 내가 취미가 하나 있거든? 뭔지 맞혀봐”


“제발!!!!!”


“맞혀봐 얼른”


“저 이렇게 죽으면 안돼요...!!!!!”


“관심없으면 내가 맞히지 뭐. 정답은,”


“…….”


“죽어가는 사람이랑 대화하기”


“흐윽…….”


“난 평소에 말을 별로 안 하거든.
할 필요도 못 느끼고, 귀찮고…
근데 이렇게, 이런 상황이면 말이 술술 나와.
신기하지, 어?”


“제발.......”


“어때. 나랑 대화 한번 해볼래?”


“살려 주세요... 잘못했어요... 흐윽”



“그 말은 날 보자마자 했었어야지.
별반 차이는 없었겠지만”


“집에 처자식이 있어요... 흐윽.. 제발...”


“처자식 얘기나 해봐.”


“살려만 주세요...
시키시는 거 다 할게요. 네?
흡... 제발.......”


“네가 지금 산다 쳐도 난 또 널 ‘자살’ 시킬거야.
지금 죽나 그때 죽나.”


“저 죽으면 우리 애들은 어떡해요...”



“그 생각은 니가 윤미리를 죽이기 전에 했었어야 되고”


“…….”


“내 말이 맞지 박상태 교수”


“미, 미리를 어떻게...”


“어린 제자 만지고 놀다 죽여버린 박상태 씨”


“…….”


“박상태!!!!!!!!!!!!!!!!!!!!”


떨지마.
네가 뭘 잘했다고 떨어
가치도 없는 새끼


“잘 가라”



탕-
탕- 탕-






KAP Crescent

C의 이야기






                                               



차창 밖으로 시커먼 어둠이 지나간다.
새벽 4시, 완연한 침묵.
그 침묵을 깨는 아델의 음악


항상 그랬듯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쇼팽 에튀드 앨범이 들어있을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아델이 나온다.


더불어 그 선율 위,
아델 CD를 들고 깡충깡충 뛰어오던 ㅇㅇ이가
홀연히 겹쳐진다.


야속하게도 ㅇㅇ이는 첩보물을 좋아했다.
007도 예외는 아니었다.
3년 전 ‘007 스카이폴’이 나왔을 때도
난 ㅇㅇ이와 함께 했다.



‘This is the end

Hold your breath and count to ten’





영화 속 런던은 참 멋있었다.
지금 내가 달리는 이 길만큼.



'런던 가고 싶다'


'조용한 곳으로'



한국에 온지 세 달이 지났지만
ㅇㅇ이는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런던을 찾지 않았었다.


가늠할 뿐이었다.
너에게 있어 그곳은 끔찍한 악몽이었니 아니면,
…지독한 슬픔이었니.
그저 마음속에 담아뒀던 물음이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딱 한번 그곳을 찾았다.


그곳은 조용하다고 했다.
여기처럼 밤에도 시끄럽지 않고
그저 어둠의 침묵을 즐긴다고.



‘For this is the end



그 때 참, 멍청한 생각이 들었다.



내 품은 고요해

그러니 들어와도 돼




“미친놈”


창문으로 들어오는 밤의 멜로디
유리에 비치는 미친놈의 초상


그 초상을 없애기 위해 담배 하나를 입에 문다.
뿜어져 나오는 연기 속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내 얼굴이, 내가,


징그럽다.



‘Let the sky fall, when it crumbles

We will stand tall

Or face it all together’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알 수가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가끔, 정말 가끔은 내가 평범했으면 싶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는데.
너무 평범한 나머지 작은 요동이라도
생기길 바랐던 적.


지금은 그때가 미치도록 그립다.


그래야 널 품을 수 있을테니



‘At Skyfall’



아니, 어쩌면 난
처음부터 안 되는 놈이었을지도.


우린 너무 다르니까.
너에겐 햇살 같은 사람이 필요해
그림자는 내가 할게.


그게 내 몫이라면 기꺼이



“기꺼이…”


“내 몫이라면”




“…기꺼이…….”



난 어둠과 같아서,
짙은 그림자가 돼 널 삼켜버릴지도 몰라
너에게 또 다른 악몽이 될지도 몰라


나는 네가 있어야 사는데.





.
.





“죽어 새끼야”


“커억... 컥...!!”


“천천히,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커헉!!”


“…죽어”


몸에 깊숙이 박힌 칼을 한번 더 비튼 뒤 빼내는 순간



지이잉- 지이잉-



‘작은 별’



땅에 떨어진 휴대폰 액정에 뜬 이름


“켁!... 크어.......”


“…….”



지이잉- 지이잉-



“크헉.......”



지이잉- 지이잉-



죽어가는 놈을 지켜보다 피 묻은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오빠”


“어”


“왜 안와?”


“가, 지금”


“빨리 와...”


“무슨 일 있어?”


“없어”


“근데 왜. 안 자고 뭐해”


“몰라 잠이 안 와”


“정우 형은”


“안 들어왔어”


“진욱이 형은”


“급한 일 생겼다고 뛰쳐나갔어”


“…너 혼자야?”


“응”


“씨발...”


“응?”


“금방 갈테니까 방에 가만히 있어”


“방에?”


“문 잠그고”


“문을 왜 잠가....”


“30분 안에 갈게”


“어어 오빠 잠깐만!!!”


“왜”


“끊지마. 계속 통화하자”


“…….”


“좀, 심심해서 그래”


무서운거겠지. 무섭잖아 너


“어? 오빠”


“어”


“어디야?”


“나 지금,”



입을 떼려다 다시 다물었다.
온통 피 천지인 이곳을 어떻게 설명하겠어


지금 입을 떼버리면
난 영영 네 옆에 있지 못할 것 같은데
어쩌겠어.


“가게야”


“근데 왜 이렇게 조용해?”


“창고라 그래. 지하”


“아... 바쁜 거야?”


“안 바빠. 다 끝났어”


“손님 많았어?”


“똑같아”


“오늘 공연은 뭐였어?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오늘은,”


답을 지어내느라 이리저리 서성거리는데 때마침,
창문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달빛에 눈길이 닿았다.


너를 향한 나의 소나타
‘월광’


“피아노. 피아노였어”


“진짜? 아… 나도 갈 걸!”


“맨날 하는 공연인데 뭘”


“그래도. 오빠 재즈바 가면 제대로 들을 수 있잖아.”


“내가 맨날 쳐주잖아. 집에서”


“에이, 그래도 무대에서 연주하는 거랑 다르지.”


“그런가”


“오빠가 무대 올라가면 난리날 걸?”


“왜”


“얼굴도 잘생긴 사람이 피아노도 잘 치니까.”


“.....필요없어”


“오빠 진짜 딱 한번만 무대 연주 해주면 안 돼?
어떻게 피아니스트 사장이 자기 가게
무대 한번을 안 올라가냐?”


연주하는 이유가 바뀌었으니까


“응?”


이젠 너를 위한거라서


“오빠?”


“…ㅇㅇ아 여기 정리하고 금방 갈게.
기다리고 있어”


“흠.......”


“빨리 갈게”


“알았어. 빨리 와!”


“문 잠그고, 어?”


“치. 알았어”






내가 도착해서도 절대 열어주면 안 돼

널 언제 삼켜버릴지 몰라

 

어둠이 빛을 삼키듯




.
.




‘Where you go I go

What you see I see’


‘당신이 가는 곳이면 나도 가요
당신이 보는 건 나도 보죠.’


‘I know I'd never be me without the security

of your loving arms keeping me from harm.’


‘위험에서 지켜주는 당신의 애정 어린 품이 없다면
난 결코 온전한 내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아요.’


‘Put your hand in my hand

And we'll stand’


‘내 손을 잡고 우리 함께 서요’



그날 황급히 집으로 돌아가던 내 모습이
담배 연기 중으로 날아간다.


같은 밤
같은 어둠, 같은 침묵






터널 안 메아리가 돼 사방으로 흩어지는
아델의 목소리



스카이 폴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무슨 뜻인데

 

바보야. 상처잖아 상처

 

상처?”

 

본드의 치명적인 상처

 

제임스 본드가 그런 게 있나

 

이거 봐. 머리만 똑똑하면 뭐해

 

뭔데 그럼

 

사전에는 없지만 대충 스카이 폴은 추락이란 뜻이야.

맞지

 

 

근데 봐봐, 제임스 본드가 옛날에 살던 집 이름이

스카이 폴이잖아. 거기서 엄마 아빠가 살해됐고.

그래서 본드에게 스카이 폴은 상처의 근원지가 됐지

 

 

거기다 심지어 엄마 같은 M 아줌마도

거기서 죽었잖아. 최악인거지

 

그래서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인거야. 스카이 폴

 

…….”

 

근데 마지막에 스카이 폴이 홀라당 무너졌어

 

 

그리고 본드의 눈빛이 달라졌지

 

그러면,”

 

극복한 거지. ‘부활이라고 해야 하나..

-. 아 졸려

 

…….”

 

왜냐. 이 영화는 죽음부활을 소재로 만들었거든.

감독이 그랬어... 아마도



내가 너의 스카이 폴이 된다면
너의 상처를 끌어안고 무너져 내린다면


그가 그랬던 것처럼
너 또한 다시 부활할 수 있을까.



나 잘래. 졸려

 

그래

 

운전 잘해…….”







네 옆에 계속 서있어도 될까?




Let the skyfall, when it crumbles
We will stand tall
Or face it all together
At Sky fall






*






끼이익-



“오빠”


“…….”


“오빠아-”


오늘도 어김없이 슬금슬금 내 방으로 들어오는 너
내 옆에 살짝 누우며 작게 속삭인다.


“오늘은 뭐 칠거야?”


평소라면 당장 대답했겠지만
오늘은 왠지, 장난 한번 치고 싶어서
계속 듣고만 있으니
작은 한숨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계속 잘거야?”


“…….”


“나 이따 수업 때 발표하는데...
오늘은 좀 씩씩한 거 쳐주라, 응?”


“…….”


“오빠…”


내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는 ㅇㅇ.
이리저리 만져보고 뒤집어보더니
“우와…” 감탄사를 내뱉는다.


“진짜 예뻐”


손가락이 예쁘단 뜻인가.


“히히”


순간,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직접 손을 가져가 자기 볼에 턱- 올려놓는 ㅇㅇ 때문에


“히이....... 어?”


그리고 정말, 나도 모르게, ㅇㅇ의 볼을 쓰다듬었다.
엄지손가락으로 한번… 두 번…


“일어난거야?”



“무슨 발푠데”


“저번에 한 거 있잖아. 가족 형태 보고서.
그거 ppt로 따로 발표하래.
진짜 거지같지 교수”


“그러네”


“발표가 뭐 쉬운 줄 아나.
맨날 뭐만 했다 하면 발표야”


옆에서 입 내밀며 투정부리는 녀석을 유심히 쳐다봤다.
여전히 내 손을 만지작거리며 혼자 투덜거리는 ㅇㅇ는


어린 햇살 같았다.


“씩씩한 거 쳐줘. 응?”


“어떤 거”


“비장한 느낌 나는 걸로”


“음.......”


“56분이다! 빨리 결정해!!”



씨익 웃는 ㅇㅇ이 뒤로 보이는 벽시계.
오늘따라 저 시계가 얄밉다.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앗아간 느낌


“어어! 57분!!”


재촉하는 ㅇㅇ를 보고 살짝 웃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입모양으로 ‘빨리, 빨리’를 외치는 녀석이
왜 이렇게 귀여운지.


너는 알까.
내 인생에서 ‘귀엽다’는 오직 너뿐이란 걸


터덜터덜- 피아노 앞으로 걸어가 의자에 앉았다.
뭘 연주해줄까.
네가 어떤 연주를 좋아할까.


꽤 오래 고민하다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이거라면 네가 좋아할 수 있을까



라흐마니노프 프렐류드 op.23 no.5
G단조 알라 마르치아



“오호?”


러시아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의

전형적인 성격을 담은 전주곡.
리드미컬한 선율이 서정을 거쳐 호기롭게 끝을 맺는다.


“우와…”


피아노는 돈벌이라 여겼던 그에게
이 곡 또한 그저 ‘수입’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전주곡을 ‘예술’로 품었다.
나 또한 그렇다.


“우와!!!”


등 뒤에서 감탄사만 연발하던 ㅇㅇ이가
내 옆으로 와 건반을 구경한다.


내 손에 의해 이리저리 치이는 건반들을.



내가 처음 피아노를 봤을 때도
ㅇㅇ이와 같은 반응이었다.


하필이면 예프게니 키신의 연주였다.
부모님은 5살짜리 아이를 키신의 연주회에 데리고 갔다.


키신 또한 청년에 불과했지만
그의 손놀림은 어느 거장 못지않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연주에 찬사를 보냈다.


그는 신이 내린 피아니스트였다.


이날 키신은 쇼팽의 에튀드를 연주했다.
그래서 내가 쇼팽을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충격으로 피아노를 시작했으니…


“우와.......”


입을 다물지 못하는 ㅇㅇ이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난다.


사실 지금 하는 연주는 별로일 게 분명했다.
온통 다른 곳에 신경이 가있으니
좋은 연주가 나올리 있나.


그저 어린 시절 내 모습을 떠올리며 건반만 두드릴 뿐이었다.
쇼팽의 에튀드와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은
악보가 닳도록, 잉크가 번지도록 치던 어린 나를.


머리가 아닌 손이 기억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처음 피아노를 시작했을 땐 마냥 즐거웠었다.
내 마음대로 소릴 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여러 화음이 섞여 사람을 뭉클하게 하는 것도
피아노가 가진 재주라 여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지치기 시작했다.
계속 그 자리에 머무는 느낌.
지루함, 공허함.
난 천재가 아닌가봐, 하는 거지같은 생각.


그 때, 옆에 있던 친구가 날 도왔다.
하늘로 먼저 가버린 그 녀석이 없었다면
난 아마 진작 관뒀을지도 모른다.


녀석은 피아노가 ‘아름답다’고 표현하곤 했다.
바흐든 리스트든 모든 피아노 곡은
아름답고 찬란하다고.


그래서 나도 미친 듯이 연습에 열중했다.
내 귀에도 ‘아름답게’ 들릴 수 있도록.


밤이 새도록 몇날 며칠 피아노 앞에만 앉아있었다.


그랬더니 정말, 신기하게도,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화음 위에
내가 떠다니는 느낌을 받았다.


홀로 우주에 떨어진 것처럼


외롭지만 찬란하고
두렵지만 아름다운



벌컥-



“거참 더럽게 쿵짝거리네”


“쉿”



그날 이후로 난 피아노 앞에만 서면
세상을 다 가진 듯 즐거워했다.
그리고 꿈꿨다.
언젠가 나도 키신처럼 세상을 놀라게 할 연주자가 되리라.
내가 연습한 시간에 부끄럽지 않을
그런 피아니스트가 되리라.


반면 친구 녀석의 꿈은 소박했다.
먼 훗날 자신의 아내와 딸을 위해
피아노 곡 하나 연주할 수 있을 정도면 된다며
바보같은 웃음을 지었다.



“와... 이수혁 집중한 거 봐”


“조용히 하라고 좀”



대회 하루 전날 녀석은 목을 맸다.
자기가 그토록 사랑하던 피아노 앞에서


너무나 처절한 표정으로.


녀석의 이름을 부르며 방으로 뛰어 들어간 난
천장에 걸려있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연신 구역질을 해댔다.


그의 뒷모습은 꽤나 처연했다.


나에겐 친구의 죽음을 슬퍼할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줄줄이 있는 대회에 매진해야 했고
그것을 위해 지난 몇 년을 달린 난
최고의 성과를 내야 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이 대회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내 연주, 1등의 영예, 사람들의 박수…


다 그의 것일 뿐


무대 위 마지막 연주를 끝내고
심사위원과 관객들 앞에서 눈물을 쏟은 것.
그것만이 온전히 내 것이었다.



벌컥-




“…….”


“형, 얘 좀 봐”


“쉿!”



솔직히 비참했다.
나름 많은 걸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남은 거라곤 건반 위 손가락 밖에 없었다.


마치 녀석이 모든 아름다움을 다 가져가 버린 듯
더 이상 피아노 소리가 아름답게 들리지 않았다.
큰 소음이었고 지옥의 발악 같았다.


손목을 잘라 평생 피아노 앞에 앉지 않겠노라
다짐하기도 했다.



근데 결국, 할 줄 아는 게 피아노 뿐이라
말보단 연주가 편했기에,


또 건반 위에서 놀아나고 있더라.



“쿵짜자쿵짝 쿵짝 쿵짝”


“하지 말라고”


“닥쳐 이진욱”


“씨”



다행인 것 같다.
계속 연주할 수 있어서-


이젠 떠나간 친구가 아닌
이 사람들을 위해 하는 거라서.


애타게 찾던 ‘아름다움’도 ‘찬란함’도
이젠 이곳에 다 있다.



“이거 누구 건데”


“몰라”


“맞혀봐야지”


“쳇. 알지도 못하면서”


“딱 보니까 쇼팽은 아니네”


“그럼”


“뭐랄까 약간... 라흐마니노프 느낌?”


“어째서”


“피가 땡겨”



“.....또?”


“내 피는 아무한테나 땡기지 않는다고”


“오빠 아직 잠 덜 깼나보다”


“분명히 라흐마니노프야. 러시아 음악 느낌”


“아니면,”


“아니면 아닌 거지 뭐.”



입가에 미소가 서린다.
이런 사람들한테 귀하디 귀한 연주를 들려주다니.



“야 저거 봐. 쟤 웃어”


“그러네….”


“소름 돋네. 무섭게 왜 저러냐”


“오빠가 방해해서 그래”


“조커같이 처웃고 있어”



퍽-



“아 형”


“처떠들지마”


“아침부터 때리기 있어?”


“다물어라”


“…….”



훗날 하늘에서 친구를 만난다면
두 마디 정도는 건넬 수 있을 것 같다.


네 소원은 내가 비슷하게 이뤘다고.
비록 아내와 딸은 없었지만.



어느덧 처음보다 더 격정적인 마지막이 다가오고
이 연주의 끝도 보이기 시작한다.


더불어 잠시 나가있던 내 정신도,
감정도, 이름도 모두.



희미한 코다(악곡 끝 결미)는
가장 화려하게 곡을 마무리 지었고


난 마지막 건반에 모든 숨을 내려놓았다.




.
.




“우와!!!!!!!!!!!”



“역시 넌 나의 비르투오소”


멀리서 지켜보던 정우 형은 살짝 웃으며 방을 나섰고
옆을 지키고 서있던 진욱이 형은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신 들린 줄 알았어”


“이 오빠 때문에 방해됐지!!”


“어”


“에이, 아주 푹 빠져있더만.
내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을 거 아냐”


다 들렸어. 라흐마니노프 맞아”



“진짜? 맞아? 우왁!!!!!!!!! 나 맞혔어!!!!”


“헐 말도 안돼”


“내 말이 맞잖아!! 피가 땡겼다니까? 형!!!!!”


형이 정우 형을 부르며 뛰쳐나갔다.
저러다 또 맞을 걸.


“오빠 진짜 대박이었어”


“좋았어?”


“어, 대박. 오빤 진짜 여기 있으면 안돼”


“그럼”


“다른 피아니스트들처럼 세계를 누벼야지”


“그래야 되나”


“내가 매니저 할게”


“네가?”


“응. 서포트 잘 할테니까 뽑아줘”


“너는 그냥,”


“응?”


“내 옆에만 있으면 돼”


“…….”



“지금처럼”





*





“야 너 오늘 발표라고?”


“응. 떨려”


“떨...려?”


“응. 완전 떨려”


형이 계란후라이를 흡입하는 ㅇㅇ를 보며 고갤 젓는다.


“떨리니까 많이 먹어. 이거 머핀도 너 다 먹어”


“원래 내거 아니었어?”



“어? 어. 맞어”


큰 부엌 식탁에 모여 앉은 넷.
원래 아침을 잘 먹지 않는 나와 정우 형,
오늘따라 속이 안 좋은 진욱이 형, 이렇게 셋이
ㅇㅇ이만 쳐다보고 있다.


“우유도 마시고”


“과일은?”


“나 복숭아!!”


“어”


진욱이 형이 냉장고에서 복숭아를 꺼내더니
선뜻 내게 건넨다.


“뭐”



“칼은 네 전문이잖아”


....... 뭐래 갑자기. 미친 거 아니야?
퍽 인상쓰며 정우 형을 쳐다보니
형도 아랫입술만 꽉 깨물고 있다.


“아, 하하하하 아니다. 과일은 내가 잘 깎지?”


“이리 줘. 내가 제일 잘해 여기서”


“됐어. 여자 애가 무슨 칼을”


“난 과일도 못 깎아? 이게 뭐라고”


“다쳐 그러다”


“내놔”


결국 내 손에 들어왔다, 이놈의 칼.
ㅇㅇ이 손에 쥐어줄 순 없으니


“진작 그럴 것이지”


“후.......”


“근데 오빠 출근 안해? 삼촌은?”


“해야지”


“나도”


“얼른 가. 8시 반 넘었어”


“너는”


“나 10시 수업이잖아”


“헐! 야 그럼 진작 말하지!!
태워다 주려고 기다렸구만”


“내가 오빠 방에 시간표 붙여 놨을텐데”


“잠깐, 오늘 목요일 아니야?”


“금요일”


“.......”


ㅇㅇ이가 복숭아 깎는 내 손을 유심히 지켜본다.
고갤 들어 눈을 마주치니,


“오빠 칼질 하지마”


대뜸 던지는 단호한 말투


“왜”


“손 다치잖아”


“안 다쳐”


“다칠 수도 있잖아!”


“괜찮아”


“오빤 손이 재산인데 뭐가 괜찮냐?”




피식 피식. 자꾸 웃음이 새어 나온다.
나 걱정해주는 눈도 좋고
삐죽거리는 입도 좋고.


“와 씨”


“왜”


“나 오늘 병원 안 갈래”


“뭔 소리야”


“9시 회진인데 이미 늦었어”


“늦어도 가야 정상 아니야?”


“안돼. 정 선생이 죽일지도 몰라”


“난 언니 좋기만 하던데”


“너한테만 좋은 거겠지”


“네가 제대로만 하면 될 걸”


“형, 지금 걔 편 드는거야?”



“어”


“배신자”


“빨리 가!!!!”


“나 진짜 주검으로 돌아올 수도 있어”


“묻어줄게”


“야, 야… 니가 그런 말 하면 진짜 무섭다고”



“한심한 놈. 나 먼저 간다-
넌 발표 잘하고.”


“가, 형”


“어!! 잘 갔다 와!!”


세차게 손 흔드는 ㅇㅇ이 볼을 살짝 꼬집곤
현관을 나서는 정우 형


“오빠 진짜 안 가?”


“고민 중이잖아”


“고민 할 시간에 벌써 갔겠다”


“나 먼저 가면 수혁이가 데려다 주나?”


“어”


“아우 알아서 갈테니까 빨리 가라고! 가!!”


“야, 너 오빠 발로 차는 거야 이제?”


“오빠로 보이지도 않아!!”



“그럼 우리 친구 되는 거?”



“아 형”


저 형은 정말 진지하게 미친 건가 싶다.
인간이 한결 같아.
처음부터 지금까지 항상 저랬어.


“니네 쌍쌍바로 이러지 마라. 서러우니까”


결국 성화에 못 이겨 자리에서 일어난다.


“갔다 와서 보자”


“주검으로”


“....... 개새끼”


“푸흐. 아 빨랑 가! 노닥거리지 말고”



“안녕 막둥이! 오늘 잘 해!!”


“응!!”



쾅-



드디어 형까지 나가고 나니 집안이 조용해졌다.


“후. 조용하다 이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


“그치 오빠”


너와 함께 하는 시간


“응”


“살 것 같아…”


아무 말 없이 쳐다보기만 해도 편안한 시간.


우린 한동안 이 잔잔함을 즐겼다.
흘러가는 시간도 아깝지 않을 만큼
작은 움직임에도 눈 감을 만큼



“오빠”


“…….”


“다음 번엔”


“응”


“월광 소나타 들려줘”



“....... 어?”


“나를 위한 소나타, 월광”



.......
너의 일렁이는 눈빛도 못본 척 할 만큼




.
.
.




못다한 이야기









<초승달>



첫 임무 날, 밤하늘에 초승달이 떴다.
작지만 강렬하고, 여리지만 뚜렷한 달.


그 모습에 매료 돼 ‘Crescent’라는 이름을 짓게 됐다.


옆에서 “이왕이면 풀문 해 풀문. 보름달”이라며
깐죽대던 진욱이 형 덕분에
더욱 내 이름에 대한 애착이 생겼다고나 할까.



처음 두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느꼈던 안도감을
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평소 즐거운 마음으로 찾던 재즈바가
내 인생 마지막 장소가 될 거라 생각하니
선뜻 발을 들여놓기가 힘들었었다.


재즈바에서 쇼팽이라,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섞이지 못 할 하모니일 게 분명했는데.
왠지 마지막 피아노 연주는 그곳에서 해야 할 것 같았다.
나에게 다른 무대는 없었으니.
친구에게 바칠 수 있는 무대로서는
안성맞춤이란 생각도 들었다.
고독한 조명, 즐비한 위스키,
음악의 종류는 다르지만 어떤 피아노 선율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들...
이 정도면 친구도, 쇼팽도 좋아하겠지.


그날의 ‘이별의 곡’은 친구에게 보내는 선물이자
쇼팽에 대한 찬사 그리고,
나와의 ‘이별’이었다.


사람들의 기대하는 눈빛을 접어두고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에 손을 올릴 즈음
마른 침을 삼켰다.
견고해야 했다, 그 순간만큼은.


다행히도 내 연주는 계속 이어졌다.
곡을 알든 모르든, 사람들은 그저 귀 기울일 뿐이었다.
알아주길 바라지도 않았지만-


촌스럽게도 난 건반을 두드리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피아노 앞에만 머물던 오랜 시간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선택했을 피아노,
수많은 악보, 사람들의 박수 등
여러 가지가 얽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아쉽지만 좋았다. 마지막이라서.



연주가 끝난 뒤 사람들은 나에게 욕을 퍼부었고
뒤에 서있던 한 남자는 술잔을 던졌다.
몇몇 사람들은 무대 위로 올라와 주먹을 날리기도 했다.


피할 수 없었지만 피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여기서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다.
날 죽도록 패고 다신 이곳에 얼쩡거리지 못하게
해줬으면 좋겠단 달콤한 상상.
물론, 그 상상은 누군가에 의해 저지됐다.
덕분인지, 때문인지. 젠장인지.


그는 처음부터 날 ‘병신’이라 불렀다.
소개도 없이 대뜸 “병신새끼”라 부르는데
그 말이 왜 그렇게 좋던지.
한국 사람이라서, 아님 그 사람 눈빛이 남 같지 않아서?


난 고맙다는 말 대신 몇 개의 욕을 뱉었다.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분명 나보다 나이도 훌쩍 많아 보였지만
왠지 편했다. 그래서 좋았다.


진욱이 형도 내가 좋았던 것 같다.
정우 형에게 대뜸,
“형 나 얘 좋아. 피 엄청 땡겨”라 말할 만큼.
당시엔 형의 ‘좋다’는 의미가 어떤 건지 잘 몰랐다.
통상적인 의미의 ‘좋다’는 알았지만
 그게 ‘KAP’의 일원이 된다는 뜻인진 몰랐다.
형은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 얘 우리랑 같이 사람 죽였으면 좋겠어.”



그렇다고 해서 내가 KAP를 싫어한다는 건 아니다.
처음 KAP의 정체를 알았을 때 난 전율을 느꼈다.
온몸에 퍼지는 소름이랄까. 키신의 연주회 때 느꼈던
소름과는 또 다른, 이번엔 전율.


정우 형은 나까지 KAP에 들어가는 걸 원치 않았다.
잃는 게 많아질 잔인한 길일테니.


“네가 선택 해.
지금처럼 살 건지, 더 허무하게 살 건지”


뭔 보기가 이래.
지금처럼 사는 거나 더 허무해지는 거나 다 나쁜 건데.
-진욱이 형의 말에 순간 웃음이 터졌었다.


“이건 어때. 지금처럼 너 혼자 살 건지,
우리랑 함께 할 건지”



난 이들과 함께 하는 더 허무한 삶을 택했다.



내가 칼을 선택한 이유는 손이 망가지길 바랐기 때문이다.
스치기만 해도 잘려나갈 것 같은 칼이
내 살갗을 핏줄을 모두 앗아갔으면 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칼은 애석하게도 날 피해만 갔다.


진욱이 형은 그런 내가 ‘섹시하다’고 표현했다.
아슬아슬 지나가는 칼날이 짜릿하다며,
내 손이 칼을 쥘 때 뭔가… 소름이 돋는다고 했다.
변태같긴.



나의 첫 임무는 강도범이었다.
의뢰인은 자신의 아내를 죽이고 집까지 털어 간
그 강도범을 잔인하게 죽여달라 부탁했다.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 그는 뉴욕을 떠나
마이애미로 갈 채비 중이었다.


늦은 밤, 난 그의 심장에 칼을 꽂았다.
한번, 두 번, 세 번…
더러운 피가 얼굴에 흩뿌려져도 거침없이 찔렀다.
정우 형 말대로 신속 정확하게. 명확히.


“Good job, Crescent”


칭찬을 들어서 좋은 게 아니었다.
그냥, 칼이 내는 소리가 좋았다.


변태같긴.



정우 형은 항상 든든한 존재였다.
지금처럼 우릴 돌봐줬고 보살펴줬다.
마치 고아원 원장처럼 또는 소년원 간부처럼.


형은 우리와 달리 큰 상처를 받았던 기억 같은 건 없다고 했다.
평범하게 나고 자란 것밖엔 없다고.
물론 총을 물고 태어났지만


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 상처 하나가 생겼다.
먼저 떠나버린 누나의 딸, ㅇㅇ였다.


형은 영국에 다녀온 이후 처음으로
슬픔이 가득한 눈을 보였다.
매일 밤 술에 취했고 시를 읊듯 나지막이 말하곤 했다.


“불쌍해. 불쌍한 아이야”


불쌍한 ㅇㅇ.
그게 그 아이의 첫 인상이었다.



ㅇㅇ는 진욱이 형을 귀찮아하지 않았다.
매일 말 걸고 장난 쳐도 피하지 않았다.
도리어 신기한 듯 빤히 쳐다보는 눈길에
형이 더 당황해 할 뿐, ㅇㅇ는 꾸준했다.
그 모습이 퍽 웃겼던 것 같다.
천하의 이진욱이 나가떨어지다니.


말이 없던 ㅇㅇ는 종종 피아노 근처를 맴돌았다.
즉, 내 방에 들어와 멍하니 앉아있곤 했다.
아침이든 밤이든, 언제든 들어와
피아노 앞에 자리 잡고 앉아있었다.


하지만 연주를 하진 않았다.
그저 쳐다만 볼 뿐


처음엔 불쑥 불쑥 들어오는 탓에 놀라기도 했지만
점점 익숙해졌고, 그게 좋아졌다.
ㅇㅇ는 피아노를 보고
난 ㅇㅇ를 보고.


우리에겐 일상이 되어버렸다.


언젠가 한번 ㅇㅇ가 악보를 들고 온 적이 있다.
뭔가 하고 봤더니 모차르트의 ‘작은 별’이었다.
정확히 ‘작은 별 주제에 의한 변주곡.’


난 악보를 보자마자 연주를 시작했고
ㅇㅇ는 활짝 웃으며 악보를 넘겨줬다.


총 12개의 곡을 연주하는 동안
우리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통통 튀는 건반처럼 ㅇㅇ 눈은 초롱초롱 했다.


예뻤다. 무척.


ㅇㅇ는 ‘불쌍한 아이’에서 ‘작은 별’이 됐고
‘어린 햇살’이 되어버렸다.




“작은 별…”


너는 나의 작은 별
나의 어린 햇살
햇살 같아.
햇살.
반짝반짝...



“흠흠”






쇼팽의 연인 여인 연인, 조르주 상드


꽃을 꺾기 위해 덤불 속 가시에 찔리듯이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내 영혼의 상처를 감내해야 한다.


덤불 속 모든 꽃이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꽃의 향기조차 맡을 수 없기에


상처받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상처받는 것이므로


사랑하라, 인생에서 좋은 것은 그것 뿐이다.




“사랑하라, 인생에서 좋은 것은 그것 뿐…”





“어… 에이…… 히”





.
.
.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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